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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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의 이야기들을 읽고 나면 나는 내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은지 명확하지도 않으면서 뭔가 내 이야기를 나도 남겨야 하지않나 하는 조급증이 든다.

 

짧은 연필을 손에 꼭 쥐고 중지에 굳은 살이 박힐만큼 손가락에 단단히 붙이고 심 끝에 침을 발라가며 꾹꾹 눌러쓴 글자들을 읽는 기분이다.

한글자도 놓쳐서는 안될 것 같은 강박이 들고 하나라도 놓쳤다가는 전체를 놓칠 수도 있겠다는 긴장감이 든다.

그리고 한편이 끝날 때 마다 몹시 힘들다.

이미 고백한 말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언젠가 어느 순간 느꼈지만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언어를 찾지 못했던 그 마음이 그때 그 막막하고 화가 나기도 했을 거고 또 부끄럽고 어딘가 도망가고 싶으면서도 절대 가면 안된다는 마음으로 내가 내 다리를 붙잡고 있는 그런 막막한 마음들을 작가는 기가 막히게 표현하고 있다.

다른 경험들이 같은 감정과 같은 고통으로 모아질 때가 있다.

당신의 경험과 나의 경험은 너무 다르고 그 상황조차 관계없지만 서로가 같은 기분을 느끼는 순간을 경험한다.

작중 인물의 경험은 나와 겹치는 부분은 많지 않다.

그러나 그 찰라의 감정은 묘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렇게 꾹꾹 눌러 쓴 6편의 이야기를 읽고 짧게 몸살을 앓는다.

긴 숨을 이제야 제대로 인식하고 내뱉는다.

읽는 동안 내가 숨을 쉬지 않았다는 것 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와 일년은 비슷한 결을 가진다.

세상에서 닮고 싶은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불가능에 가깝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지금의 선택이 맞는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지 나도 모를 때

누군가 내 앞에서 길을 만든 이가 있다는 건 큰 행운이다.

그런 누군가를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또 그만큼 실망하고 미워할 수 있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에게 실망하고 나를 안쓰럽게 보는 그에게 기대고 싶다.

나를 따르는 누군가가 나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적어도 어른인 척 굴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기도 하고 애쓰 모른 척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 함께 길을 걸어간다는 건 감사하다.

누군가 내 앞에서 빛을 밝히고 있고 누군가 내 뒤에서 내 발밑을 비추면서 함께 온다는 경험은 사실 연대나 공동체... 라는 단어와 다른 뭔가 조금 더 사적이지만 좀 더 끈끈하고 좀 더 안심이 되는 상황이다.

 

서운하다 하는 감정에는 폭력적인 데가 있으니까 넌 내 뜻대로 반응해 라는 마음

서운함은 원망보다 옅고 미움보다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그런 감정들과 아주 가까이 붙어 있다.”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아프냐고 물어보지 않아서였을까 그래서 자기 자신에게도 아프냐고 묻지 못한 것이었을까

 

저는 다희씨를 좋아하면서 다른 사람도 좋아하게 됐어요. 그건 아무것도 아닌게 아니예요

 

누군가에게 기대한다는 건 늘 스스로 경계하는 일이면서도 그래도 계속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상대에게 많이 말하고 많이 기대하면 많이 바라게 될 걸 알면서도 더 가고 싶다.

혼자만의 빛을 새어나가게 하고 서로의 눈이 부시게 하고 때로 상처를 입고 입히겠지만 서로 모습과 마음을 나누는 일을 멈추고 싶지 않음.... 그런 마음이 나에게도 있었다.

 

2,

글쓰는 일이 쉬웠다면 타고난 재주가 있어 공들이지 않고도 잘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당신은 쉽게 활기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렵고 괴롭고 지치고 부끄러워 때떄로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일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것 또한 글쓰기라는 사실에 당신은 마음을 빼앗겼다.

글쓰기로 자신의 한계를 인지하면서도 다시 글을 써 그 한계를 조금이나마 넘을 수 있다는 행복 당신은 그걸 알기 전의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뭐든 힘든 건 사람 때문이다. 일이 힘든 건 없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시간이 해결해준다.

