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떠나지 않았더라면
티에리 코엔 지음, 이세진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책 도입부를 읽으면서 제목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느끼기 위해서 표지를 다시 보았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이슬람교도에게 폭탄 테러를 당해 죽게 된 아들 제롬. 
제롬을 데리러 가기로 했지만, 회사 업무로 인해서 다니엘은 제롬을 데려가지 못했고, 버스를 타고 와야했던 제롬이 사고를 당하자 다니엘은 더 큰 절망을 느꼈고, 아내와 작은 아들을 남겨둔 채 테러를 사주한 이슬람지도자 셰이크 파이살을 죽이기 위해 영국으로 떠난다.
’너가’ 떠나지 않았더라면이 아니라, ’널’ 떠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제목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죽음을 당한 것은 아들 제롬이고, 다니엘을 떠난 것은 분명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책 제목은 ’널’ 이라는 표현으로 다니엘이 누군가를 떠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다니엘이 떠난 ’널’은 누구를 의미하는 것일까? 그 의미를 느끼고자 책을 다시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내 인생은 내 아들의 몸이 버스에서 갈가리 찢겨지던 날 모두 끝났다. 폭탄이 터지는 순간 흩어져 날아간 아이의 살점 하나하나에 내 삶의 순간순간들도 함께 흩어져 날아갔다. 승객들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수많은 살점들이 버스 자체와 아스팔트를 향해 날아가 스러질 때 내 존재의 의미도 함께 스러졌다. (본문 11p)

책은 이중구조를 가지고 시작한다.
’다니엘’과 ’장’ 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이들은 어떤 관계일까?

가족을 떠나 아들 제롬의 복수를 하기 위해 오랜 친구에게 무기를 구하고 영국으로 간 다니엘은 셰이크의 주변에서 그에 대한 정보를 알아간다.
한편 파리 근교에서는 장이라는 알코올 중독 노숙자가 두 명의 괴한에게 납치된다. 가족들을 위협하는 말에 장은 순순히 괴한을 따라가고, 죽음을 각오한다.

"잘 들어둬. 당장 일어나지 않으면 네 가족들도 무사하지 못해!"
"예전에는 가족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난 지금 혼자야."

"당신이 가족을 떠났다고 그들의 존재가 사라진 건 아니지. 당신 가족들은 여전히 그 집에 살고 있으니까. 우리에게 그들을 찾아내 죽이는 건 일도 아니란 걸 아는지 모르겠네."

"내 가족은 제발 건드리지 마라. 그들은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으니까."
(본문 26p)

다니엘은 어린시절 불량배로 살아가던 시절의 오랜 친구들과 지금의 아내 베티를 만나고 결혼하고 제롬을 낳고 행복했던 그 시간들을 파노라마처럼 떠올린다.

내게는 또 다른 아들이 있고, 아내도 있다. 그들은 내가 돌아오기를,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신호와 변화를 기다리지만 나는 무기력할 뿐이다.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목표에만 집중한다. 그 계획만이 나를 떠받치고, 살아갈 수 있게 하며 나의 미래를 그려 보인다. 목숨을 걸어도 좋다. 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까. (본문 57p)

장은 납치범들에게 차라리 죽여달라고 말하지만, 정작 납치범들이 처형 리허설을 하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납치범들은 처형 리허설을 찍은 동영상을 이름없는 <텔레8> 방송국의 8시 뉴스 앵커인 에릭에게 보낸다.
오래전 영향력있는 방송국 간판 앵커였던 에릭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진실을 말했다가 가혹한 비난을 받게 되었고, 등 떠밀린 사퇴에 지금의 초라한 뉴스 앵커가 되었다. 자신의 앞으로 배송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사주한 납치라고 생각되는 동영상의 대한 독점권을 얻게 된 에릭은 이 뉴스를 통해서 다시 한번 예전의 명성을 되찾고자 한다.
사람들은 노숙자의 신원을 밝히고자 했으며, 노숙자를 구하기 위해 성금을 보내지만,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돈을 요구하는 대신,  ’이 남자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한다.

다니엘은 셰이크와 대면하는 일에 성공하지만, 이미 다니엘에 대해서 알고 있는 셰이크에게 붙잡혀 갇히는 신세가 된다. 그러나 오랜 친구들의 도움으로 다니엘은 탈출할 수 있었으며 셰이크를 납치하는데 성공하지만, 정작 그를 죽이지는 못한다.
대신 그의 모든 권력과 명성을 뺏았을 법한 동영상을 셰이크의 조직원에게 보내고 셰이크를 풀어준다. 다니엘은 셰이크를 납치했던 사실을 언론에 알렸으나, 셰이크의 알 수 없는 죽음으로 다니엘은 언론과 세상에 질타를 받게 된다.
반면, ’장’의 신원이 밝혀지고 에릭과 장의 연결 고리가 이어지면서, 다니엘과 장이라는 이중 구조가 하나로 합쳐지게 되고, 이야기는 놀라운 결말을 이끌어 낸다.

다니엘과 장을 통해서 이야기는 가족, 복수, 우정 그리고 인간의 가치에 대해서 묻고 있다. 다니엘에게는 아내와 아들 피에르 가족이 있었다. 여기서 제목에서 말하는 ’널’은 남은 가족, 친구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테러에 의한 아들의 죽음이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는 생각에 더 큰 고통을 받았을 다니엘의 마음을 다 이해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분명 절망과 고통과 억누를 수 없는 슬픔을 느꼈을테고, 아들을 죽인 범인에 대한 복수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리라 생각된다. 누구나 그런 절망 속에서 힘겨워했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다니엘은 왜 남은 가족에 대해서는 신중하지 못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그동안 엄마는 눈이 빠지게 아버지를 기다렸어요. 한순간도 아버지를 잊은 적이 없어요. 아버지를 찾는 일에도 발 벗고 나섰고, 사립탐정을 몇 명이나 고용했는지 몰라요."

"아빠 때문에 끔찍할 정도로 괴로웠을 텐데 너는 왜 내게 원망의 말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니?"

"아빠가 엄마와 저를 위해 그렇게 하셨다는 걸 알아요. 우리가 형의 억울한 죽음에 짓눌려 살지 않게 하려고 그 자를 죽이려 했다는 걸 알아요."
(본문 372p)

그랬다. 다니엘은 제롬 뿐만 아니라 남은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았고, 복수를 하려했던 것이다. 가족을 위해 희생을 감내했던 다니엘은 결국 정치적인 부분에 이용되면서 인간적인 존엄성을 말살당했고, 자신으로 인해 남은 가족이 희생되었다는 생각에 더욱 가슴 아팠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의미가 이것으로 인해 더욱 극대화되었다고 해도 좋을 듯 싶다.
다니엘과 장을 둔 이중구조 그리고 하나로 통합되면서 상상 이상의 결말을 이끌어 낸 구성이 굉장히 놀라웠다.
사실, 중반부에 이슬람교니 정치니 하는 좀 난해한 이야기들이 나열되면서 지루한 면이 있기는 했으나 다니엘과 장의 연결고리를 알아가고자 하는 흥미로움때문에 쉽게 읽을 수 있었던 같다.

다니엘이 가족을 떠나지 않았다면, 그들 가족은 서로를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제목은 독자들에게 가정을 통해서 이런 궁금증을 유발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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