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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러브 - 사랑스런 로맨스
신연식 지음 / 서해문집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극장에 붙혀진 포스터를 보면서 배우 안성기의 연기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연기를 잘 하는 배우이기 때문에, 친구의 딸과 사랑을 하게 되는 남자의 심적인 부분을 아주 잘 표현했을 거 같다는 기대감 때문이였다. 51살의 남자와 25살의 친구 딸의 모습을 담은 표지가 어색하기보다 오히려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든다.
영화만 개봉을 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 책이 출간되었었나보다. 궁금하던 영화였는데 책으로 먼저 볼 수 있어서 괜시리 기분이 좋아졌다. 지금껏 책에서 받은 느낌을 영화로 잘 표현한 작품을 제대로 만나본 적이 없어서인지 영화보다 더 많은 기대를 하게 되었다.
책을 읽은 내 느낌에 대해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왠지 영화가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 ’사랑스러운 로맨스’라는 문구에 비하면 전반적인 내용이 좀 어둡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사랑의 느낌을 표현하기 보다는 51살의 남자가 뒤늦게 성장통을 앓고 있는 모습이 더 강하게 묘사되었고, 사랑의 진행방식이 먼가 앞뒤의 연결고리가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중고등학생의 성장통을 앓는 듯한 주인공 형만의 모습은 책을 통해서라기보다 배우 안성기를 통해서 더 잘 묘사가 되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의 시작은 우연이었다. 5p
생각해보니, 나 역시도 우연에서 시작되는 일이 많은 듯 하다. 그 우연을 바꾸려는 노력없이 그냥 받아들이기만 했다면, 그 우연은 분명 우리 인생에서 필연으로 작용되고 있을 것이다. 우연히 큰아버지 댁에 간 것도, 우연히 큰아버지의 트랜지스터라디오를 고치게 된 것도 모든 것이 우연이 되어, 51살이 되도록 카메라 수리를 하게 된 형만은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라 말한다.
누구나 51살이면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형만이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라 말하는 것은 어쩌면 마음 속에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자신에게 사기를 치고 도망친 친구 기혁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키지 않는 걸음을 한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기혁은 형만에게 자주 들러봐달라며 딸을 부탁한다.
그런 형만은 사람들에게 휘둘리며 살아가는 자신이 밉고, 자신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사람들도 야속하다.
뱃속에서부터 도망만 다니고 살아서 좀 불안정하다는 기혁의 딸은 놀랍게도 25살의 대학생이였다.
형만은 기혁의 딸 남은을 통해서 젊은 시절의 기억을 끄집어 낸다. 빨래를 잘 한다며 자랑스레 이야기 하던 남은은 형만의 작업실에서 같이 밥도 먹고, 빨래감을 정리하고 설거지도 하고 때로는 작업일까지 도우며 형만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내 마음 다 알죠? 알면서 그런 거죠? 알면서 그러는 거면 정말 나빠요." 130p
사춘기 성장통을 앓듯 온몸이 으스러지게 아픈 형만은 오래전에 두어번 만난 종희를 생각하면서 누군가의 사랑을 갈망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최소한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형만은 그렇게 남은에게 달려간다.
"내가 오십 년 넘게 남한테 피해 안 주고 살았거든. 근데 세상엔 나쁜 놈들 많아. 사기 치고, 돈 떼먹고, 꼭 니 아빠를 얘기하는 건 아니고."
"무슨 말씀이세요?"
"남한테 피해 주는 것도 싫고, 남이 나한테 그러는 것도 싫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남한테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너랑 나랑 같이 있는 게 뭐가 문제냐는 거지. 너도 좋고, 나도 좋고, 피해 주는 사람도 없는데. 내 얘기가 무슨 얘긴지 알겠니??
"그게 지금 프로포즈 하는 거예요?" 155p
형만은 지금 살아가는 삶의 모든 것이 우연이라 생각하면서도 우연을 바꾸려고 한 적이 없다. 사람들에게 휘둘려지며 결정 지어진 자신의 삶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그 우연을 원망하면서도 말이다. 그런 형만을 남은은 바꿔보려고 한다. 남은은 형만이 작업실에서 나오기를 원하지만, 형만은 쉽게 변하지 못하는 나이 탓을 한다.
변하려고 하지 않는 형만과 변하기를 꿈꾸는 남은을 통해서 형만은 자신의 비겁함에 대해 깨달아간다.
51살!!! 50여년을 살다보면 삶의 규칙이 정해지면서 지금의 삶의 패턴에 익숙해져서 살아간다. 만족이든 불만족이든 그저 익숙함이 편안해지기 때문에 지금 살고 있는 규칙에서 벗어나는 일은 쉽지가 않다.
남은은 형만이 자신의 삶을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고 그것을 깨닫게 해주는 인물로 존재한다. 사랑 한번 제대로 해보지 않은 형만에게 25살의 남은은 이미 삶의 규칙에서 벗어난 일이였고 그것을 계기로 형만은 새로움을 꿈꾸게 된다.
2009 부산 국제 영화제가 선택한 ’역대 가장 사랑스러운 영화’라는 표현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듯 싶다.
책의 이야기나 구성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책은 아름다운 로맨스를 기대하면서 읽기에는 조금 부족한 부분이 존재한다. 사춘기 성장소설같은 느낌이 더 어울린다고 해야할 듯 싶다.
책을 읽고나니, 영화가 더욱 기대된다.
책 속에서 부족했던 로맨스를 배우 안성기를 통해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리라.
삼십대에 들어서면서 나는 새로운 시작에 대한 겁을 먹게 되었다. 이제는 무엇을 시작하면 안 될거 같은 나이가 되어버렸다고 단정지었기 때문이다.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라 칭하는 형만처럼, 우연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접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직 나는 살아온 날들보다는 살아갈 날들이 더 많이 남았으므로...
우리, 다시 시작해요. 230p
어쩌면 남은은 사랑이 아니라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