능숙하지 못하더라도 흉내는 낼 수 있다.

ㅁ정적 교류에 무감한 사람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맞지만 견딜 수 없는 부분은 아니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는 않아도 불편하거나 불쾌감은 없었다.

일에서 보람이나 어떤 숭고한 의미를 찾는데는 소질이 없다. 그것 때문에 일을 계속할 수는 없을 것이고 그것 때문에 현재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 일이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는 해야지 모두는 아니어도 누군가 단 한사람 혹은 두사람에게는 닿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바램으로 하루하루 이어진다.

결국은 늘 내가 문제였다.

내가 정직하게 타인을 아니 나를 속이지 않고 하고 있는지 그냥 일상이니까 습관처럼 무심하게 반복하는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들이 힘이 빠지게 한다.

좋아하는데 지치게 되는 내 마음에 스스로 실망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이렇게 지치고 피하고 싶은 이 마음이 정말 좋아하는 마음이 맞았는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못해서 힘든 게 아닌다. 그냥 관성처럼 되어간다는 기분

뭔가 무모하게 부질없이 힘만 든다는 생각이 지치게 만든다.

스스로 의미가 없을까봐 매너리즘에 빠질까봐 매일매일이 두려웠다.

계속 나를 의심하고 나를 다그치는 일에 지친다.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내가 그 의미에 눌리거나 도망치고 싶어지는 기분 동시에 그런 고민을 하는 나를 비웃고 싶은 마음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고 기억해야하는 일이 싫은 건 아니지만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는지 자만하고 있는 건 아닌지..

조급해져버렸지만... 결국 나는 긴장하고 준비하는 그 마음을 놓쳐버린걸까

그런 생각을 읽으며 했었드랬다.

 

3. 언니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보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무엇을 원하는지 샌경 썼던 것 같네 내가 뭘 좋앟는지도 잘 모르면서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썼지.

어린 시절부터 오랫도록 나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느끼며 자라서인지 나에게는 내가 결코 타인에게 호감을 살 수 없는 사람 멸시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이상한 믿음이 있었거든

그럴수록 나는 남들에게 더 많이 맞춰줬고 남들이 나를 좋아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매번 고민했어.

그렇게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남들이 하자는대로 끌려다니고 남들의 욕구를 총족시키느라 나의 욕구를 무시했지 그때 내개 느꼈던 가장 큰 두려움은 다른 사람이 내게 실망하는 거였어. 나는 절대로 절대로 누군가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았어

 

있는 일을 없는 일로 두는 것 모른 척하는 것

그게 우리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대하는 우리의 오래된 습관이었어 그건 서로가 서로에게 결정적으로 힘이 되어 줄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방식이기도 하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거야 다 괜찮다고 별 일 아니라고 들쑤셔 봤자 문제만 더 커질 뿐이라고

 

나의 보호자로 자처하는 일

그건 책임감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강하고 독립적인 사람이라는 걸 확인하는 방법이기도 했을거야. 그게 언니 자신이 믿는 스스ㅗ의 모습이었고 언니를 언니로 살아가게 하는 힘이었을 거야

 

누가 타인의 삶을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을까

누가 타인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의 평가나 판단이 맞을 수도 있지만 내가 아는 건 그 사람의 삶 전체가 아니라 내가 바라보고 내게 보이고 내가 보려하는 그의 부분일 뿐이다.

우리는 누구나 타인의 부분을 보고 안다고 믿는다.

동시에 울는 우리의 부분을 보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면서 그게 나라고 말한다.

그 사람이 지옥으로 걸어가고 있음을 알아도 말릴 수 없다.

바짓가랑이를 잡고 당기고 소리지르지만 그 다음 그 걸음을 멈춘 그 사람을 내가 책임 질 수 없다. 역시 걸음을 멈춘 그도 그의 삶을 다시 살아 가야 한다.

그래서 비겁하게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 각자 가지가 결정하고 선택하는 거라고 우아하게 회패한 적이 많았다.

나는 힘이 없어서 세상이 부조리해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냥 남을 판단하고 평가하거나 나 자신을 변명하고 이유를 대는 것 그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냥 내가 하면 되는 거였다.

