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여자 (2disc) - 할인행사
장진 감독, 이나영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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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는 네티즌들 평 때문에 봤는데 감독이 장진이란 걸 몰랐다
알았다면 안 봤을텐데 말이다
그의 전작 "간첩 리철진" 이나 "킬러들의 수다" 등을 통해 나하고 장진 감독의 작품은 서로 코드가 안 맞는다는 걸 알았는데 이번 영화를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배우를 보고 영화를 고르기 보다는 감독을 보고 고르는 게 훨씬 더 안전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느끼게 한 영화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상큼하고 따뜻하며 소박한 매력은 있다
특히 청룡영화제 여주 주연상에 빛나는 이나영의 귀여운 연기가 볼 만 하다
짝사랑 하던 남자와 영화를 보러 왔는데 옛 애인을 만나 자신을 그냥 아는 여자라고 소개하는 걸 보고 풀이 죽은 이나영, 영화 볼 때 살짝 물어 본다
"아는 여자가 몇이나 돼요?"
이나영 못지 않게 순진하기 짝이 없는 정재영은 어색한 표정을 던지며 한 마디 내뱉는다
"그 쪽 한 사람 뿐인데요"
그러자 이나영 얼굴, 순간 환하게 밝아지면서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웃음을 참는데, 그 표정이 너무 귀여웠다
저런 일상적인 행복의 모습을 잘 포착해 낸 걸 높이 사서 여우 주연상을 받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정재영의 연기는 지루했다
어수룩한 캐릭터 탓도 있겠지만, 또 감독의 요구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너무 답답해서 야, 좀 적극적으로 살아 봐라, 너 야구 선수잖아, 스포츠맨 답게 좀 패기가 있어야지, 혼자 이렇게 중얼거릴 정도였다
보통 스포츠맨이라면 저돌적이고 물불 안 가리는 열정적인 성격으로 묘사되는데, 영화 속의 정재영은 2류 선수도 아닌, 프로 야구팀의 선발이면서도 어찌나 소심하고 답답하며 또 소박하던지...
맨날 지하철 타고 버스 타는 장면만 나와서 무슨 야구 선수가 차도 없냐, 이런 생각까지 했다

영화를 위한 장치였겠지만, 의사의 오진은 소송감이었다
정재영 보고 암이라고 두 달 밖에 못 산다고 하니까 어리숙한 그는, 집을 담보로 1억을 빌려 불쌍한 사람 돕고 산다
그런데 불우 이웃 돕기, 이런 게 아니라 집에 들어 온 도둑에게 개과천선 하라고 돈 쥐어서 보내는 식이다
순진하고 착한 성격이 잘 드러내는 장면이다
1억이나 빌렸으면 원없이 쓰고 화려하게 살아볼텐데 기껏 한다는 게 도둑놈 적선하는 거라니, 참...
어쩜 그래서 이나영처럼 착하고 순진한 아가씨가 몇 년 동안 짝사랑 하는 건지도 모른다

가장 하이라이트는 야구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이나영이 정재영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공을 잡아서 1루에 안 던지고 관중석으로 던지면 어떻게 되요? 되게 궁금하다"
참 맹한 아가씨다
그런데 두 달 밖에 못 사는 줄 알고 마지막 등판을 한 정재영이 9회 말 투아웃에서 원바운드 된 타자의 공을 잡았는데, 이나영의 소원을 들어 주기 위해 진짜로 관중석에 던져 버린 것이다
아무리 두 달 밖에 못 사는 시한부 인생이라지만 참 대단하다
그 용기가 가상하다
학생들 아마추어 경기도 아니고 프로에서, 그것도 완봉승을 거두기 직전의 순간에 그런 또라이 짓을 하다니, 이건 시한부 인생이고 뭐고 간에 순전히 성격 탓이다
나중에 의사 오진인 거 알고 미쳐서 광분하지만 말이다
(영화와 상관없는 내용이지만 이러니까 암 같은 중요한 질병은 꼭 여러 병원에서 확진해 볼 필요가 있다 가끔 이런 어이없는 실수가 벌어지곤 한다 병원도 사람이 운영하는 곳이니, 어쩔 수 없는 통계상의 오류가 있는 것 같다)

어리숙하지만 순진하고 착한 두 남녀, 이나영과 정재영의 사랑 만들기라고 보면 된다
영화 내용으로 봐서는 이나영이 아주 아깝긴 하지만 초등학교 때 자기 동네로 이사 온 중학생 오빠를 십 여년 동안 짝사랑 한 것이 이뤄졌으니, 대단하다
로맨틱 코메디 영화인데 장진식 코메디라고 보면 된다
"킬러들의 수다" 같은 좀 느리고 어이없는 웃음 코드들이 간간히 섞여 있다
"간첩 리철진" 에서도 느낀 바지만 감독의 성향 자체가 아주 느린 것 같다
전개가 어찌나 천천히 가는지 답답했다
그렇지만 퍽 개성적인 감독임은 분명하다
김정은 나오는 흔한 로맨틱 코메디와는 분명하게 구분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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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필요없는 교육 문음문고 이시대의 교육 12
제임스 툴리 지음, 손준종 옮김 / 문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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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처음에 국가가 필요없는 교육이라길래,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난 모던 스쿨 같은 걸 말하는 줄 알았다
즉 사회주의적인 교육 이념인 줄 알았는데, 왠걸 이건 시장 경제에 교육을 맡기라는 완전히 자유주의적인, 정반대의 이야기다
제목을 좀 다른 쪽으로 바꿔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원제가 Education without State니까 제대로 번역하긴 했는데, 어쨌든 제목에서 연상된 것과 내용은 전혀 다르다

