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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징 솔로 - 혼자를 선택한 사람들은 어떻게 나이 드는가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 2023년 3월
평점 :
다양한 형태의 관계들
혼자 살아가며 나이 먹어가는 사람들
사회 시스템과 볍의 필요성
돌봄을 개인에게 맡겨버리는 현 상황의 여러 가지 문제들
우리사회에서 가장 작은 사화 단위를 가족으로 본다.
개인은 중요하지 않다.
개인이 모여 가족을 이루면 비로소 우리 사회의 가장 작은 단이가 된다.
서회 시스템을 가족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사실 그동안 학교에서 그렇게 배워왔지만 후기 자본주의에서는 개인이 중요해졌었다.
집단이 아닌 개인주의가 많아지고 당연해지면서 그렇게 사회가 변해간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착각이었다.
페데믹을 겪으면서 모두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집에서 나오지 말라고 했고
가족이 서로를 돌봐야 한다고 했다.
재난지원금이 가족단위로 지급되었고 개인의 행동은 모든 것이 막혀 있었다.
가족이 모든 상황에서 만능키였을까
그 기간동안 가정폭력은 더 많아졌다
집이 잠을 자기 위해 돌아가는 공간이었을 뿐이었던 사람들은 갈 곳이 없었다.
집을 나오는 순간 어디에도 머물 곳이 없었다.
가족이 없는 사람 가족이 없는거나 다름 없는 사람 가족을 피하고 싶은 사람들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혼자 살 때 가장 걱정이 되는 건 아플 때 어떻게 할까 하는 문제다
혼자 죽을만큼 아플 때 연락할 사람이 있을까> 나를 위해 달려올 사람이 누가 있을까
수술이라도 하려면 가족이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
함꼐 사는 친구도 연인도 공동체 동지도 아무 것ㄷ 할 수가 없다.
수술할 때 보호자의 동의서를 받는 관행은 이미 2007년도에 대한병원협회에서 공분을 보내 보호자의 수술 동의서가 없다고 환자의 수술을 지연시키거나 거부하면 의료법의 진료 거부 행위에 해당해 처벌이나 행정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직계가족인 보호자를 찾고 동의서를 요구하는 관행은 여전했다.
이 관행은 1인가구 동성커플 등 소위 정상가족의 틀을 벗어난 사람은 실제 일상을 함꼐 하는 이가 실질적 보호자가 될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
이는 단순히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존재 조건이 사회에서 쳬계적으로 무시되고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뜻하기도 한다.
오래 아프게 되면 누가 나를 돌봐 줄까
돌봄은 가족이 전담해야 한다는 통념을 벗어나 바깥의 사람들이 서로를 돌보는 돌봄의 관계망을 주목한다.
돌봄이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하고 월차나 주말을 구성원을 돌보는데 사용하는 일종의 상호부조의 모임이 있다. 돌봄은 간병등 전문적인 도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신체활동 보조와 위생관리이외 아픈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밥을 먹고 병원을 가고 산책을 하고 남겨진 반려동물이나 식물을 돌봐주는 것 등 다양하다.
단순하게 아프면 병원에 가서 진료받고 치료를 받고 수술을 한다는 등 단순하게 생각하다 보면 아픈 몸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경험인지 모르게 된다. 모르면 아픈 이에게 점점 더 공감하기 어렵고 정상을 자꾸 요구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함께 병원을 가는 것 이상의 수준을 위해 공부를 해야한다.
서로의 몸을 봐주는 것 서로에게 신세지는 것을 받아주고 나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 혼자 오래 살아온 솔로들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아니 이건 솔로뿐 아니라 가족이 있어도 어렵다. 가족은 당연히 나를 돌봐주야 한다는 마음을 솔직히 여자들은 갖기 쉽지 않다.
내가 아프다는 사실이 죄책감이 되고 나의 병으로 인해 다른 가족구성원의 일상이 엉망이 된다는 사실에 점점 내 아픔은 뒷전이 될 수도 있다.
누구나 나의 아픔은 숨기고 남에게 폐끼치는 상황을 극도로 꺼리게 된다. 남에게 무엇인가를 도와달라고 요청하거나 부탁하는 일은 어렵고 싫어서 어지간하면 혼자 해결하려고 한다.
그런 마음은 내가 남에게 부담을 주고 페 끼치는 걸 실ㅇ허하는 만큼 다른 사람이 나에게 폐를 입히는 상황이나 부탁하는 것 혹은 타인에게 무언가를 받는 것을 꺼리게 된다.
사실 타인에게 폐를 끼치고 타인이 나에게 기댈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든 혼자 살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혼자서만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재 솔로가 아니더라도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 솔로가 되어버리는 순간이 늘 존재한다. 가족이 언제나 내 곁에 있어 주는 것도 아닐 것이고 내가 나이 먹어 다른 가족이 먼저 사망할 수도 있고 멀리 떠날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이고 지금은 입에 든 음식도 빼서 넣어줄 수 있는 가족이더라도 나이가 들고 서로 서먹해지기도 하고 부담스러워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때 나는 내 가족에게 당당하게 폐를 끼치고 그들이 나에게 의지하는 순간을 주저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사실 자신이 없다.
