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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 읽는 법 사계절 Art Library 2
조용진 지음 / 사계절 / 199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쓴 조용진 교수는 동양화 전공자로 "동양화 읽는 법"을 먼저 썼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양화에 대한 이해가 대단하다


이주헌이 쓴 것 만큼 재밌지는 않지만, 교수답게 독자에게 가르치듯 자상하고 교훈적인 서사가 돋보인다


아쉬운 게 있다면 그림 도판 상태가 너무 작고 (책의 크기가 주는 한계) 그림의 출처를 밝히지 않아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누가 그리고, 몇년도 그림이며, 현재 어디에 소장하고 있는가도 그림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감상법은 도상학이다


즉, 그림의 소재가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알고 보자는 것이다


네덜란드 정물화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는 "보이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이라는 책을 읽은 후 도상학에 대한 관심이 생겼는데, 말 그대로 그림을 느끼는 게 아니라 화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기 위해 숨은 의미를 찾아내라는 것이다


성모 마리아는 항상 맨발로 그린다


왜? 벗은 발은 겸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물화에 청어가 그려져 있으면 근면을 의미하고, 팔레트와 석고상을 들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건 미술을 의인화한 것이다


사과를 들고 있는 나신의 여인은 비너스를 상징하고, 또 육체적인 아름다움을 의인화 한 것이다


 


인상파 이전의 서양 그림들은 이처럼 다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


어쩌면 그래서 인상파가 혁명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읽는 그림에서 느끼는 그림으로 바뀌었으니까


art란 기술을 의미하여 르네상스나 로코코 시대의 그림을 보면 감탄할 정도로 놀라운 그림 솜씨를 자랑한다


요즘 현대화처럼 저 정도면 나도 그리겠다는 수준이 아니라, 도저히 따라할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다


그래서 르네상스 시대에 화가가 되려면 천재 수준이어야 했다고 한다


단순히 그림 실력만 있어서도 안 되고, 귀족에게 그림을 팔기 위해서는 그림 안에 함축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정도의 지적 수준이 되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난 동양화가 그림에 숨어 있는 뜻을 이해하는 읽는 그림이고, 서양화는 눈에 보이는대로 느끼는 그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러한 해석법은 인상파 이후의 그림에만 해당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은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에 적합한 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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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외한 씨, 춤 보러가다
제환정 지음 / 시공사 / 2004년 3월
평점 :
품절


무용이 예술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림이나 문학에 비해 그 위치가 열등한 건 사실이다
일단 수능 성적만 봐도 그렇다
고등학교 때 무용반이라고 하면 수능 성적은 거의 바닥을 긴다고 보면 된다
머리 나쁘다는 것과 동의어로 쓰인다
그래도 요즘은 춤에 대한 인식이 좀 나아지고 있다
누구나 강수진을 알고 그녀를 예술가로 생각한다

저자가 무용을 전공한 사람이라서 그런지, 무용수들의 애환에 대한 얘기가 많다
평론가가 썼으면 현장 얘기 보다는 작품 분석이 많을텐데, 그건 좀 아쉽다
그래도 무용가들의 실제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 같다
제일 공감이 가는 건 역시 다이어트다
다이어트에 대한 놀라운 집착은 놀라울 뿐이다
내 동생도 체형이 말랐다는 이유로 한국 무용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온 몸에 랩을 감고 무용을 해야 했다
온 몸을 드러내는 무용 의상을 소화시키려면, 저자의 표현대로 도대체 살집을 숨길 곳이 없을 것이다
가엾은 작은 새들...
아멜리 노통브는  "로베르트 인명사전"에서 무용수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중력으로부터 벗어나 날아 오르는 것이라고 정의했지만,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들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려고 애쓰는 건 분명하다

무용 자체의 칼로리 소비는 생각보다 적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그럴 것 같다
저강도로 오래 지속되는 유산소 운동이 지방을 태우는데, 무용은 단 몇 분을 위해 고강도의 동작을 해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순간적인 힘을 필요로 하는 무산소 운동에 가까울 것 같다
한 시간 내내 연습해도 칼로리 소비는 겨우 200에 불과하다니, 그들이 요구르트 하나에도 벌벌 떠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저자가 무용수 출신이라 그런지 날씬하고 예쁘다
그런 자신감 때문에 당당하게 표지 모델로 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저자는 자기 전공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것일까?
강수진처럼 세계적인 무용수가 되고 싶었을텐데
그래도 이화여대를 나와서 기자도 하고 책도 쓰는 것 같다
이대라면 무용계 최고의 권력 기관 아닌가?

