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미술관은 분위기가 참 좋다.

고궁안에 있다는 점도 그렇고  오래된 석조건물이라는 것도.. 그리고 미술관이 횡하니 넓지 않고 조금 좁은 듯한 것이 오히려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있다.

 

새로 개장안 현대미술관을 갈까 하다가 덕수궁으로 왔다.

아늑하고 오밀조밀한 장소에서 내게 익숙하고 이야기가 많이 숨어 있는 그림을 본다는게 겨울에는 더 어울리는 거 같아서였다,.

내가 알던 사람들 눈에 익은 그림들 교과서에서 보던,, 혹은 상식으로 알았던 것들을 실제로 본다.

첨에 갔을때는 오디오 해설을 들었다.

그림에 대한 지식은 생기겠지만 화풍이 어떻고 작법이 어쩌고 하는 건 사실 몰라서도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번엔 그냥 눈으로 봤다. 그림을 보고 작가랑 제목을 보고 그려진시대를 보았다.

저런 시절 저런 그림은 어떻게 나왔나.. 보여지는 한폭의 그림뒤에 더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는게 느껴진다.  암울한 시대에 모던보이나 서구적인 분위기를 보면서 꽤 잘 살았군.. 하는 삐딱한 시선도 가졌다가 한참 들여다 보는 그림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부서질듯 위태로운 불안도 느껴진다.

 

 

오지호의 "남향집"이다.

이전 어떤 기사인지 모르겠지만 이 그림을 본 적이 있다. 그때부터 낯설지 않고 참 눈에 익은 느낌이었다. 그림의 배경이 되는 장소를 어쩌면 내가 알거 같기도 하고 내가 가본 곳 같기도 한 묘한 느낌... 그러다 생각이 났다. 내 외가집같구나.

사실 내가 방문하고 기억하는 외가집이 아니라 엄마의 낡은 흑백사진속의 외가집 모습이 보였다,

50~50년대 평범하고 소박한 집 그리고 그 집에 사는 야무진 여자아이

그림속 단발머리 소녀는 엄마의 낡은 사진 속 인물들과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다.

바가지를 씌우고 자른 것 처럼 깡충한 뒷머리와 눈썹이 드러난 앞이마.. 그리고 조금은 쩨려보듯이 도전적인 눈빛으로 정면을 바라보는 시선 하지만 그 속엔 불안과 수줍음도 들어있는 묘하게 정감가는 표정... 그림속 소녀는 눈코입이 보이지 않지만 아마도 그런 표정일것이다.

내가 익숙하게 보아온 표정이기도 하고...

그렇다. 나는 저 그림에서 유년시절 우리 엄마를 본다

이제 70이 훌쩍 지난 엄마도 그런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짧은 머리가 맘에 들지 않아 속상할 수도 있고 오빠들 남동생에 치여 존재감 없는 중간딸이라는게 화가 나기도 하고 그러면서 세상에 대한 꿈도 있고 희망도 있고 뭔가 모를 기대감이 가득했을 나이

따뜻한 양지에서 바라보는 바깥풍경에 대한 동경같은 걸 품을 나이..

옆에 늘어진 강아지의 팔자를 부러워하지만 결코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는  치기어린 뭔가를 가질 수 있는 건 따뜻한 빛과 공기를 가진 남향집 소녀였고 아직은 살아갈 날이 많은 나이여서일 것이다. 볕이 강할수록 그늘도 깊다는 걸 그때는 눈에 보이는데도 모를 것이다. 그 짙은 그늘보다는 빛과 볕이 더 눈에 찰테니까

그림앞에 서서. 엄마.. 하고 불러봤다 괜히 코가 찡하다.

미안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하지만 따뜻한 기분도 함께이다.

저렇게 환한 볕아래 아무 근심없는 소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Masterpieces of Mode

 

박수근 작품중 내가 맘에 들었던 것.

