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2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규환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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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읽은 [크로스파이어]라는 소설을 통해서 나는 선과 악에 대해서 잠시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 사회의 부조리가 법으로 집행되지 않자, 자신이 가진 염화력을 통해서 악을 처단하는 주인공을 선에 둘 것인가 아니면 악에 둘 것인가를 잠시 생각해 보았다. 시시한 결말과 작가 자신의 결론을 통해서 내 생각은 그저 의구심으로 끝났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선과 악에 대한 나의 생각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고, 때마침 읽게 된 [죄와 벌]은 잠시 잊었던 그 생각을 다시 꺼내들게 하였다.

세상이 가지고 있는 부조리를 집행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법’ 뿐인가? 법으로는 처단되지 않는 악은 어떤 방법으로 집행할 수 있을까? 나를 둘러싸고 있는 타인들의 이기적인 행동과 나와 맞지않는 그들의 생각이 나에게 있어서는 부조리일 수 있다. 그렇다고해서 내가 그들을 처단할 수 있는, 집행할 수 있는 능력과 권한까지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나에게만 보이는 부조리일 뿐이기 때문이다. 라스콜리코프의 살인은 자신이 느끼는 부조리였을 뿐, 이 세상이 가지고 있는 부조리는 아니였다. 그것은 자신의 살인을 합리화하기 위한 궁색한 변명밖에 되지 않아 보인다.

[죄와 벌]에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인물이 존재한다. 살인을 정당화 하려는 라스콜리코프와 자수성가하여 허영심과 자부심으로 가득찬 루진과 돈이면 사랑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던 스비드리가일로프 역시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드러낸 인물 중의 하나이다. 라스콜리로프는 ’가난한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 이’ 같은 존재를 없앤 것이라 믿으며 살인을 저질렀으나, 양심의 가책과 경찰에게 잡힐 거라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내면속에는 잡히지 않을거라는 오만과 자만이 겹쳐져 라스코릴니코프는 자신의 내면과의 힘겨운 싸움을 한다.

"누구든 남보다 뛰어난 점이 있거나 위대하면 그 타고난 천성 때문에 범죄자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남을 뛰어남기는 힘드니까요. 결국 비범한 사람은 살아남음으로써 승리자가 되는거죠." (본문 166p)

라스콜리니코프는 지식인인 자신이 가난으로 인해 더이상 발전하지 못함에 분노하였고, 돈이 삶의 유일한 목적이자 즐거움이였던 인색한 전당포 주인인 알료나 이바노브나를 사회의 부조리로 판단하고 살인을 감행한 것이다. 스스로를 나올레옹이나 마호메트처럼 비범한 인물로 생각했던 라스콜리니코프는 살인을 통해서 부조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죄를 지은 인물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불안과 고독감으로 인해 스스로 고립되어 간다.
책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괴로워하는 라스콜리니코프의 내면이 섬뜩할 정도로 묘사되고 있다.

전당포 주인 알료나 이바노브, 자수성가로 성공하여 가난한 두냐를 자신의 위치로 끌어올려 스스로를 고귀한 인물로 만들려던 루진, 돈으로도 두냐를 차지할 수 없다는 절망에 자살을 택한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라스콜리니코프와는 전혀 다른 부류의 인물이다.
라스콜리로프가 없는 것에 대한 분노로 죄를 지었다면, 이들은 가진 것에 대한 이기심으로 인해 없는 자들에게 부조리처럼 보이게 한다. 

도스토옙스키는 라스콜리니코프를 통해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양심을 끌어내려고 했던 듯 보인다. 그 과정을 창녀인 소냐와 친구 라주미힌을 통해서 끌어내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적인 사상이 강했던 그 시절을 보여주듯 결국 신의 존재를 깨닫고 다시 일어나려는 용기를 보여준 결말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양심과 본성의 강함을 무색하게 했던 부분은 아니였나 생각해 본다.

학창시절에 읽었던 [죄와 벌]은 읽기에 어려웠던 부분이 많았고 끝까지 읽어내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이 책은 내겐 조금은 어려운 부분인 듯 하다. 인간의 혼란스러운 내면을 묘사하는 부분은 침울하고 어두웠으며, 인간의 본성이 가진 악함이 두렵게 보이기까지 한다. 도스토옙스키는 그런 두려움을 통해서 인간의 양심을 강조하려던 것일까? 

"내가 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노파를 죽인 게 죄라고? 난 가난한 사람들의 피를 빤 그 여자를 죽인 게 죄라고 생각하지 않아! 자수하려는 건 내가 비열하고 무능했기 때문이야. 그리고 포르피리의 말처럼 자수하는 게 형량을 줄이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지." (본문 309p)

라스콜리니코프가 자수를 하면서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소냐와 신을 통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꿈을 꾸는 것은 ’사랑’만이 인간의 악함을 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하다.
1860년대 근대화로의 급변화를 통해서 빈부 격차와 사회의 부조리가 생겨나기 시작했던 불안정한 사회속에, 라스콜리니코프를 통해 사회를 꼬집고, 소냐를 통해서 그들에게 필요한 관심과 사랑을 역설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복잡한 인간의 내면을 담은 [죄와 벌]을 제대로 읽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로 했다. 다행히 책속에 담겨진 [죄와 벌 제대로 읽기]를 통해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던 거 같다. 명작을 제대로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장점인 거 같다. 
그 시대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고 주인공을 통해서 그 시대를 꼬집는 명작이 가진 오묘함을 나는 그나마 이 책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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