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림, 그 끝에 서다 단비청소년 문학
정해윤 지음 / 단비청소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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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청소년 범죄가 날로 극심해지고 그 행태 또한 잔인하기 이를 데 없어 청소년을 바라보는 잣대가 곱지만은 않다. 헌데 청소년들의 문제가 과연 청소년들만의 문제일까? 곱씹어보면 기성세대들로 인한 문제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학교, 가정 등에서 청소년들은 폭력과 무관심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채 방치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쩌면 기성세대는 이를 알면서도 눈을 감고 모든 문제를 청소년들에게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이가 들면서 '요즘 애들은...' 이라는 말을 썼던 내 자신에 대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난 문제를 굳이 청소년의 문제로 꼭 집어 말하는 것과, 그것을 부각시키는 것은 사회의 문제를 약화시키기 위한 기성세대들의 잘못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사회적 이상현상이 마치 청소년의 전유물인 것처럼 기사화되는 일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청소년의 일상에 잠재해 있는 어떤 어긋남, 깨질 수밖에 없는 일상의 균열 등을 포착하여 이야기할 때, 청소년의 일상 자체에 내재해 있는 문제를 구체화하여 확대해 나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가의 말 中)

 

이 책은 총 여섯 편의 단편들이 모여있는 이야기이다. 표제작인 [필림, 그 끝에 서다]는 편의점에서 일하는 주인공 윤재의 이야기이다. 세상과 문을 닫은 채 편의점 CCTV와 소통하는 윤재는 편의점을 밀림이라 표현하고 있다. '무장이 끝났다. 밀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완벽한 무장이 필요하다.' (본문 19p)  윤재는 밀림에서 술 취한 샐러리맨의 반말과 생떼 등을 감내해야한다. 유통기한이 지난 잔반처리를 하는 자신은 마치 밀림에 사는 악어새같은 모양새다. 손님이 뜸한 시간 찾아온 피라냐 떼에게 돈을 뺏아기고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던 순간 늘 북극곰을 떠올리게 했던 윤재가 입었던 교복을 입고 있는 손님이 피라냐 떼를 물리치고 피라냐 떼들은 바닥으로 나가 떨어졌다. 이 사건으로 윤재는 밀림에서 친구를 발견하게 된다.

 

그곳은 여느 날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윤재는 어쩌면 자신이 악어새가 아니라 밀림을 아름답게 만드는 아라라 앵무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다 피식 웃었다. 저녁 10시가 기다려지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본문 39p)

 

다문화 가정의 모습을 그려낸 [농]은 참 안타까운 이야기이다. 얼마전 베트남 아내 폭행 남편에 대한 기사로 모두를 분노케 한 이야기를 접한 후여서인지 그 안타까움이 더해지는 듯 했다.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엄마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윤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게 된다. 할머니는 엄마에게 입도 뻥긋하게 하지 못하게 했지만 윤은 엄마를 떠나보내기로 결심하고 베트남 행 편도 한 장을 구매한다. 열입곱 살에 교통사고로 이미 정상이 아니었던 서른 살의 아빠와 결혼한 엄마는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울음 대신에 자신의 말을 잃었고, 윤의 두 남동생을 사고로 잃었을 때도 울음 대신 일에 몰두했다. 다음 날, 윤은 학교에 가는 대신 일터로 가는 엄마를 따라가 다짜고짜 엄마를 버스 밀어 넣고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음을 이야기한다. 울음대신 한숨을 쉬는 엄마는 비행기표를 예약했다는 말에도 실감을 하지 못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데이트를 즐기며 공항으로 향한다.

 

엄마가 탄 비행기가 이륙할 시간이었다. 신호등에 파란불이 들어오자 멈춰 있던 차들이 일제히 제 갈 길을 찾아 달리기 시작했다. 윤도 엄마도 제 갈 길을 찾아 달리는 중이었다. 윤은 엄마란 말 대신 '트란티 킴 냐온'이라고 낮게 중얼거렸다. (본문 68, 69p)

 

특목고를 가기 위한 봉사 점수가 필요해 달동네에 가게 된 주혜의 이야기를 담은 [포트폴리오]는 주혜의 눈으로 사회의 단면을 들여다보는 이야기다. 자신이 우선인 주혜는 그곳에서 할머니 한 분을 만나게 된다. 마을의 일들을 하나하나 신경쓰는 경은 할머니의 모습이 낯설었던 주혜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할머니의 친구가 된다.

 

주혜는 오늘 하루가 기대됐다. 할머니와 함께라면 진짜 재미있는 하루가 펼쳐질 것 같았다. 주혜는 '사진 한 장이 얼마나 중요한데요.'라는 말 대신 할머니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본문 99p)

 

이 외에도 의붓아버지의 성폭행에 분열되어 버린 동우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자 세탁소], 동성애자들로 이루어진 사회를 담은 SF 이야기 [붉은 탑에 오르다], 언어폭력의 심각성을 다룬 [파마의 성]을 통해 출구 없이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스토리 곳곳에서 보여주는 기성세대들의 불편한 모습이 청소년에게 끼치는 영향을 볼 때 청소년 범죄가 결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시사케 한다. 사춘기 두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읽기 시작한 청소년 문학에서 나는 매번 많은 것을 배우고 반성하게 된다. 청소년들에게 위로를 주는 책이지만, 어른들도 꼭 읽어보길 권해본다. 청소년에게 정말 필요한 위로는 기성세대들의 진심어린 관심과 사랑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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