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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천사 이야기 - 사춘기 우리 아이의 공부와 인생을 지켜주는
이범.홍은경 지음 / 다산에듀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두발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의 모습은 참 위태위태하다. 넘어질듯 넘어질듯 외줄타기 하듯 달리다가 결국은 넘어지고 만다. 넘어지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언제까지 자전거를 붙잡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냥 뒤에서 잡아준다면 아이는 결국 두발 자전거를 탈 수 없을 것이다.
책의 표지만으로도 공감이 간다. ’내 마음’은 늘 아이의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고 있다. 쓰러지지 않도록 격려하고,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주는 것이 바로 부모의 역할인거 같다.
’나는 엄마가 싫어.’
엄마라는 사람들은 딸을 못살게 굴어야 직성이 풀리는 존재인 모양이라는 글을 보면서 내 딸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가졌다. 그러다 주인공 현지가 내 딸과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춘기 반항아같은 현지의 모습은 사춘기 흉내를 내고 있는 딸의 어설픈 모습과 어찌나 닮아있는지 읽다가 피식 웃음이 났다. 현지의 엄마는 나와 왜이리 닮아있는지...
아마 책을 읽는 현지 또래의 아이들이나 이맘때의 딸을 가진 엄마들은 모두 공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내 아이가 공부를 잘했으면 하는 엄마들의 잔소리, 엄마의 잔소리에 지친 아이들의 모습, 엄마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 사사건건 간섭하고 참견하는 엄마의 모습, 내 인생보다는 아이들의 인생에 모든 것을 거는 부모의 모습은 우리나라 여느 가정에서나 볼 수 있다.
대부분의 가정이 이렇다고 해서 결코 정답은 아니다. 엄마와 자녀들간에 ’도’를 넘어서는 부분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큰 아이는 내년이면 현지처럼 중학교 1학년이 된다. 아이도 걱정을 하겠지만, 아이보다는 내가 더 조급하고 걱정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초등학교는 조금만 공부해도 성적이 잘 나오지만, 학원도 안 다니는 아이가 중학교에 가서 버틸 수 있을지도 걱정, 초등학교에 없던 등수가 나오면서 아이의 진짜 실력을 확인할 수 있다니 그 또한 걱정이다. 중학교 신입생을 대상으로 하는 일제고사를 본다는 뉴스를 접하고 현지의 엄마가 현지에게 공부를 시키기 시작한 일에 대해 같은 엄마 입장에서 충분히 공감이 간다.
현지 엄마를 두둔하고 싶은데, 현지를 통해서 내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듯 하여 현지가 또 안쓰럽게 느껴진다. 그러다 나를 돌이켜 보게 된다. 나와 닮은 현지 엄마에게서 조급함과 걱정스러움으로 현지의 두발 자전거를 여전히 잡고 밀어주려는 모습이 비추어졌기 때문이다.
엄마의 억압과 잔소리에 현지는 스트레스를 받고, 엄마와 현지의 잦은 충돌로 인해 현지는 끝내 엄마에게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던지고 만다.
"간섭하지 마. 내 인생이야."
"뭐? 어디 엄마한테 그 따위 말버릇을."
"내 인생이라고. 내. 인. 생!"
"엄마가 불쌍해. 엄만 엄마 인생 없어?"
"....."
"제발 엄마도 엄마 인생 좀 살았으면 좋겠어. 나나 아빠나 들볶지 좀 말고." (본문 59p)
아이가 엄마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매달리는 우리네 엄마들을 향해서 소리치는 듯 했다. 책을 읽으며 현지에게 괜한 화를 내다가 문득 나이 들어서 허탈해하는 엄마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품안의 자식이라는 말처럼 아이들이 크고나면 아무 할일이 없어진 듯한 허탈감과 괴리감에 빠져 우울해하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한다. 엄마들이 학교를 다니는 것 같다는 말이 오가는 것처럼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매달리는 부모들의 모습을 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대신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보는 부모를 보는 일은 어려워졌다. 내 아이만 뒤처지는게 아닐까 노심초사하여 아이들이 자립할 시간을 기다려주기가 어려워졌다.