결국 사람은 서로 꼴을 봐주고 폐를 끼침을 주고 받는 연습을 해야한다.
사실 가족을 이루고 사는 성인도 자신을 스스로 돌보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자기를 사랑하고 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 성인들이 만나 가정을 이루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가족은 언제든 쉽게 와해되고 무너질 수 있는 구성이다.
가족이라서 서로 의지가 되고 든든한 보금자리이기도 하지만 솔로들 못지 않게 가족들도 언제나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부양이라는 모두 가족의 몴으로 돌아가는 지금 그 무게에서 도망가고 싶은 구성원도 있을 것이고 더 이상 책임지고 싶지 않거나 자식에게 부모에게 짐지우고 싶은 가족도 없을 것이다.
돈이란 솔로도 필요하지만 가족안의 여성들도 필요하다.
가족이 언제나 내 곁에 있어 줄지 알 수 없다.
비관적이고 너무 부정적이지 않냐고 하겠지만 사실이다.
가족이니ᄁᆞ 서로의 역할이 있고 해야할 일이 있겠지만 그 역할은 언제든 바뀔 수 있고 가족이라고 꼭 해야하는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의무와 관계가 누군가에게는 말할 수 없는 부담이거나 갖다버리고 싶은 존재로 여겨질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기본적인 행리 현상을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서 살아가는 상태를 존엄이 훼손된 삶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인간의 존엄이 생리 현상과 위생으로 좌우되는 그렇게 하찮은 가치일까?
치매에 대한 공포와 대안으로 안락사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 배후에는 살아있을 가치가 있는 생명과 없는 생명을 구분하는 생각이 깔려 있다.
안락사를 원한다는 거침없는 생각이 어쩌면 마음 속으로 은근히 인지증이나 다른 질병 등으로 자기 결정권을 잃어버린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보는 사고방식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아의 일부분을 구성하는 어떤 것들은 치매로 인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이전의 삶의 흔적들을 가진 몸의 사소한 행동들이 사실은 그 사람의 삶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사람의 몸은 그저 손상된 뇌를 담은 그릇이 아니다.
누군가를 하나의 인격 또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인지능력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그 사람에 대해 , 그리고 그 사람과 내가 주고받은 제스터들에 대해 내가 기울이는 관심 무의미해보이는 그 사람의 몸짓들이 의미를 갖게 하는 관계와 돌봄의 제스쳐들이다.
노년의 상호 돌봄에 대해
“서로서로 견디는 힘만 있으면 다른 건 해쳐나갈 수 있어요 누군가를 견디지 않고 가능한, 그렇게 아름답기만한 관계가 있나요? 그런 건 없어요, 그런데 좋으니까 견디는 거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좋으니까 견디는 거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니ᄁᆞ 좋으니ᄁᆞ 그만큼 어떤 부분은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갖는 거죠 누군가가 나를 감당해 주기 때문에 나도 누군가를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이 공동체를 가능하게 해주는 기본 바탕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혜진의 가장 완벽한 케이크의 맛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내가 친구의 부탁을 아무말 없이 들어주게 되는 것 절대 다시는 그 부탁을 들어주징 않겠다고 결심하지만 자꾸 마음이 불편해서 그냥 들어주고 돌봐주는 주인공이 그 친구 역시 나를 봐주고 말하지 않고 견디고 있는 부분이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 결국 관계라는 건 서로가 알게 모르게 기대고 의지하고 이익을 취하고 손해를 입히면서 이어가는 것이다. 하나하나 따지고 계산하지 않는 것 속상하고 억울하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그 마음이 결국 관계를 계속 이어가게 만든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들 , 오늘은 꼭 해야겠다고 결심한 말들을 결국 하지 않음으로서 그 관계가 다시 이어지고 새롭게 보여지는 그순간을 누구나 경험한다. 말하지 않기를 잘 했고 내가 견뎌주기를 잘 했고 감당할 수 있어 다행인 관계들 글격 우리가 살아가는 건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
가족들 사이에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리고 오늘 처음 만난 사회구성원들 사이에서도 필요하다. 따박따박 따지고 물어보고 확인하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그냥 모른 척 넘어가고 손해보는 시간도 함께 필요한 것이 사람사는 모습이다.)
현재 가족의 모습도 다양하고 살아가는 방식도 다양한데 재도나 시스템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정상 가족모델은 여전히 존재하고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는 여전히 개인이 아니고 가족이다.
가족이 족쇄인 사람이 있고 가족이 그늘인 사람도 있다.
버리고 싶은 가족도 있고 병풍이라도 있어만 주면 좋겠다는 가족도 있다.
서로 다른 욕구가 있고 상황이 있고 관계가 있다.
조금씩 지금 변하고 있는 중일까
사회복지나 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내가 혼자 나이를 먹게 되더라도 가족과 함께 나이를 먹게 되더라도 생각해야할 것들이 많이 있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그저 자녀들이 돌봐주고 뒷방에서 그렇게 잊혀져 가는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면 가족이 있거나 없거나 노년이 아름답지만은 않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나는 나이고 여전히 욕구가 있고 취향이 있고 내일의 삶을 계획하고 기대한다.
우리 사회에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그리고 우리 생각이 어떻게 변해갈지 생각할 수 밖에 없는 독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