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
쇼지 유키야 지음, 김난주 옮김 / 개여울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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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이 끝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대학시절 함께 한 집에 살면서 밴드를 했던 친구 중 한 명인 신고가 자동차 사고로 죽은 것이다. 사회에 나간 후 그들이 모두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반가움보다 친구를 잃은 슬픔이 더 크다. 장례식이 끝난 후 당연한 듯이 각자의 길로 가려고 한다. 이때 준페이가 말한다. “자살할 거라고. 난.”하고 말이다.  

 

 

 방금 장례식에서 친구를 보낸 나머지 세 친구가 놀란 것은 당연하다. 예약한 비행기 대신 자살하려는 준페이를 설득하기 위해 그들은 함께 차에 탄다. 준페이는 그들과 약속을 한다.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 그 이유를 밝혀내면 그가 자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기나긴 자동차 여행 속에서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모두가 행복하고 즐거웠고 아름다웠지만 강한 아픔과 충격을 남겨준 시간 속으로 말이다. 그 과거의 추억과 기억 속에서 그들은 준페이의 자살 이유를 찾고자 한다.  

 

 장례식이 끝난 아침부터 긴 자동차 여행이 끝나는 다음 날 아침까지 시간을 다룬다. 그 속에서 다루어지는 이야기는 현재가 아닌 과거다. 준페이와 그들이 함께 한 시간 속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그 시절 그들에게 한 여자가 있었다. 연상의 여인인 아카네다. 그녀는 준페이의 연인이기도 하면서 모두가 동경했던 여자다. 그녀의 죽음은 자살이자 사고다. 준페이의 과거 속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여인이자 시간들이다. 이제 이야기는 그녀와의 만남과 함께 한 시간과 그녀가 겪은 과거의 아픈 기억들이 회상 속에서 지나간다. 과연 그녀가 자살하고자 하는 그의 이유일까? 이 부분은 계속해서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청춘의 열정과 즐거움과 함께 한 추억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도쿄 밴드 왜건>에서 이미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을 만났기에 이 작품 속에 나오는 친구들의 삶이 낯설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번엔 약간 미스터리적 요소가 깔려 있다. 왜 자살하려는 것일까? 하는 의문에 대한 해답이다. 이 의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 만나게 되는 수많은 추억과 기억들이 소설의 핵심 내용이다. 대학 졸업 후 각자의 길을 가면서 모두 함께 모였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은 살짝 가슴을 아리게 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 각각의 삶 속에 녹아들어가 그 시절의 즐거움도 추억도 기억도 점점 잊고 살아간다. 그런데 이 하루 동안의 드라이브는 현재나 미래가 아닌 과거로 돌아가는 과정들의 연속이다. 자살의 답을 과거 속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다가온 것이 있다. 그것은 역시 몇 년을 함께 살았던 그들이 현실의 높은 벽 속에서 한 번도 모두 모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학창시절 그렇게 자주 만났던 친구들이 이제 함께 모이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는 현실의 나를 떠올려주었다. 그리고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지쳐가고, 생활에 힘겨워하고, 그 시절의 행복을 잊고 살아간다. 가끔 한때의 밝음으로 이십 대 청춘인 것처럼 착각을 하지만 금방 자신이 그 시절을 훌쩍 지나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과정 속에서 만나게 되는 과거의 행복과 즐거움과 아픈 상처들은 모두 하나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들에게 이 하루의 시간은 바로 청춘을 다시 되살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청춘을 되살린 그 시간이 지난 후 맞게 되는 사실들은 반전처럼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다. 숨겨져 있던 과거가 드러나고, 그 사실은 다시 아픈 기억이 되어 되돌아온다. 하지만 그들이 과거에 묶이거나 멈추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함께 추억하고 기억하고 공유하는 시간을 가질 뿐이다. 몸이 조금 피곤한 상태라 충분히 그 재미를 누리지는 못했다. 예상한 전개와도 달랐다. 하지만 이제 지나간 추억을 되살리기 시작한 사람들이라면 많이 공감할 내용이 가득하다. 가슴에 와 닿는 문장도 곳곳에 있다. 켜켜이 세월 속에서 쌓인 기억과 추억들의 무게가 쌓이고 사라지고 남아 가슴에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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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색의 수수께끼 밀리언셀러 클럽 82
아베 요이치 외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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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가 단편선 중 하나 남은 마지막이다. 이 책을 백색이나 흑색보다 먼저 구해놓고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 헤매다 얼마 전에 찾았다. 원래 출간 순으로 읽으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 그 순서가 깨어지면서 조금은 느긋해진 것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이 시리즈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 그것은 아마 책을 읽으면서 집중력이 가장 좋았던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만들어내는 상황들이 흥미로웠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 다섯 편이 실려 있다. 다른 이야기들과 직업들이 나오면서 각각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이전에 아주 재미있게 읽은 <테러리스트의 파라솔>의 작가를 다시 만나 반가웠다. 그리고 색다른 직업이 주는 흥미와 아직 읽지 않은 작가의 작품이 다른 작품을 기대하고 만들고, 읽는 동안 이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 될까?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근래에 읽은 단편 중에서 취향에 가장 맞다고 해야 할까?  

