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 2008년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백영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드라마를 시청하지는 못했지만, 배우 김혜수가 ’엣지있게’라는 말을 유행시키면서 원작에 대한 궁금증을 일으켰고, 나이가 들고 결혼생활이 오래되면서 칙릿 소설이 주는 상콤함을 좋아하게 되었기에 이 책에 더 이끌렸다. 흔히 말하는 아줌마들이 드라마에 빠지는 것처럼 20,30대 여 주인공의 일과 사랑을 통해서 나 역시 대리만족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주인공들의 매혹적인 사랑은 알싸한 느낌을 전해주면서 로맨틱한 남자 주인공의 매력에 퐁당 빠지게 한다. 
저자 백영옥의 작품은 처음 접해보는데, 저자가 나와 동년배라는 것과 ’키다리 아저씨’ 좋아한다는 점에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고, 발랄하고 유머러스한 글이 읽는내내 즐거웠지만, 스토리 자체는 조금 식상한 느낌이 들었다.
주인공을 빛나게 해주는 악녀와 주인공은 알지 못하지만 늘 주인공 옆에서 주인공을 바라보고 있는 한 남자는 대부분의 연애 소설에서 볼 수 있는 구조다. 다만 이 소설이 다른 연애 소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야기의 배경이 블링블링한 패션잡지 회사라는 점과 톡톡 튀는 저자의 글로 식상함을 보완해주고 있다는 점일게다.

애인의 팔짱을 끼기보다는 ’고야드’ 백을 끼고, ’마크 제이콥스’ 백에 눈독을 들이고, 마크 제이콥의 핸드백에 키스하고 싶은 욕망이 더 각렬한 소위 말하는 명품을 사기 위해 월급을 날리고야 마는 사람들이 대거 등장한다. 주인공 이서정 뿐만 아니라 등장하는 인물 하나하나가 모두 개성이 독특한 인물들 뿐이다. ’스키니 진’ 체험기로 황당한 기사를 배당받은 이서정은 다이어트로 인해 ’잔인한 4월’을 보내고 있다. 55사이즈에서 44사이즈로 변하는 마법이 있다면 파우스트 박사처럼 영혼이라도 팔 것이라 생각하는 서정은 회사에서 가장 뚱뚱하고 평범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모든 남자와 여자들이 다이어트 강박증 환자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녀지만, 다이어트 때문에 ’제니칼’ 약을 먹다가 좋아하는 남자 앞에서 실수를 하는 어쩔 수 없는 현대여성이다.
그러나 주는 것없이 미운 앙숙인 한지선에게 말로 줬다가 되로 받는 이서정은 자기 이익을 챙기고, 경쟁해야 하는 이 곳에서 약기보다는 순수함을 가진 여성이기도 하다.

사표를 세번이나 던지고도 다시 회사에 복귀하고,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포장하기에 더 바쁘고 휴일도 없고 시간 구분도 없이 일해야하는 이 곳은 겉으로 드러나는 블링블링함보다 치열한 전쟁터를 방불케한다. 무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 일이 자신에 맞지 않는다고 4번째 사표를 던지는 서정이지만,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릴 줄 알기에 ’설득의 달인’으로서 자신의 업무를 충실히 해내고 있다. 비록 ’박기자’선배에게 혼나고 선배의 악다구니를 듣고 있지만 서정은 커리우먼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줄 아는 멋진 여성이다. 단지 연애에만 젬병일 뿐.

30퍼센트 세일하는 옥돌매트가 필요한 나이인 서른 한 살인 서정에게는 아픈 실연의 아픔이 있다.
대학 4학년 졸업식을 앞두고 ’네가 무섭다’라는 말로 이별 통보를 받은 후 남자에게 냉정해진 서정은, 어른들의 소개로 수석에 수석을 거듭한 수재라는 최고의 조건을 가진 박우진과 맞선을 보게 되지만 그 남자는 불과 5분 만에 사라졌고 서정에게는 큰 상처였다.
그러던 서정은 민준선배에게 끌리고 있었고, 민준 선배 역시 서정을 좋아하는 듯 다가선다. 7년만에 박우진을 다시 만난 것만큼 재수 없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던 서정은 박우진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을 취재해야 하는 특명이 떨어지면서 박우진과 재회하게 된다.

대부분의 주인공들이 그렇듯 주인공들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베란다에서 성수대교가 붕괴되는 것을 목격하게 되고 그 사건으로 서은 언니를 잃게 되면서 그 아픔으로 서정은 큰 음악소리 없이는 성수대교를 지나지 못한다. 아픔을 가지고 있던 서정은 의사로서 큰 좌절을 겪고 이겨낸 우진과의 사랑을 통해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게 된다.

13년 전 사고도 잊지 못하는 여자가 7년 전 기억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성수대교를 건널 때마다 끊어진 상판이 투명한 유리처럼 선명하게 보이는 사람에게 어떻게 지금 이 시간이 현재로만 존재할 수 있을까. 과거에서 도망치기 위해 이토록 치열하게 현재를 살아낸 사람에게 잊고 싶은 과거를 호출하는 것만큼 힘든 건 없다. 
하지만 이 시간, 나는 지우고 싶었던 7년 전 과거와 조우했단.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을 살기 위해선 잊고 싶은 과거와 반드시 화해해야 한다는 것을.
(본문 254p)

박우진과의 오해를 풀어가면서 7년 전 상처의 아픔을 씻게 되었고, 우진과 함께 13년 전 언니를 잃었던 사고와 조우하면서 서정은 언니의 모습을 잊지 위해서, 살기 위해서 닫아버렸던 과거의 기억을 되짚어내면서 아팠던 열여덞 살이었던 자신의 소녀시절의 억압에서 벗어난다.

진짜 연금술이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만나서 벌어지는 이 놀라운 연애의 장. 이토록 깊은 이해가 이토록은 깊은 오해와 절망 위에서 솟아날 수 있다는 것에 나는 깊이 안도했다. (본문 302,303p)

요즘 신세대의 트렌드에 맞게 글 속에서 톡톡 튀는 매력이 묻어난다. 코믹하면서도 발랄함이 매력이지만, 그 속에서 사랑과 일에 대한 진지함을 자연스레 담아냈다는 점이 이 글을 가벼이 여길 수 없었다. 뻔한 스토리 전개와 식상함은 발랄함으로 묘사된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인물들이 묘사로 커버되고 있었고, 자칫 가볍게 취급될 수 있었던 그녀의 글 색감은 서정의 트라우마를 통해서 진지함도 녹여냈다. 생각지도 못했던 살짝쿵 가미된 반전도 좋았고, 사랑과 일에 성공한 극히 평범했던 (물론 이 계통에서만..) 서정의 당당하면서도 순수한 매력 역시 마음에 드는 캐릭터였다.

서정이 드라마의 통속성을 좋아하듯, 나는 이런 연애소설의 통속이 좋다. 현실을 빗대고 있지만 현실과는 엄연한 차이를 두고 있는 이런 연애 소설이 아니라면 달콤한 로맨스를 어떻게 꿈꾸겠는가? 결국 이런 연애소설의 통속성이 있기에 나같은 아줌마도 가슴 떨리는 로맨스의 주인공이 되어보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되는 것이고, 이 소설의 뻔한 스토리와 식상함마저도 엣지있게 느껴지는 것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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