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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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병에 시달린 듯 지친 하루를 보내고 나면, 어느새 나는 금요일이 주는 설레임을 느끼고 있다. 30대 후반으로 갈수록 시간이 너무도 빠르게 흐르는 탓에 가끔은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어떻게 하루를 보내고, 일주일을 보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있다. 우리나라의 '빨리빨리' 문화로 인해서 인터넷 강국이 되기도 했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빨리빨리'를 외치고 있다. 쫓기듯 하루를 보낸 뒤, 하루를 뒤돌아봤을 때 밀려드는 허탈함에 깊은 한숨을 내쉴 때도 있다.
내 자신을 돌아볼 사이도 없이, 내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볼 사이도 없이 정신없이 달려만 가는 지금의 삶에서 나는 행복을 느끼고 있는걸까? 도대체 하늘을 올려다보는 여유는 누가 주는걸까? 

옛 원형극장 터에 어린 소녀인 모모가 살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모모에게 친절히 대해주었고, 음식을 갖다 주기도 하였으며, 모모가 살고 있는 반쯤 허물어진 집을 깨끗이 치워주고 수리해주었다. 그들은 가난했지만, 삶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모모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있었는데 어리석은 사람이 갑자기 아주 사려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끔 귀기울여 들어주는 것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따뜻한 관심을 갖고 온 마음으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는데, 사람들은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지혜로운 생각(본문 23p)을 떠올렸다. 아이들은 모모가 사는 극장 터에서 놀면서 늘 새로운 놀이를 생각해냈고, 마을 사람들은 '아무튼 모모에게 가 보게!" (본문 21p)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시간을 대상으로 모종의 계획을 꾸미고 있는 회색 신사들의 등장으로 이 마을의 평화는 깨지고 말았다. 누구에게나 모든 것이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는 순간이 있는데, 회색 신사들은 사람들의 그런 순간을 노려 그들의 시간을 빼앗았다.  

"일을 하다 보면 도대체 제대로 된 인생을 누릴 시간이 없어. 제대로 된 인생을 살려면 시간이 있어야 하거든. 자유로워야 하는 거야. 하지만 나는 평생을 철컥거리는 가위질과 쓸데없는 잡담과 비누 거품에 매여 살고 있으니." (본문 79p) 

"바라시는 대로, 제대로 된 인생을 사는 데 필요한 시간이 충분하다면 아주 다른 사람이 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당신에게 필요한 건 바로 시간이에요. 맞습니까?" (본문 81p)
"선생님, 시간을 어떻게 아끼셔야 하는지는 잘 아시잖습니까! 예컨대 일을 더 빨리 하시고 불필요한 부분은 모두 생략하세요. (중략) 무엇보다 노래를 하고, 책을 읽고, 소위 친구들을 만나느라고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본문 91p) 

시간을 아끼면 곱절이 시간을 벌 수 있다! (본문 94p) 손톱만큼의 자투리 시간도 남지 않을만큼 시간을 알뜰하게 쪼개 썼지만 시간은 수수께끼처럼 그냥 사라졌고, 사람들은 점점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안정을 잃어 갔다. 시간을 아끼는 사람들은 돈을 더 많이 벌었기 때문에 옷을 잘 입긴 했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무언가 못마땅한 기색이나 피곤함, 또는 불만이 진득하게 배어 있었고, 눈빛에는 상냥한 기미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이제 시간이 없는 어른들은 아이들을 방치하게 되었고, 모모는 자신을 찾아온 회색 신사인 영업사원 BLW 553 c호를 통해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제 더 이상 도망치지 않으리라. 모모는 여태껏 제 목숨을 구하려고 도망쳤다. 그 동안 내내 자기만, 자기의 쓸쓸함과 자기의 두려움만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곤경에 빠져 있는 건 친구들이었다. 아직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바로 모모 자신이었다. 회색 신사들을 움직여 친구들을 풀어 주도록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아주 희박했다. 그러나 적어도 시도는 해보아야 했다. (본문 301p) 

인간의 일생을 먹고 살아가는 회색 신사들에게 사실을 알게 된 모모는 철천지 원수가 되고, 사람들에게 시간을 나누어주는 호러 박사의 도움으로 모모는 사람들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기 위해 회색 신사들에 맞서는 모험을 하게 된다. 

시간 절약. 나날이 윤택해지는 삶!
시간을 아끼면 미래가 보인다!
더욱 보람찬 인생을 사는 법 -시간을 아끼라! (본문 95p) 

시간의 소중함에 대해서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시간을 아끼면서 아둥바둥 바쁘게 살아간다. 어른 뿐만 아니라 아이들 역시 학교, 학원을 오가며 짜여진 시간표대로 움직이며 바쁘게 공부한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아끼며 자신의 목표를 향해서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고 있지만, 분명 허탈함도 공존하고 있을 것이다. 경쟁에서 이겨야하는 치열한 전쟁을 치루며 사람들이 바쁘게 살아가는 동안 사회는 점점 삭막해졌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는 시간조차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모든 걸 이루고나면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거의 눈치를 채지 못해. 허나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하고 싶은 의욕이 없어지지.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낄 수 없지. 한 마디로 몹시 지루한 게야. 허나 이런 증상은 사라지기는 커녕 점점 더 커지게 마련이란다. 하루하루, 한 주일 한 주일이 지나면서 점점 악화되는 거지. 그러면 그 사람은 차츰 기분이 언짢아지고, 가슴 속이 텅 빈 것 같고, 스스로와 이 세상에 대해 불만을 느끼게 된단다." (본문 328,329p) 

우리가 말하는 시간의 소중함이란 '빨리 빨리''아둥바둥'이 결코 아니다. 똑같이 주어진 24시간을 알차게 보내야 한다는 의미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가슴 속에 깃들여 있는 것(본문 98p)이기 때문에, 시간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비밀을 다시한번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세상은 점점 더 시간에 쫓기어 바쁘게 움직일 것이기 때문이다.
판타지를 통해 흥미롭게 다가오는 이 작품에서 시간의 의미에 대한 사람들의 오류를 되짚어주고 있다. 저자는 "나는 이 모든 일이 이미 일어난 일인 듯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 일이 앞으로 일어날 일인 듯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본문 364p)라고 말했다. <<모모>> 작품 속 아둥바둥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현재에서도 존재하지만, 앞으로는 더 많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저자는 모모를 통해서 시간에 대한 우리의 소홀함을 꼬집고 있으며, 나 스스로의 하루하루를 되돌아보게 한다. 지금 나는 회색 신사와 거래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견딜 수 없는 지루함'이라는 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
시간, 친구, 이웃, 행복 이 모든 것들을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모모>>를 오랜만에 다시 꺼내 읽었는데, 그 의미와 즐거움은 전혀 반감되지 않았다. 가끔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여유는 그 누구도 아닌, 내 가슴 속에서 주는 것임을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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