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이명원 지음 / 새움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이 참 처연하고 고풍스럽다
무슨 뜻인지 궁금했는데 책을 읽어 보니, 소금밭이란 몹시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의미한다
김장을 하려면 배추에 소금을 뿌려야 하듯, 뭔가를 이뤄 내기 위해 견뎌야 하는 힘든 상태를 저자는 소금밭이라 명명했다
그 표현이 참 신선하고 마음에 든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보면 메밀밭을 온통 흰소금을 뿌려 놓은 것 같다는 표현이 있는데 그것과는 다른 의미지만 둘 다 비슷한 정도의 산뜻함이 느껴진다
삶에 지치고 힘들어 있을 때 도서관의 서고에 들어가 오래 된 책들을 펼치고 책장을 넘길 때의 그 서늘한 감촉은, 잠깐 동안의 쉼표가 될 수 있을 듯 하다
나도 가끔 도서관에 가면 엄청나게 늘어선 책들 속에서 힘이 불끈 솟는 걸 느낀다
난 아직 어려서일까?
삶에 패배한 경험이 아직은 적기 때문인지, 도서관의 책들을 보면서 할 수 있다는 괜한 자신감이 생기는데, 저자는 중년의 나이를 반영하는 듯, 책에서 그저 작은 위안이나 휴식을 얻는 것 같다

대체적으로 서평들이 많았다 강유원의 표현을 따르자면 이건 서평도 아니고 그저 자신의 감상들을 늘어 놓은 잡문에 지나지 않지만, 나는 이런 수필류가 훨씬 좋다
이명원은 비평가라고 하지만, 본격적인 문학 비평은 피곤하다
알라딘의 리뷰를 읽을 때도, 자신의 삶에 비추어 격렬하게 느낀 점을 피력하는 글들이 좋다
딱딱하고 분석적인 감상문은 피곤하다
나는 리뷰를 읽으면서 그것을 쓴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느낀 점을 마구마구 풀어 내는 리뷰를 좋아한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이명원의 이 책들도 100% 공감할 수는 없었다
일단 서평 대상이 되는 책을 읽었어야 말이 통하지 않겠는가
내가 읽은 책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럴 때마다 짧은 독서 수준을 한탄하게 된다

표정훈의 책에서도 느낀 바지만, 저자 역시 비평가라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회한이 많은 것 같다
어느 직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말이다
(사실 나도 끊임없이 내 직업에 대해 갈등하고 회의하고 고민한다)
요즘처럼 책을 안 보는 시대에 책 비평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비평가들은 더욱 그럴 것이다
"영국문학기행" 을 쓴 김인성의 글을 읽으면서 참으로 감탄했지만, 그녀 역시 제대로 된 창작물을 내지 못하고 그저 비평에 머물러야 함을 애닯파 했다
그래도 이명원의 경우는 본격 문학 비평이라도 하는 사람이지만, 표정훈 같은 사람은 출판에 관한 일을 써서 먹고 사는 에세이스트이니, 그의 고민이 더욱 클 것 같다

강준만이 문학 비평을 하자, 문단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니가 문학에 대해 뭘 아느냐였다고 한다
저자는 외부 비판에 대해서도 열린 눈을 갖지 않으면 출판 위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런 게 바로 우리 안의 파시즘일까?)
저자는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고백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로 태어난 이상 남자가 기득권층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100%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므로 일부 페미니스트에게 아무리 자신이 페미니스트라 주장한달지라도 공격을 받는다고 한다
그의 고민을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이 기득권층임을 인정하는 것도 어려운데, 그것을 완전히 포기하라니,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가 추천하는 "행복한 페미니즘" 을 읽고 싶다
페미니즘이란 모든 차별을 거부하는 운동이므로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것과도 맥을 같이 한다는 흑인 페미니스트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허균에 관한 대목은 흥미로웠다
허균이라면 기껏해야 홍길동의 저자라는 사실 밖에 모르는데 개인사를 들어 보니 꽤나 호기롭고 매력적인 인물이었던 것 같다
특히 명문대가에서 태어났음에도 기존 체제에 적응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려한 이 비극적인 인물에 대해 호기심이 생긴다
북학의를 쓴 박제가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놀랍게도 박제가는 청나라 말을 쓰자고 제안한다
이명원에 따르면 박제가는 앞으로 100년도 못 돼 멸망할 청나라를 유토피아로 극찬했고, 완벽하게 그들을 따르자고 주장했다
영어 공용론을 주장한 복거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다
청나라가 세상의 전부라고 알고 있던 18세기 조선과 전지구적인 세계화가 이루어진 21세기의 대한민국을 똑같이 비교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힘들다
그렇긴 하지만, 미국을 따라 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라는 보수 우익들의 주장은 과거 역사에 비춰 볼 때 아무래도 억지스런 면이 있다
시대착오적으로 비추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가벼운 수필들이 많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이 사람은 정중동일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가 있으면 좋았으련만, 주로 책을 읽고 생각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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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진 2005-03-03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 안의 책들을 대충 읽기라도 했으면 별이 4개쯤 되었을텐데..저도 별세개였거든요. 이명원님의 글은 참 좋더라구요. ^^

