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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평점 :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내 심장을 쏴라>로 정유정 작가의 글을 좋아하게 되었더 터라,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에 굉장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기대감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한 후, 새벽 4시가 되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서야 비로소 책을 놓을 수 있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펼쳐지는 선과 악, 삶과 죽음, 사실 속에서 감춰진 진실 그리고 부정의 다른 모습과 인간의 본성을 녹아내고 있는데, 침울하면서도 섬뜩한 느낌이 곳곳에 배어져있다.
야구룰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나는 얼마전 종영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통해서 야구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투수와 타자 사이에 놓인 하나의 공으로 두 선수는 서로의 마음을 견제하며 수를 읽어낸다. 공은 던져지고 팽팽한 긴장감 속 끝에 희비가 교차된다. 누가 먼저 게임의 전체적인 면을 읽고, 상대방의 마음을 간파하느냐에 따라 웃고 우느냐가 결정되어지는데, 이는 야구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곳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상황이기도 하다.
살아가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변화구가 내 앞에 던져지는 경우가 생긴다. 나는 이 공을 쳐낼 것인가? 그냥 공을 보낼 것인가? 이 변화구로 인해서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시작될지도 모르는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
2004년 9월 12일 새벽은 내가 아버지 편에 서 있었던 마지막 시간이었다. 그땐 아무 것도 몰랐다. (본문 6p)
’세령호의 재앙’이라 기록되는 그날, 아버지는 ’미치광이 살인마’라는 이름을 붙히게 되었고, 열두 살이었던 서원은 ’그의 아들’이라 불리게 되었다. 여자 아이와 그의 아비를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아내까지 살인한 아버지로 인해 서원은 친척집을 전전하다가, 당시 아버지와 같은 직장 직원이자 룸메이트였던 승현 아저씨와 함께 살게 된다. 그러나 그 사건은 서원을 졸졸 따라다녔고, 서원은 이 학교, 저 학교를 떠돌다 결국 고등학교를 포기하고 지도에도 표기되지 않은 동네인 등대마을에서 승현이와 조용히 살게 된다. 소멸로 접어든 동네인 등대마을에서 야간 드리프트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서원은 다시 언론의 수면 위에 오르게 되고, 뒤이어 아저씨의 실종과 자신에게 배달된 상자 하나로 서원은 공포스러웠던 7년 전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상자에는 아저씨의 레코더시계, USB, 편지묶음과 고무줄로 봉한 스크랩북, 두툼한 A4용지묶음이 놓여 있었는데, 아저씨가 쓴 원고 표지 ’프롤로그- 2004.8.27. 세령호’로 기록된 글은 7년 전 서원의 가족이 세령호로 이사한 날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서원은 자신이 모르고 있었던 그날들의 이야기와 마주하게 된다. 겉으로 드러나 있던 사실과는 조금 다른 진실을 대면하게 되고, 서원은 앞으로 닥치게 될 운명과 마주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고교 시절 투수로 활약하던 최현수는 은주를 만나 결혼에 골인하고 아들 서원을 얻게 된다. 현수가 어깨 부상으로 야구를 그만두게 되면서, 아내 은주는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쓴다.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던 은주는 악바리처럼 치열하게 살아왔고, 우유부단하고 술을 좋아하는 현수가 못미덥다.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좋아하는 않는 오영제는 아내와 딸이 자신에게 맞추어주길 원하는 인물로, 자신의 말에 복종하지 않을시는 ’교정’이라는 이름으로 구타를 일삼는다.
오영제의 아내 문선영은 남편에게 길들여질지 모른다는 무서움에 딸 세령을 두고 가출과 이혼 소송을 벌이게 되고, 그에 대한 분노에 휩싸였던 오영제는 교정하려는 딸이 도망치다 죽음에 이르자, 자신이 이루려했던 것들이 뜻대로 되지 않음에 분노한다.
한편, 보안담당자로 일하면서 틈틈히 소설을 쓰려했던 승환은 아빠의 폭력에 힘겨워하는 세령을 알게 되고, 세령의 죽음에 용의자가 된다.
세령의 죽음에 복수를 하려는 오영제는 경찰에 의해서가 아닌, 자신만의 방법으로 용의자들의 숨통을 조이게 된다.