저자는 무용에 덧씌워진 지적이지 못하다는 평가에 무척 예민하다
사실 무용수들의 수능 성적은 체육학과 생들과 같다
그래서인지 무용학과는 체대 소속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운동과 무용은 확실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왜냐면 저자의 말대로 무용은 인간의 정신적인 면을 몸으로 표현해 내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지적한 바대로 무용이 인간과 떨어져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문학이나 음악은 배우기 어렵기라도 하지만 (그래서 더 상부 구조를 차지하지만), 춤은 누구라도 몸만 흔들면 출 수 있는 가장 단순한 표현 양식이다
잘 추고 못 추고의 차이는 있을 망정, 장애인이 아닌 이상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춤을 출 수 있다
우리나라는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육체적인 것을 천시해 왔기 때문에 무용의 역사도 매우 일천하다
오늘날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댄스가 유행하고 있지만, 상위 예술로 대접받지는 못한다
또 발레나 모던 댄스가 문학만큼 대중에게 친숙하지도 않다
서구화가 곧 세계화를 의미하게 됐으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들의 발레가 지니는 대중성을 보면 참 부럽다
오페라에 관한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가볍게 영화 보는 기분으로 오페라 극장이나 발레 공연장을 찾을 수는 없는 것일까?
예술을 두고 서양이냐, 동양이냐를 나누는 것은 의미없는 짓이라 본다
발레나 오페라 같은 고급 예술을 마치 영화 한 편 보러 가듯 가벼운 마음으로 쉽게 갈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지젤"은 워낙 유명한 발레라 학교 다닐 때 비디오로도 보고 자주 듣는 이름이다
낭만 발레가 고전 발레 뒤에 올 것 같은데, 반대로 낭만 발레가 먼저이고 제대로 된 형식을 갖춘 것이 고전 발레라고 한다
"지젤"은 2막으로 구성된 낭만 발레이고 "호두까기 인형"이나 "백조의 호수" 등은 고전 발레다
지젤의 줄거리를 보면, 시골 아가씨 지젤이 한 남자를 사랑하는데 실은 약혼녀가 있는 귀족이었다
말하자면 잠깐 사냥하러 나왔다가 지젤과 불장난을 벌인 것이다
결국 그녀는 자살한다
처녀 귀신으로 죽으면 윌리가 되서 마을을 떠도는데, 남자가 그 근처를 지나가면 죽을 때까지 춤을 추게 만든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에 나오는 계모도 이 벌을 받는 걸 보면 서양에서 널리 퍼진 전설 같다
지젤이 사랑했던 남자도 그 숲을 지나가자 윌리들이 그를 에워싼다
물론 지젤은 그를 보호해 아침에 보내 준다
죽어서도 남자를 지켜 준 것이다
이 정도 이야기라면 흔히 볼 수 있는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인데, 뜻밖에도 안무가들은 바보 같은 지젤을 정신 병원으로 보내 버린다
고전을 비트는 것이다
사실 현대적인 시각으로 보면 지젤은 지고지순하기 보다는 어리석다
약혼녀가 있는 남자에게 희롱당한 셈인데, 그에게 분노를 터뜨리기 보다는 자기 자신을 공격해 자살을 하는 것이나 죽어서도 그의 영혼을 지켜주는 맹목적인 사랑을 선보인다
그래서 현대 안무가들은 지젤을 정신 병원으로 보내 버리는 것이다

이 책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무용의 매력이 단순히 테크닉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는 무용수들이 몸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관객이 느끼길 바란다
관객과의 대화를 원하는 것이다
그들이 고난이도의 동작을 선보이는 것은 가능하면 많은 것을 몸으로 보여 주고 싶기 때문이다
연습으로 험악해진 강수진의 발을 보고 감탄할 것이 아니라, 강수진이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부탁한다
그녀가 위대한 것은 고난이도의 연기를 선보여서가 아니라, 그녀가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 정신의 전달 방식에 있다

