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지우개 단비어린이 문학
박정미 지음, 황여진 그림 / 단비어린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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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옛 기억을 떠올리다보면 웃음이 나는 경우가 있어요. 옛 기억이지만 지금의 나를 행복하게 느끼게 해줍니다. 하지만 창피했던 기억, 부끄러웠던 기억 혹은 기분 나빴던 기억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아지죠. 그래서인지 가끔은 창피하고 부끄러웠던 기억은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행복한 기억만 남는다면 저는 정말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친구와의 나빴던 기억도 지워버리고 나면 친구와 더 사이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기억을 지울 수 있는 지우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단비어린이 《기억 지우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일깨워주는 재미있는 동화책이랍니다.

 

 

얼마 전 축구공을 차다가 신발이 날아간 것을 두고 하준이는 기웅이를 놀려댑니다. 주위에 있던 친구들도 하준이의 말에 동의하듯 웃어댑니다. 다른 때 같았으면 기웅이를 두둔해 주었을 단짝 친구인 성민이도 오늘은 잠자코 있네요. 축구를 하러 나가던 성민이가 축구 연습하자는 말에 기웅이는 버럭 화를 내고 맙니다. 슬픔이 복받친 기웅이는 좁은 골목길 담벼락 끝 움푹 팬 곳에 조몰락대던 지우개 똥을 휘리릭 던졌습니다. 지우개 가루를 손으로 뭉쳐 조몰락대면 기분이 좀 가라앉곤 했던 기웅이는 이 곳을 지날 때마다 조몰락대던 지우개 똥을 그곳에 던져 넣곤 했어요. 그런데 그때, "잊으면 되지, 안 그래? 쿡쿡." 이라는 낯선 목소리가 들렸어요. 주위를 둘러보던 기웅이는 지우개 똥을 던진 곳에 깜장 색의 웅퉁불퉁한 무언가가 툭 튀어나와 있는 걸 발견하게 되고, 그 말캉말캉한 고무가 말을 건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깜장 몰랑이는 바로 기웅이가 항상 투덜대면서 골목을 지날 때마다 던졌던 지우개 똥이었어요. 이 지우개 똥은 자신을 기억 지우개라고 소개하면서 화났던 기억, 나빴던 기억을 모두 지워줄 수 있다고 하네요.

 

 

기억 지우개를 집으로 가지고 온 기웅이는 기억 지우개가 시키는 대로 연습장에 지우고 싶은 나쁜 기억을 모조리 적었어요. 그랬더니 기억 지우개가 글씨를 다 빨아들이네요. 그러자 기억 지우개의 몸은 조금 전보다 통통해졌어요. 기웅이도 머리만 조금 묵직할 뿐 아무 기억도 떠오르지 않았어요. 얼마 남지 않은 성민이의 생일에 선물을 사기 위해 비상금을 꺼내려 했지만, 비상금이 모조리 사라지고 말았어요. 결국 누나와 다투게 되고 기웅이는 또 기억 지우개를 사용해 모든 걸 잊어버립니다. 화가 난 기웅이를 살피러 엄마가 말을 건넸지만, 기웅이는 기억할 수 없었어요. 다음 날, 성민이가 사과를 했지만 그 조차도 기억이 나지 않았지요. 성민이에게 화가 나 같이 묻기로 한 타임캡슐 이야기마저 지워버린 탓에 타임캡슐을 기억하지 못하는 기웅이 때문에 이젠 성민이가 화가 났네요. 그렇게 하루하루 나쁜 기억을 조금씩 지워버리자 기억 지우개는 엄청나게 커져버렸습니다.

 

집으로 오며 기웅이는 그동안의 일을 떠올렸다. 기억 지우개 말대로 나쁜 기억을 바로 없애니 그것 때문에 화낼 일이 없어 좋았다. 그런데 나쁜 기억은 줄어들지 않고 점점 늘어나기만 했다. 정말 이상했다. 사소한 것 하나까지 모두 연습장에 적고 기억 지우개의 힘을 빌렸다. 누나가 했던 말이 다시 귓가를 맴돌았다. 나쁜 기억도 자신의 기억이라는 말. 그말은 좋지 않은 기억도 그리운 추억이 될 수 있다는 말인 것 같았다. (본문 88p)

 

 

기웅이가 뜀틀 때문에 주눅 들었던 기억 때문에 성민이는 기웅이를 다독이며 함께 연습을 했고 결국 뜀틀을 잘 넘게 되었어요. 힘들었던 나쁜 기억이지만, 지금은 웃음이 물리는 가슴 뿌뜻한 기억이 된 것처럼 나쁜 기억이 꼭 나중에도 나쁜 기억으로 남는 것만은 아닌거 같아요. 성민이가 예전엔 싫어했던 엄마 아빠의 잔소리가 지금은 그리워진 것처럼 나쁜 기억도 소중한 기억이 된답니다. 나쁜 기억도 나를 멋지게 만들어가는 좋은 밑거름이 될 수 있으니까요. 짧은 이야기지만 기억에 대해 잘 담아낸 동화책이에요. 나쁜 기억으로 괴로운 친구들이 있다면 꼭 한 번 읽어보길 바랍니다. 나쁜 기억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될 거에요.

 

(이미지출처: '기억 지우개'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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