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 더 레코드 - 카메라 불이 꺼지면 시작되는 진짜 방송가 이야기
강승희 지음 / 북폴리오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텔레비전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작가가 쓴 사실과 허구가 접목된 방송계 이야기가 시트콤처럼 재미있게 펼쳐져 읽는내내 유쾌했지만, 나는 얼마전 각종 언론매체를 뜨겁게 달구었던 장자연 사건을 떠올려야만 했다. 장자연 사건의 결말은 증거물로 제시된 편지가 조작되었다는 경찰발표로 끝이 났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당사자들은 알겠지), 무언가 찜찜한 느낌은 여전히 남아있다. 장자연 사건이 수면 위로 오르기 전에도 소속사와 연예인 사이의 알 수 없는 거래(?)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있었고, 비밀 아닌 비밀로 공공연하게 떠돌곤 했다. 장자연 사건의 후폭풍이 일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이 이야기를 읽어서인지 발랄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괜시리 심각한 생각을 해본다. 사실적인 방송루트 속에서 허구를 가미하고 있지만, 어찌보면 방송계의 암담한 현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계통이든 어중간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가장 힘든 법이다. 선배와 후배사이에 끼어있는 도라희는 29살의 제대로 된 연애한번 못해본 서열 4위 방송 작가로 이름 덕분에 ’또라이’라는 별명까지 가지고 있다. 메인작가에게 깨지고, 인기절정의 아이돌 그룹인 트리플의 비위까지 맞추어야하니 정말 죽을 맛이다. 그뿐인가? 트리플의 막내인 마리와의 촬영에서는 마리가 괴한에게 끌려가는 상황까지 벌어지는 정말 또라이 작가의 하루하루는 스팩타클하다.  설상가상 욱하는 성질때문에 안하무인인 마리와 다투고, 식당에서 버릇없는 남학생들에게 큰소리 치다가 쓰러지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당한다. 더군다나 비오는 날 한 남자의 요청으로 하수구에 빠진 고양이를 구하려다가 팔이 끼어서 119까지 부르는 황당한 일까지 겪은데다가, 동영상으로 인터넷까지 뜨겁게 달구웠으니 정말 되는 일 하나 없다. 엎친데 덮친 겪으로 버르장머리 없는 마리의 역공으로 졸지에 백수가 되었으니, 또라이 눈에 마리가 예뻐 보일리가 없다. 
다행이 식당에서 쓰러진 자신을 도와준 ’고구려’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와 돈독한 사이로 발전할 가능성도 생겼고, 비록 공중파는 아니지만 케이블 프로그램의 작가로 일하게 되었으니 꼭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이 아닌가 보다. 머...고양이 사건으로 알게 된 ’최창호’라는 남자와의 인연은 좀 아니올시다, 였지만 말이다.

매일같이 스캔들이 터지는 연예계에서 마리의 열애소식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와중에 또라이 작가는 마리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고, 임신으로 사면초가에 빠진 마리는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또라이 작가에게 의지하게 된다. 그러나 마리의 임신 소식이 불거지고 사건이 커지면서, 기획사 대표였던 정우형은 마리를 트리플에서 제명하겠다는 발표를 하게 되는데, 사실을 은폐하려는 정우형에 대한 분노와 마리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또라이 작가는 최창호와 함게 마리의 임신과 버리진 내용을 토대로 ’소속사와 연예인들 관계’에 대해 파헤쳐보기로 한다.

"저희들 용기가 많은 걸 바꿀 수도 있다고 했죠?" (본문 315p)

작가인 저자는 29살의 도라희를 내세워 버라이어티한 삶을 사는 방송작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 방송작가의 눈으로 보는 생생한 방송을 무대로한 일과 사랑 그리고 우정을 보여주고 있으나, 그 속에 아이돌들의 험난한 연예계를 보여주여 줌으로써 독자들에게 숙제를 남기고 있다. 아직은 어린 아이들은 스타가 되고 싶다는 열망 속에서 노력하고 애쓰지만, 그들에게 뻗쳐오는 보이지 않는 악의 손이 그들을 수렁으로 빠뜨리기도 한다. 그뿐인가? 소통의 창구가 커지면서 무심코 쓴 댓글 하나에 상처가 깊어지면서, 연예인들의 자살과 우울증은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정말 소문도 안 될, 말도 안 되는 장난 글에도 이들은 크게 상처 받고, 그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있었다.
소통의 창구가 커지고, 대중의 메시지가 직접 전달되면서 뜻하지 않은 큰 상처로 죽어가는 이들이 자꾸만 늘어간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까. 조금전 ’죽어버리고 싶다’던 마리의 목소리가 그래서 더 무서웠다.
(본문 263p)

도라희는 참 매력이 넘치는 여성이다. 욱하는 성질로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대책없이 솔직하고 당돌한 여성이다. 한 편의 시트콤처럼 유쾌한 이야기 속에서 생각거리를 남겨준 <<오프 더 레코드>>는 진실과 허구가 공존하는 한 편의 시트콤같은 소설이다. 불편한 진실을 도라희를 통해서 위트있게 담아냄으로써 가볍고 재미있게 읽어내려 갈 수 있지만, 결코 가볍게 치부할 수 없는 여운을 남겨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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