학교를 완전히 시장 경제에 맡겨야 한다는 것은 생각도 해 본 일이 없다
교육이라면 그야말로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 대표적인 국가의 의무 아닌가?
그런데 학교를 시장에 맡겨 돈 내는 만큼 교육받을 수 있게 한다면 빈곤층의 교육은 어찌 할 것이며, 상류층은 계속 질 좋은 교육을 받아 신분제를 고착시키지 않겠는가?
그런데 저자는 이것을 전혀 다른 관점으로 본다
시장이 도입되더라도 평등이나 형평성에 크게 저해되지 않으며 국가가 학교를 떠맡은다고 해서 모두에게 똑같은 기회가 돌아가리라는 실제적인 증거를 대 보라고 한다
사실 엄밀히 말해서 막연히 평등한 교육이 실시되리라 생각할 뿐이지, 따지고 들자면 문제투성인 게 오늘날 교육의 현실이다
공교육의 붕괴를 얘기하는 현 시점에서 시장 경제에 의한 학교 교육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시장 경제의 효율성에 주목한다
국가가 모든 학교를 맡고 있기 때문에 현 사회의 빠른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과거의 타성에 젖어 오히려 국민들은 형편없는 교육 서비스를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낡은 학교, 수업보다 더 중시되는 수많은 잡무들, (엄마가 선생님이기 때문에 공무가 얼마나 많은지는 잘 알고 있다) 승진에 대한 부담이 적은 대신 똑같은 수업으로 일관하는 교사들, 학교 폭력, 공부 잘 하는 학생만 우대하는 분위기, 대입 학원으로 전락해 버린 고등학교 교육들, 이제는 입시 준비마저 제대로 하지 못해 학원에 맡겨 버리는 무기력함, 촌지 문화, 폐쇄되어 가는 농촌이나 낙도의 분교들, 강남 8학군의 치솟는 땅값....
문제를 나열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원래 공기업이라는 게 효율성이나 경제성 보다는 형평성 등을 더 중시하기 때문에 비효율적인 부분이 많기 마련이다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주의도 빼놓을 수 없는 문제거리이고, 교사들 역시 다른 직종에 비해 발전 속도가 늦는 것도 사실이다
저자는 국가가 학교 교육을 통제하기 때문에 소비자인 학생들이 더 좋은 시스템에서 더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학교는 낡아 빠졌고, 우수한 학생들도 짜여진 프로그램에 무조건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몇년 안에 끝낼 수업을 일정 기간 동안 반복한다
반대로 학습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들 역시 이해하든 못하든 무조건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끌려 가야 하고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채 졸업하고 만다
그들은 사회에 나와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재교육을 받거나, 사회의 부적응자가 되어 폭력 집단을 형성하거나 하층민으로 전락하게 된다
오늘날 학교 폭력도 어찌 보면 일방적인 학습 프로그램을 강요하기 때문에 거기에 적응하지 못한 수많은 학생들이 엉뚱한 길로 빠지는 결과를 초래했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또한 평생교육을 중시한다
의무교육을 끝내는 것으로만 국가의 책임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교육이 필요하고 이것을 시장에서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관점으로 보자면 국가가 구성원들의 교육을 죽을 때까지 책임져 줄 수는 없다
사실 의무 교육만으로도 허덕이는 게 오늘날의 현실 아닌가?
프랑스나 독일 같은 선진국들은 대학 등록금까지도 국가에서 부담해 주므로 우리처럼 소 팔아서 대학 보냈다는 슬픈 사연이 없다
그러므로 국가에게 평생 교육까지 책임지라는 것은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얘기다
의무교육이 끝이 아니고, 교육이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평생 필요한 것이라고 본다면 어차피 국가에서 계속 부담할 수는 없으므로 처음부터 시장에 맡기라는 저자의 주장에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다소 극단적인 주장이긴 하지만 말이다
저자는 교육을 위한 평생개인기금(LIFE)를 제안한다
학생 1인당 쓸 돈과 기업의 기부금, 개인의 후원금 등을 모아 개인 기금을 조성한 뒤 그 한도 내에서는 본인이 평생 교육을 위해 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에서 실시하는 바우처와 비슷한 개념인데 학교에 한 번 제출하면 끝이 아니라 평생 자신의 필요에 따라 운용할 수 있다는 게 다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공부 잘 하는 영희는 학교 수업 진도를 빨리 따라 잡아 남보다 먼저 끝내고 일찍 대학에 진학한다
영희는 남보다 학교를 덜 다녔으므로 남는 기금을 다른 곳에 쓸 수 있다
취미 생활을 위해 음악이나 미술을 배우는 등등 원하는 학습 과정에 쓸 수 있다
반대로 철수는 공부를 못해서 수업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철수는 일찍 학교를 끝마치고 사회에 나와 다른 곳에서 직업 교육을 받는다
역시 그는 남는 기금을 본인이 원하는 용도로 재취업 하는데 쓸 수 있다
미국에는 졸업 후에도 제대로 된 지식을 얻지 못한 학생들을 위한 대안 학교가 많은데 저자는 시장경제가 활성화 될 경우 이런 곳이 늘어나리라 기대한다
학교는 학생들의 개인기금을 바탕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오늘날처럼 효율성이 떨어지는 곳은 당연히 폐쇄하게 되고 보다 경쟁력 있는 교육을 펼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당연히 예산도 절약해야 하므로 강당 등을 기업에 세미나 장소로 빌려 줄 수도 있다
교사 인력도 줄여야 하므로 자격증 있는 교사 외에도 지역 사회 인력을 활용해 교육을 실시 할 것이며, 지역 사회의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것이다
자연히 예산은 줄고 교육의 질은 높아지지 않겠냐는 얘기다
어떤 곳은 대학 진학을 전문으로 특화될 것이고, 어떤 곳은 직업 교육을 전문으로 실시할 것이다
그래서 모든 학교가 대학 진학률을 기준으로 순위가 매겨지는 대신, 취업률 몇 % 이상을 보장한다는 홍보 문구가 등장할 것이고, 각 학교는 수요자들의 요구에 맞게 자연스럽게 특성있눈 학교로 변모할 것이라고 한다