책속에 책 2005-03-20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도 님말처럼 신선하고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강유원 지음 / 야간비행 / 2003년 5월
평점 :
절판


나를 또 우울하게 만드는 책이다
이런 서평집을 읽을 때는 반드시 거기 나온 책들을 먼저 읽었어야 하는데, 읽은 책이 거의 없다
그러니 수박 겉핥기도 아니고, 도무지 저자가 소개하는 책의 매력에 빠져 들 수가 없다
줄거리를 간단하게 요약한 것도 아니고,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쓴 것인데 공감할 수가 없으니 나는 그저 이 책의 글자만 읽고 있는 셈이다
저자가 서평의 칼날을 날카롭게 세웠다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지만, 나는 아직 즐길 수준이 안 된 것 같다
이 책에 소개된 책 중 10% 정도 밖에 읽지 않았으니, 서평집을 읽겠다고 책을 펴든 내 만용에 웃음이 나온다

강유원이라는 사람은 자부심이 참 강한 것 같다
정식으로 문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데 (회사원이라고 한다) 책 읽는 수준은 퍽 높다
일부러 서평을 쓸만한 책들만 모아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소개된 책들 중 만만한 게 하나도 없다
기껏해야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정도일까?
다음부터 서평집 고를 때는 내 수준에 맞는 책을 고르자
무지하게 속상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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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5-03-01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서평집은 그게 문제죠. 저도 겹치는 책이 별로 없어서 속상해할 것 같군요. 혹시 사더라도 거기 언급된 책들을 읽고난 뒤에 읽어야 할 것 같네요.

kleinsusun 2005-03-01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책을 읽고 강유원 비판하는 글을 썼었거든요.
그 글을 읽고 강유원의 제자(강유원은 모대학의 철학 강사랍니다)가 제 글에 대한 비판을 제 홈페이지 방명록에 올리고, 제 글을 강유원 홈페이지에도 올렸었죠. 한바탕 해프닝이었어요. ㅋㅋ 제가 쓴 글에서 강유원을 이렇게 표현했죠. "똘똘이 스머프".
심한 반발을 느낀 책이었어요.

marine 2005-03-01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룬데 마태우스님, 여기 소개된 책들이 제 수준에서 읽을 만한 게 별로 없더라구요 옛날에 "서재 결혼시키기" 읽을 때도 저자가 감동하던 책들이 다 듣도 보도 못한 것이라 좀 멍했던 기억이 나요

클라인수서님, 저도 수선님의 리뷰 보고 도서관에 신청해서 읽은 겁니다 알라딘의 저자 소개를 보면 철학 강사도 하지만 회사원이라고 쓰여 있길래 배수아처럼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줄 알았어요 수선님의 리뷰를 비판한 사람이 바로 그 제자였군요 음,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한 걸요??