인정해버리고 솔직하게 시인하고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이 또 있지 않을까 궁리해보고 때로는 우기기도 하고 읍소하면서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내가 한 일을 책임지는 것 그거면 충분했다.

누군가를 탓하는 나도 참 구질구질했고 그 사람의 선택이예요 라며 단정하는 나도 참 혐오스러웠는데 꼭 그게 전부는 아니더라.

 

4. 이모 파종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은

 

돌봄에 대해 생각한다.

사람은 결국 누군가에게 기대어 살아야 하고 누군가 역시 나에게 기대어 살아간다.

내가 누군가에게 기대었던 그 시간들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누군게 기꺼이 내게 어깨를 내어 주었음에 감사해야할 뿐이다.

그렇게 기대어 살았던 시간들이 계속되면 호의가 호구를 만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마음으로 내가 이만큼 여유를 되찾았구나 생각하는 쪽이 더 많을 것이다.

오빠의 무조건인 사랑이 나를 만들었고 나 역시 내 딸에게 무조건 적인 사랑을 주면 된다.

그냥 받을 생각없는 사랑과 관심들 .그리고 적당한 거리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게 하고 울고 싶으면 울게 하고 지치면 쉬게하거 끝없이 자게 하고 욕하고 싶으면 그 욕을 내가 대신 들어주면서 그 마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리고 살펴주는 일

그런 것들이 돌봄이지 않을까

그렇게 돌보다가 꽃이 피고 열매맺고 씨앗을 품고 멀리멀리 떠나가게 하는 일

그리고 내가 힘빠지고 지칠 때 또다시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 있는 일들

 

누군가에게 폐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

그 마음들이 본인도 힘들지만 상대를 몹시 외롭게 하기도 한다.

오빠를 외롭게 했을지도 모를 화자는 다시 딸을 외롭게 할 뻔 했고

이모는 사랑하는 조카를 가장 외롭게 하기도 했다.

사랑하니까 나랑 가까이 있으면 내 액운을 다 닮아버릴까봐 억지로 정을 떼기도 하고

나는 괜찮다고 너만 걱정하라는 대책없는 qpvaeh 있따.

 

받지 않은 사랑에 목말라하고 받은 사랑은 아무렇ㅈ 않게 팽개치기도 하는 건 상대의 마음을 당연한거라고 ,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고귀하고 완전하게 타인에게 마음이 닿는 것만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면 세상에 사랑이 존재하기는 할까

일상의 종종거림가 안달과 안타까움이 그냥 밥 한주걱 더 올려주는 무심함이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다르지 않을 내일을 위해 늘 종종거리는 그 마음이

더 나아지지 않아도 괜찮지만 더 나빠지지만 않으려고 그들의 그 애처러운 악착스러움이 그 마음에 그 삶에 나를 위한 마음이 섞여있음이 그게 사랑이었다.

모든 일상의 지리멸렬한 풍경 역시 사랑이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 사랑의 대상이다.

나는 지금 내 방식으로 누군가를 생각하고 사랑하고 당신 역시 그럴 것이다.

설령 그 사랑이 상대에게 닿지는 못하더라도 우리는 여기서 일상처럼 그 사랑을 쏘아보내고 있다. 가장 가까운 그 사람에게

(가족이 가족을 가장 모른다. 사실)

쎄상은 온통 뿌옇게 보였다.

누구도 그녀에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처음으로 막연함을 느꼈다.

막연한 두려움 막연한 슬픔 막연한 외로움 무엇 하나 손에 잡히지 않았고 그 사간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연락이 되지 않은 채 이십분을 늦은 친구에게, 내가 조금 있다 연락할게 하고 다시 전화하는 것을 잊은 애인에게, 내색하지 않았지만 깊이 상처받았다. 기약없이 기다리는 일은 꼭 버려지는 일 같아서였다. 눈물이 났지만 그 마음을 누구에게도 이해할 수 없었으리라고 생각해서 그저 참았다.

 

네가 웃고 싶지 않을 때 웃지 않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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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장강명 지음 / 유유히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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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삶을 살고 싶었다.