어찌 보면 꿈같은 얘기 같기도 하다
저자는 모든 것을 너무 낙관적으로 예측한다
역자의 비판처럼 시장이 학교 교육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고 상당 부분, 그렇게 될 것이라는 선언적 문구가 많다
그래서 학술서라기 보다는 팸플릿에 가깝다고 정의했다
이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기 보다는, 국가가 거의 모든 부분을 감당하는 현 공교육의 문제점을 환기시키는 역할로만 제한한다면 이 책의 가치는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평생교육으로의 교육 연한 확대라든가, 대안학교의 활성화, 수요자 중심의 특화된 학교, 천편일률적인 프로그램 대신 수요자(즉 학생들)의 다양한 요구를 만족시키는 여러 가지의 학습 프로그램 등등 생각해 볼 대안들이 많다
발상의 전환이 있지 않으면 학교를 졸업하고도 얻은 게 아무 것도 없는, 사회로부터 소외된 이들의 문제점은 계속될 것이다

번역서이고 저자가 영국인이라 우리 교육 실정에 안 맞는 부분도 많아 매끄럽게 읽히지는 않는다
또 구체적인 사례와 방법을 제시하기 보다는 당위적인 얘기들이 많아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그렇지만 교육이 학교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게 아니라는 대명제를 깨닫게 해준다
시장 경제에 교육을 맡겨야 한다는 극히 자유주의적이고 우익적인 견해면서도 국가로부터 독립된 교육을 꿈꾸는 사회주의적이고 좌익적인 견해와도 일맥상통 하는 부분이 있다
결국 작은 정부가 좋은 정부라는 얘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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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5-01-12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부지런하시군요. ㅎㅎ. 벌써 다 읽으셨네요. 제목과 달리 시장에 맡겨야 된다는 것이 의외지만, 다양한 견해, 방법들이 괜찮은 것 같군요. 감샤!

marine 2005-01-12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번에 못 읽고 반납해서 다시 빌렸어요 새로운 관점으로 교육을 본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해야 할까요? 책은 판형이 작고 200페이지 밖에 안 되요 그런데 문장이 술술 읽기 편하게 번역되지는 않은 것 같네요 내용 자체도 좀 어렵구요 우리나라 교육 현실이었으면 더 편했을텐데 영국 얘기라서 좀 생소한 것 같아요
 
사회를 바꾸는 아티스트
지승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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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신해철이 어떤 인터뷰에서 연예인이라 부르지 말고 아티스트라 불러 주라는 말을 했다
신해철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 말이 어찌나 건방지게 들리던지, 웃긴다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가수나 탤런트들은 아무리 돈을 많이 번다 해도 예술인이라기 보다는 희화화의 대상이었다
물론 요즘은 "부자 되세요" 라는 말이 최고의 덕담이 될 정도로 황금 만능주의 사회가 도래해서 (어찌 보면 진정한 자본주의가 실현되는 것일 수도 있고) 어린이들 꿈 1순위가 연예인일 정도로 그들의 위상이 높아졌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이른바 지식인(사실 이 단어도 좀 웃기긴 하다)들과 연예인은 격이 달라 보인다
지금은 강단이 개방되어 오히려 홍보 효과를 위해 유명 연예인을 강사로 초빙하기 위해 안달이 나 있지만 그래도 연예인이 아티스트라니, 이건 쉽게 수긍이 안 간다
아티스트라면 적어도 고흐나 피카소처럼 예술적 격이 있는 사람들에게 붙이는 칭호가 아닌가?
하긴 그렇게 따지면 활동하는 화가나 소설가 등에게 다 아티스트라는 칭호를 붙일 수도 없을 것이다
대학 교수 자리를 사고 팔고 돈받고 학생 입학시켜 말썽 많은 곳이 바로 그 예술계가 아닌가
기준을 정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어디까지를 예술이라 하고, 또 어느 수준부터 아티스트라 부를 것인가?
어쨌든 적어도 신해철처럼 본인이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연예인과는 구별되기 위해 애쓰는 모습 정도는 보여줘야 할 것 같다

