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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여름 갑자기
차우모완 지음 / 엔블록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여성에게 가슴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외모에 대한 자신감을 표출할 수 부분이기도 하고, 모성애를 담뿍 담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케이블 방송에서 여성의 가슴에 대해 다룬 것을 잠깐 본 적이 있는데, 가슴의 크기가 여성의 자신감에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에 놀랍기도 했고, 나 역시 상당부분 공감을 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쩌면 이런 사실 때문에 다양한 시술이 등장하고 있는 것일테고, 또 이런 이유때문에 주인공 지원이 유방암 진단을 받고 절제해야 한다는 사실에 적지않은 상처를 받은 것일테니 말이다.
참 독특한 내용을 가진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로맨스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달콤한 매력이 부족하고,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긴장감이 조금 부족하며, 의학도서라고 하기에는 전문적인 느낌이 조금 부족한 느낌이다.
로맨스와 미스터리적 요소 그리고 의학적 내용 3가지가 결합된 내용으로 약간 묘한 느낌을 주는 책이다. 유방암에 걸린 지원을 통해서 가슴이 주는 여성성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에 비해 내용은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정체성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듯 하다. 의학적인 내용을 조금 배제시키고, 긴장감을 좀 배가시켰다면 좀더 그럴싸한 미스터리물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조금은 모호한 느낌을 주는 책이지만, 퍼즐을 맞추어가듯 사건을 짜맞추어가는 이야기 구성 때문에 책을 읽기에는 지루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이틀 전, 지원은 암이 유방 전체에 퍼져 종양이 너무 커서 잘라낼 수 없는 상태였지만, 항암제를 투여해 일시적으로 종양의 크기를 축소시킨 시점에서 암을 잘라내야 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남자친구마저 떠나고 지원은 고향인 섬으로 돌아왔다.
어린시절 아버지의 양식업이 실패하고, 정서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렸던 언니마저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서 부두를 떠났지만 결국 섬을 떠나지 못했던 부모님 품으로 돌아 온 것이다.
부모님의 양식장 일을 돕던 지원은 그녀네 옛집에서 살게 된 남자와 사랑을 하게 되고, 죽은 줄 알았던 언니가 돌아오면서 이야기는 미스터리적 내용으로 빠져든다.
바닷가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과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는 언니, 언니와 남자친구 사이에서 알 수 없는 묘한 기류가 생기면서 지원은 사건들을 해결해나가기 시작한다.
언니가 쓴 <얼음 유희>를 읽어가면서 지원은 고등학생이였던 언니와 남자친구와 있었던 오래전 사건을 알아가게 되고, 그것을 통해서 사건을 하나둘씩 퍼즐을 맞추듯 완성해나간다.
이 책속에서는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탓에 이야기의 결말이 조금 억지스러워지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유방암에 걸린 지원을 통해서 의학적인 시술이 오히려 더 암을 악화시키고 생명을 단축시킨다는 것을 내용 전반적인 부분에 깔아두었다.
미스터리적 요소를 통해서 동성애, 페티시즘 등을 보여주려 애썼으나, 사건의 결말에서는 좀 엉뚱하게 결론을 내린 듯 하다.
지원의 가슴, 남자친구의 발기 불능을 통해서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끄집어내려고 했던 듯 싶은데, 그 과정이 좀 미약하지 않았나 싶다.
많은 것을 이야기하려는 작가의 의욕과는 달리 이야기의 진행이 조금 힘겨워보인다.
더욱이 암 치료에 있어서 현대 의학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역설하기 위해 상당히 많은 부분을 의학 용어와 의학적 내용을 설명하는 데 할애하고 있어 책이 부드럽게 읽혀지지 않았다는 점 또한 단점으로 지적된다.
차라리 죽음을 앞둔 지원과 발기 불능을 가진 남자의 심리적인 묘사 부분에 치중하는 것으로 신체를 통한 여성성과 남성성을 표현하는데 더 쉽지 않았을까? 하는 짧은 생각을 가져본다.
그녀는 더 이상 남자를 ’저기요!’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도 그녀에게 말을 걸 때 길고 번거로운 어미를 생략했다. 그러나 생을 스스로 단념한 여자에게 사랑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젠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여겼는데, 뜻하지 않게 찾아온 사랑 때문에 생에 미련을 가진들 그 사랑이 달라질 수 있을까. 양 가슴을 납작하게 도려내고 보형물에 의존해야 한다. 여자로서 상징이나 자신감은 위축되고 수유에의 기대나 모성의 원천은 상실된다. (본문 8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