 

 <푸른 침묵>은 개인적으로 이 단편선에서 가장 취향과 맞지 않다. 충분히 집중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친구의 죽음을 파헤치는 사치에와 그녀를 둘러싼 상황들이 왠지 모르게 잘 정리되지 않은 느낌을 준다. 단순히 금전 문제로 자살한 커플에서 시작하여 점점 규모가 커지는 그 과정이 긴장감을 키우기보다 겉도는 느낌을 준다. 이 작품을 장편으로 바꾸면서 각각의 세부상황과 갈등 구조를 더 키운다면 좋은 작품이 될 것 같다.  

 

 <다나에>는 오랜만에 읽은 후지와라 이오리의 작품이다. 사실 작가의 이름보다 그의 출세작인 <테러리스트의 파라솔>이 기억에 남는다. 예전에 이 작품을 읽고 얼마나 즐거워했던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런데 이번엔 화가와 전시회에서 발생한 황산 테러를 중심으로 인간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비록 중반에 범인에 대한 단서를 포착하지만 잔잔하게 감동을 준다. 로마 신화에서 빌려온 사건이 현재에 적용되면서 만들어내는 상황은 인간이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주고, 그 과거를 현재에 진실하게 받아들일 때 감동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보안사라는 직업을 다룬 <터닝 포인트>는 색다른 느낌이다. 백화점에서 도둑질을 하는 사람을 몰래 잡아내는 직업인데 우리가 자주 가는 백화점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흥미롭다. 실수를 연속적으로 저지른 친구 대신 교관에서 실무로 돌아온 야기의 활약과 백화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도둑질과 사기행각은 읽는 즐거움을 준다. 마지막에 드러나는 로맨스의 분위기는 다음 이야기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사이버 라디오>의 주인공은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라디오 주파수 맞추듯이 연결하는 초능력자를 등장시켰다. 근데 이 능력이 실질적인 힘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현대사회에서 중요한 정보 능력을 배가시키는 것 정도다. 하지만 이 정보 능력이 만들어내는 사기 행각은 대단하다. 우연히 자신의 라디오에 잡힌 목소리와 단어를 통해 숨겨진 비밀을 펼쳐나가는 그 과정이 대단히 흥미롭다. 어떻게 보면 비현실적일 수도 있지만 전직 은행원의 경험을 살린 대목에선 대단히 현실적이다. 다른 작품도 찾아서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 생긴다.  