사실 신해철이 지난 대선 때 노무현 지지하는 거 보고 좀 놀랬다
시사성 있는 발언을 종종 하긴 하지만, 가수가 대놓고 특정 후보를 열렬히 지지할 줄은 정말 몰랐다
가수가 선거판에 따라 다닐 때는 그저 얼굴 마담 정도인데, 직접 정치색을 밝히고 적극적으로 운동하는 것은 상당히 의외였다
더구나 그는 본인도 밝힌 바지만, 선거 후 한 자리 얻으려고 하는 사람은 절대 아니다
국회의원을 목표로 정치계에 뛰어든 연예인과도 다르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일단 순수한 열정으로, 본인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선거판에 발을 디딘 것인데, 과연 그 정도로 자신을 드러내는 연예인이 몇이나 될런지?
앞에 실린 인터뷰에서 강헌은 신해철의 존재 의미를 이렇게 평가했다
서태지나 조용필처럼 시대에 획을 그은 사람은 아니지만, 사랑 타령의 노래를 철학적인 수준으로 끌어 올린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좀 유치하긴 해도 신해철 노래 중에 그런 내용이 많긴 하다
가사의 폭을 확장시켰다는 점만으로도 신해철은 대중 음악계의 발전에 이바지 했다고 유명 평론가가 평가해 주니, 노래한 보람 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평론가가 예술을 규격화 시키고 지나친 상징 부여로 오히려 감상의 맥을 흐린다는 비판도 있지만, 예술의 가치를 찾아 주는 중요한 역할도 하는 게 분명하다
평론을 통해 예술이 더욱 그 빛을 발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강헌의 말대로 제대로 된 대중 음악 평론가가 더 많이 나와야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수준이 높아질 것이다

권해효나 김미화 등의 정치 사회적 활동은 다소 의외였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인가, 아니면 내가 관심이 적어서인가?
어쩌면 탤런트나 코메디언에 대한 편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특별히 얻는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처지에 잘못하면 이미지 망치기 쉬운 일에 서스럼 없이 뛰어든 그들의 역할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주변에 워낙 이미지 관리하느라 몸 사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더 빛를 발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솔직히 인터뷰 내용 자체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지승호가 질문한 것에 대해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야 하나?
다소 동문서답적인 발언을 하는 걸 보고 아직 자신들의 생각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면에서는 안치환이 소박하게 인터뷰를 잘 했던 것 같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해 자기 소신을 담담하게 밝히는 것을 보면서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특히 MP3 문제에 대해 자신은 인터넷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할 말이 없다는 걸 보고 놀랬다
음반 팔아 먹고 사는 사람치고 MP3 문제 나오면 거품 안 무는 사람이 없는데 너무 의외의 반응이었다
생계를 위협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알든 모르든, 옳든 그르든 일단 적의를 가지고 덤비는데 (MP3에 관한 신해철의 답변은 고개를 흔들 정도다 자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거품 무는 거 보고 질렸다 자신은 10년 이상 가요계에 몸담은 이른바 전문가이기 때문에 잘 모르는 사람들은 함부로 나서지 말라고 단정하는 거 보고 전문가 집단의 독선을 느꼈다 마치 의약분업 때 토론회 하면서 의사들이 시민 대표더러 의료에 대해 뭘 알아서 나서냐는 식으로 대화 자체를 거부했던 것처럼 말이다) 안치환 역시 음반이 밥줄일텐데 잘 모르는 분야라고 겸손하게 답하는 걸 보면서, 이 사람은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데모할 때 가끔 들었던 "철의 노동자" 가 안치환 노래인 것도 처음 알았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같은 예쁜 노래를 부른 사람이 "피맺힌 가슴 분노가 되어 거대한 파도를 이룬다" 와 같은 거친 가사를 썼다니, 다소 놀랍다
아무리 내용이 정치적이고 의식적이라 할지라도 노래 자체로서의 생명력이 없으면 당위성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안치환의 말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성을 획득한 안치환에게 변절자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많다고 하지만, 어쨌든 가수란 음반 팔아서 먹고 사는 사람이니 만큼, 어느 정도의 대중적 지지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김미화가 사회 활동을 그렇게 많이 하는 줄은 미처 몰랐다
특정 당을 후원하는 건 아니고 (특별히 정치색을 가진 건 아닌 듯 싶다) 자매 결연이나 노인 후원 같은 사회 단체의 홍보 대사를 많이 맡았다
그녀의 말대로 연예인은 얼굴 드러내는 것 자체가 돈인 사람들인데 자기 돈 드는 일 아니라고 하지만 (이 표현이 참 소박하고 좋았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회 활동을 하냐고 하니까 돈 드는 일도 아닌데요, 뭐. 라고 하더라) 시간 쪼개가면서 행사장에 나타나 힘을 실어 주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함부로 동료나 후배 연예인들에게 와 달라는 부탁도 못한다고 한다
말 그대로 연예인들은 얼굴 보이는 게 곧 돈이 되기 때문에 행사장에 나와 달라는 건 돈 받지 말고 일만 하라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대선 직후 나온 것이므로 아직 김미화가 이혼하기 전이다
당시 이경실의 폭력 사태가 터져 시끄러웠기 때문에 가정 폭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이 있었다
그러자 의외로 거기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 본 게 없다고 넘어가는 걸 보고, 결과를 놓고 보자면 그 때 답변을 회피했다는 생각이 든다
본인 역시 남편의 폭력 때문에 (심지어 장모까지 폭행했다고 하니) 이혼한 걸 보면 1,2 년 전에도 분명히 가정 폭력을 겪고 있었을텐데 말을 아끼는 걸 보면 그 때도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8.90년대를 돌이켜 보면 많은 코메디언이 있었지만 오늘날까지 방송에 나오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나온다 할지라도 영향력 있는 배역을 맡은 사람은 아주 드물다
이홍렬이나 이경실처럼 MC 등으로 성공한 경우를 제외하면 극연기로 승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김미화는 바로 그 드문 케이스에 해당되는데 그녀의 바램처럼 쉽고 안전한 MC 대신, 전통 코메디극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또 그녀 자신 역시 본인이 닮고 싶은 오프라 윈프리처럼 시사 코메디 프로그램을 진행할 날이 왔으면 좋겠다
정치인 성대 모사하는 그런 시사 코메디 말고 촌철살인 같은 한 마디로 정치인들의 정곡을 콕 찌르는 진짜 시사 코메디를 하게 될 날이 오기를 바란다