이잘코군 2005-03-01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유원은 동국대 철학과에서 철학박사를 받았고, 웹에디터?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합니다. 철학은 영원한 취미로, 일은 따로 이렇게 하고 있는 셈이죠. 대단한 독서광이고 한겨레21엔가 씨네21에 글을 쓰기도 했답니다. ^^;

marine 2005-03-01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씨네 21이 맞을 거예요 문화일보에도 서평 기재하는데, 고미숙의 열하일기 리라이팅을 쓰레기라고 비판해서 그린비 출판사 사장이랑 설전을 벌였더군요 현재 회사는 그만뒀다네요? 이 분의 홈피에 들어가 봤는데 책에 대한 태도가 너무나 확고하고 엄격해서 남이 뭐라 한다고 해도 콧방귀도 안 뀔, 자긍심이 대단한 분 같아요
 
모든 책은 헌책이다 - 함께살기 최종규의 헌책방 나들이
최종규 글 사진 / 그물코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제목은 참 좋은데, 내용은 참 없다
혹시 헌책방 순례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나처럼 헌책방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영 아니올씨다다
책은 종이질이 얇아 가볍고 좋은데, 안의 내용까지 깊이가 얇다 보니 실망스럽다
딱 한 가지 좋은 점은 헌책방 풍경을 찍은 흑백 사진들이 아름답다는 점이다
조희봉이 쓴 "전작주의자의 꿈" 이 더 나은 것 같다

책에 관한 책을 읽는 까닭은 책을 사랑하는 나의 열정을, 글솜씨 좋은 사람이 술술 풀어내 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데 이처럼 나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수준의 글을 읽다 보면 좀 화가 나려고 한다
그래도 일단 책으로 묶으려면 어느 정도 글빨은 되야 하는 거 아닐까?
내가 헌책방을 가보지 않기 때문에 더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헌책방들을 들여다 보면서, 다양한 문화의 공존에 대해 생각했다
디지털 첨단 문화를 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꾸질꾸질한 헌책방에 죽치고 앉아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것에 몰두하느냐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린 문제이고, 그것의 가치는 비슷한 무게를 지닌다고 믿는다
요즘 세상에 헌책방 같은 델 왜 가냐고 해 버리면, 갑자기 슬픈 생각이 밀려온다
정작 나는 헌책방을 이용하지 않는데도, 내가 가진 소박한 다른 취미들마저 도매금으로 하찮게 여겨지는 것 같아 몹시 서글퍼진다
대한민국 사회는 주류에 대한 욕망이 강한 곳이다
그래서 비주류는 늘 슬프고 약자의 설움을 감수해야 한다
헌책방 문화도 일종의 비주류다
넓게 보면 디지털 시대에 책에 탐닉한다는 것 자체도 하나의 비주류일지도 모른다
출판의 위기란 비주류로 전락한 책의 현실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사회적 지표일 것이다

선두 그룹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절대적으로 숭앙받고, 나머지는 다 천시되는 그런 독재적인 분위기가 사라졌음 좋겠다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개인은 훨씬 행복해질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종이책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하기 보다는, 책은 책 나름대로, 컴퓨터는 컴퓨터 나름대로 각자의 가치를 지니는 그런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헌책방도 마찬가지로 우리 문화의 하나로 당당하게 자신의 자리를 잡아가면 좋겠다
헌책방 하면 구질구질 하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그래서 곧 사라질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을 떠올렸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헌책방이 가진 숨은 힘을 발견했다
인터넷 마케팅 등으로 판로를 넓히고 있다고 하니, 비록 대학가에서는 그 위상을 잃고 찾기도 힘든 뒷골목 등으로 쫓겨 났다고 하나, 절대 그 명맥이 쉽게 끊어지지 않으리라 믿는다

헌책방은 또 하나의 문화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지적대로 헌책방에서 살아 남는 책이라면, 두 번 읽어도 아깝지 않을 책일 것이다
시대를 넘어서 다양한 세대에게 읽히는 책이 바로 고전 아닌가?
그렇다면 헌책방에서 거래되는 책들은 독자들에게 그 수준을 인정받는 책이리라
헌책방 주인들도 안 팔리는 책, 안 찾는 책은 안 산다고 한다
그러니까 일단 헌책방에 진열된 책들은 최소한의 가치는 획득한 셈이다
수많은 책들이 난무하고 금세 사라져 버리는 요즘 같은 세상에, 헌책방에 살아 남는 책들은 나름의 저력을 가졌을 것 같다