이것도 오지호의 남향집과 비슷하다.다만 박수근 화풍의 특징상 그렇게 환한 볕은 없다는게 다를 뿐이고.. 이 그림도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다. (작가가 가진 이야기가 아니라 보는 사람이 갖는 이야기) 아마 남향집도 저런 오래된 골목에 있었던 집이었으리라

그 골목에 오전에서 오후까지 길게 해가 비칠것이고  4시무렵부터는 저렇게 조금씩 빛이 줄어들면서 조금은 어둑하고 아늑하고 가라앉게 될것이다. 그래도 그 골목이 익숙하고  편해서 누구나 아무런 걱정없이 다닐 것이다. 계집애들은 아직 놀이를 끝내지 못했고 저녁준비하기에 아낙들도 아직은 여유가 있다. 아직은 해가 지지 않았고 어둡지 않은 시간 어쩌면 해가 드는 낮에 계속 집안일이나 심부름 동생 보기  등등으로 정신없이 고달팠던 여자들의 여유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익숙한 냄새 익숙한 풍경을 가진 동네 골목에서  둘셋씩 모여서 시간을 흘려보내는 이 순간이 하루의 유일한 휴식시간이라는 생각도 든다.

남향집속의 계집아이도 여기서는 친구랑 이야기하고 있다.

나중에 미래엔 어떤 삶이 펼쳐질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이순간은 행복하고 즐겁다. 친구가 있고 이제 쉴 수 있으니까.

 

그림을 보면서 내가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를 생각할 수 있는 것도 내가 결국 저 시대에 조금으 발을 담그고 있었기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경험하지 않았어도 경험했던 사람들과 함께 살았고 그 흔적을 엿본 기억이 있고 아직은 그때의 흔적이 남았던 70년대 80년대를 살았고... 그래서 그 그림들을 보면서 그때의 소리 그때의 모습 그때의 냄새를 떠올릴 수 있다. 그건 축북이다,

그 축복덕에 나는 조금은 더 풍요롭게 그릶을 감상할 수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그림도 좋다. 여름 오후 모기장을 혼자 차지하고 덜렁 누워있는 여유가 재미있고 근사헤 보인다. 여름에 모기장에 들어가 저렇게 누어본 사람은 알것이다. 요즘은 일인용 모기장도 나오지만 예전 나 어릴적에는 온 방을 다 덮을 커다란 모기장을 치고 온가족이 들어가 잠을 잤던 기억이 있다.

모기를 잡는 건지 사람을 잡는 건지 알 수 없는 그 모기장 안에서 형제들이랑 웃고 떠들고 치고 받다가.. 그러다 모기장 찢어진다.. 하는 한소리를 듣고 조금 멈칫하다가 다시 시작되는 장난질,.

그 커다란 모기장에 대한 기억을 가진 나는 .. 그 모기장안에 혼자 저렇게 덜렁 누워있는 생각을 그때 왜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고... 부럽기도 하고 그랬다. 그 어떤 설명없이도 그림속 인물의 마음을 알거 같고 부럽다.

 

내가 보는 그림에 대한 느낌이나 평가가 어쩌면 작가의 의도와는 크게 다르거나 엉뚱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가진 생각 내가 가진 경험을 토대로 그림을 대상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고 해석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참 편협하게도 내가 이해하고  경험했던(그게 직접이던 간접이던) 것을 느낄 수 있는 그림이 좋았고 좋았다.

이중섭의 경우는 그 유명한 황소보다는 "길떠나는 가족이 좋았다" 같은 제목으로 올려진 연극을 본 경험때문일 것이다. 내가 이중섭에게 받은 인상은 어떤 위대한 화가 살아있는 동안이 고흐처럼 불행했던 화가의 이미지보다 가족을 그리워하고 사랑한 가장이 이미지가 큰건 그 연극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이 어떻게 변색되었을지라도 내겐 좋게 남아있었다. 그래서 길떠나는 가족.. 앞에서 나는 내가 잃어버린 가족을 만난것 처럼 설레고 흥분되었다.

내가 가진 얕은 기억이나 경험도 어떤 대상을 감상하는데 좋은 역활을 한다는게 참 좋았다. 어쩌면 나름 시대를 잘 타고 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을 만큼.

