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빌려드립니다 - 백수 아빠 태만의 개과천선 프로젝트
홍부용 지음 / 문화구창작동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사회에서 ’아빠’는 굉장히 외로운 존재가 되었다고 한다. 가족을 위해서 힘겨운 사회생활을 묵묵히 견뎌내지만, 그 결과 얻은 것은 가정내에서의 왕따라고 한다. 현 시대가 원하는 아빠는 사회에서는 능력이 있어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는 능력있는 가장이여야 하며, 아내에게는 애처가여야 하며, 자식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늘 함께 놀아주는 친구같은 아빠가 되어야 한다. 가족이라는 큰 울타리를 이끌어가야 하는 그들의 어깨가 오늘따라 굉장히 지쳐보이는 듯 하다.
어린 시절, 내 아빠는 무뚝뚝했으며 우리 남매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시는 전형적인 한국의 아빠 모습이였다.
놀이공원에서 아빠 엄마와 함께 놀러나온 아이들을 보면 부러움과 질투어린 시샘으로 그들을 보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 아빠의 모습을 많이 생각했다. 철없던 나는 아영이처럼 아빠에게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기에 아영이의 모습은 마치 나를 보는 듯했다. 철이 들면서 연민의 대상이 된 아빠,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더 많은 불만을 가졌을 거라는 걸 어른이 되고서야 알았다. 굽어버린 허리 속에서 가족을 위해 애써왔던 헌신의 흔적을 발견하면서 뒤늦은 후회를 해 본다.

’엘리펀트 데이 - 나뉨의 날’ 나에겐 쓸모없지만 다른 사람에겐 쓸모가 될 만한 물건을 가져오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아영이는 아빠를 학교에 오라고 한다. 아영이의 엉뚱하고 당돌한 행동에 아빠는 당황했지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진태는 아저씨가 필요하다고 한다. 

"아빠가 왜 쓸모없는 물건이야, 왜?"
"엄마가 그랬잖아. 쓸모없는 물건이라고..."
"엄마가 그랬다고 아빠를 교환하면 어떡해? 너에겐 아빠잖아. 아빠!"
"아빠 같은 거 필요 없어!"
(본문 22,23p)

비스듬히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틀어진 트레이닝복에 떡진 머리, 아랫도리를 벅벅 긁던 손으로 과자를 집어 먹는 태만은 백수다.
미용실을 하며 경제적인 부분을 책임지는 아영 엄마 지수는, 9년 동안 백수 생활을 하는 남편이 집안 일조차 도와주지 않아서 불만이 많다. 그런 불평을 들으며 자란 아영 역시 아빠에게 불만이 많은 것은 당연지사다.
태만은 진태와 게임을 하면서 신나게 놀아주었고, 진태는 아영의 아빠 태만을 좋아하게 된다. 집에서는 아무것도 안하는 아빠를 좋다고 부러워하는 진태때문에 아영은 더욱 심통이 났다.

진태와 아영이 재활용 전문 매장인 ’아름다운 가게’를 지나갔다. 진태가 헌옷을 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을 보며 말했다.

"아빠도 재활용됐음 좋겠다."
"재활용?"
"웅. 필요한 사람에게 다시 쓰이면 좋잖아."
(본문 40,41p)

아빠를 빌려드립니다. 아빠의 손길이 피료하신 분. 형광등 갈기가 어렵거나, 못질을 못하거나, 아이들과 놀아줄 친구 같은 아빠가 필요하신 분.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본문 53p)

아영은 인터넷에 ’아빠를 빌려드립니다’라는 광고를 내게 되고, 처음엔 화를 내던 태만은 아영의 도움으로 카페를 개설하여 본격적인 아빠 렌탈 사업을 시작한다.
세상에는 아빠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태만을 알게 되고, 태만보다 나이가 많은 아버지가 되어 자식을 혼내기도하고, 자식이 된 아들에게 욕을 먹기도 하고, 딸의 출산을 지켜보고, 딸의 보디가드가 되었다가 아들을 잃은 진태 할머니의 아들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되면서 진태는 자신의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자신을 두고 집을 나갔던 어머니의 입장을 헤아리게 되었으며, 가족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세상의 모든 사랑이 같은 색깔일 수 없듯이 표현 방법이 달랐다는 것을 태만은 조금 알 것 같았다. (본문 99p)

"아이들은 흰 도화지 같아서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생을 산다고. 귀엽다고오냐오냐 하는 게 사랑이 아냐. 안 되는 건 안된다고 이야길해야 바르게 사는 거라고!"

지수가 발끈했다. 순간 태만의 머릿속에 용민의 말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날 혼내거나 때리지 않았네. 그렇다고 특별히 날 사랑한 적도 없지. 아버지에게 칭찬받기 위해 죽어라 공부했는데 단 한 번도 칭찬해주지 않았어. 아버지에게 난 거실에 놓인 장식장과 다를 게 없었지. 그저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본문 147,148p)

태만은 성격이 다르고, 사는 방법도 다른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면서 가족에 대한 의미와 사랑을 찾아가게 되지만, 여전히 자신의 가족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파악하지 못하는 듯 보인다. 자신에게 화를 내는 아영을 풀어주는 법도, 아영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빠이며, 아내 지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간파하지 못한다. 

태만이 이 일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누구나 애를 낳을 수는 있지만 누구나 아버지가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자격 미달인지. 얼마나 많은 가족들이 아버지란 존재 때문에 아파하고 있는지 처음 알았다. 때문에 아빠 렌털 사업이 번창할수록 태만은 씁쓸했다. (본문 260p)

요즘 뉴스를 보다보면 버려진 신생아들에 대한 끔찍한 사건을 접하게 된다. 누구나 애를 낳을 수는 있지만 누구나 아버지가 되는 건 아니라는 글에 공감하고 또 공감한다. 태만은 아버지가 되어 딸을 출산과 갓 태어난 자식과 여자를 버리고 도망가는 남자를 지켜봐야했다. 많은 가족들이 필요로 하는 아버지라는 존재는 아버지가 있고 없음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식을 바른 길로 인도할 줄 아는 아버지, 가족의 어려운 일에 함께 할 줄 아는 아버지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술을 마시면 아내와 자식을 때리는 아버지, 친딸을 몇 년씩 성폭행하는 아버지, 칭찬도 꾸짖음도 없이 무관심으로 대하는 아버지가 필요한 것이 결코 아니다.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사랑을 줄 수 있는 아버지가 우리는 필요한 것이다.

처음에는 아영이의 황당하고 엉뚱한 행동에 웃으며 읽기 시작했지만, 페이지를 거듭할수록 전해주는 잔잔한 감동이 ’가족’을 생각하고, 아버지를 생각하게 한다. 현 시대가 원하는 아빠의 모습은 슈퍼맨과 같다. 영화처럼 하늘을 나는 슈퍼맨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은 슈퍼맨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에게 그리고 내 남편에게 힘찬 응원을 보낸다. 그들은 비록 하늘을 날수는 없지만, 가족에겐 이미 최고로 멋진 슈퍼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유머와 따스함이 공존하는 소설, 세상의 모든 부모들에게 권해본다. 가족을 이해하고, 가족의 마음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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