신해철의 인터뷰 중 인상깊은 말이 있었다
영국에 가 보니 계급이 뚜렷한데 각 계급간의 이동성이 적은 대신, 자신이 머무르는 계급을 사랑하고 자식들도 거기서 계속 있게 되리라는 것을 받아 들이기 때문에 비로소 그 계급만의 문화가 형성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서든 신분 상승을 하려고 하고 자기가 속한 계급을 자식에게는 물려 주지 않으려고 하니까 진정한 문화가 형성되기 힘들다고 말한다
글쎄,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떤 면으로 보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가 강남 8학군이라든가, 극심한 대학 입시 경쟁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교육이 신분 상승의 가장 쉬운 길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10억 만들기 열풍을 비롯해 돈 버는 쪽으로 옮겨 가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현재로서는 좋은 대학 좋은 과에 입학하는 게 제일 쉽다
만약 중산층, 노동자 계층등이 윗 계급으로 가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자기 계급에 만족한다면 세상이 더 살기 편해지고 신해철 말대로 진짜 그들만의 문화가 생길 수 있을까?
어떤 책에서는 한국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바로 계급간의 잦은 이동이라고 했다
유럽처럼 한 계급에 고착된 것이 아니라 노력하면 올라갈 수 있고, 또 한 순간에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애를 쓴다는 것이다
이건 너무 복잡한 문제라 단정짓기가 참 힘들다
유럽은 일단 사회 복지가 잘 돼 있기 때문에 같은 노동자 계급이라 할지라도 우리와 다를 것이다
이른바 귀족 계급이란 사람들의 사회 기여도도 우리 보다는 훨씬 성숙하다고 생각한다
(기부 문화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또 잘 살고자 하는 욕망은 자본주의의 발전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역동적인 사회는 무한 경쟁으로 구성원을 내몬다
한창 일할 40대에 과로사가 많다던가, 대입 스트레스 때문에 학생들이 자살하는 것 등이 바로 이런 무한 경쟁의 파장일 것이다
뭐가 옳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자신이 속한 계급을 끔찍하게 여기고 절대로 자식에게는 물려 주지 않겠다는 극단성도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

"마주치다 눈뜨다" 가 나중에 나온 책이라 그런지, 아니면 인터뷰이들이 대중예술인이라 그런지 이번 책이 좀 더 쉽고 내용도 좀 더 얄팍하 것 같다
그렇지만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정치,사회 활동을 하는 대중예술인들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꼭 연예인들 뿐 아니라, 이른바 전문가 집단이라는 사람들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그에 합당한 역할을 수행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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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숲 [dts]
송일곤 감독, 감우성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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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될 수 있음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감우성을 좋아해서 본 영화인데 알포인트 보다 덜 재밌었다 처음 시작은 좋았지만 결말이 2% 부족하다 마무리가 제대로 안 되고 그대로 벌려 놓은 채 끝난 기분이다 솔직히 마지막 결말이 실망스럽다 알포인트도 소재나 전개 등은 참 좋았지만 뒤로 갈수록 미스테리가 허망하게 풀리는, 즉 결말 구조가 힘을 잃는 것 같아 씁쓸했는데 이 영화 역시 그렇다 앞 부분에서 보여 준 훌륭한 서사 구조가 뒤로 갈수록 결론을 내지 못해 어물쩡 넘어 가 버리는 것 같다 미스테리라 할지라도 사건의 인과 관계를 확실히 보여 주고,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정확한 구조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이 불만이 생기는 영화다

