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십자군은 예루살렘으로 떠났을까? - 알렉시우스 1세 vs 고드프루아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20
김차규 지음, 박상철 그림 / 자음과모음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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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에 대한 진실 찾기 (예루살렘 성지회복)

 

세계사를 공부할때의 제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가장 어려웠던 부분중 하나가 십자군 전쟁이었습니다.

또한 서양 미술 전시회를 찾을때면 왜 그렇게 종교색이 짙은걸까 이해를 못하는 부분도 상당했지요.

역사는 무작정 외우는것이다 라고 생각했던 학창시절의 잘못은 그렇게,  재미있을수도 있는 역사공부를 어렵게만 만들었던 요인이었습니다.

 

그 후 십자군이나 서양 종교철학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던 지라 몇 십년 동안 묶혀져있던 중세 서양의,  종교와 정치가 얽히고 섥혔던 이해관계를 자음과 모음의 역사공화국 시리즈였던 왜 십자군은 예루살렘으로 떠났을까 ? 라는 이 책을 통해 이제서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이렇게 개념적으로 앞뒤를 따져가며 서로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적 사건을 이해하니 요즘 아이들의 역사공부는 한결 수월하겠구나 였습니다.

   

 

 

 

1096년에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었어요가 아닌 십자군 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

십자군은 왜 황제와의 약속을 어겼을까.  3차 십자군은 왜 결성되었을까 ? 라는 목차에서 알 수 있듯

왜, 왜 라는 궁금증에서 출발하고 있기에 본질적인 개념을 이해하는데 좋았지요.

 

 

 

 

 

자음과 모음의 세계사법정을 만날때마다 앞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요것으로 세계사연표와 한국사연표를 비교 정리해 놓고 있는 내용이랍니다.  서양에서 십자군 전쟁이 한창일때 우리나라는 최충의 사학을 시작으로 이자겸의 난,  묘청의 난등 여러 민란들이 끊이지 않고 있는 모습이군요

 

서양에서 종교문제로 붉어진 십자군 전쟁이 한창일때 우리나라에서는 미약한 왕권으로 무너져버린 민생들의 민란이 끊이지 않고 있었슴니다. 어딘가 통하고 있는 두 사건을 통해서 10세기에서 13세기에 이르는 역사를 조망하게 됩니다.    

 

 

 

십자군 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그 문제에 대해 제기를 한 사람은 처음 십자군 전쟁이 발발한 계기로 교황에게 십자군 파견을 요청한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알렉시우스 1세 콤네누스였스니다. 헌데 그의 상대는 아이러니하게도 십자군 전쟁의 적이었던 이슬람 술탄이 아닌 1차 십자군 지도자 중 한명이었던 고드프루아 드 부용이었으니 거기에서 우린 왜 십자군 전쟁이 발발할수 밖에 없었고 장기간 계속되었는지를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예견하지 못했던 상황이었지요.  

 

 

 

 

십자군 전쟁의 원인이 되고 있는곳은 바로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 3대종교의 성지가 되고있는  예루살렘 이었습니다.

 

 

 

 

 

서방세계에서 가장 번성했던 비잔틴제국은 셀주크 틔르크의 2대 술탄인 알프 아르술란의 군대에게 만지케르트에서 패배한 이후 급격히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알렉시우스 1세는 그렇게 비잔틴 제국이 기울어 가던 싯점에 황제에 등극  이슬람 세계에 빼앗긴 소아시아의 땅과 시리아. 팔레스타인을 되찾기 위해 교황에게 십자군을 요청하기에 이르지요..

 

대다수의 사람들이 성지 순례지를 탈환하기 위한 순수한 목적으로 참여한것과 달리 일부는 영토정복과 권력유지등을 목적으로 하기도 했으니 십자군과 황제의 불화, 지휘자끼리의 서로 달랐던 이견과 속내들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전쟁에 준비가 안된 채 무작정 종교적 신봉만으로 참여했던 사람들, 본연의 목적을 숨긴 사람들로 인해 십자군 전쟁은 처음부터 왜곡되고 문제가 많았던 것입니다.  

 

1차 봉기에서 10만명에 달했던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되찾는다는 명분을 이용해 약탈과 학살을 자행해으며 어렵게 탈환했던 성지는 비잔틴 황제에게 바쳐지지가 않았던  것이지요.

 

 

결국 십자군 전쟁은 성지회복이라는 표면적인 이유를 내세워 이슬람 제국과 벌였던 전쟁이 아니라 기독교 내 세력간의 자기 영토와 권력을 구축하기위한 발판이었던 것이지요. 그렇기에 300여년이라는 오랜 기간동안 전쟁이 이어졌던 것 이었습니다.

 

또한 십자군 전쟁의 추락으로 유럽세계의 정신적 지주였던 중세 크리스트교가 무너지는 결과가 초래되면서 중세사회는 해체되며 그제서야 각 나라의 왕권이 강해지는 수단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책의 이야기는 십자군 전쟁의 기록이 아닌,  왜 발발했고, 사후 어떤 사회적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를 함으로써 중세 유럽문화를 이해하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교과서속 세계사를 접한다면 훨씬 더 빠르고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네요. ( 요즘 아이들이 해야하는 공부의 양이 많아진것에 반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들또한 다양해진 모습중 하나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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