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제발 헤어질래?
고예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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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을 둔 맏이인 나는 늘 언니나 여동생을 둔 친구들을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친구들은 성격이 다른 언니와 옷 때문에 다투고, 싸운 이야기를 하면서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지만, 그 투정마저도 나는 너무도 부러웠다. 결혼을 하고나니, 언니의 존재감에 대해서 더욱 절실해지는데, 딸과 며느리, 엄마와 아내라는 같은 위치에 놓여져있어 서로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서로 위로하고 다독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리라. 
자매들은 옷, 신발 때문에 정말 많이 다툰다고들 한다. 얼마전에 모 방송에 출연했던 여배우는 언니가 동생때문에 급기야는 옷장에 자물쇠를 걸어둘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옷을 몰래 꺼내입고 다녔다고 말함으로써 시청자들의 웃음을 전해주었다. 예뻐지고 싶은 욕망을 가진 같은 여자라는 입장이 자매들과의 전쟁(?)을 낳는 듯 하다. 그런데 자매라는 것이 참으로 신비한 것이 옷 때문에 아귀다툼을 벌이면서도, 한번 마음이 맞으면 참 무섭다는 것이다. 언니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러니, 언니나 여동생이 없는 내가 자매를 둔 친구들을 얼마나 부러웠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제발 헤어질래?>>는 오묘한 자매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자매들은 사소한 것 하나부터 열까지 싸우는데, 남도 이보다는 낫을 듯 싶다. 그런데도 언니를 둔 친구가 부럽냐고 묻는다고 나는 예스라고 대답할 것이다. 
언니 권혜미는 이제 갓 등단한 신예 소설가로 서른살이 되도록 연애 한 번 못 해보았으며, 내숭과는 거리가 먼 털털한 매력을 가진 반면, 동생 권지연은 자칭 공대 꽃미녀로 겉모습을 치장하기에 바쁜 명품을 좋아하는 20대로 내숭으로 상황을 모면하는 그야말로 천방지축이다.
미국에서 여섯 달가량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지연은 언니와 투룸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여섯 달 동안 딱 한 번 통화한 것을 보아서는 두 자매의 생활이 그다지 평탄하지 않으리라 짐작되는데, 편입 준비로 마중도 나오지 않는 남자친구 재승이 때문에 짜증난 지연과 청소하자는 언니와의 마찰은 귀국 첫날부터 시작된다.
소유욕이 강해서 자신의 물건을 몰래 가져가는 것을 너무도 싫어하는 혜미의 옷을 지연은 몰래 잘도 입고 나간다. 청소하자는 언니의 말은 절대 무시, 대신 ’밀가루’’신부화장’이라고 불릴만큼 매일 화장을 떡칠하는 지연과 언니의 다툼은 이미 예상된 것은 아닐런지.
지연의 입장에서 언니는 정말 독재자이다. 언니라는 이름으로 무시무시한 권력을 남발하고, 동생이 옷 좀 입는다고 그걸 가지고 뭐라고하는 언니는 정말 속이 좁다.

매일 같이 다투던 자매는 집 계약이 만료 되면서 각자 찢어지게 된다. 그렇다고해서 안 다투면 정말 재미없다. 지연은 재승과의 다툼으로 우울함에 기분 전환을 위해 언니를 꼬득여 클럽에 가게 되지만, 연애에 쑥맥같기만 했던 언니는 어느새 애인을 꿰어차고 있었다. 언니와 따로 살면 해방될 줄 알았지만, 언니는 남자친구와 조그만한 원룸에 찾아오기도 하고, 잔소리도 끊임없이 해댄다.
허나 지연의 변화로 인해 언니는 의지할 수 있는 단 한명의 존재가 되었고, 혜미 역시 동생 지연에 대한 애정을 느낀다.
어린 시절 영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지연의 존재는 언니 혜미에게는 부러움과 시샘의 대상이었고, 부모님에게 인정받는 지연의 존재로 상처를 입기도 했다.
반면 영재였던 지연은 천재에서 둔재로 변해가는 상실감과 등단한 언니에 대한 아버지의 관심으로 점점 비참함을 느끼게 되었다는 사실을 털어놓음으로써 그들의 마음은 조금씩 가까워진다.

"막상 부모님의 관심을 받으니까 그게 마냥 편치만은 않다. 그땐 니가 마냥 부럽기만 했는데 지금은 그때의 네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기도 하고. 나도 니처럼 그 스포트라이트가 언제 꺼질지 몰라서 불안하기도 하다. 아무튼 네 덕분에 언닌 단단한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본문 241p)

서로 다른 성격으로 맞지 않아 매일 다투며 헤어지고 싶었던 그들은 이제 정말 헤어지게 된다. 동생 앞에선 늘 강한 모습을 보여야 보호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언니는 동생을 잡아보지만, 동생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힘을 실어준다.

"내는 니를 다른 동생이랑 바꾸라고 하면 절대 안 바꿀거다." (본문 252p)

바보같은 열등감으로 싸우던 자매가 결국 서로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게 되는 두 사람을 보면서, 같은 피가 흐르는 체온이 가지고 있는 사랑의 뜨거움을 느꼈다. 이로써 나는 또 한번 자매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털털한 언니의 사투리 묘사와 까칠한 지연의 표준말은 서로의 성격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혜미의 사투리는 이야기의 즐거움을 한층 더한다. 혜미와 동생 흉을 보기도 하고, 지연과 언니의 흉을 보는 엄마도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는데, 이런 자매와 모녀관계는 사회 속의 여성들의 미묘한 관계를 대변하기도 한다. 질투와 열등감, 시기는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감정으로 이로 인해 사회 생활 속에서 여성들의 관계 맺기는 참 어려운 부분 중에 하나가 되기도 한다. 혜미와 지연이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해가는 과정은 사회 생활 속 여성들의 미묘한 감정을 풀어내는 하나의 열쇠가 되어줄 듯 싶다.

<<우리 제발 헤어질래?>>는 시트콤을 보듯 재미있고 유쾌하다. 그 유쾌함 속에 애증의 관계인 자매(혹은 여성의 관계맺기)가 서로 얽힌 실타래를 풀어가는 과정은 훈훈함을 감돌게 한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발랄함을 잃지 않은 저자의 기막힌 문체는 읽는내내 미소를 짓게 하는데,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지만 형제,자매사이에 이어진 끈을 다시금 생각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치부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을 가진 작품이다. 언니, 여동생을 둔 독자라면 나보다 더 큰 공감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거라 생각된다. 혹은 자매가 없는 나와 같은 독자는 언니나 여동생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이 더 커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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