 

 이 단편집에서 가장 웃기는 작품이 <온천 잠입>이다. 여배우로서 성공을 바라는 치구사와 거구에 약간 어리숙한 모키치를 등장시켜 한편의 블랙 코미디를 만들었다. 처음엔 약간 그 상황들이 작위적이라 짜증이 났지만 읽다보니 그 상황들이 만들어내는 코믹함에 빠지게 되었다.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죽은 시체를 옮기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해프닝이 새로운 가능성을 만든다는 점에서 웃음을 자극한다. 특히 마지막 장에서 보여주는 대사와 의문들은 앞에 펼쳐진 해프닝들이 보여준 재미를 더욱 배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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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 - 작은 나라와 겁나 소심한 아버지와 한심한 도적과 자식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엄마와 아이를 두고 페루로 가 버린 부모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새와 위험하지 않은 대결과 이상한 휴대전화와 당신이 모르는 뉴욕의 비밀
닉 혼비.조너선 샤프란 포어.닐 게이먼.레모니 스니켓 외 지음, 이현수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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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편선의 제목이 엄청나게 긴 것도 시선을 끌지만 작가들은 더욱 시선을 끈다. 너무나도 유명한 닉 혼비나 닐 게이먼을 제외하고도 작가들의 책 제목을 보면 아! 하고 감탄을 자아낼 작가들로 가득하다. 책 제목을 보고 감탄을 하게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작가 이름을 외우는데 소질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몇 권을 읽기 전엔 잘 기억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아니면 여기저기에서 다른 사람들이 자주 말해 주거나 말이다.  

 

 이 책은 서문부터 특이하다. 처음엔 책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하여 쓴 것인가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전혀 관계가 없는 독립적인 이야기다. 호기심을 잔뜩 불러놓은 상태로 이야기의 문을 연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나오는 닉 혼비의 <작은 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를 무대로 한 소년과 축구를 이야기한다. 황당한 설정이지만 읽는 재미가 대단하다. 중국 고사성어 기우를 연상시키는 <라스 파프, 겁나 소심한 아버지이자 남편>로 넘어가고, <괴물>에선 왕따를 당하는 소년의 모습과 마주한 괴물이 어떤 결과를 보여줄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멍청하고 한심한 도적을 훌륭한 꾀로 물리치는 <카울릭에서 벌어진 시합>은 뻔하지만 유쾌하고, <시무어의 마지막 소원>은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은 소년의 마음이 잘 드러난다. 그 유명한 프로이트의 손자가 쓴 <그림블>은 부모가 자식을 저렇게까지 내놓고 키울 수 있나 의문을 자아내지만 닷새 동안 벌어지는 그림블의 짧은 여행이 즐거움을 준다. 실사와 만화를 결합하여 만든 <전장의 용사들>은 소년의 습작 같은 느낌을 주고, <태양새>는 과연 닐 게이먼이란 표현을 자아낼 정도로 멋진 판타지를 만들어내었다. 미식가와 태양새를 연결하여 만드는 환상적인 이야기와 반전은 대단히 재미있다. <이상한 전화>에서 한 소년이 핸드폰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즐거움을 느끼는 과정이 눈길을 끌고, 사라진 뉴욕의 여섯 번째 주를 다룬 <여섯 번째 마을>은 대륙이동설에 기반을 두고 믿거나 말거나 식의 이야기를 만들어내었다. 

  

 

 분량도 다르고, 장르도 다르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모두 다르다. 어떤 이야기는 우화처럼 다가오고, 어떤 부분에선 작가의 취향이 묻어나기도 한다. 언제나 단편집을 읽다 보면 좋아하는 몇 편이 꼭 생긴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닉 혼비의 <작은 나라>, 클레멘트 프로이트의 <그림블>, 닐 게이먼의 <태양새>가 바로 그것들이다. 아직 제대로 닉 혼비의 장편을 읽은 적이 없는데 최근 호기심이 부쩍 많이 생긴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그림들이다. 다양한 형식과 그림체를 보여주는데 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낯익은 그림체도 있는가 하면 어색하고 투박한 그림체로 강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또 하나 더, 겉표지 뒤에 숨겨진 표지 사진은 가장 행렬을 보여주는 듯한데 아주 인상적이고 유쾌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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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 빈센트 람 소설
빈센트 람 지음, 이은선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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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의사나 병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늘 긴장감을 주고 흥미롭다. 그것은 아마도 긴급한 상황이 만들어내는 긴장감과 다양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삶 때문일 것이다. 어떤 작가는 이 상황들을 스릴러나 호러로 만들고, 다른 작가들은 병원에서 벌어지는 사실적인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다른 시각과 출발점이 다른 색깔을 띠고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소설은 현직 의사가 자신의 삶을 참조로 하여 그려내었다.   

