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소소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히가시노 게이고의 <<괴소소설>>을 읽고난 뒤 저자의 묘한 매력에 이끌려 <<독소 소설>>을 꺼내들었다.
사회의 일그러짐을 유머로서 승화한 글 속에는 나도 모르게 헛헛한 웃음을 짓게 한다. 글 속에 웃음이 배어있는 즐거움이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이 현실과 닮아있는 것에 대한 씁쓸한 웃음이 더 크다.
<<괴소소설>>에 비해서 <<독소소설>>은 제목 그대로 좀더 독한 내용을 담고 있다.
사회 혹은 사람들의 독한 마음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어, 현재 사회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공감이 되기도 하지만, 어쩐지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삐뚤어진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유괴천국]은 손자와 마음껏 놀수 없었던 복덩이 할아버지를 위하여 친구 돈방석과 보물선이 손자를 유괴하여 복덩이가 손자와의 시간을 갖도록 한다는 이야기이다.
유괴처럼 보이기 위해서 1억엔을 요구하지만, 복덩이 딸은 자신의 아들의 몸값이 1억 달러가 아닌 1억 엔이라는 사실을 자존심 상해한다. 

"지금 장난하는 거야? 뭐? 1억 엔이라고? 겨우 1억 엔! 그까짓 푼돈 때문에 내 소중한 아들을 유괴했단 말이야?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디있어? 1억 엔! 그게 뭐야? 막대사탕도 그보단 더 비쌀 거야. 1억 엔. 겨우 1억 엔이라고?!" (본문 29p)

그러나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지금껏 엄마의 지시대로 움직이기만 했던 손자 겐타는 제대로 놀지 못한다는 것이다. 친구들은 모두 놀고 싶은 걸 꾹 참고 공부하고 있는데 혼자 노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보이는 손자를 위해서 젠타의 친구들 역시 같은 방법으로 유괴를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지시대기족이라서 그러네. 무슨 일을 할 때는 반드시 부모나 선생의 지시를 받으라는 식으로 교육을 받아서, 지시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걸세." 

"맙소사! 그렇다면 요즘 샐러리맨과 똑같잖나!"

"원인도 똑같다네. 입시지옥에 빠지는 연령이 낮아지면서 증상이 나타나는 것도 빨라졌지."

"나 참, 세상 말세로군."
(본문 45p)

"세상이 미친 게야. 저런 어린애들이 벌써부터 공부란 시궁창에 푹 빠져 있는데, 어떻게 현명한 어른이 되겠나? 부모들이 모르는 게 있네. 저 애들은 우리가 유괴하기 전에 이미 유괴되어 있었다는 걸. 학력사회라는 괴물에게 말이야." (본문 46p)

내가 부모라는 입장이기 때문이였을지 몰라도, 나는 이 단편을 꽤 공감하고 걱정하면서 읽었다. 유괴된 친구들의 모든 몸값을 다 지불하여 아들의 몸값으로 책정하는 엄마의 어처구니 없는 행동은 보여지는 재산이나 허울에 목매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입시 지옥과 경쟁 사회에서 겨우 6살밖에 안된 아이들이 제대로 놀지 못한다는 사실이 책에서만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씁쓸하기만 하다. 현재의 교육환경에 대한 일침과 부모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고자 하는 이야기가 씁쓸하기만 하다.

[도미오카 부인의 티파티]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ABC전기 도미오카 이사의 아내인 도미오카는 한마디로 ’남편 상사의 부인’이다. ’남편 부하직원의 아내’를 모아 티파티를 여는 모임에 참석하게 된 안자이 시즈코는 처음 남편의 출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 참석을 하게 되었지만, 이제는 우울한 시간이 되었다.
출세를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보여주는 남편 부하직원의 아내들의 모습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나 보여지는 듯한 그들의 모습이 실제 존재할 거라 생각하니 그 모습이 처연하다.

[인형 신랑]은 마마보이의 이야기를 담아낸 내용인데, [유괴 천국]의 내용과 이어진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유괴 천국]에서 보여졌던 아이들이 자란다면 분명 [인형 신랑]의 시게아키와 다를 게 무엇이랴.

결혼식 피로연에서 신랑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머니에게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들은 것이다. 다만 어머니는 피로연 도중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는 고통을 이기지 못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머니를 증오했다. 누군가에게 고통의 책임을 떠넘기지 않고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어머니...............
왜 가르쳐주시지 않았나요? 미리 가르쳐주셨다면 이렇게 괴로워하지는 않았을 텐데. 지금까지 무엇이든지 가르쳐주시지 않았나요?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나요?
(본문 176,177p)

내 아이가 나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결국 이렇게 뒤틀려져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방법을 일깨워주지 못했다. 놀지 못하는 아이들, 놀 시간을 주어도 무엇을 하며 놀아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들, 더 자라서는 화장실 가는 것조차 어찌해야하는지 모르는 로보트가 되어버린 이들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그 해답이 부모인 자신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는 것인가?
씁쓸한 웃음조차 느껴지지 않는 이 이야기들이 참 독하게 마음 아프게 다가오고 있다.

이 외에도 엔젤, 메뉴얼 경찰, 나 홀로 집에-할아버지, 여류작가, 살의취급설명서, 속죄, 영광의 증언, 미스터리 진품명품 감정쇼, 유괴전화망을 통해서 사회의 어처구니 없는 상황들을 풍자하고 있다. 
[메뉴얼 경찰]도 기억에 남는 이야기 중의 하나인데, 범인을 잡기보다는 메뉴얼대로 따라가는 경찰들을 마음껏 비웃어주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단면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나와 주위를 둘러보는 기회가 되면 좋을 듯 싶다. 세상의 뒤틀림 속에서 내가 자리잡고 있는 것은 없는지....생각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