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레이스키, 끝없는 방랑 , 우리민족의 강제이주사,
까레이스키, 고려인 ,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배블 받던 시절에 국경을 넘어 러시아 여러곳에 정착한
우리민족을 일컫는 말, 우리민족도 잊고 있던 우리민족으로 그들은 아직도 저 먼 차가운 땅에서
대한민국 사람도 아닌 , 소련 사람도 아닌 이방인으로소 고통스런 삶을 현재도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까레이스키, 끝없는 방랑을 만나기 전 까지는 나도 몰랐던 사실, 그렇기에 다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 싶어진 책이다.
230년 동안 발해가 다스리던 우리나라 땅이 있었습니다.바로 연해주였지요.
그 후 비어있던 땅에 우리민족은 계절 농사를 지으며 우리 땅인듯 지켜왔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버려진 땅이었을 뿐 주인없는 땅은 아니었습니다.
1900년대 일제 침략이 시작되면서 망명가나 독립투사들이 가세하며 더욱 더 많은
우리민족이 많이 살게 된 땅, 1905년엔 한일 민족운동의 주요지역이 되었고
1910년 한일강제병합이 이루어 진후엔 식민통치의 고통을 피해
고향을 등진 더 많은 사람들이 정착한 땅이었습니다.
1917년 그 땅에서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났고 1922년엔 일본과 러시아간 마지막 혈투로
일본이 물러나면서 소련땅으로 정착을 하는 듯 했으나 1991년 소련연방이
해체되면서 또 다시 국적이 바뀌어버린 땅이었습니다.
그렇게 굴곡이 많았던 땅에 살았던 우리민족, 까레이스키는 그렇게 매번 주인이 바뀔때마다
감내해야만 했던 고통이 너무나 컸었음을 이제서야 제대로 바라봅니다.
1925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신한촌에서 카레이 스키고 태어난 나가 1937년부터
1956년 까지 20년간 살아온 과정은 어떻게 이럴수가 있었을까 싶은 우리민족의 잔혹한 아픔사였습니다.
그 시작은 1937년 가을, 3일 안에 이곳을 떠나라라는 붉은 명령서가 도착하면서로 18만명에
달하는 우리민족은 판자를 얼기설기 연결해 시베리아의 칼바람이 고스란히 들어오던
가축용 운반기차요 강제이주열차에서의 40여일이 고통의 서막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서 해방을 했고, 6.5 전쟁을 거치면서도 근대화 과정 후 1988년의 올림픽
2002년의 월드컵을 치루면서 기회의 땅으로 자리잡아간 대한민국 하지만 조국으로부터
잊혀진 사람들에겐 국적은 포기하지 않은 죄로 인해 평생을 아니 2세, 3세로 이어지는
후손들까지 여전히 유랑생활을 하는 까레이스키 일 뿐이었습니다.
누구를 향해 분노를 해야하나?. 조선을 침략했던 일본, 적성이민국으로 지정 강제이주를
단행했던 소련 그러한 백성을 잊어버린 대한민국과 국민들 아직도 ,
여전히 진행중이라는 사실이 더욱더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무리 전쟁중이었다고 하나, 어떻게 사람을 이렇게 까지 잔인하게 대할수가 있었던걸까 ?
갑자기 아버지가 사라져 버린후 난 만삭의 엄마와 오빠 할아버지와 함께 강제이주열차에 올랐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열차를 탈수있다라는 설레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시작된 이주는 좌석이라고는 찾아볼 수없는 바람이 숭숭들어오는 마룻바닥
기차에, 밤낮으로 달리는 통에 싸온 음식조차 제대로 끓여먹을수가 없습니다.
급기야, 기차탑승을 거부한 사람들을 향해 총살이 이루어진후 공포감은 더해가고 추위와
배고품에 지친 사람들은 여기저기에서 죽어갑니다.
어디로 가는지, 왜 가야만 하는지도 모른 채 몸을 실은 기차는 시베리아의 거친 눈보라와
칼바람을 견디기엔 역부족이었으니 기차에 오르는 순간 그들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어머니니는 기차 구석에서 막내를 낳다 아기와 함께 저 세상으로 행했으며 40일만에
도착한 새로운 딸은 기차에서 지친 그들을 받아들일만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살아남았고 지금도 살아있으며 소련도 대한민국도 변했지만 그들만
여전히 변하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남겨진 자들이 잊고있던 그들, 하지만 우리민족이기를 잊지 않았던 그들 언제쯤
아픔을 치유할 수 있을까. 전작에서 까레이스키들의 아픔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안급했던
작가는 이렇게 책에서나만 그들의 아픔을 공유하며 함께 나누고 있었의 많은 사람들이
읽고 그들을 기억하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