 

 장편 소설이 아니라 연작소설이다. 첫 몇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장편처럼 다가온다. 그렇지만 곧 이야기는 의사들만이 아닌 환자들의 현실로 뛰어 들어가고, 그들과 결합하고 충돌하면서 만들어내는 상황들을 보여준다. 그 각각의 이야기는 독립적으로 읽어도 전혀 무리가 없다. 하지만 그들은 한 명과 하나의 대학을 통해 연결되어 있고, 자신들의 삶을 살아간다.   

 

 첫 이야기인 <의과대학에 입학하는 방법>을 볼 때만 해도 그들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보면서 놀란다. 한국의 현실에서 대입 한 방으로 결정되는데 여기선 의과대학 입학을 위해 다른 노력을 기울인다. 그 과정을 보면 의사가 된다는 것이 하나의 전문직임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은 각 나라마다 방식이 다르니 약간 유보하자. 이때만 해도 의대에 들어가면 성공한 삶이고 밝은 미래가 보장된 것처럼 보여준다. 하지만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결코 의사란 직업이 만만하고 여유롭고 편안한 직업이 아님을 보여준다.  

 

 모두 열두 편의 이야기가 있다. 처음 밍과 피츠제럴드의 이야기만 하여도 의사에 대한 열정과 사람 이야기가 주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처음엔 맞다. 전문용어가 흘러넘치고, 의과대학의 풍경이 보이면서 전형적인 형식이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곧 의대 생활을 넘어 그들의 현실을 보여준다. 이 현실이 의사의 입장에서 정리된 것도 있지만 환자의 시선에서 혹은 그 둘의 상황을 보여주면서 진행된다. 그리고 각각의 분위기와 이야기 방식이 다르다. 어느 순간은 흥미로운 과거의 삶을 보여주고, 어떤 순간은 당혹스러운 마무리로 더 이야기가 남아 있지 않나 생각하게 한다.  

 

 열두 편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설명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다. 개인적인 선호도에 따라 좋아하는 작품들이 나누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선호도는 스리의 할아버지 이야기이자 작가와 연관된 듯한 <기나긴 이동>과 급사한 남자의 가까운 과거를 다룬 <그 후>다. 이 둘은 모두 스리와 연관이 있다. 사실 스리가 화자도 등장한 두 편이기도 하다. 이 중국계 의사의 삶이 시선을 끈 것은 역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 때문이다.   

 

 

 <기나긴 이동>은 위중한 병에 걸린 할아버지의 과거사가 주요 내용이다. 길지 않은 분량 속에서 만나게 되는 할아버지의 과거는 수많은 화교들이 세계 곳곳에 어떻게 자리를 잡고 뻗어나가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물론 이것을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의 삶속에 뿌리박고 있는 사고방식은 지극히 동양적이다. <그 후>가 흥미로운 것은 급사한 남자가 발견된 장소 때문이다. 그가 그곳에 가게 된 이유와 그곳을 찾아간 아내와 아들의 모습이 그곳에서 일하는 여성과 풍경이 현대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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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박지현 옮김 / 살림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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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추리소설이다. 책 앞부분에 범인과 범행 장면이 먼저 나온다. 누가 범인인지 안 상태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러니 관심사는 왜 죽였나와 어떻게 이 범인을 찾아낼 것인가에 집중하게 된다. 그 과정을 읽다 보면 단어와 문장 하나하나가 공을 들인 티가 난다. 단서를 숨기고, 풀어내고, 이어가는 과정이 재미를 준다. 그 중심에는 범인인 후스미 료스케와 탐정 역인 우스이 유카가 있다. 이 둘의 대결은 끝까지 이어지고 숨겨져 있던 모든 비밀이 마지막에 풀린다.  

