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장난 마음이 자라는 나무 22
브리기테 블로벨 지음, 전은경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인터넷의 보급은 우리들에게 다양한 정보와 빠른 뉴스 그리고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잇점을 가져왔다. 그러나, 사이버 스토킹, 악성댓글, 공개 비난 등 무시무시한 공포도 함께 몰고 왔다. 소위 ’집단 따돌림’이라 불리는 왕따는 이제 인터넷과 휴대폰 문자를 통해서 더욱 확산되어 가고 있고, 이는 자살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살인행위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상한 심리를 가지고 있다. 
나보다 잘난 사람에 대한 보복 심리와 나보다 못한 사람을 더 깍아내림으로써 나를 높이려는 심리를 소유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심리들은 잘 조절함으로써 대인관계가 원만히 이루어지도록 노력하지만, 사춘기의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조절할 줄 아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것이 ’사이버 스토킹’ 혹은 ’집단 따돌림’을 극대화 시키는 요소로 작용되는 것은 아닐런지 잠시 생각해 본다.

너무 예뻐서, 뚱뚱해서, 가난해서, 공부를 잘해서, 공부를 못해서 등 말도 안되는 다양한 이유를 문제삼아, 한 사람을 집중 공략하고 이제는 인터넷과 문자 등으로 자신의 헛된 쾌감을 통해 한 사람을 짓밟는 이런 사태는 하루빨리 근절되어야 한다. 그것이 아직 미성숙한 사춘기의 아이들이라 해도 강한 법적인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 그것이 피의자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내내 마음이 심란했다. 피의자에게는 그저 ’장난’으로 시작한 일일지 모르나, 당하는 피해자에게는 결코 장난이 될 수 없는 사이버 스토킹. 겨우 열네 살인 스베트라나 올가 아이트마토바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단지 두려워하는 것 밖에는...

책은 스베트라나가 자신을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기차 안에서 태어난 자신이 지금 있는 곳은 소아 청소년 정신과이며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되는 병동이라고 설명한다. 창살이 없다면 누군가 기어 올라올까봐 무서운 그녀는 창밖에 있는 창살 덕분에 마음이 놓인다.

이런 병원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일찌감치 여기로 오는 건데........그 누구도 내게 못된 장난을 칠 수 없는 이 곳으로. (본문 15p)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스베트라나는 장학금을 받고 ’에를렌호프 김나지움’으로 전학을 가게 된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소녀, 아울렛 매장에서 옷을 사 입고, 엄마 아빠와 행복하게 살며, 통학을 하고,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그녀는 전학 간 순간부터 따돌림을 당한다. 처음엔 빈정대는 것으로 시작한 따돌림은 나중엔 휴대폰 문자로, 그리고 인터넷 카페를 통한 집단 매도로까지 이어진다.

그들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혼한 부모들은 자신들을 이 기숙 학교에 버렸다는 자괴감으로 힘들어하고 있었고, 같은 처지에 놓은 그들은 서로 똘똘뭉쳐져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스베트라나처럼 매도당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들의 놀이에 빠질 수 없었던 것이다. 가정의 불화가 그들에게 피해의식을 가져오게 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들의 장난을 정당화 할 수 있을까?

"다른 아이들이 어떤 상황인지 잘 살펴봐. 우린 모두 깨진 가정에서 왔어. 나도 마찬가지야, 이혼한 가정의 아이들이 기숙 학교에 버려지는 거야. 알겠어? " (본문 118p)

스베트라나를 상대로한 그들의 사이버 스토킹은 그녀를 겉잡을 수 없이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그들과 함께이고 싶어서 살아남기 위해 옷과 화장품 등을 훔치기 시작했다. 스베트라나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그들 속에 속하고 싶어하는 간절한 마음을 갖는 것과 두려움 속에서 무수히 많은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 밖에는...

나도 잘 알고 있다. 이런 말을 하는 내가 얼마나 어이없게 보일지......아마 정신 나간 아이라고 생각할 테지.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기 힘든 얘기니까. 그런데 그게 바로 내가 실제로 겪은 일이었다. 내가 얼마나 끔찍한 고통 속에서 살았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본문 225p)

아들이 기차 창문 밖으로 던진 가방을 찾으러 기찻길에 간 아슬란이 철로에 누워 있는 스베트라나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녀는 가족이 함께 코트다쥐르에 있는 꿈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집단 따돌임으로 인해서 목숨을 끊는 아이들에 대한 뉴스, 연예인이 악성 댓글로 상처받고 자살한 뉴스 등이 인터넷(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을 통해 접한다. 못된 장난에서 시작되었으나 죽음까지 몰고간 경우가 허다하다. 그들이 원한 장난의 결말이 죽음이 아니였을지라도 그들은 살인자가 된 것이다. 못된 장난이 불러 온 결과다.

스베트라나가 사이버 스토킹을 당하면서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가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격양되어가는 그녀의 감정 묘사에 따라 나 역시도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화를 내고 있었다. 그녀의 아픔이 내게 전달되어진 듯 나 역시도 슬프고 안타까워했다.
엄마에게 혹은 선생님에게 자신의 슬픔을 내보였다면 그녀는 조금은 다른 삶을 살았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우리 주위에 스베트라나가 있을지도 모른다. 좀더 관심있게 둘러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곁에는 자신의 편이 되어줄 누군가의 손길을 절실히 원하고 있기 때문에....

못된 장난은 결코 장난이라 칭할 수 없다. 그것은 살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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