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평가하고 아이들을 평가할때면 개인적 능력과 성향과 함께 자라온 집안내력도 큰 역활을 하고있다. 예전엔 그게 왜 평가의 잣대가 되는걸까 의문을 부여하곤 했지만 어느정도 삶의 연륜에 도달한 지금에선 절대적일만큼 신봉하기에 이른다. 그건 남의 인생이 아닌 내삶의 모습에서 내 스스로의 모습이 싫어질때나 좋아질때 매일매일 발견하게되는 모습이었다. 참으로 불공편한 세상의 진리인 부익부 빈익빈의 경제원리가 적용되듯 평범한 유년의 시절을 보냈으면 평범한 인생이,기구했으면 기구한 삶이 기다리고 있었고 마음껏 누리고 풍요로웠던 유년이면 미래의 모습또한 어느정도 보장되고있었슴이다. 지금의 삶이 이만큼 불행했으니 나머지 인생은 행복해라 하고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살아가는 맛이나고 희망이 보일텐데. 하지만 한남자가 가져온 불행의 씨앗이 엄마를 휘어갑고 딸까지 감금하던 빈집을 만나며 어쩔수없는 사회적 관념과 통념속에 또한번 울분을 삼킨다. 그리곤 기구하고 슬픈 인생사를 보면 왜 모두 여자에만 국한되는것일까? 진한 아픔이 밀려왔다.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사고속에 자기만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아비 배용태는 항상 부재중이었다. 런 아비에 대한 원망과 한을 딸 어진에게 풀어내는 어미또한 어느순간 부터 집을 비운다. 그렇게 어린딸 어진은 홀로 빈집에 남겨졌다. 투전판에서의 손감각을 높이다는 명목으로 고집스레 다큰 딸의 오줌을 받아 손을 씻던 아빠라도 항상 집에 있어만 주었다면 두여자의 삶이 그렇게 고되고 삐뚤어지지 않았을텐데말이다. 그 슬픔은 비단 한여자에만 국한된게 아니었으니 핏덩이를 안고 아무런 미련없이 떠났던 전처와 욕망에 얽힌 사랑일망정 악착스레 지켜주고싶었던 서방을위해 그를 쫓는 조형사에게 빌붙었던 후처와 그녀들의 딸까지 이어지는 골깊은 인생사였다. 모성은 아름답다 누가 그랬던가? 그것도 내 신간이 편하고 행복할때의 마음이지 당장 내삶이 고통스럽고 휘어져있음엔 보이지않는 사치일뿐이다. 자식만은 나와 같은 삶이 아니길 바라는 어미에게도, 자식이 단지 한을 풀어낼 통로밖엔 안되었던 어미에게도 모성은 아름답지않았다. 그것이 실망이었고 자신의 삶을 이어나가기위한 수단이란 이유는 달랐지만, 언니 수진도, 동생 어진도 그렇게 박복했던 유년시절은 평탄치 못한 결혼생활로 이어지고 끝없이 이어지던 굴곡된 삶을 돌고 돌아 서로에게 힘이 되는 몇개월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지금 세상의 끝에서 희망을 발견하고싶었던 둘은 함께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그녀들의 희망은 정녕 없었던것일까. 길도 없고 이정표도 없는 사막을 헤매이듯 만나야할 사람도 더 이상 없는 세상에서 피곤하고 허망하기만 할뿐인 여정을 끝내는 수진으로인해 어진은 넓은 세상에 또 혼자가 되어버린다. 참으로 무겁고 두려운 삶이었다. 알면서 눈감아야하고 비난인줄 알면서도 무시하고 음탕한 욕망이 뒤얽힌 삶의 수단속에 네여인의 삶은 끝없는 나락속으로 치닫았다. 가끔은 너무 답답해 숨이 막혀오고 가끔은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 작가의 심미안에 소름이 끼쳤다. 그렇게 빈집은 여인네들의 적나라한 삶을 통해 세상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