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I 마음이 자라는 나무 20
스티브 타세인 지음, 윤경선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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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전 500명이 넘는 예멘인들이 제주도에 무사증 입국해 난민신청을 하면서 우리 사회에 큰 논란이 일었다. 범죄적인 측면이나 경제적인 측면 등으로 인해 찬반이 나뉘었고, 난민 신청 허가 폐지에 대한 청원이 올라오자 70만 명의 동의를 얻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경제적인 상황을 봤을 때 난민신청에 대한 허가는 그리 달갑지 않은 문제이다. 그들의 삶보다는 내 삶을 우선시 생각하는 게 인지상정이라, 나 역시도 다를 바 없다. 헌데 간혹 난민 어린이를 주제로 한 책을 읽다보면 내 자신이 한 없이 부끄러워진다.

 

나는 난민의 자식이지만, 그것이 이 책을 쓰는 이유는 아닙니다. 내 지친 어린 시절에 지금도 세계 위험 지대에서 자라나고 있는 난민 아이들의 이야기를 포개 놓았지요. 우리는 다만 함께 지내길 바랍니다. 더불어 살길 바랍니다. 배고프지 않길 바랍니다. 그저 웃고 놀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내가 《난민 I》를 쓴 이유입니다. (_작가의 말에서. 표지中)

 

이 책의 화자의 이름은 I이다. 그의 이야기는 7월 3일 열한 번째 생일, 난민 캠프에서 시작되고 있다. 난민 캠프에서는 진짜 이름 대신 L,E,V 등으로 불린다. 진짜 이름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들이 가득 탄 배에서 I는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과 휴대폰과 증명 서류가 담긴 가방이 사라졌다. 그렇게 난민캠프에서 생일을 맞게 된 I는 친구 L과 E와 함께 판자집에서 살고 있다. 부모를 잃은 L은 흙탕물을 빨아들인 빵 조각을 주워 뭉친 빵 덩이를 만들어가며 동생 E를 보살피고 있다.

 

여기 캠프에서는 여권을 '생명 증서'라고 부른다. 그게 없으면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도 없는 것처럼 취급받는다. 여기 처음 온 사람들은 자기가 누구라고 증명할 길이 없다. 그래서 본명과는 상관없이 아무렇게나 불린다. (본문 34p)

 

V는 큰 집에서 살고 돈도 많은 고모가 있지만, 생명 증서가 없는 탓에 V와 고모는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기에 난민 캠프에서 지내야만 한다. 그렇게 그들은 사방 천지가 진흙탕에 잠긴 난민 캠프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간다. I는 며칠동안 통 식사를 하지 못한 E에게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이기 위해 시궁창으로 향했다. 황새 고기가 닭고기나 칠면조 고기와 맛이 비슷할지를 궁금해하면서. 물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진흙을 뒤집어 쓴 채 시궁창 속에 빠진 꼴이 됐지만 말이다. 그러던 중 I는 철조망 사이 틈을 발견하게 된다. I는 캠프로부터 멀어지면 새 삶을 찾을 수 있을거라 기대하지만 그러면 다시 가족을 잃게 된다. 결국 캠프로 돌아가는 것 외에는 다른 수가 없다.

 

사실, 우리가 정말로 갇혀 있는 것은 아니다. 철조망 안에서 어디든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다.

또, 예전 장소로 '돌아가는' 길도 있다.

그러니까 갇혀 있는 건 아니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는 셈이다. (중략)

돌아갈 자유는 있다. 시궁창을 지나, 캠프를 벗어나 시골길을 따라 걸으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하지만 돌아갈 집이 없다. 우리 집은 폭탄에 사라졌으니까. 가족은 군인이 쏜 총에 맞아 쓰러지고, 학교는 불에 타 버렸다.

여기 진흙탕 속에 그대로 머물러도 된다. 하지만 캠프 밖의 사람들은 이마저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본문 71p)

 

아이들은 진흙탕 속에서 주운 인형으로 놀이를 하고, 나중에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영어를 배우고, 나뭇잎에 I,L,E,V 등을 새겨넣은 생명증서를 만들며 새로운 놀이로 시간을 떼운다. 아직 자신의 이름은 O 밖에 말할 줄 모르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가 새로운 가족이기도 한다. 그러던 중, 캠프 전체가 최루 가스로 뒤덮이고 불도저와 살수차가 사람들을 위협했다. 경비병들은 이들을 이주시키기 위해 무력을 쓴다. 이 난리 속에서 L은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재산인 가족 앨범을 찾기 위해 판자집으로 향했고, O는 사라진다. 그리고 이들은 O를 찾기 위한 새로운 놀이를 시작한다.

 

"우리가 한 것 중에서 가장 대단한 놀이가 될 거야. 숨바꼭질 같은 건데, 우리 모두 O를 찾는 거야. 끝날 때까지 계속할거야."
"O를 찾으면 이기는 거야." (중략)

"어느 쪽이든, O가 간 길은 하나야."

"앞으로, O는 늘 앞으로 갔으니까."
그게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앞으로, 앞으로. O를 찾으러.

우리는 앞으로 간다. (본문 138p, 141p)

 

어른들의 욕심에 희생당하는 아이들. 진흙탕 속에서도 서로 아끼며 보살피는 그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특히 '오랫동안 못 본 체하고 내버려 두면, 우리는 진흙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본문 72p)'는 문구는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나의 삶을 지키기 위해 외면하던 소리에 귀 기울여달라고. 절망 속에서 서로를 아끼며 희망을 쌓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에 지금까지 가져왔던 나의 생각을 곱씹어보게 된다. 더불어 살기를 바라는 이들에게 우리의 빈 옆자리를 내어주는 것에 대해서. 누구라도 한 번쯤 읽어보라 권하고 싶은 책이다. 우리가 외면하는 한 켠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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