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바꾸는 아티스트
지승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옛날에 신해철이 어떤 인터뷰에서 연예인이라 부르지 말고 아티스트라 불러 주라는 말을 했다
신해철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 말이 어찌나 건방지게 들리던지, 웃긴다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가수나 탤런트들은 아무리 돈을 많이 번다 해도 예술인이라기 보다는 희화화의 대상이었다
물론 요즘은 "부자 되세요" 라는 말이 최고의 덕담이 될 정도로 황금 만능주의 사회가 도래해서 (어찌 보면 진정한 자본주의가 실현되는 것일 수도 있고) 어린이들 꿈 1순위가 연예인일 정도로 그들의 위상이 높아졌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이른바 지식인(사실 이 단어도 좀 웃기긴 하다)들과 연예인은 격이 달라 보인다
지금은 강단이 개방되어 오히려 홍보 효과를 위해 유명 연예인을 강사로 초빙하기 위해 안달이 나 있지만 그래도 연예인이 아티스트라니, 이건 쉽게 수긍이 안 간다
아티스트라면 적어도 고흐나 피카소처럼 예술적 격이 있는 사람들에게 붙이는 칭호가 아닌가?
하긴 그렇게 따지면 활동하는 화가나 소설가 등에게 다 아티스트라는 칭호를 붙일 수도 없을 것이다
대학 교수 자리를 사고 팔고 돈받고 학생 입학시켜 말썽 많은 곳이 바로 그 예술계가 아닌가
기준을 정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어디까지를 예술이라 하고, 또 어느 수준부터 아티스트라 부를 것인가?
어쨌든 적어도 신해철처럼 본인이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연예인과는 구별되기 위해 애쓰는 모습 정도는 보여줘야 할 것 같다

사실 신해철이 지난 대선 때 노무현 지지하는 거 보고 좀 놀랬다
시사성 있는 발언을 종종 하긴 하지만, 가수가 대놓고 특정 후보를 열렬히 지지할 줄은 정말 몰랐다
가수가 선거판에 따라 다닐 때는 그저 얼굴 마담 정도인데, 직접 정치색을 밝히고 적극적으로 운동하는 것은 상당히 의외였다
더구나 그는 본인도 밝힌 바지만, 선거 후 한 자리 얻으려고 하는 사람은 절대 아니다
국회의원을 목표로 정치계에 뛰어든 연예인과도 다르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일단 순수한 열정으로, 본인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선거판에 발을 디딘 것인데, 과연 그 정도로 자신을 드러내는 연예인이 몇이나 될런지?
앞에 실린 인터뷰에서 강헌은 신해철의 존재 의미를 이렇게 평가했다
서태지나 조용필처럼 시대에 획을 그은 사람은 아니지만, 사랑 타령의 노래를 철학적인 수준으로 끌어 올린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좀 유치하긴 해도 신해철 노래 중에 그런 내용이 많긴 하다
가사의 폭을 확장시켰다는 점만으로도 신해철은 대중 음악계의 발전에 이바지 했다고 유명 평론가가 평가해 주니, 노래한 보람 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평론가가 예술을 규격화 시키고 지나친 상징 부여로 오히려 감상의 맥을 흐린다는 비판도 있지만, 예술의 가치를 찾아 주는 중요한 역할도 하는 게 분명하다
평론을 통해 예술이 더욱 그 빛을 발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강헌의 말대로 제대로 된 대중 음악 평론가가 더 많이 나와야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수준이 높아질 것이다

