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에 탄 나무토막 같구나, 아스케 보림문학선 8
레이프 에스페르 안데르센 지음, 김일형 옮김, 울리치 뢰싱 그림 / 보림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눈에 보이는 노예제도는 사라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권력'이라는 이름의 노예제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권력의 제도 속에서 어린이들 역시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권력이라는 힘을 사용하게 된다. 그것이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면서 이런 권력의 힘이 강하게 작용하는데, 진정한 '힘'이란 타인을 지배하는 것이 결코 아님을, <<불에 탄 나무토막 같구나 아스케>>는 바이킹 시대를 배경으로 한 두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서 말하고있다.  

마을 남자들이 항해를 떠난 마을, 나이가 어려 함께 떠나지 못한 열네 살인 안은 맨몸을 드러나도록 양털가죽 이불을 걷어찬 채 자고 있었고, 저 아래 노예 오두막에서는 아스케가 자고 있었다. 안과 나이가 같은 아스케는 5년 전 이 마을 남자들이 바이킹 항해로 아스케와 그 가족을 데려오면서 노예가 되었고, 그저 주인에게 복종하고 시키는 일을 해야 했다.
사실 아스케의 본래 이름이 너무 어렵고 낯설어서 아무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탓에 머리카락이 새까맣고 피부가 거무스름해서 불에 탄 나무토막 같다는 뜻의 아스케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모두들 잠이 든 그날 밤, 피오르에 다가온 배에서 내린 남자들은 마을을 불 태웠고, 여자와 아이들을 데리고 사라졌다. 5년 전 고향 집에서 아스케가 당했던 일처럼 말이다. 이 소동으로 족장의 아들 안과 노예 아스케가 살아남게 되었고 이들은 자유인과 노예라는 신분의 굴레 속에서 심리적 긴장감과 갈등을 겪게 된다.

계속 동갑내기의 노예로 살아야 할까? 그럴 수는 없었다. 아스케 자신이 안을 깨우쳐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어떻게?

본디 누구는 노예이고, 누구는 주인이 되는 걸까? (본문 21p) 

살아가야 할 방법을 모색하는 아스케와 달리 안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하고, 아스케는 그런 안에게 당당하게 말함으로써 안을 두렵게 한다.  

안은 아스케가 일하는 모습을 꼼짝 않고 앉아서 구경했다. 하지만 안은 가민히 있자니 힘들었다. 함께 일하고 싶어서 손가락이 근질거렸다. 하지만 아스케와 같이 일을 한다면 지금껏 살면서 배운 것을 송두리째 거스르는 일이었다. 일은 노예들이 한다. 노예들과 함께 일해서는 안 된다. 체면을 잃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본문 47p) 

안은 머릿속이 복잡했고, 이제까지 옳고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던 모든 것들과 씨름해야 했는데, 그것은 힘과 권리가 이성에 맞서는 끝없는 싸움이었다. 결국 안은 자신이 왜 그러는지를 잘 알지 못해서 당황했지만, 아스케를 도와 일을 시작하게 된다.
안은 주제넘게 결정하고 자신에게 명령하는 아스케의 말에 화가 치밀어 오르다가도, 아스케가 말한 대로 따르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케 놀라며 이 노예가 가진 힘이 무엇인가 궁금했다. 이는 아스케가 올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뿐만 아니라, 하루 종일 스스로 알아서 행동했으며, 온종일 고되게 일하는 안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안은 분노를 가라앉혔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웠고, 아스케는 안과 함께 일을 하며 살아갈 방법을 모색했다. 

스물네 시간 동안, 안이 지금까지 알아 온 세계가 조금씩 무너져 갔다. (본문 64p) 

이제 안은 스스로 일을 하는 법을 알게 되었고, 두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둘 사이에 여전히 경계심이나 거리감이 남아있었고, 일할 때만 노예와 자유인 사이에 벌어진 틈이 사라질 뿐이었다.
그러던 중, 대장장이가 살던 오두막에서 필요한 물건을 구하던 아스케는 대장장이가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안도 노예와 연대감이 생긴 걸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언제나 가장 강한 자가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어. 가장 강하다는 이유로. 힘은 권력이야. 하지만 그게 옳은 건 아니야. 오히려 잘못되었지." (본문 120p) 

대장장이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아스케는 "스스로 방어해야 할 때가 있을 거야. 내가 어쩔 수 없이 널 죽이려고 하면 너 자신을 지켜." (본문 156p) 라는 말과 함께 자신이 직접 만든 칼을 안에게 선물한다. 이는 족장의 아들, 노예라는 신분을 모두 없애고 친구라는 동등한 입장에서 이루어진 장면이다. 진정한 힘이란, 자신이 가진 권력으로 타인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통해 타인으로 하여금 깨달음과 존경심을 얻을 때 비로소 생기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스케와 안은 진정한 자유와 힘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불에 탄 나무토막 같구나 아스케>>에서는 열네 살 두 소년의 심리적인 갈등이 아주 잘 표현되어 있어, 두 소년의 갈등 속에서 흐르는 긴장감이 생생하게 전달되어졌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권력의 굴레 속에서 살던 안이 자신이 알던 세계가 무너지면서 낭패감을 느끼지만,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것에 대한 작은 기대감과 혼란 속에서 성장해가고, 자유를 꿈꾸지 못했던 아스케가 대장장이가 되고자 하는 꿈을 가지면서 진정한 자유인이 되고자 하는 열망과 희망을 품어내는 과정을 통해 열네 살 소년들이 성장통을 겪으며 한뼘 성숙해지는 모습 또한 아름답게 그려졌다.
권력, 힘 그리고 자유와 꿈 그리고 소년들의 성장이라는 주제 속에서 펼쳐지는 심리적 표현이 잘 묘사된 이 작품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잘못된 힘 앞에서 당당해지기를 바라는 저자의 바람이 담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족장! 내가 족장이 되든지 안 되는지 상관 안 해. 그건 자기 아버지가 족장이거나, 가장 부자거나, 가장 힘이 센 사람이나 되는거야. 하지만 난 대장장이가 될 거야. 그건 누구나 노력하면 될 수 있거든." (본문 159p) 

(사진출처: '불에 탄 나무토막 같구나 아스케'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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