앞으로 발레 공연에 자주 가 보고 싶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격언은 모든 예술에 다 통용되는 것 같다
이제 발레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지식적인 것에 연연하지 않고 무용수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느끼도록 애쓰고 싶다
몸이야 말로 가장 정직하고 아름다운 언어가 아닌가?
신체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그들의 몸짓이 감동으로 다가온다면 나는 제대로 된 감상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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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2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진중권은 정말 글을 잘 쓴다
너무 재밌게 잘 읽고 있다
세 권 모두 소장할 가치가 충분하다
강준만 보다 훨씬 잘 쓴다
아마 그는 미학에 대해 전공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를 통해 현대 미술이 추구하는 바를 비로소 이해하게 됐다

내가 르네상스나 바로크 그림에 열광하는 이유는 이해할 수 있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딱 보면 뭘 그렸는지 그 대상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반면에 현대 미술은 대체 뭘 나타냈는지 이해가 안 간다
그나마 구상화는 좀 나은데 완전히 비구상으로 그려진 것들은 저게 그림인가? 이런 생각마저 든다
솔직히 잭슨 폴록의 흩뿌리는 그림에서 무슨 감동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감동을 느끼느냐, 안 느끼느냐의 차이는 내가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차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림에 드러나는 있는 그대로의 대상만을 인식하고 있다
현대 미술이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 나는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말하자면 인식의 틀이 갖춰지지 않은 것이다
화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니, 무슨 감동이 오겠는가?
사실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도 마찬가지다
각 사물들이 나타내는 알레고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화가의 진정한 의도를 파악할 수 없다
그저 사진으로 찍은 것 같은 그 정교함에 감탄할 뿐이다

마그리트의 그림을 보면서 현대 미술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생겼다
에셔가 형식의 파괴를 추구한 반면, 마그리트는 내용의 파괴를 시도했다
대상을 고립시킨다거나, 확대해 보인다거나, 다른 대상과 섞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그렸다
사과처럼 평범한 사물도 방 안에 가득 차도록 확대시켜 놓으니까 느낌이 확 달라졌다
또 물고기 머리에 사람 다리의 인어 아가씨 역시 완전히 확 깨는 그림이었다
에셔는 뫼비우스의 띠나 악마의 고리처럼 공간을 비틀므로써 형식의 파괴를 추구했는데,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보는 마그리트의 그림에 더 끌린다
달리 역시 시계라는 사물이 주는 견고함 대신 시간이 흐른다는 유연성을 부여해 그 유명한 흐물흐물한 시계를 그렸다
어찌 보면 현대 예술가들은 과거보다 훨씬 더 상상력이 넘치는 것 같다
과거 화가들이 정형화된 틀에 맞춰 보다 정교하게 사물을 그려내려고 기술적 노력을 한 반면, 현대 화가들은 더 이상 그리는 기술에 집착할 필요가 없어졌다
사진기나 나오고 텔레비젼이 등장해서 똑같이 그릴 필요가 없다
똑같이 그리는 것은 기계들과 화가는 게임 자체가 안 되기 때문에 인간의 예술적 존재 의의는 다른 데서 찾아야 한다

바로 그게 상상력이다
기계는 아무리 애를 써도 똑같이 그리는 것 밖에 못한다
반면 사람은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가지 시도를 할 수 있다
컴퓨터가 더욱 발전하면 손재주가 없는 사람도 상상력만 풍부하면 훌륭한 화가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말 그게 가능하다면 예술의 범위는 더욱 넓어질 것이고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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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1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진중권은 참 대단하다
언젠가 이 책에 대한 감상문을 읽은 적이 있다
미학에 대해 눈뜨게 해 준 너무 고마운 책이라는 평이었다
사실 그것 때문에 읽게 됐는데 정말 괜찮다
지루하지도 않고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중요한 핵심을 잘 짚어낸다
서울대 미학과 나왔다고 하더니 그냥 졸업한 건 아닌가 보다
사실 미학이라는 게 순 말장난이라고 생각했는데, 왠 걸, 미학은 철학이고 더 나아가 예술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어찌 보면 예술보다 한 수 위의 학문 같다
평론이 있어야 문학을 제대로 평가해 주는 것처럼 말이다
미학은 예술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더욱 명확하게 해 주는 학문이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보는지라 앞부분은 좀 졸았지만 나중에는 메모하면서 적극적으로 읽었다
이런 책은 두 세 번 읽어도 시간 아깝지 않을 것 같다
2,3 권도 열심히 읽을 생각이다
솔직히 에셔의 그림은 잘 이해되는 건 아니다
다만 느낌은 독특했다
뫼비우스의 띠를 여러 개로 변형시킨 느낌이다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없는 세계, 명확하게 나눌 수 없는 세계, 모든 가치관이 혼재되어 있으면서도 나름의 질서가 있는 세계, 말 그대로 포스트 모더니즘이 아닐 수 없다
미학 오디세이의 주제와 아주 잘 연결되는 화가다