어린시절 괴물같았던 아버지의 죽음으로 오랜시간 동안 현수의 목을 졸라왔고, 현수는 아버지처럼 점점 괴물이 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아들 서원에게만큼은 그 전처를 밟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마지막 승부수로 하나 남은 공을 던지게 된다.
그 공을 받게 될 서원은 자신의 인생 앞에 다가올 변화구를 어떻게 해야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제 안에 있는 걸 누가 만들었는데요. 그 과정을 고스란히 밟은 사람이 누군데요. 아버지예요. 자신을 죽이고, 누군가를 죽이고, 스스로 괴물이 된 사람은 바로 아버지라고요."
"그래서였어."
"그래서.......넌 아니기를 바란 거야." (본문 513p)
두 아버지, 즉 죽은 세령의 아버지 오영제와 서원의 아버지 사형수 최현수에게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어린시절부터 부모로 인해 고통과 상처를 받았다는 점인데, 이 상처가 성장한 후에도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있고, 그들의 성격과 인격으로 형성되어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에서 두 사람은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자신이 만들고 가꾸어 놓은 하나의 궁전처럼 가족을 생각하는 오영제는 자식 역시 자신이 깍아 만든 하나의 인형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듯 하다. 자신이 말하는 것을 따라야하고, 따르지 않을 시에는 매로서 교정해야 하며, 자신이 원하는 모습 그대로 가족이 존재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에 반면 현수는 아버지와 닮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깊이 뿌리박혀져 있어 서원을 끔찍히 아끼고 사랑한다.
자신이 만든 인형과 같은 딸 세령의 죽음은 그런 영제에게 복수라는 분노를 만들었으며, 현수는 사랑하는 아들 서원을 지키기 위한 변화구를 준비한다.
이야기는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으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내가 9회말 2아웃 상황에서 마지막 승부수를 건 공을 던져야 하는 피말리는 상황에 놓인 것처럼 긴장감을 놓칠 수 없었다. 치밀한 구성은 잘 못 쳐낸 타구로 인생의 밑바닥을 걷게 된 인물들이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애쓰는 사투를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써 더욱 강한 흡입력을 과시한다.
인간의 본성은 선과 악 속에서 끊임없는 사투를 벌인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인간은 ’나’ 자신을 위한 악을 선택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 ’악’은 내 안에 잠든 괴물을 깨워내는 하나의 불씨가 되고, 결국은 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정의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
누구나 그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선과 악의 선택에서 늘 고민을 한다.
최현수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불러온 재앙은 결국 아들 서원에게 마지막 타구를 던져준 셈이 되었지만, 현수는 서원에게 던져 준 공에 ’강한 부정’의 마음을 함께 담아 보냈고 서원의 삶에게는 한가닥의 희망이 생기게 되었다.
살인마의 아들로 살아야했던 7년, 자신을 돌봐준 승환에 대한 보답으로 열심히 살려고 했던 서원에게 온 좌절, 그로 인해 삶의 희망마저 갖기 못한 채, 사형수 아버지에 대한 미움만이 가득했던 서원은 이제 사실 속에 묻혀져 있는 진실을 알게 됨으로써 자신안에 숨겨져 있던 괴물을 기꺼이 버릴 수 있게 되었다.
누구나 지옥과도 같은 순간과 맞닥뜨리게 된다. 벼랑 끝에 내몰려야 했던 순간들이 있지만, 그 벼랑 끝에서 보여지는 한 줄기의 작은 희망이 있기에 우리는 또 한번 이겨내곤 한다. 현수에게 아들 서원이라는 희망이 있듯이 말이다.
약간의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거세게 뛰는 심장소리가 들릴 법한 팽팽한 긴장감이 공존하는 <<7년의 밤>>을 통해서 나는 다시 한번 정유정 작가가 가지고 있는 필력에 감탄하고 말았다. 이전 작품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이 작품은 살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불편한 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타구로 쳐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7년의 밤>>은 사랑이 무엇인지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오영제, 잘못된 선택으로 삶의 밑바닥까지 곤두박칠 쳐야했던 최현수 두 남자에 대한 안타까움을 통해서 우리에게 삶의 진리를 선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