나는 지방에 살기 때문에 헌책방을 쉽게 접하지 못한다
저자의 아쉬움처럼 우리나라의 서울 중심주의는 지방 사는 사람들에게 문화의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
어쩌면 이것 역시 문화의 다원성을 가로막는 방해 요인일지도 모른다
나중에 서울로 상경하게 되면 헌책방 순례라는 재밌는 취미를 가져도 좋을 것 같다
일단 헌책방은 가격이 싸기 때문에 많은 책을 사는데 부담이 없고, 절판된 책들도 쉽게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90년대 초반에 출판되는 책만 해도 대부분이 품절이라 구하기 어려운데 헌책방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가벼운 마음으로 헌책방을 둘러 보다 보면 뜻밖의 성과를 얻을지도 모른다
내 삶에 영향을 미칠 좋은 책들을 찾아내는 성과 말이다

헌책방 문화라는 독특하고 고전적인 이야기를 좀 더 다듬어진 문체로 재밌게 풀어 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마치 옆사람에게 얘기하는 식의 가벼운 문체와 깊이가 얕은 내용이 독자를 실망스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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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5-03-01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주변에 헌책방이 많은데도 잘 안갑니다... 품절된 책을 구할 때는 해당 출판사에 찾아가 사곤 했지요... 그래도 어쩌다 헌책방에 갈 때면 몇권 사가지고 옵니다. "별로 안싸네!" 이래가면서요.

marine 2005-03-01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헌책방은 익숙치가 않네요 그런데 품절된 책은 그 출판사로 가면 되는 건가요? 전 주로 도서관에서 찾습니다 헌책방 가격이 크게 싼 건 아니군요

2005-03-06 0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3-06 0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marine 2005-03-07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덕분에 방금 답변 쓰고 왔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드려요 ^^

2005-03-07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marine 2005-03-08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하이드님? 저자가 답글 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의외의 반응에 놀라게 되는 것 같아요 전 번역자가 제 리뷰 고맙다는 칭찬만 두 번 받았다가,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적잖이 당황했답니다 어쨌든 하이드님, 감사합니다 ^^

비로그인 2005-03-12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헌책방..그 옛날 한번 가서 바가지 쓴 이후로 안 갑니다. 사실 헌책방에서 구해야할 정도로 사고 싶은 책도 없구요. 아 있긴 있는데 개인적으로 새책을 선호하는지라.

marine 2005-03-14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헌책방에 생각보다 신간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가벼운 마음으로 가서 몇 권 고르는 재미도 있다고 하더라구요 기회가 되면 전 한 번 가 보고 싶어요 저도 새책 좋아하는데, 부담없이 책을 고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책값이 아주 싸지는 않다고 하더군요

2014-12-20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흡연 여성 잔혹사
서명숙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은 참 멋지다
기가 막힌 제목을 붙힌 것 같다
그런데 내용은 좀 약하다
서명숙이라면 시사저널을 정기구독 하던 시절, 편집장 인사를 통해 자주 만나던 인물이다
어린 마음에, 여자가 잡지사 편집장도 될 수 있구나, 신기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알라딘에 올라온 리뷰도 좋고, 저자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는데 전체적인 내용은 너무 수필식이지 않나, 다소 실망스럽다
여성 흡연이라는 민감한 문제에 대해 사회적인 분석을 시도한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제목이 어찌나 거창하고 중후한지 깜빡 속은 셈이다) 담배에 얽힌 본인의 일화 소개가 대부분을 이룬다
소재가 담배일 뿐, 자기 이야기를 풀어 쓴 수필집이다
인문학 도서를 기대한 나에게는 예상과 다르기 때문에 오는 약간의 씁쓸함이 있다
그렇지만 가벼운 수필로 대한다면 나쁘지 않은 글들이다

얼마 전에도 지나가던 여자가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20대 노점상이 시비를 붙여 경찰서에까지 끌려 간 기사가 실렸다
나 역시 오래 전에 PC 통신에서 여자가 담배를 피워도 되느냐의 논리로 한바탕 설전을 벌인 적이 있다
그 때 예시로 등장한 것 중에, 검은 색이 아름답다였는데, 나와 토론을 하는 남자는 자신을 속이지 말라면서, 어떻게 검은 것이 아름다울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검은색은 흰색에 비해 당연히 더러운 색이지 않냐고 했다
당연히 흑인도 백인에 비해 떨어지는 인종이라는 의미가 포함되는 발언이었다
어이없는 논리 전개를 읽으면서, 편견이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논리적으로는 옳고 당연한 이야기도 사회적인 편견에 휩싸이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부당한 차별을 받게 된다
억울하다고 호소해 봐도 다수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졸지에 약자들은 이상한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다

