[eBook] 부끄럽지 않은 밥상
서정홍 지음 / 우리교육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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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작가의 <지리산 행복학교>를 읽으면서 나도 이렇게 자연과 벗삼아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면 공기 좋은 시골에서 남편과 오붓하게 작은 텃밭을 키우며 살아야겠다는 작은 소망도 가져보았다. 그런데 <<부끄럽지 않은 밥상>>을 읽으면서 나의 소망이 너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나는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도시의 문물을 쉽사리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꼬집어 주었기 때문이다.

<58년 개띠>시인 서정홍은 1992년 무렵 우연히 접한 신문 기사 몇 줄 때문에 남은 삶을 농사지으며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 기사내용은 이십 여년 간 우리 밀밭이 사라져 시중에서 우리가 구할 수 있는 밀가루와 제품들은 거의 수입 밀로 만들었으며, 그 수입밀이 농약과 방부제 범벅이라 벌레들마저 먹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를 읽은 후 농촌과 관련된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우리밀살리기운동'을 하면서 농약과 화학비료를 뿌려 대는 관행 농법을 버리고 생명 농법(친환경 농법)으로 바꾸기 위해, 마을마다 작은 생산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 가장 소중한 일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10여 년간의 농촌관련 일에서 더 나아가 작은 산골마을에서 '철없는 농부'가 되었다.

 

<<부끄럽지 않은 밥상>>은 농부시인 서정홍님이 농부가 되면서 여전히 따스함을 주는 시골 이웃의 정, 농촌 살리기의 절실함과 필요성 등을 시와 사진과 함께 담아냈다.

그는 농사를 지으면서 '귀한 것은 천한 것을 근본으로 하고, 높은 것은 낮은 것을 바탕으로 한다.'(본문 49p)는 것과 세상 모든 갈등과 죄는 사람이 자연에서 멀어지면서 생겨나는 것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만이 가난한 사람을 살리고, 가난한 사람만이 아이들을 살리고 세상을 살릴 수 있다며 농촌이 살아 있어야하는 이유를 일깨운다. 특히 병원에 입원해서 알게된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병실에서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며 힘겹게 살고 있는지, 경제 성장이란 괴물에 홀린 탓에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기계에 몸을 빼앗겨 장애인으로 살고 있는지를 알아가면서 경제 성장의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호박 넝쿨이 막 뻗어 나갈 때는 건들면 안 되네. 함부로 건들면 호박이 열리지 않아. 사람도 마찬가지지. 아이들이 한참 자랄 때 잘못 먹거나 스트레슨가 먼가 받으면 자랄 수 없어. 그때는 동무들과 산과 들로 뛰어다니며 놀아야 쑥쑥 크는데, 책상 앞에만 앉혀 두니 어찌 제대로 자라겠나." (본문 123p)

 

고등교육을 받고, 자녀를 위한 이런저런 강연회를 다니며 자녀교육에 열의를 보이는 요즘 엄마들보다 많이 배우지 못했어도 자연 속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우리 농부들에게서 '올바른 길'이 무엇인가를 알아간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배운 삶의 이치와 지혜를 깨달은 이들에게도 현실은 큰 고통이다. 농촌이 살아야 우리 모두가 살수 있다는 진실을 보지 못하고 생명의 깃든 소중한 땅을, 땅으로 보지 않고 투기 대상으로 여기는 몹쓸 사람들과 농산물 수입으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조차 제 목숨을 살려 주는 음식보다 옷이 더 소중하다고 하는 요즘 사회를 보며 저자는,

 

결국 돈을 쫓아서 살아온 것은 아닌지요? 돈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찰떡같이 믿으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요? 겨레의 '생명 창고'인 우리 농촌이 무너지는 걸 두 눈으로 보면서도, 우리가 함부로 먹고 마시고 버린 죗값으로 환경이 오염되어 아이들이 병들어 가는 줄 알면서도, 모른 척 살아온 것은 아닌지요? (본문 189p)

 

라며 되묻는다. 욕심을 버려야 평화를 찾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가장 소중한 것이 돈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이 못난 관념때문에 저자의 말처럼 몸과 마음에 병이 들어간다.

일년에 한번 이웃들과 찜질방을 가고, 일을 하다 막걸리 한잔을 하면서 온갖 시름을 다 벗어버리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행복은 가진 자가 아니라 갖지 못한 자가 느낄 수 있는 특권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생각과 처지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어서 귀농을 했습니다. 메마른 도시에서 받은 깊은 상처를 씻고 자연을 닮아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저절로 신바람이 납니다. (본문 203p)

 

손에 쥐고 있는 욕심을 놓지 못하고, 경제 성장과 과학의 발달이 준 문명의 편리함과 풍요로움을 쉽게 포기할 수 없어 오늘도 이 많은 것들을 쥐고 있으려니 마음은 늘 불편함과 불만족으로 가득차 있다.

"서로 속이고 서로 눈치 보며 서로 경쟁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복잡한 도시에서 사는 것 자체가, 자연과 사람에게 죄" (본문 5p)가 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이 복잡한 도시에서 떠날 준비를 하지 못한다.

대신 이렇게 <농부 시인의 흙냄새 물씬 나는 정직한 인생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 마음 속에 자연을 담고, 정을 담아본다.

메마른 마음에 신바람나는 이곳의 정취가 욕심을 조금 덜어내게 한다. 가끔은 이렇게 흙냄새 나는 책을 읽음으로써 욕심과 상처로부터 조금은 벗어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비록 '나도 농부가 되겠다'라는 결심을 하진 못하지만, 우리 농촌의 현실과 농부들과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면서, 우리 농산물을 애용해야겠다는 결심을 해본다.

농부시인 서정홍님과 같은 분이 계셔서 아직 우리 농촌에 희망이 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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