읽고 싶을 때 마음껏 읽을 수 있고  언제든 쓸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부끄럽지만 그 속에는 그 삶이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부유한 백수 정도가 되면 이룰 수 있었을까

나는 부유한 백수가 되지 못해서 

백수지만 부유하지 않거나

여전히 부유하지 못했는데 백수조차 되지 못한 상태에서 살아왔고 살고 있다.

그럼에도 열심히 시간을 쪼개어 읽었다.

읽지 않으면 내 존재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해서 늘 조급했다.

나의 의미를 내가 스스로 재단하면서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늘 머리속으로 생각만 하고 몸은 여전히 여기 깊이 침잠해 있었다.

퇴근했으니 너무 피곤해서

집에 와서도 일이 끝나지 않고 무슨 마법의 두루마리처럼 둘둘 일이 쏟아져서

신경써야 한 대상들이 많아서

오늘은 술이 당겨서

오늘을 핸드폰을 보다보디 벌써 하루가 다 가서..

밀린 넷플릭스를 봐야 해서

인간을 담구하기 위해 나는 쏠로는 꼭 봐야 하니까

등등

핑계는 차고 넘쳤고 나는 책을 들고 하루종일 동동거리면서, 한장도 넘기지 않은 날들이 수두룩했다

물론 한자도 쓰지 않은 날들은 더 많았다.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서 쓰고 싶은 건 아니었다.

내가 쓴 이야기가 만천하에 공개된다는 건 알몸으로 사거리 횡단보도앞에 서있는 것 보다 더 수치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소소하게 쓰기는 하지만 그냥 소소 로 끝났다.


늘 장바구니에 글쓰기 책이 빠진 적이 없다.

글쓰기에 대해 몰라서 안 ㅆ는 건 아니라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

뭐든 첫 걸음을 떼야 시작되는 거지 준비운동만 하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도 알지만

늘 준비운동만은 철처하게 하는 스타일이었다.

얖은 물에서 발차기만 할건데도 혹시  잠수병에 걸리는 불운이 올지 몰라서 나는 준비만 늘 준비만 철저히.. 그것도 머리속으로만.. 

점점 머리만 비대해지는 사람이 되었다.

얼핏 비치는 내 모습은 무슨 화이바를 쓴 것 마냥 머리만 둥그렇게 떠 있었다.


글쓰기 책을 읽으며 알게 된 건

작가라고 미리 준비를 많이 하고 쓰지는 않는다는 것

일단 쓰기 시작하면 쓰게 되어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어떤 의미로 이런 이야기를 선택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아니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일단 쓴다는 것

어제도 썼고 오늘도 쓰고 내일도 쓸거 라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게 이야기가 연결되고 인물들이 명확해지면서 어떤 의미가 부여되는 게 아니었을까

그게 이야기이든 이야기가 아니든 일딴 써 보는 것이 먼저였다.


가끔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좋은 작가들이 있다.(미안하지만...)

내가 얻고 싶은 답들이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에 있어서일 수도 있다.

답이라기 보다 내가 듣고 싶은 말

누구나 그렇지만 나 역시 내가 듣고 싶은 말들을 듣기 원한다.

지금 나의 처지에 변명이 될 수 있는 말들  잘 하고 있다고 격려해주는 말들

그 문장이 꼭 나를 향하지는 않더라도 나도 더불어서 틈에 끼어서 그렇구나 하고 함께 얻어 ㄱㄹ릴 수 있는 말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열심히 읽으면서 나에게 위안이 되는 문구들을 모았던 것같다.

그리고 지금 그런 문구들은 차고 넘친다.


그냥 좋은 독자 아니 좋지 않아도 읽는 사람도 나쁘지는 않다.

적어도 내가 조금 덜 편협하고 세상사에 모서리가 깍여 가는 건 읽은 것들 덕분이다.

소심하고  관계가 서툴러서 많고 다양한 사람과 세상을 만나지 못했더라도

이야기 속의 인물들과 상황을 통해 세상을 알게 되고 이해한다.

그럴 수도 있구나

그럴 수도 있지

힘들었겠네

그 입장이라면 그래야만 했겠구나 ...

그렇게 세상을 넓혔다

그나마 괜찮은 사회구성원으로 행세하는 것

관계를 이어가는 것들 역시  읽은 데서 나왔다.