어쩌면 그래서 그림을 함께 본 내 아이들은 그런 공감을 못 느꼈을 수도 있다. 그저 교과서에 나오는작품.. 하나의 교양이나 지식이 되는 작품으로 대할 수 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

그아이가 본 내 어릴적 사진은 아파트가 배경이었고 지금과 비슷한 헤어스타일이나 옷차림의 내가 있고 골목보다는 아파트 동 호수가 더 익숙한 상황에서 골목길이나 남향집은 또다른 느낌이 아닐까.

아직은 덜 여문 경험때문이라고  생각도 해보지만 그래도 어떤 공감이나 경험이 없이 보는 건 다를 수도 있겠구나.. 싶다. 내가 느끼는 것도 내 부모가 느끼는 것이랑은 확연히 다를 수 밖에 없을테니까...

미술관에는 진시성격때문인지 유난히 나이드신 분들이 많았다. 부부가 함께 와서 보는 경우도 많았다. 엄마랑 왔으면 좋았을 걸...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오시고 싶었을거 같다는... 그런 생각도 했다. 어쩌면 그분들이 좋아하는 그림은 그분들의 기억과 경험은 또다른 것이었를 거다.

그걸 함께 이야기 해 볼 기회가 없다는 게 슬펐다.

 

아이에게 좋아하는 그림을 하나 골라보라고 했다.

아이 둘이 공통으로 고른건.. 이인성의 해당화였다.

 

내 아이들은 이 그림에서 어떤 이야기를 발견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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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되겠지 - 호기심과 편애로 만드는 특별한 세상
김중혁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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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의 빨간 책방을 들으면서 첨 알았다. 김중혁이라는 작가...

사실 이전엔 소설가라는 것과 김연수 친구라는 것만 알았다. (작가에게 미안하네)

그런데 팟방을 뜰으면서 이동진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말을 들으면서 이 작가의 말이 생각이 참 좋았다. 그냥 나랑 비슷하게 생각하네 싶은 맘도 들었고 너무나 매끈하게 이야기하는 이동진에 ㅣ해 버벅거리고 얼버무리는 경향이 많지만 그래도 뭔가 자기 주장을 해야할테는 투박하고  솔직하게 자기를 드러내는 게 좋았다.

그래서 책이 궁금했는데 소설은 제목을 보니 사실 끌리지 않았고  이 책은 나올때부터 제목이 끌렸다.

그래 뭐라도 되겠지... 안달할거 뭐있나 싶은 마음에 제목이 정말 와닿았다.

그리고 미루고 미루다 도서관  장장 에약까지 하면서 본 책

우선 이렇게 두꺼울 지 몰랐다.

사실 어느 정도에서 잘랐으면 좋았겠는데 내용물이 너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모든 글이 고르지 않았다. 특히 후반부

두번째 요즘 젊은 작가들의 경향이기도 하지만 하루끼 풍의 문체가 자꾸 걸린다.

물론 이 작가으이 방송을 듣다보면 이 작가의 목소리가 저절로 재생되어 나와 문체랑 말투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자꾸 하루끼가 연상된다.

조금은 가볍고  아니면 말고 식이거나.. 중간에 개입해서 (괄호속에 들어갈 말들이 튀어나오는) 뭐 그런 것들이  걸렸다.

하지만 내용이 공감이 가는게 많다.

자기를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단점도 감추지 않고 소심하고 꾸준하지도 못하고 게으르고 방만한 성격이지만 그래도 뭔가 이루지 않았는가.. 이렇게도 살 수 있지 않은가 하고 이야기한다.

그렇지 그래... 우리 아이들도 나중에 뭔가 되긴 되겠지? 하는 무한 긍정을 마구 샘솟게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래서 뭐... 결국 이 작가는 그래도 뭔가가 되었지만 다들 이렇게 뭔가가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하는 의심과 불안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기도 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따라하기엔 왠지 미심쩍고 불안하고 위험해 보이는...

