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살, 192센티 레인보우 북클럽 1
조앤 바우어 지음, 하창수 옮김, 박정인 그림 / 을파소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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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페이지마다 기억하고 싶은 문구들이 참 많았던 책이다.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문구들은 절망에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이들이 ’절망’이라는 느낌을 알게 되는 건, 바로 어른들에게서이다. 원치 않는 목표를 세워주고 그 목표에 합당해지기를 바라는 부모의 욕심에서 절망을 느낀다. 그리고 가정의 불화에서 절망과 상처를 떠안는다. 더욱이 그 절망과 상처를 혼자 이겨내기를 바라는 어른들의 폭력(감히 폭력이라 말해도 될 것이다.)은 그 절망을 가중시키고 있음을 왜 알지 못하는 것일까?
아이들의 마음은 전쟁터다. 그들은 지금 힘겨운 전쟁을 치루고 있는 중이다.

192센티미터의 큰 키 덕분에 샘이라는 이름 대신에 트리라고 불리우는 12살 소년은 선생님과 부모로 인해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소년이다. 두 형과는 달리 운동에는 소질이 없는 트리지만, 큰 키는 농구부 선생님에게 트리는 특별한 존재이다. 그 기대감에 트리는 열심히 노력하지만 늘 절망감과 슬픔에 빠지게 된다. 농구공, 미식축구공, 야구공, 골프공, 축구공, 테니스공, 탁구공에 집중해야만 했던 것은 트리의 큰 키때문이였다. 어느 누구도 트리의 또다른 재능을 봐주지 않았다. 그저 트리의 큰 키만 봐줄 뿐이였다.
큰 키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이혼으로 트리는 ’집’이라는 존재에 대한 개념을 상실해 간다. 아빠 집과 엄마 집을 번갈아가며 살아야 하는 트리는 크리스마스가 작년과 변함없기를 기대하지만, 그 기대감은 여지없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열두 살 트리는, 어디로 가야 하고, 어디서 자야 하는지를 엄마가 만들어 준 파란색과 노란색으로 이루어진 일정표를 지녀야 했다. 
’난 나의 숙소로 가고 있다.’
’나는 우리 엄마의 숙소로 가고 있다.’
(64p)
자신이 처한 현실이 고통스럽기만 한 트리는 숙소와 집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큰 차이를 주는지 느낀다.

그러나 트리에게는 베트남전에서 다리를 다치고 얼마전에 한쪽 다리를 절단 한 할아버지가 계셨다. 긍정적인 마음을 보여주고, 트리의 고통을 이해하는 할아버지는 든든한 버팀목이기도 했고, 트리가 가진 재능을 보여줄 수 있는 단 한사람이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겪었던 전쟁 이야기는 트리의 마음을 대면하는 듯 보여진다. 전쟁, 그것은 트리의 마음 속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였다.

"우리도 모두 뭔가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거란다. 특히 전쟁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지. 전쟁은 모든 것을 뒤집어 놓고 소중한 것들이 있던 곳을 텅 빈 곳으로 만들어 버린단다."
"할아버지 다리처럼요?"
"그렇지, 네겐 아빠하고 엄마가 그렇겠지?"
"비슷하죠."
"그렇게 사라져 버린 자리는 곧바로 채워지지가 않아. 그래서 그곳을 유심히 살펴봐야 해. 아직 남아 있는 것이 뭔지 알아내야 하는거야. 아직 가지고 있는 것이 뭔지에 최대한 정신을 집중해야 해."
(본문 106p)

트리의 사라져 버린 자리는 할아버지와 그리고 새로 전학 온 소피를 통해서 채워지기 시작했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서슴치않고 당당하게 말하는 소피는 트리에게 자극제가 되었다. 늙어서 잘 움직이지 않은 자신의 개 브래들리가 고양이를 쫓기위해 달리는 것처럼, 트리는 소피를 통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운동에는 소질이 없고,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는 것을 좋아하는 트리지만, 소피와 사교 댄스를 배우면서 운동으로 인해 느낀 절망을 벗어버리게 된다. 
그렇게 서서히, 고통과 절망이 뒤엉킨 전쟁이 끝나려했지만, 제방이 무너져 홍수로 인해 마을은 모든 것을 잃게 된다. 홍수를 피해 대피하면서 트리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돕고, 마을의 동물들을 보살피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찾아간다. 
홍수가 끝나고, 복구를 하면서 트리는 절망을 이겨내는 법을 깨달았다. 

"복구를 할 때 알아 두어야 할 첫 번째 법칙은 뭔가 긍정적인 면을 찾아서 거기에 집중해야 한다는 거란다." (224p)

제대로 고치려면 먼저 뜯어내야 하는 법이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망가진 석고 벽을 부숴버려야 집을 고치듯이, 희망을 갖기 위해서는 마음 속에 담겨진 절망을 뜯어내야 하는 법이다. 트리는 집을 고치면서 그렇게 자신의 절망도 뜯어내고 있었다.
리플리 참전용사 기념일 퍼레이드에서 트리는 기꺼이 할아버지의 오른쪽 다리가 되어 주었고, 바람 때문에 희망의 촛에 불을 밝힐 수 없을 때는 큰 키를 이용해서 바람을 막아주었다.
트리는 누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희망과 목표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가끔은 엄마 아빠의 이혼이라는 전쟁 한가운데 제가 서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엄마 아빠가 싸우시는 거지 제가 싸우는 건 아닌데, 그래도 그 사이에 제가 있거든요."
"넌 폭탄을 피해 고개를 푹 숙이는 법을 배워야 해. 그게 바로 이 할아비가 한 일이기도 하지."
(본문 153p)

부모님의 이혼과 홍수, 트리의 절망은 모두 전쟁과 닮아 있다. 전쟁 후에 남겨진 할아버지의 다리에 남겨진 후유증처럼 부모님의 이혼은 트리에게 후유증을 남겼다. 할아버지가 새 다리를 얻고 연습을 통해서 걸을 수 있게 된 것처럼, 트리도 할아버지와 소피를 통해서 한걸음씩 내딛는 법을 배웠다.
요즘 사회는 이혼으로 인한 후유증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어른들의 전쟁은 아이들에게 상처를 남겼고, 마음 속에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 그들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그들을 이끌어 줄 부모는 아이들의 후유증에는 관심이 없다.
아이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후유증을 앓고 있는 셈이다. 어른들은 이렇게 무책임한 존재이다.
할아버지처럼 내가 아이들에게 버팀목이 될 수 있는 든든한 존재이고 싶다고 나는 다짐 또 다짐한다. 아이들에게 잔소리와 다그침이 아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하면서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울타리가 되어야 겠다.

마지막 페이지의 글이 참 마음에 와닿는다. 자신의 목적을 찾지 못했거나, 심한 후유증을 앓고 있거나, 자신의 재능을 찾고픈 모든 아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전쟁은 끝났고, 후유증도 곧 사라질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새로 고치는 법, 절망을 뜯어내는 법을 배우길 바란다. 

모든 일에는 진정한 목적이 있다. 우리는 다만 그것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고양이는 늙은 개가 살아 있도록 도와준다.
상실의 슬픔은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게 도와준다.
죽음은 삶을 찬양하게 도와준다.
전쟁은 평화의 소중함을 깨닫도록 도와준다.
홍수는 우리가 아직 당당히 서 있다는 것을 기뻐하게 만든다.
그리고 키 큰 소년에겐 희망의 촛불이 밝게 타오르도록 바람을 막아줄 수 있는 힘이 있다. (본문 25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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