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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지는 것도 사랑입니까
황경신 지음, 김원 사진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9월
평점 :
책 한 줄 읽기가 힘겨웠던 더위가 물러나고 온통 파란 하늘에 시원한 바람으로 기분까지 행복해지는 가을이 찾아왔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마음도 살랑살랑 바람따라 흐느적거리는 중이다. 유독 힘겨웠던 더위 때문이었을까? 이번 가을엔 유독 한없이 기분이 살랑인다. 여름에는
그에 어울리는 스릴러 장르의 책을 몇 권 읽다가 살랑이는 마음을 따라 감성적인 사진 위에 스민 아름다운 문장들과 그 따뜻하고 가슴 먹먹한
콜라보로 담겨진《지워지는 것도 사랑입니까》를 집어들었다.
1995년 PAPER 창간때부터 2010년까지 편집장으로 일한 황경신은 《생각이 나서》《초콜릿 우체국》《반짝반짝 변주곡》등으로 내게 익숙한
작가이다. 황경신의 아름다운 문장에는 1995년에 PAPER 창간하여 10년이 넘도록 발행인으로 활동한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김원의 감성적인
사진들이 어우러진 읽을거리, 볼거리가 가득한 책이다.
이 책은,
Chapter 01 흐린 믿음에도 나는 온통 그대를 향해 서 있습니다, Chapter 02 너, 한 번도 앉지 않은 빈자리에 말간 햇살들이
잠시 머물다 간다, Chapter 03 이렇게 하찮은 존재로 태어났어도 그대를 사랑할 수 있나, Chapter 04 사랑, 그 무모한 이름만으로
갈 수 없는 수많은 길들을 위하여, Chapter 05 찾아 헤매인 어느 길 하나 그대 아닌 것이 없었으니, Chapter 06 하지 못한
말들은 칼날이 되어 따가운 봄빛 속에 무심히 반짝인다, Chapter 07 목숨처럼 무서운 사랑도 무엇이 어떻다고 잊지 못하겠습니까,
Chapter 08 온종일 그대에게서 달아날 궁리만 하던 그때는 가도 가도 깊은 사막인 줄 알았습니다, Chapter 09 아무리 멀어도
꿈이라면 닿겠지 아무리 그리워도 목숨은 건지겠지, Chapter 10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가서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된다면 등 총 10
Chapter로 나누어 감정이 말랑해지는 스토리와 사진을 담아내고 있다.
그동안 접해던 황경신 작가의 글은 난해하거나 몽환적인 느낌을 주고 있어 다소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이 에세이에서는
작가의 그런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봄을 기다리니 한겨울의 추위 끝이 없다
꽃 피우는 나무 길고 긴 잠 끝이 없다
사랑을 하니 불안한 마음 끝이 없다
갈망이 있으니 절망 또한 끝이 없다
다행이다, 살아 있으니
마음은 수천 개의 상처로 얼룩진다
다행이다, 꿈을 꾸니
길은 수천 갈래로 뻗어간다 (본문 201p _끝이 없다)
글의 감성을 이끌어내는 사진들은 사진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감성을 적셔주는 듯 하나 글과 그림이 어우러져 말랑말랑한 감성을 이끌어준다. 금새
읽어내려갈 수 있는 이야기가 있는 반면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이야기도 있고, 오랫동안 눈길을 주게 되는 사진도 있다. 작가의 이야기는 감성을
촉촉히 적셔주는 힘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잠시동안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차분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는 책이었다. 살랑살랑
가을 바람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책이다. 가을이면 생각날법한 책.
그리고 가을이 되었다
여기저기서 마른 잎들이 타올라
연기는 바람에 날린다
검은 손과
말라붙은 눈물의 너를 꿈꾸며
나를 오래도록 서 있었다
푸른 서리 내리는 어두운 길 위에서
나는 어느새 떠나와 있었다
쉽게, 마치 그러리라 작정했던 것처럼
후회는 없다, 그러나
누군들 변해버린 자신을 용서하겠는가
변명처럼 한숨을 쉬며
나는 오래도록 어두워진다
이 창백하고 불완전한 길 위에서 (본문 197p _마치 그러리라 작정했던 것처럼)
(이미지출처: '지워지는 것도 사랑입니까' 본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