어쩔 수 없는 학부모의 마음이 자꾸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대단한건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작가가 .. 나도 이랬어 그런데 괜찮아.. 하는 말을 읽으면서 나자신은 공감이 가지만.. 이걸 우리애들는 금서로 해야하지 않나 나는  이중성을 마구 드러내게하는 책이었다.

그래서... 애들이 보면 좋겠지만.. 나중에 어느정도 걸러낼 이성이 생길때 보면 좋겠다는 욕심이...

 

하지만 뭐 이런걸 다.. 혼자 생각하고 말지.. 했을 것들을 모두 세세하게 기록하고 글로 풀어내는 그 부지런함과 정성에는 감동했다. 별 건 아니지만  누군가 술자리에서 수다떨고 말 이야기들에서 그래도 뭔가를 꺼집어 내는 걸 보니 작가구나 싶고 참 사람 좋을거같다는 생각도 들고... 암튼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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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치지 않는 비 - 제3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개정판 문학동네 청소년 17
오문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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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델과 그레텔은 뿌려놓은 조약돌을 밟으며 집으로 돌아간다.

나는 하나하나 작가가 뿌려놓은 밑밥을  잡아가면서 막바지로 향해갔다,

처음엔 그저 그랬다. 문장도 나쁘진 않은데 자꾸 걸렸다. 쉽게 줄줄 읽혀지지 않았고 목에 턱턱 걸리면서 거칠고 서툴렀다. 뭔가 나쁘진 않는데 매끄럽게 넘어기는게 없었다.

괜히 골랐나 싶었다.

중간에 패스트푸드점에서 할머니를 만나는 장면에서 그만 책을 덮었다.

어쩌면 나는 청소년 문학이라는 것에서 어떤 재미나 커다란 스케일 혹은 요즘 아이들의 발랄한 무언가를 찾았었던 거 같다.

단언컨데.. 이 책에는 그런게 하나도 없다.

그냥 한 소년이 가출이 아닌 여행을 떠날 뿐이다.

왜 그런지 알 수 없고 도데체 어떤 배경인지 읽어도 잡히지 않는다. 다만 함께 동행하는 형에게 뭔가 비밀이 있구나 하는 감은 있다. (이런건 진부하진 않지만 이제 너무 쉽게 보인다.)

하지만 꾹 참고 다시 책을 읽으면서 나는 헨델과 그레텔이 뿌린 조약돌처럼 그렇게 이정표를 찾아서 하나씩 하나씩 보물을 주워가며 이야기의 끝을 향하고 있었다.

가출이 아닌 여행을 떠난 아이는 길에서 많은 사람을 만난다.

터프한 세상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어하는 노래에 재능이 없는 전직 의사도 만나고

거리의 부랑자도 만나고 산타클로스 할머니도 만나고 사연이 깊은 목사도 만난다,

그리고 여행의 중간목적정도 되는 예전의 여자친구 (여자인 친구)19번도 만나고 대장도 만나고 펜더도 만나고....

길을 떠난 아이는 여러 사람을 만나서 위악도 떨고 건방지게 굴기도 하고 다정하기도 하다.

그리고 어느날 문득 거울앞에서 인중에 돋아난 털을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면도기를 사용한다.

 

어쩌면 엄마가 마지막에 남긴 "괜찮다"는 말이 크게 목구멍에 걸리고 명치에 걸려서 그렇게 방황을 했었던가보다. 괜찮다는 말은 참 묘하다.

누군가가 괜찮다고 하면 그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안이되기도 하지만 떄로는 비수가 되기도 한다. 너가 말한 그 세음절 "괜 찮 다"가 공중에서 나에게로 는 닿지 않을 때가 그렇다.

너는 괜찮지만 나는 도저히 괜찮을 수 없는 경우가 있는 법이다.

차라기 그말을 지하주차장에서 벽에 등응ㄹ 대고 웅크렸던 형이 들었더라면 죄의식이 덜했을까  또다른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소년은 생각하고 고민하지만 해결이 없어서 주먹을 쓰고 야구 배트를 쓰고 전학을 간다.

엄마의 그 세음절을 나중에 긴 여행끝에  소년에게 도달했다.

