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왕실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조선 500년을 움직인 왕실 사람들의 숨은 이야기 박영규 선생님의 우리 역사 넓게 보기 2
박영규 지음, 백명식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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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이씨왕조가 집권했던 왕정이었다. 그건 어찌보면 왕이 조선의 주인이었다라고 해석할수도 있는 상황인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500년의 시간동안 한 나라의 주인이었던 왕실의 이야기는 현재 무수히 많은 관점과 주제속에서 그 시대를 말하고있는 다양한 역사의 시선에선 비켜나 있었다. 우리가 그동안 접했던것이라고는 인현왕후와 장희빈으로 대표되는 궁중여인들의 암투를 다루거나 왕권을 차지하기위한 음모와 술수가 난무하는 역사드라마가 고작이었다. 그래서 곡해할수 밖에 없었다. 

 

이제서야 그런 편견을 지우고 제대로된 왕실을 들여다볼 기회를 갖게된다. 조선 500년을 움직인 왕실 사람들의 숨은 이야기를 아주 리얼하면서도 솔직하게 역사적 고증을 거친 진지한 목소리로 해박하고 명쾌하게 풀어놓고 있었던것이다. 왕실 사람들은 태어나는 순간 선택받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 선택이 과연 그들에게 좋기만 했던것일까 ?

 

그 어떤 상황에서도 불가능할것같은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것이 유일하게 가능한것이 왕의 자리였고 세상 모든것을 가능하게 만들수도 있는것이 그자리였다. 하지만 가진만큼 감내해야만하는 고통도 있었으니 둘중에 어느 하나에 더 기운다 말하지 못하겠다. 그렇게 조선 왕실 사람들은 누린만큼 인내해야할 고통이 있었고 왕실이기에 더 많이 누린 혜택만큼이나 그만큼의 불행또한 안고 살수 밖에 없었다.

 

왕실은 그렇게 모든 권력을 쥐고있는 왕의 중심에 왕비와 후궁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자식들인 세자와 대군 공주와 옹주가 있었으며 그들의 배우자인 세자빈과 부마도있었다. 어디 그들 뿐이었던가, 500년의 긴 시간만큼이나 사돈에 팔촌으로 이어지는 외척과 종친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들의 가계도를 정리하고 어떻게 살고 어떤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풀어놓는데는 아이들을 위해 수많은 역사서를 편찬한 작가의 집척된 노하우가 큰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조선왕들의 묘호엔 광해군과 연산군과 같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세종 태조와 같이 종이나 조로 끝을 맺고있다. 거기엔 무슨 이유가 있는걸까. 분명 있었다. 조는 나라를 세운 임금에게만 붙일수 있었는데 조선엔 건국시조인 태조이외 세조 선조 인조 영조 순조등 6왕에 붙여졌었다. 거기엔 모두 그럴수 밖에 없었던 역사적 배경이있었다.

 

이렇듯 왕실의 이야기 하나하나는 모두 그냥 만들어진게 아니라 역사적 사건과 연관된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또한 왕의 사랑을 차지하기위한 질투의 화신쯤으로 비쳐졌던 왕비의 삶에는 왕 못지않은 중책이 있었음을 이제서야 알게된다. 600여명이 넘는 내명부의 여인들을 관리하는것은 물론이요 사대부집 여인들과의 끈끈한 교류도 이어가야했으며 왕의 사후 차기 왕권을 결정하는 막중한 권리와 의무또한 가지고 있었던것이다.

 

그리고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공주와 부마, 임금이 대지못한 대군과 종친등의 삶을 제대로 바라보게된다. 유교국가였던 조선은 적자와 서얼의 차별이 엄격해. 비교적 유보적이었던 왕실마저도 서자출신의 임금은 광해군 한사람뿐이었다. 그렇게 1인 독재였던 왕실에서 왕이 되지 못하면 일반 사대부보다못한 삶을 누릴수 밖에 없었던 왕족들은 정치적 희생양이 될수밖에도 없었다.  

 

그렇듯 왕실의 모든 사람들을 바라보는데있어 친근한 삽화와 고증된 사진을 통해 편안하게, 넓은 역사적 시야를 통해 폭넓게, 조선왕실의 비밀스런 사건을 통해 호기심가득하게 즐기다보니 전혀 지루한줄 모른채 푹 빠져버린다. 왕실의 내면을 들여다보니 조선의 역사가 다 정리된듯 한 눈에 들어오며 시원하다. 이들이 있어 조선 500년이 존재해었구나 역사가 이렇게 만들어졌었구나 너무도 드라마틱했을 실제의 삶이었다. 호기심과 지식이 공존하는 그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은 무엇보다 바른 역사알기가 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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