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조선역사엔 27명의 왕이 있었는데 왕이 다스렸던 왕권사회였던만큼 조선의 역사를 논함에 있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최고 통치권자인 27명의 왕들을 중심에 놓을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래서 우리는 백성들이 편안했던 시대를 통치했던 세종과 정조를 성군이라 칭하고 임진왜란이 있어났고 병자호란이 발발했던 시대의 선조와 인조를 무능력했던 군왕이라 평가한다. 그렇기에 최고의 성군중 한명인 정조를 논할때면 재작년 역사드라마의 한획을 그었던 이산 정조에서 알수있듯 백성들에겐 온화하고 인자한 왕으로, 자신을 향해 칼을 겨누는 노론대신들에겐 반박하지 못할 해박함과 통찰력으로 제압하는 완벽한 성군의 이미지로 그려졌었다. 그런데 2009년 정조어찰첩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그 이미지에 큰 변화가 생겨났다. 최고의 정적이라 칭할만한 노론파인 심환지와 교환한 비밀편지속엔 마냥 어질기만했던 임금이 아니었음을 끊임없이 불거져나온 독살설이 불가능했음을 보여주고 있었던것이다. 말로써 표현할수 없고 비밀스럽게 있는 그대로의 나의 마음을 전달하고 싶을때 사람들은 종종 비밀편지를 이용하곤 하는데 정조는 그러한 비밀편지라는 매체를 통해 노련한 현실정치가의 모습을 실현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후손인 우리들은 210년이 지난지금 그 편지들을 통해 당시의 역사와 정치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한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것은 이 책은 학술적인 가친만을 안고있는 역사적 사료만으로 남겨질 비밀편지들을 일반인들이 편안하고도 쉽게 다가가게 만들어준다는것이다 철저히 비밀에 붙이고자했던 비밀편지였던만큼 최고통치권자가 한 사람에게 보낸 297통의 편지속엔 그 편지가 왕래했던 집권말기 국왕으로서 한 인간으로서의 3-4년간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는데 때로는 꾸짖고 때로는 조언하고 때로는 정치적 의견들을 조율하기도 했던 문장속에는 드러내고싶지않았지만 임금의 내면에 가득했던 모든것들이 담겨있었던것이다. 어진 성군의 이미지와는 다른 화를 잘내고 급한 성격의 인간적인 면모는 물론이요 나이많은 사람의 안위를 물어보는 일상적인 안부편지의 따뜻함, 신료들의 마음을 움직인 인간 정조의 통치기술, 스스로 태양증 성격이라 밝히는 사생활까지 이렇게까지 솔직할수 있을까 싶어지는 어찰이었다. 특히나 정치의 동반자요 지지자가아닌 정적의 우두머리라할수있는 노론의 핵심인물 심환지와 오랜시간 나눈 편지여서 더욱 뜻깊었다. 그 편지를 통해 우리가 기 알고있던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전혀 다른 관점에서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조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가치를 안게되는것이다. 아 미쳐 드러나지않았던 조선의 역사속에는 이러한 비밀이 간직되어있었구나, 당시의 사람들조차 미쳐 인지하지 못했던 정치적 뒷거래를 음미하며 만약 당시의 대신들이 알게되었더라면 얼마나 큰 파장을 몰고왔을까 해보는 상상만으로도 너무 큰 사건이었음을 인지하게된다. 작년에 정조의 어찰첩이 처음으로 언론에 공개되었을당시 그는 정녕 조선의 성군이었을까 라는 물음을 던졌던것으로 알고있다. 난 어줍잖은 사랑으로 그 글을 읽기를 거부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 더 큰 믿음을 가질수있게된다. 정조어찰첩은 그렇게 결코 드러날수 없었던 정치의 이면과 그 어느곳에서도 만날수 없는 임금의 은밀한 내부를 속속들이 보여주며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재평가하는 장이되고잇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