이젠 정말 괜찮다고...

정작 소년에게 괜찮다고 말해 주었으면 하는 이들은 아버지나 형은.. 모두 입을 닫고 있었고 소년이 그 세음절의 무게로 휘청거릴때 형수는 소년을 위로한다.

형보다 강하다고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책을 읽고 불현듯 드는 생각이 "우아한 거짓말"의 남학생판이네 였다.

뭐 비슷한 점이 없긴 하지만 가족중 누군가가 죽고 이후에 홀로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 그렇다.

하긴 소년에게는  만지와는 다르게 두번의 죽음이 있얶고 다정하고 친구같은 엄마 대신 스스로를 못이겨내서 자식에게 무심했던 아버지가 있을 뿐이지만  큰 사건이후 그 이유를 홀로 찾아내고 견뎌야 한다는 점에서는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길을 떠나서 사람을 만나고 조금씩 드러나는 소년의 아픔이나 상실을 보면서 세상에서 잚어진 무게를 혼자 견뎌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게다가 비까지 내리는 상황이다.

비에 아예 흠뻑 젖어버리면 더 이상 젖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첨에 비를 보면 무조건 피하고 한방울이라도 튀는 걸 못견뎌하지만 이미 젖어버린 몸에서는 아무런 두려울 것이 없다.

언젠가 비는 그칠테고 사람들은 그런 것을 비라고 부르니까.

 

 

.

 

책장을 덮으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처음부터 다시 꼼꼼히 읽으니 그제사 내가 무지하게 거칠다고 투덜거렸던 문장들이 다가왔다,

소년이 아프다고 할 수 없었던 말들 외롭다고 할 수 없었던 말들 두렵다고 할 수 없던 말들이 거칠고 단순하고 덤덤한 문장속에 숨어있었다.

그랬구나...

 

나는 쿨하다... 란 표현이 참 싫어졌다.

나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요.. 난 아프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다가오지 마세요 날 건드리지 마세요 그냥 그만큼 거리에서 바라보기만 하세요.

나도 다가가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세상에서 도피하는 말 같아서 싫었다.

상처가 싫어서 더 단단한 껍질 속으로 들어가버리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또 더 나아가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더라도 그냥 아무렇지도 않고 여기고 말거라는  소심한 이기심까지 들어있는 말같아서..

차라리 뜨겁지 않더라도 뜨뜨미지건한 정도라도 온기를 가지는게 낫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냥 다가가고 거절당하고 상처받고 소독하고 주저않고 울고.. 그렇게 감정에 충실하고 촌스럽게 사는게 정말 사는게 아닐까.

소년의 삶이 쿨함에서 조금씩 온기를 가질거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고  망설이지만 대꾸해주는 것부터가 그 시작일 것이다.

 

청소년 소설이라기엔 벅찬 느낌이다.

하지만 한문장 한문장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망설이게 만드는 무언가는 있다. 누구하나 허투로 나온 사람이 없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고지식하고 거칠지만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는 점이 참 좋다.

꽤 괜찮은 작가를 알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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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미, 칠월의 솔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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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들의 서평이나 책읽기에 대한 글을 읽어보면 책을 읽으며 마음에 드는 구절에 줄을 긋고 한 귀퉁이에 자신의 생각을 끄적이는 습관을 가진 이들이 많다.

늘 읽는 책에서 내 마음을 움직이는 한 구절이라든가  작가의 중심생각이라든가 의미있는 어떤 문장.. 하다 못해 어딘가 인용하기 근사한 문장들을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

난 서평이나 리뷰를 읽으면서 저자가 책에서 느낀 그 무엇보다 기가 막히게 뽑아내는 그 인용들이 더 놀라웠다.

나도 나름 책을 읽는다는 사람이고 생각했는데 난 영 밑줄과 친하지 않다.

아무리 좋았던 책이어도 몇번을 되풀이 해서 읽은 책에서도 난 밑줄을 긋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겨우겨우 억지로 이것이 저자의 생각이 아닐까 싶은 것 혹은 이게 그 순간 내 무언가를 건드렸따는 문장을 찾기는 하지만.. 그게 영 서툴렀고 뭔가 억지스러운 면이 있었다 적어도 내게는...