감우성이라는 배우는 참 좋았다 거미숲도 그렇고 알포인트에서도 참 연기를 잘 했는데 왜 그 해 남우 주연상 후보에도 못 올랐는지 모르겠다 눈에 띄는 인상적인 연기는 아니지만 작품에서 요구하는 캐릭터를 정말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TV에서보다 오히려 영화에서 더 빛을 발하는 것 같다 "현정아 사랑해" 같은 드라마에서는 그저 그런 평범한 탤런트 중 하나 같지만, 영화 판으로 오면 감우성 아니면 연기하기 힘든, 예민하고 시니컬한 지식인의 표상을 잘 그려낸다 데뷔작 "결혼은 미친 짓이다" 에서도 그만의 매력을 잘 표현해 냈지만, 특히 "알포인트" 에서 감우성 연기는 최고였다 감우성이 아니었다면 그 중위 역은 누구도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감우성 역시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영화와 관계없는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저런 남자는 어떤 여자와 살지 무척 궁금하다 서울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걸 보면 머리도 좋고 그림도 잘 그릴텐데, 현실에서는 더 멋있을 것 같다)

요즘 미스테리 영화의 주제는 정신분열증인 것 같다 "아이덴티티" 에서도 한 정신병자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다뤘고 "나비효과" 도 주인공의 기억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거미숲" 에서도 강민이라는 남자가 정신분열을 일으켜 살인을 저지르고도 자신이 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범인을 찾는 내용이다 내심 누가 범인일까 무척 궁금했는데 주인공 자신이 살해했다는 걸 알고 섬뜩하기도 하면서, 다소 식상한 느낌도 들었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흔하게 본 설정이기 때문이다 또 무대 장치나 효과 면에서 긴장김이 떨어지는, 좀 엉성한 구조라서 섬짓한 분위기가 덜 살아난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그렇게 범인을 찾아 해맸는데, 정작 범인은 본인 자신이었다는 결말은 충격적이었다 우리 안에 숨겨진 악한 본성, 파괴적이고 잔인한 일면을 보는 것 같아 무서웠다 즉 나의 무의식이 두 사람을 낫으로 살해해 놓고, 정신이 돌아온 후 자신의 끔찍한 행동을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자 아예 기억에서 지워 버리고 다른 사람이 한 걸로 인식한 것이다 살해 현장을 목격한 후 누군가에게 머리를 심하게 얻어 맞고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실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기억을 지워 버리기 위한 자해 행동이었을 것이다

강민이 애인 황수영과 자신을 괴롭히던 직장 상사 최국장이 섹스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분노해 낫으로 살해하는 장면은 솔직히 개연성이 떨어진다 살해까지 할 정도로 분노했다면 그 전에 애인과 죽고 못 살 정도로 열렬한 관계로 설정을 하고, 최국장에게도 살의를 품을 정도로 크게 깨지고 당하는 장면이 나와야 하는데 영화 내용으로만 보자면 강민은 이 둘에게 대한 애증의 감정이 그다지 크지 않다 어쩌면 강민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세상일에 냉소적이고 남에 대한 기대나 실망이 그리 크지 않는지도 모른다 아내가 비행기 사고로 죽고 난 후 황수영과 1년간 관계를 갖지만 내가 보기엔 그저 섹스 파트너로 밖에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황수영에게 청혼한 것도 좀 의외였다 그 청혼도 널 너무 사랑하니까 결혼하자가 아니고, 해도 좋고, 싫음 말고, 이런 식의 가벼운 제안이었다 최국장에 대한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을 무능한 PD로 모는 최국장에게 (이건 딱 한 컷 나왔다) 한 마디 분노도 표출하지 않은 채 방송국 적성에 안 맞으니까 나와야겠다, 이 정도로 끝난다 최국장이 강민에게 화를 내는 건 직장 상사의 일상적인 질책이었고 강민 역시 그를 죽여야겠다는 살의를 느낄 정도로 분노했던 건 아니다 (이 정도로 사람 죽인다면 아마 난 벌써 여럿 죽였어야 할 거다)

황수영과 최국장이 불륜의 관계였다는 건 어느 정도 암시를 준다 일단 이 황수영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가볍고 헤픈 여자로 등장한다 리포터로 처음 방송국에 입사한 날부터 회식 자리에서 강민을 유혹해 잠자리까지 간다 강민의 청혼에 답을 미루는 것도 정리해야 할 관계가 있다는 걸 암시한다 그렇지만 황수영이 최국장과 섹스를 벌이는 건 내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갔다 방송 출연을 위해 몸을 바친다는 얘긴데, 황수영이라는 여자가 출세하겠다는 야망이 넘치는 것 같지도 않고, 무엇보다 이 최국장이라는 남자는 섹스를 사랑이 아닌 일종의 배설 행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호감을 갖고 감정의 교류가 있는 따뜻한 행동이면 좋으련만, 최국장은 미친듯이 먹어 대면서 세상은 전쟁이라는 말 같지도 않은 구호를 늘어 놓으면서 황수영의 몸에 피스톤 운동을 계속한다 창녀도 아니고 직장 여직원을 유혹해 섹스를 하면서 저렇게까지 동물적인 본능을 표출해야 하는지 역겨웠다 그 밑에 깔려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괴로워 하는 (내가 보기엔 최국장이 아무래도 새디스트적 기질이 있는 것 같다 그는 여자를 괴롭힘으로써 쾌감을 느끼는 듯 하다) 황수영이라는 여자가 불쌍했다 결국 그 섹스 현장을 들켜 결혼까지 생각했던 남자에게 낫으로 살해당했으니, 끔찍한 죽음이 아닐 수 없다 이치적으로 따지자면 이 황수영의 원혼이 강민을 괴롭히는 게 맞지 않을까? 바람 좀 피웠다고서니 낫으로 살해당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끔찍하고 잔인하다

