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X
이민아 지음 / 씨네21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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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들 한다. 여자, 남자 그리고 아줌마. 사람들은 아줌마를 무식하고, 교양도 없는데다가 뻔뻔한 사람이라고 말하곤 하지만, 아줌마처럼 용감무쌍하고, 책임감 강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부류도 없다. 사실 결혼 전에, 정확하게 아줌마가 되기 전엔, 나 역시도 아줌마들의 모습이 곱게 보이지는 않았다. 아줌마가 된 후에 누군가 내게 ’아줌마~’ 하고 부르면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은 걸 봐서는, ’아줌마’가 주는 일상의 모습들이 그다지 예뻐보이지 않다는 것은 인정해야할 것이다.
나는 엄마처럼 혹은 옆집의 아줌마처럼 되고 싶지는 않다. 라는 생각을 많이 했지만, 결국 나 역시도 아줌마가 되었다. 버스를 타면 앉을 자리부터 찾아보게 되고, 마트에서 세일한다고 하면 귀가 쫑긋거려지면서 발걸음이 빨라질 뿐만 아니라, 한 번 전화기를 붙들면 멈출 수 없는 수다와 누구누구네는 그랬다네 저쨌다네 하면서 다른 집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내 아이 하나 더 먹이겠다고 기를 쓰고, 내 집 마련하겠다고 아둥바둥 억척스럽게도 살아간다.
그러나, 아줌마들도 뼛속까지 ’여자’라는 사실은 어느 누구하나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 슬픈 영화나 드라마에 눈물을 흘리고, 사랑 이야기에 가슴 떨리고, 다른 사람에게 좀더 예뻐 보이고 싶고, 좀처럼 관리가 되지 않는 뱃살에 슬퍼하기도 한다. 
’여자’인 자신을 버리고, 가족을 위해서 억척스럽게도 살아가는 ’아줌마’는 여자보다 더 아름다운 존재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줌마를 외계인 보듯 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나는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세상은 여자, 남자만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줌마가 있어야 세상은 활기넘치는 세상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므로.

이 책은 친정 엄마, 시어머니, 그리고 나와 옆집, 앞집 윗집 등등등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아줌마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아줌마처럼 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자, ’휙’하고 아줌마가 된 저자는 아무도 어여쁜 아줌마들로 기억하지 않는 이들에게 위로를 주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고고하고 우아하게 살고 싶다는 바람과는 달리,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원치 않더라도 ’아줌마’가 되어버린다. 그것은 ’가족’을 위한 마음이 절정에 이르기 때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아들이 연인이 된 시어머니에게는 며느리는 연적이 되고 고달픈 시집살이가 시작된다. 까다로운 시어머니의 비유를 맞추며 효부로 살게 된 A의 마음을 아는 이는 절친 친구 아니면 알 수가 없다. 아들에게 좋은 짝을 지어주고 싶은 마음에 아들의 여자친구를 떼어내고 며느릿감을 찾아내는 아줌마 B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자식들을 온갖 정성으로 키워내고 나서도 자식들의 아이들까지 돌보느라 중국, 일본, 영국을 오가야하는 아줌마 C는 어떠한가. 결혼과 동시에 꼬질꼬질하게 때가 낀 스테인리스 제기 한 벌을 물려받고 30년 동안 시댁식구들 비유를 맞춰가며 제시를 지낸 아줌마 F, 바다낚시하러 가는 남편과 친구들 거기에 이복동생까지 밥을 차려줘야하는 밥하는 아줌마가 되어버린 I, 딸 둘을 둔 덕에 첩을 얻는 것을 감당해야하고 첩이 낳은 딸까지 돌봐야하는 아줌마 K, 집안이 어려워지자 어머니에 의해 떠밀려 결혼을 했지만 남편에게 애인이 있는 것을 보고 신혼여행에서 이혼을 하며 평생 아줌마 아닌 아줌마로 살아야하는 아줌마 Q, 남편의 의처증 때문에 30년 동안 맞으면서 살아온 아줌마 Y, 미국에서 남편과 공부하기 위해서 팔 수 있는 것을 모두 팔아가며 살아가는 아줌마 E 등등 세상에는 자신을 기꺼이 버리며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아줌마들이 있다.

아줌마가 되면서 ’수다’는 하나의 즐거움이 되었다. 화나는 일, 슬픈 일, 기쁜 일이 있을 때 수다는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기쁨을 두배로 하는 약이 된다. 그러다보니 아줌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누구네는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시작되는 수다에는 남들이 보기에는 의미없는 이야기일지 몰라도, 그 이야기 속에는 세상사가 녹아들어 있다. 이 책 속에는 52명의 아줌마들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남들은 억척스럽고, 품위 없는 ’아줌마’라 하지만, 좌절하기보다는 가족을 위해 기꺼이 힘을 내고, 자식들 공부시키고 남편 뒷바라지 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담고 있다.
아줌마는 무릎 나온 츄리닝 바지를 입더라도, 자식에게는 예쁜 옷을 입히고, 남편 기죽을까 지갑에 몰래 용돈도 두둑히 넣어주고, 시어머님 시집살이가 고되다 하소연하지만, 까다로운 시어머님 입맛 맞추어드리는 그 모습이 어찌 아름답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줌마를 보고 무식하다 손가락질 하는 남자, 여자들은 그 아줌마들의 힘을 통해서 성장했음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아줌마들은 그렇다.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내 가족을 위해서 기꺼이 그 모진 소리를 감내한다.

책을 읽는내내 지금보다 더 모진 세월을 겪어왔던 아줌마였던 친정 엄마, 시어머니를 생각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가져본다. 누구는 ’여자’이고 싶지 않겠는가. 아줌마가 되고보니 억척스러운 아줌마였던 친정 엄마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가끔 늘어난 주름, 거칠어진 손, 목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무릎 나온 츄리닝 바지를 입은 내 모습을 보면서 슬퍼질 때가 있지만, 이제 ’아줌마’가 된것이 슬프기보다는, ’당당한 아줌마’가 될 수 있게 되었다. 세상 누구보다 희망을 볼 줄 알고, 세상 누구보다 책임감 강하고, 가족을 사랑하는 ’아줌마’라는 이름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여자’보다 더 아름다운 ’아줌마’ 그것이 현재의 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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