여성 흡연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남녀 평등이라는 이유 때문에 담배를 피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끊임없이 경고하지만, 저자의 분석대로 여성 흡연을 기호품의 하나로 봐 준다면,굳이 건강을 담보로 정치적 흡연을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여성 흡연과 남성 흡연이 같은 의미, 즉 개인적인 기호의 하나로 여겨진다면, 요즘 같은 금연 열풍에 여성 역시 기꺼이 동참할 것이다
왜 여성 흡연이 증가하느냐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원인 분석과 해결책이 필요하다
단순히 건강에 나쁘다, 임신할 사람들이 무책임 하다는 식으로 몰아 부친다면 여성들의 정치적 흡연은 어쩔 수 없이 계속될 것이다
제발 여성들도 본인의 건강을 생각해 담배를 끊을 수 있도록, 여성 흡연을 남성 흡연처럼 개인의 기호로 평범하게 봐 주었음 좋겠다

여성 흡연은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자기 주변에서 담배 피우는 여자를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기 여자 친구나, 딸이나, 엄마나, 동서 등등이 담배 피우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
여성 흡연은 늘고 있으나 정작 주변에서는 찾기 힘든 실정이다
그만큼 여성 흡연은 비공개적이고 비밀스러운 곳에서 은밀히 행해지는 일종의 주홍글씨다
커밍아웃을 하는 순간 졸지에 싸가지 없고 막나가는 여자로 찍히기 쉽상이다
삐딱한 시선을 무릅쓰고 공개적으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여성은 드물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유숙렬 같은 사회적 발언권이 센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은 뒤로 감출 수 밖에 없다
혼전순결과 더불어 여성 흡연은 대표적인 이중 잣대다
남자가 하면 기호일 뿐이고 여자가 하면 도덕적 해이라고 생각하는 이 편견을 과연 어떻게 깨부숴야 할까?
태아 때문이라고 말하는 남자들에게는 이런 말을 하고 싶다
그렇다면 독신 여성이나 출산 계획이 없는 여성은 피워도 되는 것인가?
간접 흡연의 피해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학생 운동으로 경찰에 잡혀간 후 저자는 가방에서 나온 담배 때문에 끔찍한 폭언과 함께 싸대기를 맞게 된다
더 기가 막힌 것은 함께 있던 여경들이 혀를 차며 행실 운운하면서 부모 걱정을 하더라는 것이다
남학생이 잡혀 가면 자백을 받기 위해 흔히 이용되는 것이 바로 담배다
취조자가 담배를 권하면 취조받는 이는 긴 연기를 한 번 뿜은 후 한숨을 쉬고 말을 열기 시작한다
TV나 영화 등에서 흔히 연출되는 장면이다
그런데 담배 피우는 여성이 잡혀 들어가면 그 담배 때문에 더욱 폭언에 시달리며 폭력이 가해지고 도덕적으로 형편없는 사람으로 전락하게 된다
도덕적인 판단과 전혀 상관없는 기호품 하나 때문에, 니까짓 년들이 나라 걱정이냐, 니 행실부터 똑바로 해라라는 폭언을 들었을 때 얼마나 비참하고 억울하고 분노했을까?
말은 민족고대 운운하면서 정작 일상에서는 권위주의가 판치는 대학 현실에 분노했다던 저자의 후배 말이 실감나게 느껴진다
권위주의적인 정치 못지 않게 일상의 파시즘도 개인의 삶을 억압한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잊곤 한다

