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 위의 식사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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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드라마 ’애인’이 인기리에 방영되면서, 기혼자들의 애인 만들기가 유행처럼 번진적이 있었다.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불륜이라는 소재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수 많은 드라마들이 ’사랑’이기보다는 서로를 상처주기에 급급한 내용으로 보여졌다. 그 가운데 ’푸른 안개’라는 드라마가 파격적으로 등장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23살의 에어로빅 강사와 46살의 평범한 가장의 사랑을 다룬 드라마였다.
불륜인 사랑이였지만, 순수한 사랑을 느끼는 유부남과 부성애의 결핍을 가진 23살의 젊은 여인의 사랑을 불륜이라는 소재를 순수하게 보이게 하려는 포장과 노력이 보이는 드라마였다. 
우리가 그것을 사랑이거나 혹은 아니거나를 단정짓기를 바라지 않는 느낌을 주는 드라마였다.
[풀밭 위의 식사]를 읽으면서 문득 오래전 드라마를 떠올린 것은,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사랑 역시 불륜이라 단정짓지 않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푸르른 초원 위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이들의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 없다. 나는 제목을 보자마자 왜 ’소풍’을 떠올렸을까? 소풍처럼 설레이고 예쁜 사랑이였더라면, [사랑]이라는 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해답도 풀이방법도 없는 사랑은 그저 몸소 부딪쳐보고, 아파하고, 눈물을 흘려가면서 알아갈 수 밖에 없다. 그 속을 알 수 없는 사랑...왜 사랑은 다들 각기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걸까? 누경에게도, 기현에게도 그리고 서강주에게도....서로 사랑하지만 각기 다른 모습의 사랑을 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사랑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요즘 결혼이 상대방의 능력과 외모와 성격을 재어보며 하듯이, 사랑도 내 마음이 먼저 100m 달리기를 하기전에 먼저 재어볼 수는 없는 것일까? 사랑해서는 안될 사람,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에 대해서 미리 확인하고 재어보고 시작하면 어떨지를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결코 ’사랑’이라는 이름을 지닐 수 없겠지....! 

누경에게 치마는 아픔이 되었다가 사랑이 되었다가 슬픔이 되었다. 그리고 누경의 사랑은 유리와 닮아있었다. 누경이 유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자신과 닮아있어서는 아닐지 싶다. 

"유리는 과학적으로 액체예요. 아무리 높은 열에 끓여도 끓지 않고 아무리 높은 열을 가해도 수증기로 변하지 않는 액체죠. 고무같이 신축성 있는 물질로 변했다가 식어서 단단한 덩어리로 굳는 거예요."
"액체면서 산산조각으로 깨어지다니 뜻밖이군."
(본문 108p)

단 한번의 사랑에 끓었던 그녀의 마음은 더 이상 끓여지지도 않고, 수증기로 변하지 않는 유리같다. 자신을 바라보는 기현의 안타까운 사랑에도 변함이 없는 액체를 닮은 누경의 마음은 굳게 닫혀만 있다. 자신을 움츠리게 했던 과거의 유리조각은 현재 유리를 닮은 듯 끓여지지 않는 유리를 닮았지만, 녹인 유리를 밑틀에 넣고 모양을 잡아 물결 무늬를 넣은 녹색 화병은 미래의 누경을 보여주는 것이리라...마음의 빗장을 단단히 걸어놓게 했던 유리 조각에 대한 앙금을 누경은 유리 공예로 천천히, 아주아주 느리게 그렇게 풀어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행복이란 다른 게 아니라 내 몸의 고요란 것을 알게 되었어. 몸안에서 손톱으로 할퀴며 울부짖던 여자아이가 울음을 그친 것처럼 조용해. 몸이 이렇게 고요한 거란 사실을 처음으로 느끼고 있어. 눈 내리는 날의 따스한 실내처럼 고요해." (본문 225p)

슬픈 사랑이였고, 다른 사람들 눈에게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랑이였지만, 누경에게는 이 사랑은 마음을 할퀴었던 유리조각을 녹색 화병으로 만들 수 있도록 유리를 녹여주었던 따뜻한 사랑이였을 것이다. 태산에 눌린 듯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픈 사랑은 누경의 깊은 마음속에 자리잡았던 상처를 녹여내 준 높은 열이였다. 
누경은 독특한 성격을 가진 인물이다. 아픔도 기쁨도 그리고 슬픔조차도 마음 속에 담아두고, 심한 열병을 앓으면서 끝끝내 혼자 감내하려는 인물이다. 오래전 누경을 나무라던 아버지와 이불을 뒤짚어 쓰고 울던 엄마는 누경을 그렇게 만들었다. 사랑의 상처를 감내하기 어려워 차마 그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인지 혹은 자신을 나무라던 아버지의 그늘 때문인지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마음에 벽을 쌓아 놓았다. 오롯이 혼자이고 싶어하는 누경의 마음이 안쓰럽고, 안타깝다. 

들에서 핀 꽃나무가 누구를 향하지도 않으면서 세상을 밝히며 활짝 피어나듯, 자신의 사랑도 그런 것이면 좋겠다던 누경의 바람은 자신의 상처에서 벗어나고픈 몸부림이리라. 
누경의 마음을 따라가다보니, 사랑에 아파하는 모습보다는 내면에 담겨진 상처로 인해 힘겨워하는 모습이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꿈은 그녀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일게다. 비록 남들에게 나쁜 사랑으로 보여질지 몰라도 누경에게는 그 사랑은 지난 유리조각과 치마를 덮어줄 수 있는 치료제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이런 생각때문일까? 그들의 사랑이 불륜이니 아니니하는 쓸데없는 논쟁으로 치부되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담아내어 본다.

(사진출처: ’풀밭 위의 식사’ 표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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