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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핀 선생 죽이기 ㅣ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20
로이스 던칸 지음 / 보물창고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얼마전 사이코패스가 주인공인 추리소설을 읽었다. 학교를 배경으로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교사가 아이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이야기였는데, 이 책을 읽고 한동안은 퇴근길에 뒤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섬뜩함을 느끼곤 했다. 추리소설을 읽고 공포를 느낀 것은 처음이었는데, 원한이나 복수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유도 없이, 아무 죄책감 없이 살해하는 사이코패스의 성향이 무서웠으며, 요즘 사회적으로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사건사고가 심심치않게 들려오기 때문에 그 공포가 더욱 심했던 것 같다.
점점 삭막해져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희노애락을 통해 웃고, 우는 사람들의 감정이 점점 소멸되어가면서 사회는 점점 사이코패스 성향을 띄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은 우리 아이들인데, 청소년들에 의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이미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문제점이 야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청소년법에 의해 죄에 대한 처벌을 제대로 받지 않는데다, '내 아이가 그랬을리 없다'는 부모들의 과잉보호로 인해 아이들은 점점 양심의 가책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죄를 짓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청소년들의 면면을 이미 본 적이 있기에 사태의 심각성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욱 커져있을지도 모른다.
이기적인 성향이 강해지면서 타인과의 공감 능력이 결여되면서 사이코패스의 성향이 두드러지게 되는데, 얼마전 읽은 추리소설이나 <<그리핀 선생 죽이기>>에 등장하는 사이코패스 역시 바로 이런 공감 능력이 크게 결여되어 있었다.
이 작품은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한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인데, 청소년 문학에서 사이코패스 소년이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청소년들이 이 부분에서 무방비로 방치되어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핀 선생님은 평소에 학생들에게 깐깐하고 냉정하게 점수를 주는 탓에 아이들의 불만과 원성을 사고 있었다. 농구 시합이 있어 과제를 끝내지 못한 제프, 과제를 다 했지만 바람에 날아가는 탓에 점수를 받지 못하게 된 학생회장 데이비드, 과제가 정확히 뭔지도 이해하지 못한 뱃시는 과제를 내지 못해 F학점을 받게 될 위기를 맞는다.
평소 무거운 눈꺼풀을 반쯤 감은 듯한 표정으로 주위의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관찰하여, 사람들 하나하나의 얼굴 표정을 살피고 표정을 분석하며 모든 세부 정보를 흡수해 머릿속 깊숙이 굳게 보관된 금고에 차곡차곡 정리해 두는 마크는 이번 일로 엄청난 사건을 꾸미게 된다.
"그 망할 작자를 죽이는 거."
"뭐 사람을 죽인다고? 그러니까, 그게, 살해를 한다는 말이야?"
"너 설마 지금 진심으로 하는 소리는 아니지?"
"그래도 할 수만 있다면,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는 너도 동의하지? 제프 덕분에 우리 모두가 단체로 제적 맞게 생겼잖아. 모두 다 있는 앞에서 그리핀 선생에게 그렇게 대들다니." (본문 23,24,25p)
마크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제프 그리고 마크를 좋아하는 벳시와 사건을 꾸미게 되고, 바람잡이 역할에 학생회장 데이비드와 그리핀 선생님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만 데이비드를 좋아하는 점을 감안해 수잔이 지목된다. 그저 선생님을 겁주기 위해 시작되었지만, 평소 협착증을 앓던 선생님이 숨을 거두게 되면서, 아이들은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또다른 사건을 모색한다.
수잔은 후회하고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하자고 하지만, 마크는 자기주도하에 아이들을 앞세워 일을 처리한다.
'대체 어쩌다가, 나는 또 이런 일에 말려들게 된 거지?"
그러나 이상하게도 무슨 일이든 마크가 하자고 하면 모두 그럴싸하게 들렸다. 마크가 그 회색 눈으로 자신을 지긋이 바라보는 순간, 마크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조용히 어깨에 손을 얹는 순간, 그 순간에는....
그 순간에 마크는 데이비드에게 "너 한 번이라도 재미만을 위해 뭔가 해 본 게 도대체 언제야?"라고 물었다. 그 말은 마치 데이비드 영혼 깊숙이 어딘가 숨어 있는 아픈 곳을 찾아 정확하게 정곡을 찌른 것처럼 다가왔다. (본문 151,152p)
하지만 하나의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거짓과 희생이 강요되어야했기에, 사건은 표면적으로 드러날 수 밖에 없없는데, 사건이 진행되면서 마크의 사이코패스 성향도 드러나면서 일은 겉잡을 수 없이 커져간다.
"이 개인이 가진 행동 양식은 반복적으로 사회와 갈등을 일으키는 특성이 있다. 또한 다른 개인이나 그룹, 사회적인 가치 체계에 충실하지 못하며, 이기적이고 냉담하며 무책임하고 충동적이며 나아가 어떤 일에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작은 일에도 쉽게 불만을 가지며, 누군가 자신의 계획을 방해하는 것을 참지 못한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그럴듯하게 합리화를 잘하며,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다른 사람에게 전가한다."
"...반면에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정상적으로 보일 뿐 아니라 보통 사람보다도 더 똑똑하고 매력적으로 비칠 때가 많다. 겉으로는 진실되고 의리가 있으며, 어떤 일도 훌륭하게 처리해 낼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종종 다른 주위 사람들에게 대단한 카리스마적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본문 333,334p)
이는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아이만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특정 인성을 가진 주변 아이들 역시 무방비로 방치되어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사태는 더욱 커지게 된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의 아이들에게 좋은 이야기가 아닌, 사이코패스 성향을 다룬 작품을 접하는 것은 우리가 꼭 마주해야 할 불편한 진실일 수 밖에 없다.
벳시는 자기가 원하는 것은 뭐든 얻어내는 데 익숙한 아이였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은 거의 언제나 다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벳시는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 딸을 바라던 부모님에게 외동딸로 태어났고, 거기다가 귀여운 얼굴에 금발로 태어났다는 사실과 일찍부터 방긋방긋 자주 웃었다는 사실, 이런 점들은 벳시를 어디서나 환영 받는 존재로 자라게 해 주었다. (본문 113p)
벳시의 상황은 현 우리 사회의 아이들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벳시는 피터의 이야기에 많은 호응을 했고, 동참했으며 피터를 전적으로 믿고 행동했다. 피터는 그런 벳시를 이용할 줄 알았으며, 벳시는 자신의 그런 점에 만족했다.
벳시와 닮은 우리 아이들은 마크와 같은 괴물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점점 타인의 아픔과 슬픔에 공감할 줄 모르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성향이 강해지면서 아이들이 위험에 방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하며, 슬픈 현실이지만 아이들 중의 누군가는 이런 특정 인성을 강하게 표현하게 될 것이다.
요즘 우리 청소년들은 부모세대와 달리 몸과 머리에서 상당부분 성장했다. 하지만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하는데 필요한 정서적인 부분에서는 극히 부족한 성향을 보이곤 한다. '이야기'는 아이들의 정서적 성장에 도움을 주는데 필요한 양장분이기에, <청소년 문학>은 우리 아이들에게 더욱 필요한 분야가 아닌가 싶다.
<<그리핀 선생 죽이기>>는 현 사회가 안고 있는 청소년 문제를 리얼하게 표현하고 있는 작품으로, 사이코패스는 어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시사한다.
이 이야기는 분명 유쾌하지 않는 불편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아이들, 어른 모두가 알아두어야 할 부분이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 아이들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과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지 모르는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어른이 필요하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진출처: '그리핀 선생 죽이기' 표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