누가 책처럼 타인의 상황을 나에게 자세하기 이야기 해주고  조언해줄까

나는 사실 누군가와 길게 이야기를 나누면 쉽게 지쳐버려서 이야기를 나눈 시간의 두배만큼 쉬어야 하는 극 i 인간이니 말이다

그냥 힘들지 않고 지치지 않고 다양하게 사람을 만나고 공감할 능력을 키우는 것 읽는 것 이상 없다. 

물론 모두가 다 이해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래도 조금  만두피늘이는 만큼 늘어났다고 믿는다.


이 책은 소설가가 소설가이면서 동시에 사회의 한 구성원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소설가 역시 먹고 사는 사람이고 세금을 내고  일상을 걱정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수입이 적다고 이슬과 꿈만 먹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계속 쓰고 있다


긴 휴가동안 많이 읽어야지 하고 결심해놓고 달랑 이 책 한권 읽었다.

달랑이라지만 .... 한권이라도 읽은 것에 만족하자.


동시에 조지오웰을 읽어봐야겠다는 가지가 생겼고

독서모임 그므에 대한 관심도 생겼고

일기라도 일심히 쓰자는 마음도 생겼고 

나도 북한에 대해 정말 관심이 없었구나  그냥 피상적인 생각이외에는 전혀 생각이라는 걸 해 본적이 없구나도 알았다.


알고 행하는 건 내가 할 일이고

결국 읽는 다는 건 뭔가를 알게 해주고 호기심을 갖게하는 일이다.

호기심의 결국 사람에 대한 관심이고 공감으로 뻗어간다.

궁금하다는 마음 모든 관계는 거기서 시작된다.


읽는 다는 건 몰랐던 것들에 대한 긍금증을  하나 던지는 것

그렇게 나는 한 권으로 많은 궁금한 것들이 생겼고

그걸 찾아보는 건 읽는 내가 아니라 움직이는 내가 해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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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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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전달된 편지를 호기심에 못 이겨 펼쳐본 기분

이건 나에게 보내진 편지가 아닌데 내가 무심하게 들여다 본 묘한 기분이었다.


#1  재희

정말 미안하다. 그러려고 했던 게 아니었는데 그렇게 되었다

그럼 어쩌려고 했던 건데...


그리고 이 감정을 배신감이라고 이름 붙인다. 

진심으로 분노했음을 한 템포 늦게 깨닫는다. 

내가 화를 내고 어쩔줄 몰라하는 감정에 대해 이름붙일 수 없는 혼란스러움 이후 이름붙여진 것

그건 배신감이라고 했다. 


타인에게 기대감이 없었던 내가 좀처럼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숨기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숨기고 있지도 않았음에도 가장 먼저 나의 비밀을 알았던 나의 다른 한조각처럼 여겼던 친구를 통해 커밍아웃되었다는 것

내 정체성이 밝혀진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발설이 다른 이유도 아니고 다른 사람과 자신의 관계 회복을 위한 도구로 쓰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냥 재희와 그 남자의 관계 회복에 쓰였다는 것보다  그렇게 어떤 상황에 도구로 그저 순간적인 임시방편으로 나의 정체성이 아무렇지 않게 갖다붙여졌다는 사실에 화가 나지 않았을까


어딘가 몹시 낯익은 감정이었다.

화가 나는데 화를 내면 너무 쪼잔할 거 같아서 화를 낼 수 없는 상황이 더 화가 나는데

상대는 이게 화가 날 일은 아니라고 말을 한다.

분명 미안해 하고 잘못했다고 하는데 완전 백퍼센트의 미안함이 아니라 그냥 별 일 아닌데 니가 너무 펄펄 뛰니까 내가 사과할 수 밖에 없다고 하는 뉘앙스를 아닌 척 풍겨대는 그런 상황

나도 화를 내지 않는 게 맞는 것이 아닐까 머리 한구석에서 계속 회로를 돌리면서도 마음속에서 이름붙일 수 없는 불쾌감과 불편함이 끓어오르면서 이렇게 감정이 터지는 나에게 오히려 더 화가나고 못나보이는 상황이 

분명 나에게도 있었다.

