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 여성 잔혹사
서명숙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은 참 멋지다
기가 막힌 제목을 붙힌 것 같다
그런데 내용은 좀 약하다
서명숙이라면 시사저널을 정기구독 하던 시절, 편집장 인사를 통해 자주 만나던 인물이다
어린 마음에, 여자가 잡지사 편집장도 될 수 있구나, 신기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알라딘에 올라온 리뷰도 좋고, 저자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는데 전체적인 내용은 너무 수필식이지 않나, 다소 실망스럽다
여성 흡연이라는 민감한 문제에 대해 사회적인 분석을 시도한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제목이 어찌나 거창하고 중후한지 깜빡 속은 셈이다) 담배에 얽힌 본인의 일화 소개가 대부분을 이룬다
소재가 담배일 뿐, 자기 이야기를 풀어 쓴 수필집이다
인문학 도서를 기대한 나에게는 예상과 다르기 때문에 오는 약간의 씁쓸함이 있다
그렇지만 가벼운 수필로 대한다면 나쁘지 않은 글들이다

얼마 전에도 지나가던 여자가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20대 노점상이 시비를 붙여 경찰서에까지 끌려 간 기사가 실렸다
나 역시 오래 전에 PC 통신에서 여자가 담배를 피워도 되느냐의 논리로 한바탕 설전을 벌인 적이 있다
그 때 예시로 등장한 것 중에, 검은 색이 아름답다였는데, 나와 토론을 하는 남자는 자신을 속이지 말라면서, 어떻게 검은 것이 아름다울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검은색은 흰색에 비해 당연히 더러운 색이지 않냐고 했다
당연히 흑인도 백인에 비해 떨어지는 인종이라는 의미가 포함되는 발언이었다
어이없는 논리 전개를 읽으면서, 편견이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논리적으로는 옳고 당연한 이야기도 사회적인 편견에 휩싸이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부당한 차별을 받게 된다
억울하다고 호소해 봐도 다수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졸지에 약자들은 이상한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다

여성 흡연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남녀 평등이라는 이유 때문에 담배를 피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끊임없이 경고하지만, 저자의 분석대로 여성 흡연을 기호품의 하나로 봐 준다면,굳이 건강을 담보로 정치적 흡연을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여성 흡연과 남성 흡연이 같은 의미, 즉 개인적인 기호의 하나로 여겨진다면, 요즘 같은 금연 열풍에 여성 역시 기꺼이 동참할 것이다
왜 여성 흡연이 증가하느냐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원인 분석과 해결책이 필요하다
단순히 건강에 나쁘다, 임신할 사람들이 무책임 하다는 식으로 몰아 부친다면 여성들의 정치적 흡연은 어쩔 수 없이 계속될 것이다
제발 여성들도 본인의 건강을 생각해 담배를 끊을 수 있도록, 여성 흡연을 남성 흡연처럼 개인의 기호로 평범하게 봐 주었음 좋겠다