미학은 일찌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정의되었다
플라톤은 이데아, 즉 관념과 본질을 중시하여 예술이란 물체의 속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 자체의 미가 존재하고 그 주관성에 대해 얘기했다
사실 고전주의 시대에는 예술의 주관적 판단이 존재하지 않았다
절대적 가치와 기준이 있다고 믿은 것이다
예술이란 물체의 본질적 속성인 이데아를 드러내는 과정일 뿐이다
그러므로 르네상스 시대 때도 황금분할에 의해 정확히 인체를 표현하기 위해 애썼다
르네상스 대가들의 그 놀라운 그림들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 정교하게 그려진 것이다

반면 바로크 시대로 넘어 오면서 그림에서 형태가 불분명해진다
배경과 형태의 모호함이 바로크 미술의 특징이다
바로크 미술은 17세기 루벤스로 대표된다
"플란더즈의 개" 에 나오는 가엾은 네로가 그렇게도 보고 싶어 하던 바로 그 루벤스 그림 말이다
사실 르네상스 그림에 비해 과장되고 정교미가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화풍이 변한 것이다
바로크 미술은 보다 열린 구조이므로 등장 인물들의 시선은 바깥을 향해 있고 명료성도 떨어진다
대신 그림에 대한 주관적 판단이 들어가므로 보다 자유로워지고 인간적으로 변모한다

대상의 속성을 완벽하게 구현한다는 객관적 시각에서 벗어난 예술은 현대성을 확보하게 된다
사실 현대 미술을 보면 어처구니 없는 것도 예술이라고 등장하는데 다 주관적 판단 때문이다
남이 볼 때는 별 볼 일 없는 작품이라 해도 내가 의미를 부여하면 최고의 예술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발소에 걸린 그림과 피카소의 그림은 분명 누구나 인정하는 수준차가 있다
칸트는 이것을 공통심이라고 불렀다
주관적 쾌감을 만족시키면서도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비슷한 쾌감을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미" 라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예술의 속성은 바로 칸트의 생각임을 알게 됐다
칸트는 천재의 존재를 중요시 했다
고전주의가 대상에 내제되어 있는 규칙을 찾아 내는 과정인데 비해, 천재란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일반인은 수없이 많은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어도 노력만으로 훌륭한 예술품을 얻을 수
없다
천재만이 새 규칙을 만들어 낸다
또 칸트는 예술이 형식미를 찬양했다
즉 순수예술 지상주의를 부르짖었다
예술은 도덕적 교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
칸트는 예술에 대한 개인적인 판단을 중시했다
그리고 누구나 감탄하는 공통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과거 이집트 미술은 건축 양식으로 대표되고 이것은 구체적인 물체로서 이데아를 구현시킨다
그리스로 넘어 오면서 조각이 예술을 대표했다
다시 르네상스를 거친 후 이제는 음악, 미술, 시 등이 이념을 표상화 시킨다
즉 물질의 본질을 구현하기 위해 점점 비물질적이고 추상화 되는 쪽으로 나아갔다
예술이 발전하면 다음 단계는 종교이고, 더 나아가면 철학에 다다른다
종교가 제일 높고 예술과 철학은 같은 등급일 줄 알았는데 좀 의외다
한편 서양 예술에 이런 사상이 담겨 있는지 새삼스레 놀랬다