 

이번 소설은 정말 남은  페이지를 세기가 아까웠다.

다른 단편에 비해 많은 작품이 수록되었다 싶었지만 야금야금 아껴 읽었는데 어느새 작가후기가 눈앞에 나타났다.

열한편의 이야기들은 모두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내가 겪었던 일들 내가 들었던 일들 그동안 깊이 묻어두기만 했던 일들을 누군가에게 담담하게 전해준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가 행동하고 경험한 무언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나즈막하게 풀어내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 이야기들은 지극히 사소하고 사적인 것이지만 그 작은 이야기들은 묵직하게 마음에 자리를 만들어간다. 팸 이모의 젊은 날의 사랑이 그러하고 낡은 시계사의 노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도 그러하다. 큰 누나가 술을 마시며 들려주는 엄마의 이야기.. 그리고 이혼한 소설가 엄마가 들려주던 이야기와 내 기억속에서 아버지가 들려줬던 이야기. 모든 이야기들이 아주 사소하면서도 사소하지 않다.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깊이 공감하고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가 좋아서 어딘가 나도 밑줄을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연필을 들고도 어디에 줄을 그어야 하는지 몰랐다.

내가 깊이 느끼고 공감하고 울컥했던 건 어떤 문장 하나하나가 아니었던 것이다.

난 그 문장들이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낸 이야기에 감동하고 행복하고 아팠던 거였다.

이야기 하나하나를 통째로  줄을 긋든가 아예 복기를 하지 않는 이상 어디에도 밑줄을 그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소설을 읽으면서 누구는 문장이 화려하고 누구는 구성이 좋고 누구는 이야기의 힘이 좋다고 한다. 난 아직 초보 독자라 그런 깊고 세밀한 독서법은 아직 알지 못한다.

하지만 어떤 문장과 어떤 구성이 모이더라고 그것이 만들어 내는 하나의 이야기가 더 좋다.

천일야화를 들려주던 세라자데도 그녀의 목소리가 좋았다거나 말을 잘했다거나 문장구성력이 좋아서 그렇게 오랫동안 죽지 않았던 것은 아닐것이다. 어눌하고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고 표현이 서툴더라도 그 이야기가 가지는 진정성과 힘이 그녀의 목숨이 오랫동안 이어지도록 한게 아니었을까

내게 소설 읽기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함께 웃고 울고 한숨쉬고 가슴을 쾅쾅 두들기면서 분하고 안타까운 그 우엇이었다.

 

열한편의 이야기는  담담하게 들려줬다.

지난 시간을 후회하지 말라고 그 순간의 서툴고 찌질했던 순간도 지금의 나를 성장시켰던 좋은 기억있었다고 아픈 가족사도  그게 최선의 진심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때로는 나의 진심이 타인에게는 의미가 없을 수 있다는 것  오히려 그것이 누군가에게 부담이고 실패를 부를 수도 있는 것이니까 그리고 내가 아는 무언가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 내가 눈을 감고 모른 척 넘어간 그 순간 그 갈피가 깊은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는 ....작가를 통해서 누군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그렇게 가만히 내게 왔고 스며들었고 아프고 위안이 되었다.

그래서 너무 좋다고 생각하면서 마지막 장을 덮었는데 다시 펼쳐 읽으면서 어디에도 밑줄을 칠 수가 없었다 도데체 어떻게 이 이야기들을 어느 한부분만 툭 잘라내서 밑줄을 그을 수 있단 말인지...

그게 나의 무능이라면 무능이고 단순함이라고 해도 할 수 없다.

 

작가는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그 많은 이야기가 11개의 단편으로 나왔다. 누군가에게 들었던 어디선가 본.. 그리고 내가 경험하기도 했던 이야기들이 서로 섞이고 녹여지고 발효하고 부풀어서 또다른 의미를 가지고 그에게서 흘러나왔고 독자들은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다.