(어쩌면 주인공의 감정과는 택도 없이 다른 상황일 수도 있겠다.

감정과 상황이라는게 결국 주관적이고 내 것이 가장 날것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으므로..)


사람이 저마다 말을 하지 않지만 감추고 싶고 소중하게 여기고 싶은 부분이 있을텐데

타인의 그런 부분을 아무렇지 앟게 말해버리는 일

말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게 되는거야

그렇게 심각한 건아니야 라고 싶게 말하고 충고하고 그냥 무의식중에 내뱉는 사람들이 너무싫었다. 그런데 시간이 쌓이면서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 건 그 나이에 다 겪는 거야

니 잘못도 아닌데 뭘 그렇게 전전긍긍하니  그냥 당당하게 말해 그게 더 나아 그게 이기는 거야


누구는 더 낫다는 걸 모를까

그게 이기는 거라는 걸 모를까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을 텐데... 이제 나는 무뎌졌다고 굳은 살이 덮혔다고 타인의 말랑한 부분을 아무렇지 않게 학 벗겨낸다. 

그게 도와주는 거라고 거대한 착각을 하면서 

(사실 나의 편리성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 


누군가를 많이 좋아한다는 건

그에게 전부를 들키고 싶은 마음과 아무것도 알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똑같은 무게와 부피를 가지고 나를 혼란하게 만든다는 거다.

좋아하니까 다 말하고 싶은 마음과 좋아하니까 절대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을 자꾸 감추는 마음이 자꾸 반복된다. 

결국 에라 모르겠다라는 마음이 있지만 또 어떤 상황에서는 내가 이미  까발린 그 부분을 상대가 절대 아는 척 하지 않기를 바라는 어이없는 마음이 있다. 나는 말할 수 있지만 너는 입에 담을 수 없다고... 감히 너가 어떻게 나에게... 라는 마음이 커지면서 동시에 그게 뭐라고 이렇게 속좁게 쫌팽이같이 이러고 있나 라는 마음이 함께 커진다.

그런 혼란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따가 다시 밀려가면서 좋아하는 마음은 점점 커지고 마침내 쪼그라 든다. (영원히 좋아하거나 사랑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맞다.)

그리고 조금 허탈하고 처량하고 외롭기도 하지만

개운하고 가볍고 편안해진다.

그렇게 남이 되거나 진짜 친구가 된다.


# 2, 우주 한점 우럭의 맛  /   대도시의 사랑


이건 정말 잘못 전달된 연애편지를 읽어버린 기분이었다.

내가 이걸 읽어야 하나하면서도 호기심에  계속 다음 문장을 읽고 있다.

아픈 엄마와 한심한 내 삶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호기심을 가지고 욕구에 끌리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것

지금 나의 지리멸렬한 처지때문인건지 아니면 주체할 수 없는 내 감정의 끝까지 가보자는 마음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사람과 끝내야지 하는 마음의 무게만큼 이 사람과 계속 함꼐 하고 싶다는 마음이 똑같이 밀려온다. 

타인의 오래된 연애편지를 읽어버린 기분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나의 일기들을 붉은색 펜으로 교정을 본 그 원고가 우연히 내 손에 들어와서 내가 호기심을 참지못하고 읽어버린 것 같이 먹먹하고 아프다.


끝이 보이는 사항이라도 시작될 수 밖에 없다.

이건 도데체 어디 쓰이는 종자인지 궁금해지면 일단 게임끝이다.

안쓰러우면 끝이라거나 

귀여우면 끝이라던데

나는 궁금해지는 순간 끝이다.

결국 에이 별거 아니잖아 라는 실망으로 돌아서게 되는 상황이더라도

내가 궁금했던 것이 설마 이렇게 끝은 아닐거라는 미련이 너무 많고 끈적거리는 사람이라

결국 궁금한 상대를 요모조모 뜯어보다가 정이 드는 이상한 사람이다.

일단 정이 들어버리면 그냥 내 삶에서 쉽게 뜯어내질 못한다.

