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3일 강릉 허난설헌 생가터

몇년전 강릉의 경포를 찾아왔을때는 보이지 않았는데 새로이 조성된듯했다.

작년 허난설헌에 관한 소설을 접한후 그녀의 불행했던 삶이

너무도 안타까웠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발길을 잡았었다.

아직도 공사중인 모습이 개관한지 얼마 안된듯하다.

 

    

 

비교적 잘 보존되어있던 생가터는 허균과 허난설헌이 어린시절 얼마나 행복했었는지를 보여주고있었다.

총 3채로 보이는 상당한 규모의 집과 아름다웠던 마당 아주 유복한 환경속에서

자유롭게 학문을 논했을 모습이 그려진다.

 

 

 

 

   

 

         

 



 

마당을 한껏 고풍스럽게 만들어주는 배롱나무

 



 

오빠들의 스승이었던 손곡 이달의 가르침으로 어린시절 부터

시문에 일찍 눈을 뜬 허난설헌은 그러한 응원의 힘과

자유로운 가풍속에서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공부를 할수 있었다한다

하지만 결혼후 남편보다 높았던 학식은 시부모님의 질타의 대상이되어

더욱 어려운 시집살이를 하게되고

연이어 잃어버린 자식들로 인해 그녀는 삶에 대한 미련이

거의 없었던듯 너무도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살아생전 본인에 의해 불태워졌고 나머지 작품들 역시

죽은후 태워버리라는 유언이 있었지만 그것을 정리한사람이 동생 허균이었다

그렇게 해서 살아남은 작품들은 중국에서 유명세를 타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새로운 인식을 하게되었다한다.

 



 



 

 

허균하면 우리가 가장 많이 기억하게되는 최초의 한글소설인 홍길동전

어린시절 서출과의 친분에서 그들의 부당함을 몸소 겪었던 허균이

그 아픔을 대변하고 있는 소설이 아닐까 싶다.

 



 

 

허균 :  조선중기 문신 겸 소설가. 소설 호는 교산  

        홍길동전은 사회모순을 비판한 조선시대 대표적 걸작이다. 

        조선의 문인 허엽의 세째아들로 적자였지만 서출인 스승 손곡 이달의 영향으로 서출에 많은 관심을 보였던 문인이었다.

        호방한 기개와 여인에 대한 감정의 표출등 돌출된 행동으로 탄핵을 받는등 파직과 승진의 곡절이 많았던 인물이기도하다 
         딸이 세자 후궁으로 간택되었는데 후궁이 소생을 낳게되면 하균이 실세로 등장할 우려가 있어 모함에 의해 역모혐의
        살해된것으로 추측 비참할 말로를 당한다.
 
허난설헌 :  본명 초희 호 난설헌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누나
                이달에게 시를 배워 8세때 이미 시를 지은 천재적인 시재를 발휘 15세의 나이에 김성립과 결혼
                연이어 딸과 아들을 모두 잃고 동생 허균이 귀양을 가는 등 불행한 자신의 처지를 시작으로 달래어 섬세한 필치와
                여인의 독특한 감상을 노래했으며, 애상적 시풍의 특유한 시세계를 이룩하였다.
                허난설헌이 죽은 후 동생 허균이 작품 일부를 명나라 시인 주지번에게 주어 중국에서 시집 난설헌집이 간행되어
                격찬을 받았고 1711년 분다이야 지로에의해 일본에서도서도 간행, 애송되었다. 선조 22년(1589년) 27세로 요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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