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을 실재로 부려 사람의 마음을 얻기도 하고, 싫어하는 사람을 혼내주기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해리포터처럼 지팡이도 아니고, 마법사들이 흔히 사용하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액체도 아닌 맛있는 빵으로 마법을 부리는 재미있는 판타지 소설을 만나게 되었다. 그동안 만나온 성장 소설이라 함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음직한 소재를 현실감있게 그려내어 감동을 전달하고, 아이들에게 가슴 깊은 곳에 뜨거운 전율을 느끼게 하는 묘미를 가진 분야라 생각하고 있었다.
판타지가 가미된 성장 소설을 읽어본 적은 있지만, 사실 성장 소설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을 느끼기에는 좀 역부족이라는 나의 생각이었다. 나의 생각을 완전히 깨트린 작품을 만났으니 그것이 바로 ’위저드 베이커리’다.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딸아이의 적극 권유로 구입하게 된 이 작품은, 사실 그동안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작품이였는데, 사춘기를 맞이한 딸과 함께 읽게 되었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감동적인 걸 좋아하는 내가 마음에 들어하는 작품을 딸에게 권하면 딸아이는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눈물 찔끔 흘려야 하는 나와는 감성적인 부분에서 많이 다른 딸인데, 이번 작품은 판타지를 좋아하는 딸에게도, 잔잔한 감동을 좋아하는 나에게도 모두 마음에 든 작품이기에 더욱 뜻깊은 책이다.

빵이 지긋지긋한 16살의 소년은 오늘도 어김없이 빵 집에 들러서 빵을 사가지고 간다. 자신에게는 관심조차 없는 아빠, 새엄마의 영역에는 절대 침범할 수 없는 공간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신만의 방법은 식탁에서 함께 밥을 먹기 보다는 빵을 사가지고 방에서 혼자 먹는 것이다. 최대한 그들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하는 것이 이 소년이 살아가는 방법인 게다.
단지 그 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소년은 부모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평소 단골이였던 위저드 베이커리로 숨어들어갔다. 
책을 소리 내어 읽을 때는 조금도 망설이는 법이 없고 발음도 새지 않는 그이지만, 활자가 없을 때는 간단한 대답 조차도 명쾌하게 하지 못하는 말 더듬이다. 
여섯 살 때 친엄마에 의해 청량리역에 버려지고, 얼마 후에 자살한 엄마로 인해 말을 더듬기 시작했던 소년은,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일을 맞게 된다.

소제목은 쿠키나 빵의 이름들이다. 홈페이지를 통해서 판매를 하는 제품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빵의 성분과는 많이 틀린데다가, 독특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악마의 시나몬 쿠키는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에게 먹이면 평균 2시간 동안 뇌신경세포를 교란시켜 상대방이 무슨 일을 해도 실수를 하게 만들어주는 쿠키다. 
체인 월넛 프레첼은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먹이면 사랑을 쟁취하게 되고 사슬처럼 끊어지지 않는 단단한 인연을 갖게 된다.
이런 효과를 가지고 있는 제품이라면 누구나 효과를 떠나서 구입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의 결과에 대해서는 누구하나 책임지려고 하지 않을테지..모두가 자신에게 이롭게만 활용하려고 하는 이기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서는 유심히 들여다 보려고 하지 않는다. 
체인 월넛 프레첼로 사랑을 쟁취했다가, 그 사랑이 지겨워 마지팬 부두인형을 구입하려는 사람이나, 악마의 시나몬 쿠키를 구입으로 악몽에 시달리게 된 소녀 모두 현재의 자신의 이기심에만 가득찬 사람들이다.
소년은 이런 사람들을 만나고, 베이커리의 주인 점장과 파랑새와 지내면서 그동안 묵혀왔던 고통들은 조금씩 대면하면서 상처로부터 이겨내려는 용기를 얻기 시작한다.

-언제나 옳은 답지만 고르면서 살아온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당신은 인생에서 한 번도 잘못된 선택을 한 적이 없나요?

-틀린 선택을 했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게 아니야. 선택의 결과는 스스로 책임지라는 뜻이지. 그 선택의 결과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너의 선택은 더욱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갈 거란 말을 하는 거야.
(본문 176p)

지금의 결과는 선택에서 시작된 것이다. 소년의 선택은 무엇이였나? 소년은 영역 싸움을 하지 않는 동거 생활을 택했다. 서로 꼭 필요한 만큼만 관심을 갖고, 서로의 역할이나 의무를 다하는 모습을 남들에게 전시하면 그만인, 한마디로 시한부 역할놀이를 선택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배 선생이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무언의 기선 제압 의욕을 보여서 내가 마음을 열지 않은 것인지, 내가 처음부터 배 선생을 소 닭 보듯이 하여 그녀로 하여금 반감을 갖게 한 것인지는 역시 할 수 없다. (본문 25p)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로 선택했던 소년은 결국 혼자만의 방안에서 혼자만의 영역에 웅크리게 되었고, 결국 부모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던 것은 아닐까? 점장은 말한다. 선택의 결과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한다고 말이다. 소년은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그렇게 책임질 수 있을 용기와 지혜를 얻어간다. 

지금의 나는 마법사네 빵가게라는 안전한 결계 속에서 땅에 떨어지기를 도리질하고 있다. 이곳에 평생 머물 수 없고 언젠가는 내려와야 하는 걸 아는데.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데. 알고 있다. 내가 집으로 돌아가야 싸움의 끝을 볼 수 있고, 아버지 또는 배 선생과 삼자대면을 해야 할 것이며, 그동안 배 선생이 어떤 조치를 취했느냐에 따라 약간의 복잡한 조사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걸. 그리고 이 가족이란 명분과 틀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잘못을 빌어야 할 것임을. 그런데 배 선생이 그때까지 나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다면, 과연 나의 아버지와 결혼생활을 유지하려고는 할지 의무이었다.

그래도 이 모든 일에서 피해 갈 수 없다는 것을.

현실은 쓴데 입속은 달다.
(본문 123p)

소년이 떠나는 날, 점장은 소년에게 가고 싶은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타임 리와인더’를 선물로 준다. 소년이 타임 리와인더를 먹을 때와 먹지 않을 때 세상은 달라진다.
과거로 돌아가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전환점에서 지금과는 다른 것을 선택했을 때, 인생은 얼마나 달라질까? 선택에 의해서 결과는 다르게 움직인다. 소년이 타임 리와인더를 먹었는지와 안 먹었는지의 여부에 따라 ’Y’’N’을 통해서 결과는 달라졌다.
저자는  두 가지의 결과를 보여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무엇이 최선인가를 선택하게 하고 있다. 
우리는 수많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 선택에 의한 결과 또한 나의 몫이다. 과거로 돌아가 선택을 뒤바꾼다고 해서 꼭 좋은 결과를 이루어내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잘못된 선택에 대해서만 집착을 하고 있다.
책임지지 못할 결과에 대한 또다른 선택을 하려하고, 그에 따른 결과 역시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마법이라는 판타지를 통해서 즐거움을 선사하는 이야기임에는 틀림없지만, 선택과 결과에 대한 책임이라는 중요한 임무에 대해서 자못 심각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어떠한 선택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라 할지라도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이 세상은 마법이 존재하는 세상이 아니므로 우리는 그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때는 나를 붙드는 현실에서 격렬히 도망치다가 그곳에 다다랐을 뿐이다.
지금은 나의 과거와, 현재와, 어쩌면 올 수도 있는 미래를 향해 달린다.
(본문 21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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