궁금한 그것이 안쓰러워지고 때로는 귀여워지면서.. 그렇게 관계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내 시간이 아깝고 내 삶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렇다고 이렇게 살지 않는다고 더 나은 삶을 살 거 같지도 않아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냥 질질 이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혼자 상처받고 혼자 폼을 잡는다.

떼어버리자니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하고 그냥 두자니 내가 영 폼이 살지 않는 기분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치사하고 수준에 맞지 않은 거 같으면서도 멈출 수가 없다.

남의 연애를 엿보면서 나의 연애를 생각한다.

지루하고 치사하고 하나도 도움이 안되는 연애를 그래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나중에 하게 된다


#3. 늦은 우기의 바캉스


나도 여행을 가고 싶다.

우연히도 하자가 있는 방을 받아서 공짜로 업그레이드도 하고 싶고

그냥 마음이 편해질정도로 비를 맞고 거리에 누워버리고 싶다.

지나간 사랑은 다 추억이 된다.

글이 좀 쓸쓸하다.



사족:

작가의 의도와 독자의 해석은 전혀 다를 수 밖에 없지만

작가의 상황이 독자와 다를 수 밖에 없고  서로의 생각이 감정이 삶이 달라서 다르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음을 안다.

그런데 사람이 다르다는 것 뿐 아니라 

그 사람이 경험하는 시간에 따라 다시 받아들이는 지점이 달라진다

어쩌면 딱 이주 전에 내가 읽었더라면 다른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딱 이주 뒤 지금 이순간 읽었던 <대도시의 사랑법>은 그냥 지리멸렬하고 지우고 싶으면서도 지우고 싶지않은 그것 역시 나일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혼자만 간직하고 있는 

딱 그런 지점의 나를 건드린다. 

별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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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것이 오지 않기를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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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의 이야기가 더 많을까 아빠와 아들의 이야기가 더 많을까

아들에게 아빠는 넘어서야 할 대상이다. 

아빠를 극복하면 (극복한다는 표현이 좀 진부하지만) 아빠를 넘어서면 그때서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

다만 21세기에 부친을 넘어서는 아들은 드물다.

시대의 문제인지  속된 말로 요즘 아이들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넘어선다는 건 이제 잘 보이지 않는다

굳이 넘어설 필요가 없을 수도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세대보다 더 잘살기는 커명 현상유지조차 아득한 시대여서일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아버지와 아들은 동료가 되거나  남남이 되거나 좀 극단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엄마와 딸은 좀 묘하다.

딸이 엄마를 극복하고 넘어서면 못된 년이 된다.

딸은 엄마의 눈치를 보고 엄마를 돌봐야 한다는 오래된, 누가 정했는지도 모를  몸에 익은 관습이 있다.

아무리 엄마를 떠나고 싶어도,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결심을 해도 엄마와 딸 사이의 탯줄은 쉽게 끊어낼 수 없다. (그런 경우가 많다.)

엄마를 두고 멀리 떠난 딸이 좋은 결과를 갖기가 쉽지 않다.

엄마를 돌보거나 엄마를 잊지 않은 딸이 언제나  좋은 결말(?)을 맞는다

좋다기 보다 그냥 착한 딸  좋은 사람 이라는 주변 사람의 칭찬을 듣는다.

그게 얼마나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 


(이제 스포가 있으니까...)

책을 읽으면서도 사에와 나쓰코의 관계를 그냥 오랜 친구라고만 생각했으니까 나도 참 둔하지

그저 사랑만 받아서 아무것도 혼자 할 수 없는 양가집 아가씨같은 사에와 부모에게 억압당하고 자기를 죽이고 살아온 나쓰코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남편이 죽겠구나 생각은 했으니 그런 면에서 좀 판에 박힌 이야기이기는 하나

결국 친구같은 모녀 이야기였다니.....


나쓰코는 엄마가 어렵고 힘들었고 인정받지 못한 채 성장을 했고 엄마같은 엄마는 되지 않기로 결심한다. 나쁜 것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든 엄마의 마음이겠지만

그저 오지 않기를... 오더라도 약하게 오기를... 나쁜 것이 몰려와도 내 아이가 잘 견뎌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넘어

어떤 것이 오든 내 선에서 다 처단해버리겠다는 마음

나쓰코는 그렇게 자녀를 돌봤다.