제일 아귀가 안 맞았던 부분은 민수인의 등장이다 이 여자는 결국 귀신인 셈인데, 강민은 현실 세계에 살아 있으니, 귀신과 조우한 게 된다 나중에 민수인이 어린 시절 결핵으로 죽었다는 걸 알고 강민 역시 이미 죽은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마치 "식스 센스" 에서 처럼 말이다 그런데 강민은 여전히 안 죽고 살아 있다 느닷없이 산 사람에게 귀신이 나타나 자기가 저지른 살인의 전모를 보여 준다는 게 좀 어색하다 어린 시절 민수인이 죽어서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은 한 편의 코메디였다 컴퓨터 그래픽 같은 걸로 처리하면 안 됐을까? 피아노줄 이용해 위로 올리는데 이건 홍콩 영화도 아니고 (요즘 홍콩 영화도 이렇게까지 티 나게 어색하게는 안 찍던데) 웃음 나와서 혼났다

강민의 기억에 의하면 자신과 민수인은 어린 시절 시골 학교에서 만났다 민수인의 아버지는 어쩌다 한 번씩 집에 들리고 그녀의 어머니는 동네 남자들과 욕정을 나누기 때문에 마을에서 따돌림을 받는다 강민이 민수인의 집에 놀러간 날 역시 어머니는 왠 남자를 끌어 들여 섹스를 벌이는데 갑자기 끔찍한 소리가 나고 둘은 집을 뛰쳐 나온다 어머니를 죽인 남자가 이 둘을 쫓는데 강민이 돌에 넘어져 정신을 잃는 순간 민수인은 그 놈에게 살해당한다 그런데 나중에 어른이 되서 강민이 학교 선생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민수인은 어렸을 때 폐렴 걸려 죽었고, 강민의 어머니가 바람이 나서 아버지 혼자 강민을 키운 걸로 나온다 그래서 나는 혹시 강민이 바람 피우는 어머니를 죽이고 그것을 목격한 민수인까지 함께 죽인 후 그 사실을 의식 속에서 받아들이지 못해 기억상실증에 걸려 잊어 버린 게 아닌가 추론했는데, 거기에 대한 답은 안 나온다 사실 이것도 불만이다 누가 어머니를 죽였는지, 또 민수인은 어떻게 죽게 됐는지 밝혀져야 할 것 아닌가?

그렇게 따지자면 제일 못마땅한 것은 강민에게 황수영이 바람피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준 전화다 강민은 미스테리 극장을 기획하는 PD인데 그 앞으로 제보 전화가 오고 그 때문에 민수인이 사는 시골까지 내려오게 된다 그 때 강민에게는 황수영과 최국장이 바람 피우는 장소를 알려 주는 전화가 온다 남자 목소리니까 이걸 민수인이 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고, 대체 이 남자의 정체는 뭐냔 말이다 그 남자는 강민을 잘 알고 있고 그 역시 자신을 안다고 했다 강민을 문제의 거미숲으로 끌어 들이는 역할을 했으니, 전체적으로 보면 민수인이 한 짓이어야 아귀가 맞는데, 목소리는 남자고... 너무 복잡하다 혹시 두 사람을 살해해 놓고도 다른 놈이 했다고 믿는 것처럼, 황수영과 최국장의 관계를 의심해 스스로 둘의 비밀 장소인 거미숲으로 향하면서도 다른 누군가가 시켜서 그런 걸로 착각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이 강민이란 놈은 완전히 미친 놈이라는 얘긴데...

마직막에 민수인은 강민이 저지른 일을 용서받을 수 있다고 했다 숲을 지나 동굴 끝의 문을 열면 모든 비밀이 풀린다고 해서 난 강민의 어린 시절 엄마 죽은 얘기가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얘기는 없고 강민이 교통사고 당하던 첫 장면이 나온다 즉 강민은 자신이 두 사람을 죽이고 정신없이 터널을 방황하다가 교통사고가 났는데, 자신이 차에 치이는 며칠 전의 장면을 현재의 강민이 목격하는 것이다 대체 이게 무슨 얘긴지 모르겠다 어쨌든 마지막 장면은 강민이 다시 병원으로 돌아온 후 멍하게 앉아 있는 것으로 끝났으니 그는 다시 기억 상실증에 걸려 지난 일을 다 잊어 버렸을지 모른다 그가 어린 시절 엄마와 민수인이 죽은 사실을 잊어버리고 대신 원인 모를 두통에 시달린 것처럼 말이다

민수인과 강민의 아내는 동일 인물이다 1인 2역을 했는데 무척 예쁘고 분위기 있다 연기는 다소 어색하지만 꽤 우아하게 나온다 앞으로 좋은 역 맡으면 뜨지 않을까 싶다 그러고 보니까 강민의 아내가 비행기 사고로 죽는 걸 스스로 알고 있다는 점도 좀 이상하다 뭔가 개연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냥 자기 죽음을 미리 알고 ㅣ있을 뿐이다 이 아내가 바로 민수인의 환생이라는 분위기인데, 이것도 좀 억지스럽고...