누군가가 나즈막하게 들려주는 별로 대단하지도 않고 큰 의미를 가질 수는 없을 지 모르는 이야기들이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큰 의미가 없고 대단하지 않더라도 지금 이 순간 내게  그 이야기들을 조곤조곤 들려주는 그에게 지금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이 이야기는 대단한 의미를 가지고 소중하다. 모두에게 감동을 주는 이야기는 많지 않다. 모두에게 의미있는 이야기도 많지 않다.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소설같은 이야기라고 하거나.. 심심풀이 땅콩으로 읽는 소설이라거나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저  소일거리일뿐이고 누군가의 지어낸 별 쓰잘데 없는 소설이라는 것이.. 그 이야기라는 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기도 하고 공감이 되어주고 괜찮다 다 괜찮다고 내 어깨를 쓸어주는 눈물나는 손끝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멋진 캐시미어 코트도 훌륭하고  캐나다에서 넘어온  구스도 겨울나기에 멋지지만 그저 솜을 두둑히 넣은 깔깔이나 오래되어서 귀퉁이가 낡고 밤중에 파다닥 튀는 불꽃쇼마저 보여주는 낡은 나이론 담요만으로도 충분히 겨울을 날 수도 있다. 오히려 그 낡고 반들반들한 촉감이주는 눈물나는 위로가 있다.

이야기는  소설은 대단한 것이어서가 아니라  노벨상을 받을  위대한 걸작이어서도 아니라

그냥  누군가 무심히 던지는 이야기에 귀기울여주는 소박한 공감이 있고 그리고 남에게는 말하기 부끄러운 하지만 나는  혼자 충분히 알 수 있는 위로가 있다.

다들 김연수 김연수 하지만 난 아직 그가 왜 좋은 소설가이니.. 과연 대단하긴 한지 모른다.

하지만 추운날 그의 책을 한장한장 넘기면서 한숨쉬고 웃고  눈가가 붉어지면서 때로는 무슨 말인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그냥 낡은 담요를 덮은 것처럼 포근하고 좋았다.

그건 그라서 좋았다기 보다 그가 들려준 그 이야기들의 소박함이 하지만 은밀하게 누군가 소중하게 간직했던 무언가를 엿보는 기분이 주는  정전기의 불쫓처럼 짜릿하고 눈물나게 따뜻한 그것들이 좋았다.

그래서 한때 행복했고 책장을 넘기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책을 다 읽고  누군가의 서평을 보면서 나는 밑줄 그을 문장을 발견했다. 내가 책을 일으며 생각은 했지만 표현하지 못한 문장이 그제야 나왔다.

 

집 나갔던 아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사람들의 에상처럼 그가 가진 것을 모두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방랑의 체험을 통해 또다시 성장하고 성숙하여 가장 심원하고 놀라운 섹는 바로집이고 고향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소설이 결국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가장 새로운 것은 바로 인물의 존재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이전에는 문학을 알거나 기어하지 못했던 고유명사를 하나의 인물을 이곳으로 데려와 소개하는 것이 작가의 새로운 일일 것이다. ....................................

편견어린 시선을 보았을 때 그저 그러 소년들 중 한 명에 불과할 존재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그 이름이 거느릴 수 있는 다양한 모습들을 상상함으로써  우리는 이제 새로운 지평을 마련한다.

 

 

작가들이 글을 쓸 때 치통같은 개별적인 고통에만 절대적으로 함몰되면 결국 글쓰기는 유아론적인환상에 그치게 되다. 우리가 세계와 시대로부터 무언가를 빌리고 있으며 그 ㅍ채무의 대상에는 고통도 포함된다는 것을 푸른 색 볼펜과 초상의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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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란 무엇인가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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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등이 하나둘 꺼진다. 하얗게 빛나던 홈 플레이트가 일요일 밤의 어둠 속으로 녹아든다. 순간, 사내의 두개골 아래에 고인 어둠이 번쩍 밝아온다. 빛나던 홈 플레이트가 머릿속에 들어앉는다. 희미해진 파울라인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부챗살처럼 펼쳐진다. 머릿속에 펼쳐진 새하얀 길이 사내의 눈초리를 팽팽하게 잡아당겨 놀란 표정을 만들어낸다. 사내는 방금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아이가 들춘 야구의 진실에 부르르 몸을 떤다.

