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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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11월초 어느날 아차산에서..)

집에서 10분거리에는 고구려의 역사가 담겨진 아차산이 있다. 산 중간즈음 해맞이 광장까지만 올라가도 도심 전체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탁트인 경치에 마음까지 시원해져 우리 가족이 즐겨찾는 곳이다. 추워진 날씨탓에 11월초 아차산을 다녀온 후로 통 다녀오지 못했었는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문득 차갑다 못해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을 뚫고 정상에서 도심을 바라보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다. 가까운 곳에 사는 나보다 더 아차산을 잘 설명하고 있는 저자의 글 때문일지도 모르고, 꽉 막힌 듯한 답답한 마음에 시원한 생기를 불어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한강에 대해 말하고 있었는데, 나는 왜 살짝 들려준 아차산의 이야기에 더 집중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알고 있는, 내가 살고 있는, 내가 자주 가는 아차산에 대해 저자가 알고 있다는 것이 신기해서일지도 모르겠고,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저자와 나의 공통분모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저자와 나의 나이차는 40년이 넘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일상의 이야기와 저자의 추억에 공감대가 형성된다. 그도 그럴것이 저자의 어린 시절 추억 속 개성의 개울물과 내 어린 시절 집앞에 흐르던 서울시내의 개울물(지금은 개천이 없어졌지만, 이곳은 여전히 ’긴고랑’이라고 불린다)이 닮아있고, 축구에 열광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꿈에도 알지 못했던 저자가 월드컵에 열광하고 축구에 푹 빠져보는 모습이 어쩜 그리 나와 닮아있는지...그 많은 나이 차이에도 같은 추억을 소유하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 너무도 재미났다. 어쩌면 이 작품을 읽기 전에 여자 이야기를 담아낸 <환각의 나비>를 읽으면서 같은 여자로서 느꼈던 동질감이 이 책에 그대로 전달되어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저자의 이야기에 상당한 흥미로움을 느꼈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나이가 들면 한적한 시골에서 정원이 있는 집에 나무도 키우고, 상추 고추도 심으면서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은 것이 나의 작은 소망이다. 멈출 수 없는 책욕심에 지금도 빽빽히 꽂혀있는 책들과 함께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저자가 살아가는 모습이 그동안 그려왔던 노년의 내모습과 닮아있어 왠지 부럽고 샘이난다. 잔디 가꾸기가 힘겹다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지만, 흙에 대한 고마움과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끼고 있는 것을 보면 그 투정이 즐거우신게다. 
지금이야 어여쁜 잔디에 대한 괜한 투정도 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손주에게 손수 밥도 해주시고, 여행도 다니며 누구나 부러워하는 행복한 삶이겠지만,  꽃다운 20세에 6.25전쟁을 겪으면서 어렵게 살아남은 뼈아픈 상처가 있고, 고향에 가지 못하는 서글픔과 아들을 잃은 아픔까지 가지고 있으니, 잔디 속 잡초들에 대한 투정은 인생 한켠에 묻어둔 상흔에 대한 혼자만의 도닥임을 아닐런지.

전쟁은 그렇게 무자비했다. 그래도 나는 살아남았으니까 다른 인생을 직조할 수도 있었지만 내가 당초에 꿈꾸던 비단은 아니었다. 내가 꿈꾸던 비단은 현재 내가 실제로 획득한 비단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가본 길보다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내가 놓친 꿈에 비해 현실적으로 획득한 송공이 훨씬 초라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본문 25p)

누구나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하는 인생의 선택과 마주하게 된다. 선택하지 못했던 다른 길에 대한 아쉬움과 현재 내 모습을 보며 초라함을 느낄 때 선택하지 않았던 길에 대한 후회로 자조적일 때가 있다. 후회가 없는 삶이 있을까마는 왜이다지도 다른 길이 더 넓고 탄탄해보이고 순탄해만 보이는지, 그 탓에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라는 제목에 끌렸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괜찮다 나를 다독이는 오늘, 저자의 투정이 귀엽게(?) 보여 나도 모르게 웃게 된다. 다들 그렇게 못 가본 길에 대해 후회하고 아쉬워하며 살아가는구나..하는 것을 느끼며 위로를 받는다. 

책을 읽고 미흡하나마 서평을 쓰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어서인지, 저자가 2008년 한 해 동안 다달이 ’친절한 책읽기’라는 제목으로 조선일보에 연제했던 글을 <책들의 오솔길>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이 책 속에 수록해 놓은 글들에 애정을 느끼게 된다. 나이 들면서 숨 가쁘게 정상으로 끌고 가는 책보다는 도중에 아기자기한 오솔길을 거느리고 있어 쉬엄쉬엄 쉬어갈 수 있는 책에 더 정이갑니다. 라는 저자의 말처럼 저자가 쓴 이 책이 나에게 쉬엄쉬엄 쉬어갈 수 있는 정이 가는 책이다. 간혹 빼곡히 쓰여진 활자를 그저 ’읽는다’에만 목적을 두고 책을 읽어내려 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오늘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어린 시절 개천에서 잠자리를 잡던 일, 개천에서 옷을 흠뻑 적셔 엄마에게 혼난 일을 떠올리며 편안하게 페이지를 넘겼다. 후회에 대한 미련을 갖기 보다는, 지금 나의 현실에 대한 감사함과 지금 현재가 주는 행복을 떠올리며 또 한 페이지를 넘기곤 했다. 그렇게 오랜만에 편안한 책읽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책을 읽다가 오솔길로 새어버린 저자처럼 나도 책을 읽으며 오솔길로 새어버릴 수 있는 비법을 전수받았기 때문인가보다.

80년을 살아오는 동안 저자에게는 감내하지 못했던 아픔도 있었고, 아픔을 치유받을 수 있었던 행복도 존재했다. 축구공에 예찬하고, 남대문 화재에 눈물 흘리며,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해 미련을 갖고, 손자 더운밥 해줄 생각에 신이나기도 한다.
삶이라는 것은 그런 것 아닐까? 절망 뒤에 행복이 따르고, 후회와 미련 속에서 다른 희망을 찾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아닌가 싶다. 지금 살아계신다쳐도 친정엄마보다 더 나이가 많은 저자의 푸근한 글 때문에 엄마를 떠올려본다. 엄마가 해주었을지도 모를 이야기들을 나는 저자의 글로 대신했다. 저자가 해주는 따뜻한 밥을 먹은 듯한 뭉클함도 있었고, 저자의 글에 대한 공감에 괜한 민망함(내가 나이를 먹었나 싶은 생각에 대한 민망함)도 있었다. 일상의 주절거림 속에서 나는 못 가본 길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있을 것같은 위로를 받는다. 6.25 전쟁으로 받았던 고통이 소설가로서의 박완서를 있게 했듯이, 내가 선택한 길로 인해서 나는 지금의 행복을 얻었고 더 큰 행복을 얻기 위한 또다른 선택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배운다. 
저자에게는 일상의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일수도 있겠으나, 나에게는 삶에 대한 큰 가르침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나는 쉬엄쉬엄 쉬어갈 수 있는 책 한 권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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