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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함께 죽음을 이야기하자 ㅣ 1218 보물창고 3
게어트루트 엔눌라트 지음, 이옥용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몇 달전 작은 아이가 예기치 못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왜 사는거야?’’죽으면 어떻게 되는거야?’’엄마, 사람은 왜 태어나?’’엄마,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 등 삶과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하기 시작했고, 7살 아들의 질문을 듣게 된 할머니는 죽음에 대해 궁금해하는 아이를 나무라셨다. 어린 아이가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이 할머니로서는 언짢게 느꼈졌는가보다. 하지만 할머니의 꾸지람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궁금증은 사라지지 않았고 질문은 계속되었다. 엄마인 나 역시 당혹스러웠지만, 아이의 질문에 최대한 답을 해주려고 노력했고, 반복된 며칠간의 질문 후에야 아이는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을 멈추게 되었다.
일년에 몇 차례 제사와 차례를 지내기도 하고, 외할머니의 납골당에 다녀오기도 했던 아이에게 죽음에 대한 궁금증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을텐데, 한번도 아이에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 준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어른들은 죽음에 대해서 사실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하늘나라로 갔다는 식으로 표현하게 된다.
’죽었다’거나 ’죽음’이라는 낱말 대신, ’잠들었다’거나 ’돌아가셨다’는 표현은 죽음이라는 현상에 처음 부딪히는 아이들에게는 적당하지 않다고 한다. 아이들에게는 직접, 그리고 꾸미지 않고 사실대로 말해주는 것이 좋으며, 아이들은 구체적인 경험들에 근거해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게 된다고 한다.
죽음에 대한 아이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아이의 엄마는 그럴싸한 말들로 표현했고 결국 하늘나라에서의 삶을 멋지게 표현하게 되었는데, 아이는 "그럼 나 빨리 죽어서 하늘나라에 갈래!"라고 한껏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고 한다.
아이들에게는 자신들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말로 표현하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듣기 쉬운 낱말 몇 개로 알려주는 어른들이 필요하다. (본문 17p)
이 책은 가족이 함께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이끌어내고 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금기시할 정도로 가족과 죽음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당시 여섯살 이었던 큰 아이가 외할머니의 죽음으로 처음 가족의 죽음을 겪게 되었을 때, 친정 엄마의 죽음으로 힘겨워했던 나는, 아이에게 그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외할머니의 죽음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으로 경황이 없었던 나는 외할머니와 아이의 이별 인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한참 후에나 알게 되었고, 시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아이가 장례식에도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인지하게 되었다.
오랜 시간동안 아팠던 외할머니의 죽음에 대해 아이는 크게 힘들어하지 않았고, 자신을 돌봐주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었기에 크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에게 외할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해주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는 큰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 함께 죽음을 이야기하자>>는 가족, 이웃 혹은 애완동물의 죽음을 겪으면서 일어난 다양한 사례들을 토대로, 우리가 죽음에 직면했을 때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옳은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아이들은 너무나도 충격적인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스스로 주제를 바꿈으로써 놀람과 당황스러움 등의 느낌에 휩싸이지 않게 스스로를 보호한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아이와 부모간의 많은 대화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대화를 발전시키고 이끌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이 된다.
아이들이 우선 필요로 하는 것은 자신들과 솔직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어른들이기에, 아이들이 죽음에 대한 질문에 "나도 그건 몰라. 그래서 네게 대답해 줄 수가 없구나!"(본문 64p) 하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 장황하게 말을 하면서 정작 대답하지 못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상상력을 통해서 답을 찾아가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도 무척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미래를 이끌어 갈 주역이고, 상을 당해 슬퍼하는 많은 사람들의 상처를 닦아 줄 수 있는 가지각색의 거즈이기 때문이지요." (본문 59p)
우리나라는 특히 장례식 문화가 엄숙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장례식에서는 아이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으며, 아이들이 장례식에서 죽음과 대면하는 것을 꺼리곤 한다. 이런 문화때문에 내 아이도 외할머니의 장례식에 참여할 수 없었던 듯 싶다. 어른들은 죽음에 대한 언급을 회피함으로써 아이들을 보호하려고 하지만, 아이들에게 상황을 이해시키지 못하고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더 혼란스러워하며 자책하고 두려워함으로써 더 힘겨워할 수 있다. 죽음에 대해 아이와 함께 이야기하다보면, 아이는 지극히 아이다운 생각으로 마음을 열고, 죽음과 같은 운명적인 경험을 하더라도 엄청난 정신적 충격이 쌓이지 않는다고 한다.
어린 시절 남동생의 죽음으로 부모님으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했던 저자는 큰 상처를 받게 되었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어렸을 때 죽음을 경험하게 될 아이들을 위해서 이 책을 썼다.
애완동물의 죽음, 가족이나 친척 혹은 친구, 이웃들의 죽음을 통해서 아이들은 죽음에 직면하게 된다. 아이들이 죽음을 슬퍼하는 과정을 통해서 상실감을 극복하고, 강인해질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하다.
가족의 죽음으로 인해 상실감에 빠진 어른들은 미처 아이들이 갖게 된 상실감과 상처 등은 돌보지 못한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고 함께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상실감을 함께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니만큼, 전반적으로 묵직하고 어두운 이야기이지만 아이와 함께 꼭 읽어봐야 할 작품이다. 오히려 어른들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통해서 위로받을 수 있으며, 함께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죽음은 어른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모두의 아픔이며, 상실감이라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