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조각달
로즈메리 웰스 지음, 김율희 옮김 / 다른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역사 속에서 전쟁은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누구를 위한 전쟁이였을까? 노예제 폐지라를 명분을 내세웠던 미국 남북전쟁 조차도 권력을 쥐려던 이들의 사리사욕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였던가? 
[붉은 조각달]은 남북 전쟁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였다. 전쟁의 대의명분은 뒷전이 되어버린 채, 전쟁의 노예가 되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끔찍하리만치 섬뜩하다. 전쟁과 삶에 대한 이야기로 조사하고 집필하는 데 12년이 걸렸다는 이 소설은 남북 전쟁 때 남군 사령관이었던 로버트 리, 남군의 용장 스톤월 잭슨, 북군 총사령관 율리시스 그랜트 등 실제 인물을 등장시켜 전쟁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이야기는 ’세 가지 약속’으로 시작된다. 
트림블 가의 캘빈 트림블이 스프레클 자매의 목장 돌담에서 이승과 저승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던 것을 발견한 주인공 ’나’(인디아)의 아빠는 그를 어깨에 들쳐 메고 2킬로미터를 걸어 그의 집인 롱마시 홀에 데려다 주었다. 의사인 훅스 박사가 왔지만 뇌가 부어올라 몇 시간 내에 세상을 뜰 거라고 말했을 뿐이다. 미카 쿨리가 큰 소리로 기도를 시작하자 캘빈은 갑자기 일어났고 목이 뻣뻣한 것 이외에는 온몸이 멀쩡했다.
이 사건으로, 캘빈은 세 가지의 약속을 했다.
첫 번째는 아빠의 가정과 아이들을 보호하겠다는 약속, 두 번째는기도한 에스터를 위해 틀림블 가의 하인인 에스터 부부에게 자유를 주고 과수원 땅을 주겠다는 것이였으며, 세 번째는 신경통 치료나 지혈제 등에 좋은 아르니카 뿌리를 들고 서있던 스프레클 자매가 두 가지의 약속을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는 것이였다.
그 후 일주일 뒤 일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 인디아가 태어났고, 그녀는 트림블 가의 대녀가 되었다.

처음 세가지 약속은 트림블가와 인디아의 인연을 설명하기 위한 내용이라 생각했으나, 이 이야기는 노예제 폐지를 둘러싼 남북전쟁을 지켜봤을 때 아주 중요한 부분이 아닐수가 없다.
노예제 폐지라는 명분을 내세운 남북전쟁은 결코 명분일 뿐이라는 것이다. 에스터 부부에게 자유를 준 캘빈의 이야기는 결국 전쟁이 없이도 노예제를 폐지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인디아, 훗날 너와 내가 옛날 사람이 되어 잊힐 즈음에, 사람들이 이 전쟁이 왜 일어났느냐고 물을 거야. 이유가 하나 있기는 했지. 하지만 이제는 이유고 뭐고 없어져 버렸어. 그저 제 열기에 취해 스스로 굴러가고 있어."
"틀림없이 다른 이유가 있을 거예요."
"혜성이 번쩍 하고 하늘을 가로질러 지구에 충돌해 도시를 파괴해 버린다면, 그것도 이유가 있어서일까?"
"전쟁이란 한번 시작하면 어리석은 에너지가 생겨, 인디아. 스스로 쿵쿵 뛰는 심장을 갖게 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투를 하다 보면, 어떤 이유든 모조리 묵살해 버리는 분노 때문에 전쟁에는 생명력 같은 게 생겨. 내가 보기에 이 전쟁은 지옥에서 펄펄 끓는 용암처러 치솟고 있어."
(본문 184p)

전쟁은 젊은이들에게 영웅심을 심어주었다. 전쟁에 나가지 않으면 병역 기피자가 되어 친구들에게 외면당하게 되고, 전쟁에서 이긴 장군들을 경외시하여 너도나도 전쟁에 나가려했으며, 얼마되지 않아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전쟁놀이를 했고 마을에는 여자와 아이들 그리고 나이든 노인들 뿐이였다. 인디아의 아빠 역시 부상당한 군인들을 섬기고 돕지 않는다는 것에 수치심을 느끼고 전쟁에 합류하게 된다.

"왜 아빠가 전쟁터에 가야만 했어요?"
"남자라서 그래. 핏속에 뭔가가 있으니까. 그게 삶이란다. 여자는 예리한 혀로 갈등을 잠재우지만 남자는 주먹과 총으로 상황을 해결한단다. 결코 만족을 몰라."
(본문 49p)

스무 살이지만 천식으로 전쟁에 참가할 수 없는 에모리는 트림블가의 첫째 아들로 과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인디아는 에모리를 통해서 과학에 눈을 뜨게 되고, 함께 베리빌에 살다가 전쟁을 피해 북부로 이사 간 줄리아를 통해서 여자들도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는 오벌린 대학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후 공부에 대한 열망을 키우게 된다.

전쟁은 사람들의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시키고, 옳고 그른것을 바꾸고자 하는 열망에서 전투를 벌이며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제 임무라고 생각하게 되는 전쟁 열병에 사로잡히게 한다.
남부 출신이지만, 북군의 파란 군복을 입은 스트로더는 노예제의 잘 못된 점을 지적하였지만 결국엔 전쟁 열병에 사로잡힌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함께 지내왔던 트림블가를 짓밟는 장면은 노예제를 비판하던 모습 대신 전쟁의 환각에 사로잡힌 사람으로만 보여진다.
노예제 폐지를 반대하던 트림블가의 아들 톰 역시 마찬가지이다. 늑막염에 걸린 톰은 폐렴에 걸려 죽는 걸 수치스럽게 여기고 군인답게 총알에 맞아 죽기를 원했고, 총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영광의 상처를 남기게 되었다.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한 전쟁은 죽음과 상처만 남겼다.
그러나, 인디아는 참혹한 참상 속에서도 꿈을 꾸고 희망을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 책은 참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전쟁의 참상을 통한 인간미의 상실을 보여주지만, 적군과 아군을 아우르며 부상자를 돌보는 인디아를 통해서 인간애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전쟁은 목숨을 잃게 했으나, 결코 희망까지 잃게 하지 못한다는 것 또한 보여주고 있다.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해도 좋고, 그 시절의 어리석은 사회 통념과 제도에 대한 비판이라 해도 좋으며, 한 소녀의 성장을 담은 성장 소설이라고 해도 좋다.
환경을 탓하며 꿈조차 꾸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희망을 찾으려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이보다 더 참혹한 전쟁 속에서도 꿈을 꾸고, 희망을 찾는 인디아는 아이들에게 좋은 귀감이 될거라 생각된다.

"아빠, 북군이 노예들을 풀어 주려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노예제도를 지키려는 것도 아니라면, 왜 남부가 북구와 그렇게 큰 싸움을 벌여요? 왜 그래요, 아빠?" 
어른들이 언제 어떻게 전쟁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지는 정말 커다란 의문이었다. 내 등 바로 뒤에서 세상의 온갖 일들이 벌어지는데, 나는 그것을 보거나 듣도록 허락받지 못했다. 어른들은 모두 결정되었다고만 말했고,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본문 43p)

전쟁을 통해서 가장 많은 상처를 받는 것은 ’어린이’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의 과욕은 그렇게 아이들을 좌절하게 만든다. 전쟁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사회 통념과 제도들 역시 아이들에게 희망을 앗아간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전쟁이며, 누구를 위한 세상이란 말인가! 내가 어른이라는 사실이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사진출처: '붉은 조각달' 표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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