억압하고 군림하는 엄마가 아니라 친구같은 엄마가 되겠다


어디선 봤을까

친구같은 엄마 친구같은 딸과의 관계에서 누가 누구의 친구인가를 생각해보라는 말이 떠오른다.

엄마가 그저 딸을 친구처럼 대하면서 보호하고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리광을 부리고  자신을 돌봐달라고 하는 것은 아닌지

아이의 친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내 친구가 되어달라는 것은 아닌지...

결국 낫짱은 딸의 친구였고 모든 것을 나누고 터놓는 관계가 되어 위안이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관계는 사에에게 엄마가 없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사에는 엄마가 없다.

돌봐주고 엄격하게 훈육하고 공감해주는 엄마가 없다.

그냥 내 응석을 들어주고 편들어주고 함께 험담을 하는 친구가 있다.

편하지만 그렇게 의존하다보면 내가 없다.

나쓰코 역시 엄마의 눈치를 보며 엄마에게 맞춰 살아온 방식을 벗어나려고 하지만 엄마와 정 반대의 방식으로 똑같이 딸을 자기에게 종속시킨다.

너무 많이 도망가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느낌....


엄마의 집착과 엄마의 사랑이 상대가 원하는 것과 많이 다를 때

그러나 엄마에게 악의가 전혀 없고 상대를 위하는 희생만 있을때

뭐라고 해야할까

원망을 해도 되는지... 원망하는 내가 나쁜 건지 혼란스러운 상황

엄마와 딸은 혼란스럼지만 그 상황을 혼란스럽다고 말을 하는 건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내가 나쁜 년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참는다. 내가 참으면 된다고 

그리고 참으면 참을 수록 나는 착한 딸이 되고 상대는 나를 칭찬한다.

그렇게 왜곡된 애정관계는 다시 대를 이어 내려간다.


사실 성인이 되어 엄마에게 부모에게 받은 상처나  외로움을 핑계로 원망하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 결국 자신의 선택이라고 하지만....

알게 모르게 내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건 내 경험치에서 나올 수 밖에 없으니까 



가끔 엄마들은 자식들 때문에 지금 선택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 선택이란 자신을 가장 우선에 두는 선택이다.

지금 내가 원하는 일을 해야할까

지금 남편과 헤어져야 할까 

지금 집을 나가야 할까 

지금 소리치고 화를 내고 부당하다고 주장해야할까 

모든 상황에서 엄마는 아이를 우선 생각하고 일단 참고 본다. 

아이가 조금만 더 클 때 까지.

아이가 대학을 갈 때까지

아이가 취직만 하면

아이가 결혼만 하면

손주가 태어가기만 하면......

아이의 성장은 부모에게 특히 엄마에게 좋은 핑계까 된다.

핑계라는 의식은 없겠지만 결국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이유가 되어준다.

좋은 핑계다.

그런 핑계가 슬프고 짠하긴 하지만 .... 엄마도 가끔  아니 자주 이기적이고 못된 년이 되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자녀는 특히 딸이라면 못됐지만 행복한 엄마가 더 좋지 않을까 

적어도 엄마에게 내가 가장 우선... 이라는 거라도 배우지 않을까...

내 욕망과 내 바램과 내 감정을 우선으로 생각해보는 것...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평화의 첫걸음이라고....

그걸 알았더라면 나쓰코도  사에도 지금보다 덜 불행했을 것이다.

결국 엄마의 희생은 어딘가 빈 구석이 있고 딸은 귀신같이 그 빈 틈을 잘 찾아내는 ... 그래서

결국 나쓰코의 희생이 사에에게 죄책감을 준 것 처럼...

가끔... 아니 대부분 희생이란.... 상대에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나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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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것이 오지 않기를
아시자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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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이의 경계. 나와너 라는 구분은 필요하다.
내가 낳아도 나는 아니며 나와 다르다.
어리석은 모녀라고 할 수 있지만 사회의 통념이나 인식에서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유독 엄마와 딸의 애증이나 의존이 많은 이야기를 갖는지 생각해볼 일이다.자유는 없으면서 기대하고 바라는게 너무 많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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