권해효나 김미화 등의 정치 사회적 활동은 다소 의외였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인가, 아니면 내가 관심이 적어서인가?
어쩌면 탤런트나 코메디언에 대한 편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특별히 얻는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처지에 잘못하면 이미지 망치기 쉬운 일에 서스럼 없이 뛰어든 그들의 역할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주변에 워낙 이미지 관리하느라 몸 사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더 빛를 발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솔직히 인터뷰 내용 자체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지승호가 질문한 것에 대해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야 하나?
다소 동문서답적인 발언을 하는 걸 보고 아직 자신들의 생각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면에서는 안치환이 소박하게 인터뷰를 잘 했던 것 같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해 자기 소신을 담담하게 밝히는 것을 보면서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특히 MP3 문제에 대해 자신은 인터넷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할 말이 없다는 걸 보고 놀랬다
음반 팔아 먹고 사는 사람치고 MP3 문제 나오면 거품 안 무는 사람이 없는데 너무 의외의 반응이었다
생계를 위협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알든 모르든, 옳든 그르든 일단 적의를 가지고 덤비는데 (MP3에 관한 신해철의 답변은 고개를 흔들 정도다 자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거품 무는 거 보고 질렸다 자신은 10년 이상 가요계에 몸담은 이른바 전문가이기 때문에 잘 모르는 사람들은 함부로 나서지 말라고 단정하는 거 보고 전문가 집단의 독선을 느꼈다 마치 의약분업 때 토론회 하면서 의사들이 시민 대표더러 의료에 대해 뭘 알아서 나서냐는 식으로 대화 자체를 거부했던 것처럼 말이다) 안치환 역시 음반이 밥줄일텐데 잘 모르는 분야라고 겸손하게 답하는 걸 보면서, 이 사람은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데모할 때 가끔 들었던 "철의 노동자" 가 안치환 노래인 것도 처음 알았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같은 예쁜 노래를 부른 사람이 "피맺힌 가슴 분노가 되어 거대한 파도를 이룬다" 와 같은 거친 가사를 썼다니, 다소 놀랍다
아무리 내용이 정치적이고 의식적이라 할지라도 노래 자체로서의 생명력이 없으면 당위성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안치환의 말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성을 획득한 안치환에게 변절자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많다고 하지만, 어쨌든 가수란 음반 팔아서 먹고 사는 사람이니 만큼, 어느 정도의 대중적 지지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김미화가 사회 활동을 그렇게 많이 하는 줄은 미처 몰랐다
특정 당을 후원하는 건 아니고 (특별히 정치색을 가진 건 아닌 듯 싶다) 자매 결연이나 노인 후원 같은 사회 단체의 홍보 대사를 많이 맡았다
그녀의 말대로 연예인은 얼굴 드러내는 것 자체가 돈인 사람들인데 자기 돈 드는 일 아니라고 하지만 (이 표현이 참 소박하고 좋았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회 활동을 하냐고 하니까 돈 드는 일도 아닌데요, 뭐. 라고 하더라) 시간 쪼개가면서 행사장에 나타나 힘을 실어 주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함부로 동료나 후배 연예인들에게 와 달라는 부탁도 못한다고 한다
말 그대로 연예인들은 얼굴 보이는 게 곧 돈이 되기 때문에 행사장에 나와 달라는 건 돈 받지 말고 일만 하라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대선 직후 나온 것이므로 아직 김미화가 이혼하기 전이다
당시 이경실의 폭력 사태가 터져 시끄러웠기 때문에 가정 폭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이 있었다
그러자 의외로 거기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 본 게 없다고 넘어가는 걸 보고, 결과를 놓고 보자면 그 때 답변을 회피했다는 생각이 든다
본인 역시 남편의 폭력 때문에 (심지어 장모까지 폭행했다고 하니) 이혼한 걸 보면 1,2 년 전에도 분명히 가정 폭력을 겪고 있었을텐데 말을 아끼는 걸 보면 그 때도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8.90년대를 돌이켜 보면 많은 코메디언이 있었지만 오늘날까지 방송에 나오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나온다 할지라도 영향력 있는 배역을 맡은 사람은 아주 드물다
이홍렬이나 이경실처럼 MC 등으로 성공한 경우를 제외하면 극연기로 승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김미화는 바로 그 드문 케이스에 해당되는데 그녀의 바램처럼 쉽고 안전한 MC 대신, 전통 코메디극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또 그녀 자신 역시 본인이 닮고 싶은 오프라 윈프리처럼 시사 코메디 프로그램을 진행할 날이 왔으면 좋겠다
정치인 성대 모사하는 그런 시사 코메디 말고 촌철살인 같은 한 마디로 정치인들의 정곡을 콕 찌르는 진짜 시사 코메디를 하게 될 날이 오기를 바란다

신해철의 인터뷰 중 인상깊은 말이 있었다
영국에 가 보니 계급이 뚜렷한데 각 계급간의 이동성이 적은 대신, 자신이 머무르는 계급을 사랑하고 자식들도 거기서 계속 있게 되리라는 것을 받아 들이기 때문에 비로소 그 계급만의 문화가 형성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서든 신분 상승을 하려고 하고 자기가 속한 계급을 자식에게는 물려 주지 않으려고 하니까 진정한 문화가 형성되기 힘들다고 말한다
글쎄,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떤 면으로 보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가 강남 8학군이라든가, 극심한 대학 입시 경쟁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교육이 신분 상승의 가장 쉬운 길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10억 만들기 열풍을 비롯해 돈 버는 쪽으로 옮겨 가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현재로서는 좋은 대학 좋은 과에 입학하는 게 제일 쉽다
만약 중산층, 노동자 계층등이 윗 계급으로 가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자기 계급에 만족한다면 세상이 더 살기 편해지고 신해철 말대로 진짜 그들만의 문화가 생길 수 있을까?
어떤 책에서는 한국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바로 계급간의 잦은 이동이라고 했다
유럽처럼 한 계급에 고착된 것이 아니라 노력하면 올라갈 수 있고, 또 한 순간에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애를 쓴다는 것이다
이건 너무 복잡한 문제라 단정짓기가 참 힘들다
유럽은 일단 사회 복지가 잘 돼 있기 때문에 같은 노동자 계급이라 할지라도 우리와 다를 것이다
이른바 귀족 계급이란 사람들의 사회 기여도도 우리 보다는 훨씬 성숙하다고 생각한다
(기부 문화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또 잘 살고자 하는 욕망은 자본주의의 발전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역동적인 사회는 무한 경쟁으로 구성원을 내몬다
한창 일할 40대에 과로사가 많다던가, 대입 스트레스 때문에 학생들이 자살하는 것 등이 바로 이런 무한 경쟁의 파장일 것이다
뭐가 옳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자신이 속한 계급을 끔찍하게 여기고 절대로 자식에게는 물려 주지 않겠다는 극단성도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

"마주치다 눈뜨다" 가 나중에 나온 책이라 그런지, 아니면 인터뷰이들이 대중예술인이라 그런지 이번 책이 좀 더 쉽고 내용도 좀 더 얄팍하 것 같다
그렇지만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정치,사회 활동을 하는 대중예술인들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꼭 연예인들 뿐 아니라, 이른바 전문가 집단이라는 사람들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그에 합당한 역할을 수행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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