마지막 장에 실린 저자의 금연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웠다
뭐든지 한 번 빠지면 쉽게 못 헤어나오는 저자처럼 나 역시 중독 증세가 심한 사람이라 어떻게 금연에 성공했는지를 꼼꼼하게 읽었다
임신했을 때조차 담배와 헤어지지 못한 저자는 현재 금연 1년째라고 한다
보통 금연에 성공했다고 하려면 최소 2년은 필요하다고 하니까 아직 저자의 금연은 진행중인 셈이다
"긍정적 중독" 이라는 책을 읽은 후 저자는 달리기에 빠졌다고 한다
달리기 힘들 때는 반신욕으로 담배 생각을 잊었다고 한다
남성 흡연자들과는 달리 여성 흡연자는 금연도 비밀리에 혼자 해결해야 한다
담배 피운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니, 금연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담배를 끊는다고 선언하면 가족들이 도와 주는 남자들과는 달리, 여자들의 금연은 혼자 몰래 해결해야 하므로 배는 힘들 것이다
저자는 대학 노트를 산 후 금연 일지를 5년째 적고 있다고 한다
끊임없는 실패와 금연 결심의 반복으로 이제는 금연 중독이 될 지경이라고 호소하는 저자는, 결국 1년의 성공을 지속시키고 있다
보통 금연을 하게 되면 군것질거리로 입이 심심한 것을 달래는데, 이 때는 체중증가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저자는 달리기와 반신욕, 그리고 담배를 둘로 나눈 후 냄새를 맡는 방법 등으로 욕구를 이겼다고 한다

술은 마셔도 되지만 담배는 안 된다는 논리는 너무나 억지스럽고 황당하다
할머니는 담배를 피워도 되지만 젊은 여자는 안 된다는 사회적 통념도 인종차별에 버금가는 편견일 뿐이다
제발 여성들도 건강을 생각해 금연을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면 좋겠다
정치적 흡연을 할 수 밖에 없는 차별적인 분위기가 바뀐다면 여성 흡연률은 훨씬 떨어질 것이다
더불어 저자의 완벽한 금연 성공을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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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3-12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는 남자든 여자든 담배 피는 것이 좀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전혀 영향을 안주면 상관이 없는데 그 연기를 고스란히 비흡연자가 맡게 되니까요. 길거리에 앞에 가는 사람이 담배 피면 정말 피할곳도 없고...죽겠어요.

marine 2005-03-14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접 흡연의 폐해를 좀 더 널리 알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술과 담배는 오랫동안 기호품으로 알려져 왔기 때문에,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규제하기가 쉽지 않을 걸로 보입니다 더구나 여성 흡연은 사회에서 금기시 되어 왔기 때문에 정치적 흡연을 하는 여성들도 많구요 남에게 피해가 안 가는 선에서는 개인의 선택권을 존중해 주는 분위기로 나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유대인 살림지식총서 39
정성호 지음 / 살림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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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실망스러우려고 한다
이런 작은 문고판 책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한 게 잘못이지만, 미셸 푸코나 샤르트르 등의 책은 참 좋았는데, 이건 영 아니다
워낙 주제가 다양하고 저자도 많다 보니 수준있는 책도 나오고 떨어지는 책도 나오는 게 당연하겟지만, 그래도 살림 총서에 대한 나의 애정 때문인지 몹시 실망스럽다

유대인에 대해 관심을 가진 건 성경을 읽으면서 부터다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성경을 접해 왔지만 목사님이라는 중개인을 통하지 않고 스스로 읽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이다
내 머리로 직접 읽는 성경은 마치 문학 작품처럼 너무너무 흥미진진 했다
또 인간적인 고민을 하는 예수의 모습도 살아 다가왔고, 인간의 위악적인 부분이나 신의 분노, 질투 등을 가감없이 기록한, 어찌 보면 오만하기 짝이 없는 이 경전이 너무 재밌다
그래서 이 종교를 처음으로 만들어 낸, 성경에 따르면 선택받은 민족인 유대인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과연 그들은 어떤 민족인가?
수많은 박해와 수천년의 유랑 생활에도 굴하지 않고 기어이 2천년 만에 국가를 세우고 만, 세계 유일의 초대강국인 미국을 지배하는 이 민족의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내가 가장 궁금했던 점, 즉 소수 민족인 그들이 갑자기 세계의 전면에 나서 지배력을 행사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은, 이 책 보다는 이원복이 쓴 먼나라 이웃나라의 미국인편이 훨씬 도움됐다
이 책의 저자는 유대인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과정 보다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유대인의 특성에 초점을 맞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이 특성들에 대해 좀 부정적이다
저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대인에 대해 별 감정이 없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과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사람이면 금방 알 것이다
종말론을 강조하는 목사들은 이스라엘의 건국과 발전을 예수 재림이 가까워졌다는 증거로 제시한다
물론 이스라엘은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이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드러냈다는 교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정치를 현실적으로 보지 않고 종교 교리에 끼워 맞춰 이스라엘이 중동을 지배하는 것은 성경의 섭리에 맞는 당연한 것이라는 식의 논리를 듣고 있자면, 친미주의, 친서방주의의 냄새를 맡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우리 기독교는 미국에 대해 절대적으로 종속되어 있고, 미국 반대는 곧 나라의 멸망이라고 주장할 정도다
이런 미국이 지지하는 이스라엘에 대해 우호적인 시선을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저자는 우리가 이스라엘에 대해 아무 이해 관계도 없기 때문에 유럽 사람들과는 달리, 그들에 대해 호불호가 없다고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역시 아무 관계도 없는 아랍 사람들은 왜 그렇게 배척하고 싫어하는가?