사춘기 반항이라고 할만큼 삐딱한 현지의 말투와 모습이지만, 이 말이 결코 틀리지 않다는 것을 엄마인 나는 알고 있다.
현지의 말에 엄마는 아빠의 권유로 인해 잠시 집을 떠나게 되고, 현지는 해방감을 느낀다. 마음대로 텔레비전을 보고 친구와 놀면서 점점 선생님에게 꾸지람을 듣는 일이 잦아든다. 현지 동생인 현중이는 혼자 무엇을 해야할지 모른다. "나 이제 머해?" 라는 물음이 끊이지 않는 현중이는 그동안 엄마가 시키는 대로 했던 아이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스스로 해야할 일을 찾지 못한다. 엄마들의 과잉보호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언제까지고 아이의 두발 자전거를 잡아줄 수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타는 법을 알려주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책은 현지를 통해서 사춘기 아이들의 심리만 담은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와는 달라진 중학교 학습 방법에 대한 내용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엄마의 잔소리에는 무조건 고개만 설레설레 흔드는 현지가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보낸 듯 착각한 편지에 쓰여진 공부와 우정, 습관 등에 관한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인다. 엄마의 말은 무조건 잔소리로 생각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왠지 씁쓸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에게 어떤 식으로 다가가야 좋을지에 대한 해답을 얻은 듯 하여 흐뭇하기도 했다.
현지는 [영원한 네 편으로부터]로 오는 편지를 통해서 자신의 문제점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려 한다. 아이들의 영원한 편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부모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현지 또래의 아이들보다는 부모에게 더 권하고 싶은 책이다.
부모인 내가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서야 하는지, 내가 어떤 모습으로 비추어져야 하는지를 느끼게 해 준다.
현지 아빠는 마라톤을 보면서 현지에게 마라톤과 인생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마라톤 선수 옆에서 함께 뛰어주는 페이스메이커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
부모는 아이들의 가장 좋은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야 한다.
가파른 언덕을 손을 잡고 끌어올리려는 것이 아니라, 언덕 위에서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한다는 드라마의 한 대사처럼 말이다.
내 아이의 가장 좋은 페이스메이커가 되고 싶다. 두발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부모가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부모, 다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주는 부모가 가장 좋은 페이스메이커가 아닌가 싶다.
늘 반성하고 고치려고 노력했던 부분이지만 제대로 실천을 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현지의 날카로운 외침에 정신이 번쩍 든다.
"마라톤은 말이야, 우리네 인생이라고 할 수 있어. 두 시간 넘게 내내 달리기만 하는 저 지루하고 고된 달리기가 사람살이와 꼭 닮아서 그렇게들 말하지. 42.195킬로미터를 뛰는 동안에 선수들은 많은 장애물을 만나. 물론 가파른 길이나 찌는 듯한 더위나 목마름이나 다리의 통증이나 뭐 그런 외부적 요인들도 있지만, 실제로는 뛰는 내내 ’나는 왜 달려야 하지’라는 물음이 가장 큰 장애물일 수 있어. 이 길고도 험한 길을 왜 뛰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말이지."
"내 말이. 그러게 그 긴 거래를 왜 뛰어? 힘들게? 차타고 가지."
"하하하! 녀석. 목표가 있으니까 뛰는 거겠지. 올림픽이라면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겠고, 다만 완주를 위해서 뛰는 경우도 있겠고, 뛰는 동안 왜 뛰는지 생각해 보려고 뛰는 사람도 있을 테고, 세 시간에 돌파한 사람은 두 시간 반 만에 돌파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뛸테고.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 그 목표란 게 인생에서 말한다면 꿈이 될 테지." (본문 51~5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