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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의 방 ㅣ 푸른도서관 41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군가 내게 마음에 드는 성장소설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너도 하늘말나리야>를 선택할 것이다. 열세 살의 아이들 미르, 바우, 소희 세 아이가 서로 다른 아픔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모습이 잔잔하고도 예쁘게 담겨진 책이기 때문이다. 소희는 할머니의 죽음으로 미르와 바우를 담겨둔 채 달밭 마을을 떠나게 된다. 그렇게 떠난 소희가 11년만에 다시 <<소희의 방>>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 책에 대한 궁금증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과연 소희는 어떻게 되었을까? 너무도 일찍 철이 들었던 소희는 아마 누구에게나 사랑받으며 잘 살고 있었을 것이다. 소희에 대한 궁금증, 좋아하는 이금이 작가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 책에 대한 나의 기대는 한없이 커갔고, 책을 받는 순간 쉼없이 읽어나간 후 그 기대감에 대한 충만으로 살짝 떨리는 듯한 기분도 만끽했다.
달밭마을을 떠나던 날의 꿈을 꾸는 소희는 1년 반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꿈이지만 꿈 속 소희는 베개가 젖을 정도로 눈물을 흘렸고, 소희는 그 꿈이 싫었다. 엄마가 사는 집에 온 소희는 처음으로 자신의 방이 생겼고, 한 바퀴를 굴러 될만큼 큰 침대가 생겼지만, 방이 두 개인 작은집에서 살던 소희는 사촌 동생 둘과 한 방을 쓰면서 잔뜩 웅크린 책 자는 버릇으로 몸이 저린 느낌이 들었다.
소희는 지금 아저씨의 딸이 자기 친엄마한테 가기 전까지 썼다는 방에서 윤소희가 아닌 정소희로 살아가게 되었다.
작은 집에서 미용실에서 작은 엄마를 도와 잘려진 머리카락을 쓸며, 집안 일을 돌보며 살던 소희는 엄마를 처음 만났던 일과 처음 본 엄마의 말투를 흉내내고 엄마와 닮은 것이 많아져 누가 보아도 모녀 사이임을 알 수 잇도록 사소한 버릇들까지 닮고 싶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자신을 반겨주던 우진이처럼 엄마와 가까워지려면 먼저 손을 내밀어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희는 자신이 두 개의 시간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학교와 집. 학교의 소희는 흐르는 시간에 잘 적응하며 그 시간만큼 발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집에서의 시간은 처음 오던 때와 별반 달라진 게 없이 멈춰 서 있었다. (본문 60p)
우진이와 달리 우혁이는 소희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우혁이의 심술이 계속 되자 엄마는 소희에게 우혁이를 이해해달라고 하지만, 소희는 우혁이가 아니라 그동안 버려두었던 자신에게 신경쓰지 않는 엄마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전학간 학교에서 친구가 된 채경이가 부러워하는 소희의 브랜드 옷과 물건들은 지난 1년 반 동안 아무리 노력해도 드러나지 않았던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준 소중한 증거품이었고, 새로운 삶으로 난 문의 열쇠이기도 했지만, 엄마가 소희에게 진 빚을 마음이 아니라 돈으로 갚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한 셈이었다.
엄마와 있으면 더 다정한 말투, 관심, 특별한 애정 같은 것들을 끊임없이 바라게 됐고, 소희의 기대에 비해 엄마가 주는 것들은 언제나 성에 차지 않았다. 그 때문에 엄마와 함께 있으면 끊임없이 감정을 소모하게 되고, 그만큼 상처받았다. (본문 108p)
우혁이와 우진이를 두고 ’우리 애들’이라는 엄마의 말에 상처를 받은 소희는 엄마에게 사랑을 갈구했던 자신의 마음을 마음을 막았고 더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기로 했다. 친구와 수행평가 과제를 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남자친구와 놀이공원에 놀러가고, 엄마가 사준 옷이 아닌 요즘 유행하는 옷을 사 입으며 소희는 강요에 의해 억지로 입고 있었던 모범생 옷까지도 벗어 버렸다. 그런 소희에게 실망한 엄마와 소희의 첫 다툼으로 엄마의 마음을 조금 알게 되자 냉기로 가득 차있던 소희의 마음을 서서히 데워지고 있었지만, 아저씨에게 받은 디카로 사진에 대한 즐거움을 느끼던 소희에 대한 분노와 미움으로 가득찬 우혁으로 인해 소희는 또다시 외톨이가 되어간다.