야구는 집을 떠나 집으로 돌아오는 경기다.

하지만 집을 떠났던 모든 이들이 집으로 돌아올 수는 없다.

내가 잘못해서도 안되지만 나혼자 잘한다고 집으로 돌아올 수도 없다.

누군가가 함께 뛰어야 하고 함께 호흡을 맞춰지주 않으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너무나 길거나 아예 차단되어버린다.

야구는 그래서 어쩌면 아주 몹시..... 무서운 경기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가장 고생스러운 길은 어쩌면 집을 떠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김경욱의 소설은 처음 읽었다.

그가 어떤 소설을 써왔고 어떤 작품이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이  이야기는 정말 지독했다.

한장한장 넘어가는게 두려워서 몇번을 중간에서 멈추었다.

다음장에 무엇이 나올지 두려웠다.

노란 토끼가 파란토끼가 될까봐 나도 두려웠고 그 앞에서 무능력하게 아무런 대처를 못하는 사내가 두려웠고  염소를 만날까 혹은 만나지 못할까도 두려웠다.

늘 야구에서 9회를 보지 못하는 사내에게 지독하게 공감하면서 한장한장 넘겨 마침내 마지막

가장 아름다운 야구장 씬을 발견한다.

이것이 가능한가 아닌가가 문제는 아니다. 어짜피 소설속의 이야기이므로..

하지만 홈메트앞에  텐트를 놓아주고 잠자리를 마련한 아비는 세상 어떤 젊은 아비보다.. 칼슘을 풍부하게 주는 아비보다 따뜻하다. 아니 뜨겁다.

 

중간 아우의 이야기를 보면서 영화 "스카우트"가 생각났다,

거기서 주인공도 광주까지 선동렬을 스카우트 하러 내려갔다가 큰 사건에 휘말린다.

그리고 홈으로 돌아오지만 떠날때의 그가 아니다.

선동렬도 얻지 못했고 첫사랑도 지키지 못했고.. 암튼 그랬다.

짧은 경험이지만 내가 본 어떤 그 시대 광주 영화보다도 더 강하게 왔었다.

그저 임창정이 나와서 싱겁게 웃기고 허풍떠는 걸  아무 생각없이 보다가 뒤통수 맞은 느낌

그냥 5월의 봄날 웃고 건들거리다 신문 귀퉁이의 기사를 보다가 나중에 모든 걸 알고 충격을 느꼈던 딱 그 감정이 그대로 전해졌다.

도데체 아비와 아들은 왜 길을 떠나는지 .. 그 사내의 아비는 왜 죽어서도 눕질 못했는지 궁금해하면서 건성건성 책장을 넘기다 뒤통수를 맞았고... 하지만 마무리가 따뜻했다.

결국 이들은 집으로 돌아갈테니까..

 

내가 알던 아버지도 야구를 무지 좋아하다가 이제 그가 왔던 집으로 돌아갔나보다.

사내의 아버지와 라이벌이었던 거인을 좋아했던 우리 아버지가 새삼 또 떠오른다.

나랑 하등 상관없어보이지만 어쩔 수 없는 연고라는 낡은 인연으로 끈질기게 집착하던 모습이 그 승패에 하루의 심기가 결정되던 날들이 떠오른다.

그땐 그게 따뜻한 장면이라는 걸 몰랐다.

사내도 어쩌면 호랑이의 경기에 희비가 엇갈리던 제 아비의 모습을 이젠 따뜻하게 기억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엉뚱하게 든다.

그리고 이제 9회를 맘 편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남에게는 무수히 해대면서 가족에게는 하지 못했던 미안하다는 말을 아들 입을 통해 처음으로 들은 사내라면 이제 야구를 끝까지 볼 수 있을 것이다.

야구는 참 매력있는 경기다.

집으로 돌아가는 경기... 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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