저자는 유대인에 대한 편견을 벗겨 주고 싶다고 저술 목적을 밝히지만, 편견을 벗기기는 커녕 오히려 그것을 더욱 강화시킨다
유대인은 머리가 좋고, 유대인은 자식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고, 유대인은 창의적이고, 유대인은 상술에 뛰어나고, 유대인은 신의를 잘 지키고, 유대인은 전쟁이 나면 당장 고국으로 달려가고...
너무 많이 다 쓰기가 힘들 정도로 저자는 그 동안 한국 사회에 널리 퍼진 유대인 신화를 다시 한 번 지면을 통해 강조한다
"유대인" 이라는 중립적인 제목 대신 "유대인의 장점" "유대인의 성공 비결" 등 보다 책 내용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제목을 달았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저자는 유대인의 결속력을 통해 우리도 세계 각지에 흩어진 한민족의 힘을 모아 강력한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고 결론짓지만, 이 주장에도 동의할 수 없다
왜 민족은 반드시 단결해야 하는가?
근대 국가가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에 대한 충성도를 높혔다면, 보다 진일보한 개념은 국가를 넘어서 진정한 개인의 힘으로 서는 것이다
세계화란 바로 이 민족국가를 뛰어 넘는 개념 아닌가?
물론 헌팅턴의 주장처럼 세계화란 아직은 그저 허상에 불과할 뿐, 여전히 민족과 국가는 개인을 가장 안전하게 보장해 주는 장치일 수도 있지만, 민족과 국가를 뛰어넘는 개념이 진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다른 나라에 살면서도 자기 고유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문화를 지키려는 노력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민간 나라에서 태어난, 말하자면 그 곳 문화를 체험하면서 자란 이민 2세대, 3세대 등에게도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라는 것은 개인의 주체성에 대한 모독일 수 있다
선택은 철저하게 개인에게 맡겨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지 부모가, 혹은 조부모가 한국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미국식으로 교육받은 이들에게 한국인의 정체성을 요구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 아닐까?

유대인의 결속력은 2천년이 넘는 방랑의 역사에 기초한 특별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다른 민족이 유대인처럼 될 수도 없고, 그들을 본받을 필요도 없다
나는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거의 완벽한 민족으로서의 이 유대인 신화가 참 부담스럽다
유대인 교육법, 유대인의 상술, 유대인의 조국애 등 과도할 정도로 찬양 일색인 이 신화는 우리의 친미 성향과 절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100페이지도 안 되는 책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 것 같다
살림 총서에서 나온 미셸 푸코나 장 샤르트르 등의 책은 짧은 내용이 무색할 정도로 깊이 있고 친절하게 그들의 사상을 쉽게 안내해 줬는데, 이 책은 너무나 피상적이고 표면적이다
어떻게 해서 유대인들이 오랜 시간 동안 방랑하면서도 살아 남았는지, 그들이 세계 경제를 주무르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인지, 이스라엘과 미국의 결속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중동 문제 해결에 대한 해답은 무엇인지 등에 관한 보다 깊이있는 분석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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