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엄마! 마음이 자라는 나무 21
유모토 카즈미 지음, 양억관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표지를 가만히 들여다 본다. 책 제목에 눈물이 떨어져 번져있다. 
’엄마’라는 단어만으로도 눈물이 나는 나이가 되어버린 나에게 눈물이 번진 제목은 눈물을 흘릴 준비라도 하듯이, 책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책만 보면 쉽게 울어버린 나, 오늘도 그렇게 잔잔한 감동이 물결치는 책 속으로 헤엄쳐본다.

청소년 소설치고는 그닥 두껍지 않은 페이지임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옹골차게 들어가있다. 한 소녀의 성장과 이웃과의 소통을 통해서 세상 밖으로 한걸음씩 나아가는 이야기가 잔잔하게 담겨져 있는 책이다.
아직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가름하지 못하는 나이에, 아빠의 죽음은 삶의 방향을 크게 틀어놓는다.
아빠의 죽음으로 엄마는 세상과 단절되었고,  그것은 6살 치아키에게도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했다.
갑자기 잠에서 깨어난 엄마, 그리고 무작정 떠난 지하철 여행으로 알게 된 ’코포 포플러’
커다란 포플러 나무가 인상적인 집으로 이사를 하고, 엄마는 직장을 다니면서 세상과의 소통을 다시 시작했지만, 치아키에게 세상은 여전히 무서운 곳이다.

아빠의 죽음을 만화 속의 한 장면처럼, 뚜껑이 열린 맨홀에 주인공이 빠져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것처럼 여기는 치아키에게 세상은 온통 어둡고 무서운 맨홀이 너무도 많았다.
직장을 다니던 엄마도 갑자기 자신을 떼어놓고 맨홀 뚜껑에 빠지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고 무서웠던 치아키는 맨홀에 빠지지 않기 위해 늘 마음을 놓지 못했다.
낯선 학교 생활에선 친구를 한 명도 사귀지 못했고, 맨홀이 잔뜩 깔린 세상으로 나서기 위해서는 잔뜩 긴장해야했다.
선생님이 내준 숙제는 반드시 했고, 준비물로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몇번이고 확인하고, 혹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간표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전 과목 교과서를 다 들고 다녔으며, 학교 가는 길에 다시 집으로 돌아와 자물쇠를 확인해야했다.

그렇게 힘겹게 혼자 맨홀과의 사투를 벌이던 중 병이 나게 되었고, 직장을 다니는 엄마를 대신해, 주인 할머니가 치아키를 돌보아 주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치아키의 세상과의 첫 소통의 시작이였다.

’할머니’의 존재는 아주 커다랗고 튼튼한 울타리 같다. 엄마보다 튼튼하여 절대 허물어질 거 같지 않고, 엄마보다 더 포근하여 언제든지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을 것 같은 존재.
아빠의 죽음으로 세상과 문을 닫게 된 치아키를 위해서 할머니는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아빠의 품에 다시 한번 안기고 싶어하고, 아빠를 그리워하는 치아키를 위해서 하늘에 계신 아빠에게 편지를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한다.
치아키는 아빠에게 편지를 쓰면서, 어둡고 무서웠던 세상속 무수히 많은 맨홀을 하나둘씩 지워나갈 수 있었고, 포플러장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치아키가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는 그렇게 할머니의 서랍속에 차곡차곡 쌓이게 되었다. 할머니의 죽음이 조금씩 가까워 오듯이..

하지만, 치아키는 여전히 엄마가 맨홀 뚜껑만 같다. 세상을 떠난 아빠 이야기를 꺼내면 완고하게 거부의 태도를 보이는 엄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을 바쳐도 좋을만큼 눈물나게 하는 엄마...치아키는 자라면서 엄마에 대한 복잡한 감정 때문에 힘겨워한다.

엄마의 재혼과 함께 포플러장에서 이사를 한 뒤, 할머니도 포플러 나무도 잊고 살았던 치아키는 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포플러 장으로 출발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발견한 엄마의 편지 한장.
아빠에게 보내는 엄마의 편지는, 다른 편지들과 함께 할머니의 관 속에 담겨질 예정이였고, 치아키는 그 편지를 통해서 엄마 혼자 간직해온 아빠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다.
아빠의 죽음을 외면하는 엄마에 대한 복잡한 심경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던 치아키에게 아빠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치아키를 더욱 절망하게 할 것이라는 걸 알기에, 엄마는 그렇게 아빠에 대한 마음을 굳게 닫고 있었다는 것을 치아키는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치아카 대신 그 고통을 엄마가 감내하고 있었음을....

나는 편지를 봉투 안으로 밀어 넣고, 여자 냄새가 물씬 풍기는 엄마의 필체를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중얼거렸다.
"고마워, 엄마."
(출처: 본문 179페이지)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다 같은 마음일 것이다. 자식에게 고통을 지게하는 것보다, 어미인 내가 그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것이 어미가 가지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리라..
치아키가 가지는 아빠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지켜주고 싶었던 엄마는 딸이 주는 미움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그것이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여겼을 것이다.

슬데없는 짓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을 알고 모르고 별 차이가 없다고, (중략) 모든 것을 밝히고, 내 마음속도 모두 드러내고, 원망스런 말도 다 쏟아 내고, 자살만큼은 해선 안 된다는 것을 그 애의 뇔에 단단히 새겨 놓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할 수 없습니다. 그 애에게는 너무도 무거운 짐이 될 터이고, 아무리 강한 말로 다짐을 주어도 그 애가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는 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끝가지 비밀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것뿐입니다. 아마도 그 애는 그런 나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반항하기도 할 것입니다. 정말 불안합니다.


(출처: 본문 168~169페이지, 엄마가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 중)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일만큼의 충분한 시간을 준 엄마, 아빠를 닮은 딸이 불안한 엄마와의 소통이 이제 시작되었다. 치아키는 이제 세상과의 소통이 아닌 엄마와의 소통을 할 때가 된 듯 싶다.
마지막까지 소통하는 법을 알려준 할머니는 치아키에게 첫 소통자였고, 소통의 연결고리였던 셈이다.

아빠의 부재로 세상과 문을 닫은 치아키가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담은 성장소설이라 짐작했지만, 마지막 엄마의 편지는 큰 반전을 주었다. 감동과 사랑과 소통이 무엇인지 알게해 준 한장의 편지.
조금은 일찍 그 편지가 치아키에게 전해졌다면 치아키는 이별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이겨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아빠와 닮은 딸을 걱정했던 엄마의 마음처럼 나도 그렇게 치아키를 걱정해본다.
지금의 슬픔을 이겨내고 있는 치아키가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엄마는 편지를 건넸다.
그리고 그것이 치아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 여기면서....

짧은 글이지만, 긴 여운을 남긴다.
세상, 죽음, 소통, 엄마, 사랑 등 수만가지의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책 <고마워, 엄마>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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