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삼별초는 최후까지 싸웠을까? - 김방경 vs 김통정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19
강재광 지음 / 자음과모음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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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별초 항쟁 * 왜 삼별초는 최후까지 싸웠을까 ?  (자음과모음)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에 항거하여 강화도와 진도 제주도로 옮겨가며 대몽항쟁을 펼쳤던 삼별오, 그들은 왜 최후까지 싸워야만 했을까 ?

세계사에서  유일하게 세계를 제패했던 제국은  그리이스도 로마도 아닌 몽골, 우리에겐 그 몽골에 대항해 비록 100여년간의 속국의 시대가 있기는 했으나 끝까지 나라를 지켜냈다는 자부심이 있다.

그 항쟁의 역사에 가장 큰 역활을 했던것이 삼별초였다.

30여년건 6번에 걸친 침략속에서 강화천도후 진도와 제주도를 거치면서까지 민주 항쟁을 이어 나갔던 것이다.

헌데 왜 그들이 역사공화국 법정에 서게 된 것일까 ?

삼별초는 어떤 부대였기에, 민란을 진압했다는데 정말 몽골 항쟁의 주력부대가 맞았던걸까 ? 를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인물 구조속에서 객관적으로 짚어가본다,

 

 

 

 

 

 

그 주인공은 개경환도를 반대하며 대몽항쟁의 길로 들어선 후 마지막 격전지였던 제주에서 몽골군과 맞서싸운 김통정과 

경순왕의 후손이자 처음엔 몽골군과 대항해 항쟁하였으나 원종의 지시로 삼별초를 소탕한 고려군 총대장 김방경이다.

 

처음엔 대몽항쟁이란 같은 출발선에 섰던 사람들이 후에 쫓는자와 쫓기는자가 되어 각자의 길을 가게 된 것이다.

대몽항쟁의 표상이었던 삼별초를 이렇게 재조명하게 된데는  무신정권 시대 최고 통치기구인 교정도감과 사병기구인 도방을 설치 자신들의 정권유지수단으로 창설되었다는 데 이유가 있다.

 

하지만 고려는 1231년 몽골 1차침임 이후 1254년 6차 침입까지 23년간이 전쟁을 치루면서 점점 쇠퇴해갔다.

그리고 다시 100년의 시간동안 속국으로 남겨지면서 결국 명망에 이르게된다

삼별초가 비록 무신정권에 위해 창설되었 1차 2차 침입때먼해도 전쟁터에 파견되는 대신 무신정권의 권력기반의 수단이 되었지만 3차 이후 그들은 민중과 더불어 대몽항쟁의 중심이었다. 5차 침임이후부터는  우리가 교과서속에서 배웠던 항쟁을 펼쳐 나갔음이다.

 


 

 


 

 

화친이냐,  끝까지 대항하느냐의 기로에서 그들은 최씨 무신정권의 몰락과함께 나라로부터 내쳐졌음이다

민란을 막기위해 창설된 부대 야별초, 국왕이나 최씨정권을 위한 군위대 마별초, 몽골 항쟁에서 포로가 되었다 살아 돌아온 사람들로 구성된 신의군

그들이 합쳐진 삼별초는 처음의 목적이 무엇이었든간에 교과서에서 미쳐 찾아낼수 없었던 당시의 배경과 모습을 다시금 조망한 가운데 고려를 지키고자 했던 충정이었다,

 

한국사법정의 삼별초 이야기를  통해 무신정권에서 몽골의 침략 그리고 몽골의 속국으로 변화해가는 고려사를  좀 더 통찰력있게 들여다볼 수 있었음이다.

 

 

 



 

그 책 속에서는 또 하나 지금까지 남아있는 몽골의 흔적이 많았음을 알게된다

전통혼레에서의 족두리와 연지곤지, 벼슬아치 장사치등의 접미사 치도 그러했으며 수라 마마 무시리와 같은 왕실 표현들과 제주도의 목장또한

그때의 유물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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