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정치인을 떠올릴때면 긍정적인 사고보단 부정적인 면이 부각된다. 스스로의 소신있는 판단을 하기보단 속한 정당의 잇권을 생각하고 행여나 쥐고있는 권력을 놓칠세라 지키기위한 아귀다툼을 벌이는 사람들이요 현장이었다. 선거철만 되면 민의에 귀를 기울이고 눈을 마주하다가도 승리했단 싶으면 오만해지고 실패하면 남의 탓을한다. 또한 돌고돌아가는 세상이치가 정치판에선 유독 강하기만한게 지금의 어지러운 정치현실은 몇백년전 조선시대의 그때와 닮아있고 뚜렷한 지방색은 남인과 서인으로 나눠고 노론과 소론으로 분열되었던 그때와 참으로 흡사하다. 우리가 좀더 좋은 모습으로 발전하기위해선 그렇게 나쁜것만 세습할게 아니라 올바랬던 모습과 본받을만한 위인을 찾아보는것일게다. 성리학의 나라였던 조선조 스스로가 신봉했던 사상을 쫓아 목숨도 연연하지않고 사리사욕과 권세는 멀리한채 지고지순한 모습으로 자신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공자를 비롯한 4대 성인과 함께 서울 한복판인 명륜동의 성균관대학교안에 자리한 문묘에 모셔져있는 총 18분의 학자들로 문묘18현이라 일컫는데 문묘가 선현들의 제사와 유학교육을 담당하던 곳이었다하니 조선의 역대왕들이 모셔져있는 종묘와 비길만했다. 조선은 임금의 나라이기이전 사대부의 나라로 임금과 신하가 동등하지는 않다하더라도 같은 주인이다 말할수는 있었다. 그러했던 사대부들이 숭상했던것이 인과 예를 중시하고 도덕사상을 강조한것이 성리학이었다. 어지러웠더 시대엔 목숨을 걸고 직언을 했으며 권력을 탐하기보단 민생이 안정된 사회를 건설하고 싶어했으며 악을 따르기보단 선을 따르며 낙향을 했다. 그러한 삶이 조선시대의 우수한 기록유산중 하나인 조선왕조실록을 배경으로 들려주는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이황,이이. 송시열등 조선선비들의 삶속에 최치원,설총,안향,정몽주등 신라와 고려조의 명현들의 인생에서 고스란히 보여진다. 도덕성의 강조와 성리학 이념의 사회적 실천을 통해 새 시대에 대한 방향을 체계적으로 제시하다 현실속에선 서른 여덟살의 짧은 생을 마감해야만했던 조광조는 50년후에 더욱 빛났다. 또한 이상적인 국가를 지향해 임금과 함께하는 경연에서 교도를 위한 험한말도 서슴지않았으며 수없는 상소문을 올렸던 이언적이 나라를 다스리는데 필요하다 피력한 하나의 강령과 함께 제시한 열가지 조항은 21세기의 지도자또한 귀담아 들어야만하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결코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고 권력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일찍이 사약을 받았거나 귀양을가야했고 초야에 묻혀 힘든 삶을 살아야만했다. 그럼으로인해 스스로에겐 너무도 떳떳한 삶이었고 많은이들로부터 추앙받은 인생이었다. 많은 백성을 생각하고 진정으로 나라의 안위를 걱정했기에 당장의 눈에 보이는 달콤함을 쫓아 죄를 짓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은 현실은 그러한 사람들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안타까운 현실로 문묘18현의 삶엔 그렇게 살아생전 행복과는 거리가 먼 불행했던 삶이 주를 이루었다. 지금부터라도 그 정신을 본받아 많이 배웠기에 누렸기에 알고있는 만큼 많은 사람들을 위해 행동하는 지식인의 참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더욱더 많아져 그것이 일상이 되고 더이상 특별하지 않기를 소원해본다. 그래서 다 함께 행복해지는 미래를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