구석기 시대의 벽화를 보면 놀라울 정도로 화려하고 정밀하게 묘사됐다
반면 이집트나 중세 시대의 그림은 평면적이다
왜 기술이 후퇴할까?
저자는 이 차이를 무엇을 인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즉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그저 눈에 보이는대로 그리는 반면, 이집트 시대 사람들은 원하는 것만 보게 된다
그러므로 그들이 생각하는 관념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실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대신 자신들의 눈으로 왜곡시키고 변형시킨다
이집트 미술의 평면성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우리가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 거울을 보듯, 신 역시 자신의 본질을 나타내기 위해 자연을 만들었다
즉 자연이란 우주의 질서나 원리를 의미하는 로고스의 투사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이 자연의 정점에 있는 존재로 영혼에 신의 본질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야 말로 예술의 가장 중요한 행위다
인간의 주관적 판단 따위는 중요하지 않을 수 밖에 없다
대상을 정확히 모방하는 것에서 벗어나면서 비로소 예술은 인간 중심주의로 돌아선다
나에게 미적 쾌감을 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의미를 지니게 된다

예술을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됐다
시원시원한 도판도 마음에 들고 어렵지 않지만 깊이 있는 설명도 책읽기를 쉽게 한다
현대 미술이 어렵다고만 생각했는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조금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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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4-12-13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미학과'라는 것도 있었군요. -_-a

marine 2004-12-14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런 게 있대요 유명한 김지하 시인도 서울대 미학과를 나왔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를 쓴 유홍준도 여기 나왔다네요 미학은 예술작품으로 철학을 논하는 학문이 아닌가 싶어요

prongkiller 2005-04-01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한민국에선 보기힘든 수준의 클래식 전범이라 생각합니다. 쉽고 자연스런 문체지만 동시에 예술철학 특유의 깊이감은 고스란히 살려낸 작가의 탁월한 능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
금난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9월
평점 :
절판


굉장히 재밌는 책이다
그림이 많아서 읽기도 쉽고 서양 고전 음악의 흐름을 잘 정리해 놨다
음악가들의 초상화가 많이 실려 보는 즐거움이 있다
오페라를 소개하는 책의 저자가, 그림에 관한 책이라면 그림을 보여 주며 설명이라도 할 수 있지만 음악은 들려 줄 수도 없고 안타깝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책은 음악가의 초상화를 보여줌으로써 독자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간다
더구나 경어체를 사용해 누구나 금방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내용도 정말 쉽다
클래식에 대한 내 지식이 짧아서 그런가?
나에게 딱 맞는 책이다

정명훈 같은 세계적인 지휘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금난새 정도면 꽤나 성공한 지휘자다
대중적인 명성도 얻고 이런 책도 쓰는 걸 보면 말이다
그가 부러운 이유는 이런 성공 보다도 음악을 진짜로 즐긴다는 느낌 때문이다
간간히 삽입되는 음악에 관한 에피소드와 감상들이 참 정겹게 느껴진다
음악에 대해 이 정도의 애정과 느낌을 가질 수 있다면 유명한 음악가가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큰 불만은 없을 것 같다
뭔가를 진짜 좋아해서 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랄까?

두 명씩 비교해서 설명하는 방식도 마음에 든다
바흐와 헨델은 이름만 알고 있었는데 비슷한 시대에 활동한 반면 아주 다른 성격이었다고 한다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고 하고, 헨델을 음악의 어머니라고 해서 바흐가 더 유명한 줄 알았더니만  의외로 바흐는 독일 시골 교회에 처박혀 당시에는 거의 무명이었다
반면에 헨델은 유럽을 종횡무진하며 나중에는 영국 국왕의 총애를 받는 당대 최고의 음악가였다
그나마 바흐가 작곡한 음악은 다 흩어져 후대에 멘델스존에게 발견되지 않았다면 영영 묻힐 뻔 했다고 하니, 당시 바흐의 위치를 알 만 하다
무려 20여명의 자식을 낳고 소박한 행복을 꿈꾸었던 바흐!!
그는 대위법 등 고전 음악의 형식미에 충실했고 경건한 신앙인이었던 만큼 대부분 신앙 고백 식의 음악을 작곡했다
첫부인과 사별하고 두 번째 부인과도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았던 반면 헨델은 평생 독신이었다고 하니, 거의 모든 면에서 다 비교가 된다
음악을 비교해 가며 듣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슈베르트와 멘델스존도 큰 대비를 이룬다
슈베르트는 가난한 음악가였고 서른 한 살에 죽은 비극적인 삶을 산다
그는 알려진대로 가곡의 아버지다
멘델스존은 오케스트라를 운영할 정도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멘델스존은 음악 역시 고전미에 충실해서 아름답고 듣기 편하다
음악가들의 생애를 알고 나니 직접 듣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음악사 최고의 천재라면 당연히 모짜르트와 베토벤을 들 것이다
모짜르트는 워낙 어릴 때부터 유명했고 수많은 곡과 오페라를 남겼다
결국 천재들은 어려서부터 티가 나는 모양이다
노력해서 나중에 유명해진 사람은 역사에 길이 남기 힘든 것 같다
아홉살 때 교향곡을 작곡했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
모짜르트는 모든 종류의 음악사에 안 나올 때가 없다
베토벤은 청력이 사라진 후에도 교향곡을 작곡한 대단한 인물이다
음악가에게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건 화가에게 눈이 안 보이는 것과 같은 형벌인데 어떻게 극복했는지 모르겠다
단순히 기교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을 어떻게 감당했을지 참 대단하다