 

 사실 범인이 누군지 먼저 알게 되면 그때부터는 캐릭터가 힘을 발휘하게 된다. 범행을 숨기려는 범인과 이를 알지만 자백 받거나 정확한 증거를 찾으려는 탐정 등의 대결이 시작된다. 이 둘의 대립은 긴장감을 불러오고, 사건을 재구성하면서 좇고 좇기는 심리적 추격전을 펼친다. 이때 탐정 등이 어떤 캐릭터냐에 따라 전체적인 흐름이 바뀐다. 만약 형사 콜롬보나 후루하타 닌자부로 같은 형사라면 약간 어리숙한 외모와 행동으로 범인을 안심시킨 후 날카로운 심문 등으로 한 방에 해결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유카 같은 경우라면 어떨까? 그녀는 차갑고 냉철한 이성으로 그 답에 다가간다.  

 

 날카로운 직관과 냉철한 지성을 가진 두 인물인 후스미와 유카는 다른 사람들에게 잘 어울리고,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둘은 아주 다른 성격의 소유자다. 이 차이가 둘이 하나의 연인이 되는 것을 방해한다. 후스미가 날카롭고 차가운 이성에 뜨거운 감성을 가진 반면에 유카는 감성마저도 이성의 산물인 것이다. 그러니 후스미가 그녀의 고백을 듣고도 선뜻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이 차이가 둘을 범인과 탐정으로 나누어지게 만든다.  

 

 살인 장면으로 문을 열지만 본격적인 이야기는 대학 경음악부 ‘알코올중독분과회’의 멤버들이 동창회 모임을 위해 모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장소는 회원 중 한 명의 형님이 운영하던 고급 팬션이다. 이 모임은 모두 6명의 동창생과 예전부터 모임에 참석했던 회원 레이코의 여동생 유카를 포함해서 7명이다. 멋진 저택과 즐거운 점심시간을 가진다. 사람을 초대한 안도의 목적은 건강을 해친 형님의 부탁으로 빈집으로 오래 방치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동창생도 만나고, 집 청소도 하는 일석이조의 목적으로 그들을 불렀다. 그런데 이 즐거워야 할 모임이 후스미의 치밀한 계획에 의해 다른 상황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사람은 소설의 끝까지 후스미와 유카를 제외하고 아무도 없다. 바로 이 부분에서 은밀하면서도 지속적이고 치열한 심리대결이 펼쳐지는 것이다.  

 

 읽으면서 궁금함을 자아내는 것은 왜 죽였는가와 밀실처럼 꾸며서 시체 발견을 늦추려고 하는 지였다. 뒤로 가면서 살인 이유가 조금 느슨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요즘 벌어지는 살인사건의 이유가 정말 하찮은 경우도 많기에 무리 없이 넘어갔다. 그런데 이 이유가 다음 의문에 대한 답이 되는 순간 잘 짜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왜 그렇게 후스미가 방을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는지 말이다. 작가는 이런 과정들을 수학적 정밀함을 가지고 이어간다. 감성의 영역을 최소화하고 이성으로 무장한 채 하나씩 드러나는 오류를 잡아가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인간미가 가려져 조금 아쉽기는 하다.  

 

 한정된 공간과 많지 않은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과거의 에피소드가 나오고, 몇 년 만의 만남을 즐거워하는 광경이 살인사건이 주는 무거움을 들어준다. 엉뚱한 상상력으로 상황을 낙관하고 즐기는 그들에 비해 유카의 날카로운 이성의 압박은 가볍고 즐거운 분위기에 긴장감을 이어가게 만든다. 이 날카로운 이성의 칼날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위험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 후스미 밖에 없다고 하여도 말이다. 인간의 따뜻한 감성은 없지만 유카가 보여주는 능력은 분명히 매력적이다. 그런 점에서 그녀의 다른 등장을 기다리게 만든다. 다행히 작가가 도서 3부작의 두 번째 책에서 다시 그녀를 등장시킨다니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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