전체적으로 봤을 때 괜찮은 영화지만 결말이 마음에 안 든다 감우성이나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좋고 지루하지 않게 긴장감을 유지하지만 훌륭한 영화가 되기엔 2% 부족하다 그래도 이보다 못한 영화들도 관객 엄청 끄는데 이건 왜 실패했는지 모르겠다 "알 포인트" 도 마찬가지다 괜찮은 영화인데 왜 못 떴을까? 어쩌면 기획력의 실패인지도 모른다 홍보 많이 했으면 훨씬 좋았을텐데 아쉽다

감우성의 영화 행보가 더욱 주목된다 인기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역, 좋은 영화 많이 출연해서 배우로서의 경력을 잘 쌓았으면 좋겠다 송강호가 설경구 등의 연기파 배우와는 또다른 매력을 보여 주는 감우성의 영화판 등장이 신선해서 좋다 또 그는 연기도 잘 하지만 어찌나 멋있는지... 장동건이나 원빈 등의 꽃미남 스타들과는 다른 지적인 매력이 풍겨서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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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Gift Set 한정판 [dts-ES]
미야자키 하야오 (Hayao Miyazaki) 감독 / 대원DVD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이웃집 토토로" 보다 더 만화적이고, 그래서 더 재밌었다 이 만화도 제목만 듣고는 내용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일본말을 전혀 못하기 때문에 주인공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조차 몰랐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센과 치히로가 동일 인물이고 제목과 내용은 별 상관이 없다 치히로는 귀여운 여자아이다 예쁘장한 공주님이 아니라 캔디나 빨간머리 앤 같은 씩씩하고 명랑한 여자애다

"이웃집 토토로" 보다 늦게 나와서 그런지 그림은 더 예쁘다 줄거리도 더 재밌는 것 같다 무엇보다 일본의 전통적인 소재들이 많이 등장해서 흥미로웠다 일본 여행을 가서 느낀 거지만, 일본은 우리보다 전통 문화 계승이 훨씬 잘 이루어진 것 같다 특히 온천이나 다다미 방, 전통 여관 등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도쿄를 갔을 때는 서울과 조금도 다를 게 없는 모습에 실망스럽고 지루했지만, 나라나 벳부 등 온천 지역이나 전통여관을 들를 때는 일본의 문화를 느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일본은 온천이 생활화 된 나라라는 걸 새삼 느꼈다 배를 탔는데도 온천 시설이 갖춰진 걸 보고 깜짝 놀랠 정도였다

이 만화에도 온천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인간 세상과 다른 세계에 치히로가 잡혀 가는데, 이 곳의 주인인 마녀 유바바는 온천을 운영한다 모든 종류의 신들이 목욕을 하기 위해서 유바바의 온천을 방문하고 치히로는 이 곳에서 청소를 한다 온천을 운영하는 마녀라니, 발상이 너무 귀엽다

첫 장면에서 치히로의 부모는 식당에 차려진 음식을 주인 허락도 없이 먹다가 돼지로 변하고 마는데, 좀 섬뜩했다 서양에서는 탐식이 7대 악행 중에 하나로 치부된다고 하니, 음식을 탐하는 것도 큰 잘못인가 보다 돼지로 변한 엄마, 아빠를 살리기 위해 유바바의 온천에서 일하는 치히로는 엄마, 아빠가 더 이상 살이 찌지 않기를 기도한다 (갑자기 다이어트를 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느껴진다)

줄거리 자체는 별다른 게 없다 치히로를 도와주는 하쿠라는 미소년이 나타나고, 유바바의 쌍둥이 언니인 제나바의 도움으로 무사히 탈출한다는 내용이다 오히려 가운데 등장하는 온천 장면이 내 관심을 끌었다 어쩜 그렇게 생생하게 묘사를 하는지... 일본 전통 문화를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사금을 만들어 내는 귀신이 등장하는데 배금주의에 대한 풍자 같단 생각이 든다 이 귀신이 온천을 하러 왔는데 사금을 만들어 뿌리자, 다들 정신을 못 차리고 귀신을 기쁘게 하려고 애를 쓴다 나에게도 사금을 주라고 달려 들자 세 사람을 먹어 버린다 알고 봤더니 이 귀신은 사금을 만들어 사람을 유혹한 뒤 잡아 먹는 놈이었다 돈에 눈이 멀면 결국 돈에 의해 삶을 망치고 만다는 우화적인 교훈처럼 느껴졌다 우리의 주인공 치히로는 나는 사금이 필요하지 않다고 거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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