로시니는 매우 활달하고 경쾌한 작곡가였다
로시니라면 베르디와 함께 오페라로 유명한 사람이다
젊었을 때 잠깐 번 돈으로 평생 먹고 살았다고 하니, 참 속 편한 사람이다
더구나 늙그막에는 먹는 재미로 살았으면서도 장수한 복받은 음악가다
오페라 작곡할 시간이 6주가 주어지면 4주는 먹고 마시고 놀다가 5주째 급하게 작곡하고 나머지 한 주에 대충 노래를 붙이는 식으로 작업하고도 음악사에 길이 남은 걸 보면 진짜 행복하게 인생을 산 남자다

스승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평생 사모한 나머지 독신으로 살았던 브람스는 성격답게 고전주의 형식을 중시했고, 조르주 상드와 9년 씩이나 연애한 쇼팽은 피아노의 시인이었다
리스트는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닐 정도로 파리 음악계의 스타였는데 헝가리 출신인 줄은 몰랐다 (프란츠 카프카가 체코 사람인 걸 몰랐던 것처럼)
그래서 헝가리안 랩소디를 작곡했나 보다
리스트의 딸이 남편과 이혼하고 남편의 스승인 바그너와 결혼한 것도 재밌는 스캔들이다
바그너는 종합예술주의라고 해서 음악은 사상을 전달하는 수단이라고 여겼다
그가 시도한 악극도 음악 중심의 가극 오페라에 비해 극적인 요소를 중시했다
그러니 히틀러나 니체 등이 좋아할 수 밖에!!
바그너는 오페라로 더 유명하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니벨룽의 반지 등 귀에 익은 오페라가 많다

드뷔시나 라벨이 인상파 음악가이고 프랑스 음악의 자존심을 높힌 사람이라는 것도 새롭게 알았다
여기서부터 현대 음악가인가 본데 금난새의 설명은 여기까지다
음악가의 초상이 실렸는데 제일 멋진 건 슈베르트였다
다들 음악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자존심 세고 섬세하게 생겼다
아니면 브람스처럼 장중하고 거대하게 생겼거나
멘델스존은 유태인이었고 쇼팽의 아버지가 프랑스인이었다는 것도 새로운 사실!!
소나타가 3형식으로 이뤄지고 현악 4중주가 바이올린 두 대, 비올라, 첼로로 된 것도 새삼 알게 됐다

역시 알고 나니까 더욱 흥미가 생긴다
금난새처럼 음악에 내 느낌을 부여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는 재밌는 놀이가 될 것 같다
음악에 관한 책을 좀 더 읽어 봐야겠다
처음 접할 때는 어렵기만 하더니 자꾸 보니까 중요한 내용이 반복되서 그런지 이제야 감이 잡힌다
앤서니 라빈스의 말처럼 뇌에 새로운 신경 회로가 생기기 때문일까?
기왕이면 음악에 관심이 많은 남자를 만나면 좋겠다
러시아 5인조처럼 아마추어 음악가라면 더 바랄 게 없고
가장 수준 높은 여가 활동은 직접 취미를 체험하는 것이라고 했다
음악을 듣기 보다는 직접 연주하고 그림을 감상하기 보다는 직접 그리며, 책을 읽기 보다는 직접 쓰는 시긍로 말이다
한차원 높히기 위해 일단 열심히 읽고 듣고 감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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