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막는가
데이비드 뱃스톤 지음, 나현영 옮김 / 알마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불과 10년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인신매매가 극성을 부렸다. 1997년 임권택 감독, 신은경 주연의 <창(노는 계집 창)>이라는 영화가 상영되었었다. 그때 당시 꽤 파격적인 이야기였는데, 돈을 벌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상경한 열일곱 살의 여 주인공이 청계천의 한 피복 공장에서 여공생활을 하다가,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게 해준다는 유혹에 넘어가 술집으로 팔려가고, 윤락녀로 전락하게 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였다. 이 영화가 상영될 시기에, 우리나라는 인신매매로 몸살을 앓던 때였고 이 영화는 그런 시대적인 상황을 반영하고 있었고, 흥행에도 성공했지만,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우리 나라의 국민들에게는 좋지 않은 평을 받기도 했기도 했다.
이는 한 여성의 아픔과 시대적인 상황이 아닌, 그녀를 윤락녀로서만 바라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막는가>>를 읽으면서 나는 문득 이 영화가 떠올랐다. 그 시절 임권택 감독은 자신의 전공분야인 영화를 통해서 시대적인 아픔을 표현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시대에 앞선 행동이었고, 사람들의 의식을 바꿀 수 있을 법한 내용이었지만, 우리는 그저 윤락녀의 생활로만 치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가난이라는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돈의 유혹은 뿌리칠 수 없는 황홀함이다. 간절히 원하는 부분을 이용해 매춘이나 노예로 삼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로 화가나서 견딜 수 없었고, 책을 읽는내내 불편하기만 했다.
허나, 이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진실이며,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더불어 노예였던 그들이 우리의 삶에 함께 할 수 있도록 기꺼이 그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 

2000년 10월 미 의회는 ’인신매매 피해자 보호법(TVPA)’이라는 매우 중요한 법안을 통과시켰고, 미국 정부는 이 법안을 발표함으로써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영향력을 동원해 지구상에서 인신매매를 추방할 것을 약속했다. 미 국무부는 매년 외국 정부들의 인신매매 근절 노력을 평가하여 <인신매매 보고서>를 발행하였는데, 각국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행하는 구체적인 법률과 정책, 전략 등을 평가하여 세 ’등급’으로 나누었다.

3등급: 위 법안의 최소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만족시키려는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국가 (본문 238p)

2001년 7월 첫 보고서에 한국은 3등급 국가로 분류되었는데, 인신매매로 몸살을 앓고 있던 우리나라가 최소 기준을 만족시키려는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국가에 분류되었다는 부분에서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1997년 임권택 감독은 영화를 통해서 인신매매로 윤락가에 팔려가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인 문제를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2001년 한국은 3등급 국가로 분류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화나는 일을 접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가족의 누군가가 사라지고, 남은 가족은 애타게 찾아 헤매고 있을 때, 한국은 아파하는 이들을 보지 못한 채 3등급이라는 수치스러움과 불명예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는 캄보니아와 태국, 남아시아, 우간다, 유럽, 페루, 미국에서 자행되고 있는 현대판 노예제도의 실상에 대해서 낱낱히 저술하고 있는데, 이는 노예제도에서 구출된 사람들을 토대로 그들의 아픔을 보여주고 있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찰도 함께 개입되고 있어 전 세계적으로 성행하고 있는 성매매와 노예문제에 대한 추악한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이 현대판 노예제도의 근절은 경찰이나 권력가를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들의 관심과 참여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리고 함께하기를 역설(力說)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믿고 의지했던 가족에 의해 팔려가게 된 어린 소녀들의 이야기였다. 극도의 가난과 무력 갈등, 급격한 산업화와 폭발적 인구 성장이라는 네 가지 요인이 사회 안정을 해치면서 성 노예 산업이 번창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회가 급변한 변화를 겪을 때 가장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바로 이렇게 힘없는 이들이다.
부모나 자녀를 부양해야 하는 가난한 여성들, 사회의 무력 갈등으로 소외되버린 법적 신분을 보장받지 못한 난민들, 일자리 부족과 식량 부족에 허덕여 어린 세대를 부양할 여력이 없어 가장 먼저 희생되어버린 어린 세대들이 바로 그들이다.

성적 착취나 혹은 노동력 착취로 노예가 되어버린 이들의 이야기와 그들을 구출하고자 노력하는 노예제 폐지 운동을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반복구성을 통해서 보여줌으로써, 저자는 우리에게 세계의 추악한 모습을 보여주고 분노를 느끼게 하기도 하고,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있음을 또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그들을 구출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구출된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 조성되지 않는다면, 살아갈 희망이 없는 그들은 이번에는 제 발로 악의 소굴로 다시 들어가야하는 악 순환이 생길지도 모른다. 우리가 할 일은 구출된 그들이 사회적인 관심과 도움을 통해서 본연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노예를 구출하는 작업이 그들이 감금에서 풀려나는 순간 끝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들을 알아서 살아가도록 방치하면 또 다른 주인 밑에서 강제 노동을 하는 악순환의 고리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노예제 폐지론자들은 성급하게 구출 작전을 실행에 옮기기 전에 반드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준비해야 한다. "구출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본문 120p)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낱낱히 해부된 이야기를 읽고있자니, 아픔과 슬픔과 분노가 한꺼번에 몰아쳐온다. 경찰과 공권력까지 개입되어 점점 성행되고 있는데다가, 여전히 힘없는 이들이 이런 무자비한 악 앞에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이 몸서리가 처진다. 비록 지금 한국은 3등급이라는 불명예에서는 벗어났지만, 하루라도 빨리 이 국제적인 문제에 개입하여 아동 노예, 성착취 등을 근절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자국 국민을 보호하는 길이며,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또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영국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는 "악이 승리하는 데 피요한 유일한 조건은 선량한 사람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책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지만, 악의 소굴에서 벗어난 이들은 도운 것은 국가 단체가 아니라, 선량한 몇몇 사람들을 통해서였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들에 대한 관심과 인식의 전환이다!!

나는 사고팔 수 없습니다.
당신도 사고팔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물건이 아니니까요.
(본문 35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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