"경석이가 군대 간 다음에 휴대폰을 정지시켜놨었어. 약정 기간이 2년이었는데 제대하고 나와서 스마트폰인가 뭔가로 바꾸려고 하니까 약정이 안 끝났다는 거야. 산 지 2년이 넘었는데 무슨 소리냐고 따졌지. 그런데 대리점 직원 말이 휴대폰을 정지 시켜놓았던 기간은 약정에 포함되는 게 아니라더라."
"사람 사는 일도 그런 거 아닌가 싶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떨어져 산 세월이 얼만데 그렇게 금방 그 시간들을 뛰어넘을 수 있겠니. 휴대폰 약정 기간처럼 너와 네 엄마, 그리고 네 동생들도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채워야 할 시간이 필요한 거 같아." (본문 227p)
아무리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가족이라지만, 서로의 가슴에 담아둔 마음까지 모두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엄마가 무심코 내뱉은 말에 상처를 받은 소희의 마음을 엄마가 몰랐고, 엄마가 소희를 버리고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사정이나 소희를 버렸던 엄마의 마음을 소희는 알 수 없었다. 누군가와 하나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소통’만큼 중요한 일은 없는 것인가 보다.
소희와 엄마의 다툼이 소통의 물꼬를 트는 일이었다면, 우혁이의 일로 집을 나온 소희와 엄마 둘이서 나누었던 시간이야 말로 소희와 엄마가 진정 모녀관계가 될 수 있는 소통의 시간이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새엄마였던 엄마를 미워했던 아저씨의 딸 리나가 5년만에 집에 돌아오게 되고, 새엄마를 둔 리나, 새아빠를 둔 소희는 한 방을 쓰면서 소희는 리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순간이 하루 또 하루의 부피로 빠르게 쌓여 가는 듯 했고, 이 시간들로 엄마와 동생 우혁이와 좀더 가까운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할머니와 살아가면서 이내 철이 들어버렸던 소희는 응석부리고, 떼 쓰고, 화내며 투정부리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버렸다. 형제끼리도 싸우면서 크고, 부모 자식간에도 서로 툴툴거리며 이야기하는 시간들을 통해서 약정시간을 보내게 되는가 보다. 이런 시간들을 우리는 ’소통’이라 부르고, 그 소통을 통해서 가족간의 결속력이 더 단단해지는 것이겠지.
<<소희의 방>>에서의 소희는 할머니와 지내면서 철이 들어버린 소희, 작은 집에 얹혀살면 그만큼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소희와는 다른 소희와 만나게 된다. 이제 정말 자신의 나이에 걸맞게 응석피우고, 투정부리며, 사랑을 갈구하는 열 다섯살의 소희를 말이다.
아무리 가족의 모습이 여러 형태로 변하고 달라지고 있다해도,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온전한 가족이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소통’이라는 점이다. 이혼한 엄마가 자식인 자신을 통해서 구원받으려 하는 기대감에 숨이 막혀하는 디졸브는 엄마를 이해시켜 자신의 꿈인 영화감독이 되려고 한다. 소희는 이제 ’아저씨’가 아닌 ’아빠’를 갖게 되었고, 재경에게 거짓된 삶을 보여주었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모든 것이 소통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비참한 시간들을 기록하고 싶지 않아 일기를 쓰지 않았던 소희는 이제 첫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산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여름날의 무성함과 찬란함이 아니라 겨울날의 초라함과 힘겨움에 담겨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달밭마을의 느티나무처럼 밧줄에 가지를 의지한 채 눈바람을 맞는 일이, 그것을 견디는 일이 인생일 것이다. 내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에도 삶은 그럴 것이다. (본문 296p)
소희가 겨울날의 초라함과 힘겨움을 이겨낸 것처럼 이제 사춘기에 접어든 딸아이가 겨울날의 힘겨움을 이겨내고 푸르른 봄을 맞이할 수 있는 용기를 얻고,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꽃이 되기를 소원해본다.
(사진출처: '소희의 방' 표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