여성 흡연은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자기 주변에서 담배 피우는 여자를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기 여자 친구나, 딸이나, 엄마나, 동서 등등이 담배 피우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
여성 흡연은 늘고 있으나 정작 주변에서는 찾기 힘든 실정이다
그만큼 여성 흡연은 비공개적이고 비밀스러운 곳에서 은밀히 행해지는 일종의 주홍글씨다
커밍아웃을 하는 순간 졸지에 싸가지 없고 막나가는 여자로 찍히기 쉽상이다
삐딱한 시선을 무릅쓰고 공개적으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여성은 드물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유숙렬 같은 사회적 발언권이 센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은 뒤로 감출 수 밖에 없다
혼전순결과 더불어 여성 흡연은 대표적인 이중 잣대다
남자가 하면 기호일 뿐이고 여자가 하면 도덕적 해이라고 생각하는 이 편견을 과연 어떻게 깨부숴야 할까?
태아 때문이라고 말하는 남자들에게는 이런 말을 하고 싶다
그렇다면 독신 여성이나 출산 계획이 없는 여성은 피워도 되는 것인가?
간접 흡연의 피해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학생 운동으로 경찰에 잡혀간 후 저자는 가방에서 나온 담배 때문에 끔찍한 폭언과 함께 싸대기를 맞게 된다
더 기가 막힌 것은 함께 있던 여경들이 혀를 차며 행실 운운하면서 부모 걱정을 하더라는 것이다
남학생이 잡혀 가면 자백을 받기 위해 흔히 이용되는 것이 바로 담배다
취조자가 담배를 권하면 취조받는 이는 긴 연기를 한 번 뿜은 후 한숨을 쉬고 말을 열기 시작한다
TV나 영화 등에서 흔히 연출되는 장면이다
그런데 담배 피우는 여성이 잡혀 들어가면 그 담배 때문에 더욱 폭언에 시달리며 폭력이 가해지고 도덕적으로 형편없는 사람으로 전락하게 된다
도덕적인 판단과 전혀 상관없는 기호품 하나 때문에, 니까짓 년들이 나라 걱정이냐, 니 행실부터 똑바로 해라라는 폭언을 들었을 때 얼마나 비참하고 억울하고 분노했을까?
말은 민족고대 운운하면서 정작 일상에서는 권위주의가 판치는 대학 현실에 분노했다던 저자의 후배 말이 실감나게 느껴진다
권위주의적인 정치 못지 않게 일상의 파시즘도 개인의 삶을 억압한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잊곤 한다

마지막 장에 실린 저자의 금연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웠다
뭐든지 한 번 빠지면 쉽게 못 헤어나오는 저자처럼 나 역시 중독 증세가 심한 사람이라 어떻게 금연에 성공했는지를 꼼꼼하게 읽었다
임신했을 때조차 담배와 헤어지지 못한 저자는 현재 금연 1년째라고 한다
보통 금연에 성공했다고 하려면 최소 2년은 필요하다고 하니까 아직 저자의 금연은 진행중인 셈이다
"긍정적 중독" 이라는 책을 읽은 후 저자는 달리기에 빠졌다고 한다
달리기 힘들 때는 반신욕으로 담배 생각을 잊었다고 한다
남성 흡연자들과는 달리 여성 흡연자는 금연도 비밀리에 혼자 해결해야 한다
담배 피운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니, 금연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담배를 끊는다고 선언하면 가족들이 도와 주는 남자들과는 달리, 여자들의 금연은 혼자 몰래 해결해야 하므로 배는 힘들 것이다
저자는 대학 노트를 산 후 금연 일지를 5년째 적고 있다고 한다
끊임없는 실패와 금연 결심의 반복으로 이제는 금연 중독이 될 지경이라고 호소하는 저자는, 결국 1년의 성공을 지속시키고 있다
보통 금연을 하게 되면 군것질거리로 입이 심심한 것을 달래는데, 이 때는 체중증가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저자는 달리기와 반신욕, 그리고 담배를 둘로 나눈 후 냄새를 맡는 방법 등으로 욕구를 이겼다고 한다

술은 마셔도 되지만 담배는 안 된다는 논리는 너무나 억지스럽고 황당하다
할머니는 담배를 피워도 되지만 젊은 여자는 안 된다는 사회적 통념도 인종차별에 버금가는 편견일 뿐이다
제발 여성들도 건강을 생각해 금연을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면 좋겠다
정치적 흡연을 할 수 밖에 없는 차별적인 분위기가 바뀐다면 여성 흡연률은 훨씬 떨어질 것이다
더불어 저자의 완벽한 금연 성공을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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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3-12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는 남자든 여자든 담배 피는 것이 좀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전혀 영향을 안주면 상관이 없는데 그 연기를 고스란히 비흡연자가 맡게 되니까요. 길거리에 앞에 가는 사람이 담배 피면 정말 피할곳도 없고...죽겠어요.

marine 2005-03-14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접 흡연의 폐해를 좀 더 널리 알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술과 담배는 오랫동안 기호품으로 알려져 왔기 때문에,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규제하기가 쉽지 않을 걸로 보입니다 더구나 여성 흡연은 사회에서 금기시 되어 왔기 때문에 정치적 흡연을 하는 여성들도 많구요 남에게 피해가 안 가는 선에서는 개인의 선택권을 존중해 주는 분위기로 나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