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절에 버리러 트리플 17
이서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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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의 이야기

세상에 많은 엄마와 딸의 이야기가 있다.

왜 아빠와 아들의 이야기보다 엄마와 딸의 이야기가 더 많을까

아들은 아빠를 넘어서야 한다고들 한다.

아빠를 넘어서는 순간 아빠를 극복하는 순간 어른이 된다고 한다

그렇게 어른이 된 아들은 아빠를 떠나 자신의 길을 떠난다.


그러나 딸은 언제나 엄마 옆에서 엄마를 돌본다.

멀리 떠난 딸은 다시 돌아온다. (바리데기)

딸이 멀리 떠난 이유는 늘 가족 누군가를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아빠의 눈을 뜨기 위해 인당수에 뛰어드는 심청이도 딸이고

자신을 버렸던 부모의 병을 고치기 위해 먼길을 떠나 자신을 버린 바리데기도 딸이고ㅗ

리어왕을 마지막까지 붇틀고 있던 막내딸도 있다. 

(어쩌면 리어에게는 세 딸이 아니라 두 아들과 딸이 있었을 수도 있다.)

오빠들이 다시 사람이 되기 위해  입을 꾸욱 다물고 엉겅퀴로 옷을 지엇던 공주도 있다.

딸이나 여동생들은 언제나 가족을 돌보는 역할이다.

늘 돌보던 딸과 여동생들은 결혼을 해서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면서 다시 돌본다.

그들을 돌봐주는 건 다시 딸이다.

아들만 있는 집 엄마가 불행하다고 우스개처럼 하는 말은 결국 돌보기만 하고 나를 돌봐줄 딸이 없다는 데서 오는 불행이다.

딸이 엄마에게 친구같다는 말은 

뒤집어 말하면 엄마에겐 딸 아닌 누구도 없다는 말이다.

엄마가 딸의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 아니라 딸이 엄마의 친구가 되어주어야 한다.

엄마를 돌보고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딸은 가족에게 발목잡히고 가족을 떠날 수 없다.

길을 떠나려는 순간 죄책감이 또 발목을 잡는다

나쁜 년 저만 아는 년이라는 비난을 함께 짊어지고 길을 떠난다.


딸에게는 그런 돌봄의 유전인자가 뼈에 박혀있는 것일까

딸은 그냥 보통의 딸이 되거나 나쁜 딸이 되거나 둘 중 하나다


소설 속의 딸들은 나쁜 딸이 되기로 한다.

아버지 병시중을 들어야 하는 삼각관계에서 누구도 빠질 수 없다. 돈을 버는 내가 도망갈 수도 없고 돌봄을 맡은 엄마가 도망가서도 안된다. 다만 아빠가 죽으면 된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그런 아빠는 참 오래도 버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면 모든 돌봄이 끝난 것 처럼 말한다.

나의 돌봄은 나의 인생계획에 없던 일처럼

엄마는 절로 떠나려고 하고 딸은 엄마를 절에 버리기로 하지만

너무나 눈치가 빠른 스님때문에 실패한다.  아니 실패하기로 했다.

엄마는 늘 딸이 멀리 훨훨 날아가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딸은 쉽지 않다.

서로 그 마음을 뻔히 알아서 돌봄의 고리를 끊어내기가 쉽지 않다.


두번째 딸은 로맨스 소설을 쓴다

그리고 엄마도 로맨스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약하고 물러터진 엄마가 아니라 몸에 서 털이나고 몸이 변해서 늑대가 되는 그래서 모든 불의를 해결하고 강해지는 이야기를 쓴다.

그러나 그 이야기안에도 로맨스가 있고 달달하고 나긋나긋한 관계들이 있다.

딸은 엄마를 그냥 엄마로 봤지만 엄마 역시 뭔가 꿈꾸는 소녀였고 여자였고 동시에 길거리에서 잠드는 그냥 아줌마이기도 하다.


세번째 딸은 아픈 엄마를 돌보는 딸이다.

돌봄이 너무 힘들어   변칙을 써서라도 뭔가 지원을 받고자 하지만 그 역시 쉽지 않다.

엄마가 너무 무겁지만 버릴 수도 없다.

코로나때문에 근처 허름한 모텔에서 지내야 하는 일주일이 오히려 휴가처럼 느껴질만큼 지리멸렬한 일상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부담스럽고 힘들고 도망치고 싶은 관계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와 된장찌게를 함께 먹는 순간 역시 가족의 일상이 된다.


사회는 발달한다는데 돌봄은 여전히 가족안에 머문다.

가족안에서도 돌봄을 맡는 역할은 늘 정해져 있다.

일이 없어서 수입이 없어서 그래도 니가 가장 편하다고 하니까.. 등등등...

일을 그만 두는 딸과 며느리는 당연히 돌봄의 역할을 해야하고

일을 쉬는 남편과 아들은 다시 일하기 위해 휴지기를 가져야 한다.

물른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누구도 돌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발가벗고 울기만 하는 아기에서 태어나서 저 잘났다고 으스대며 살겠지만 

결국 총기가 떨어지고 노화되어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시간은 돌아온다.

사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내가 누군가를 돌봐야 하고 나도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아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겪는다.

그렇다면 돌봄 역시 가족에게  사적으로 맡기고 눈을 감을 일은 아니다.


이 문제는 공공의료 공공 복지의 문제로 넘어가야 할 시점이 이미.... 지났다. 


책은 재미있게 술술 넘어가지만 순간 멈칫하는 부분이 꽤 있다.

부모가 나이들어간다고 생각된다면

나도 나이를 먹어가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면

내 가까운 이들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고 느껴진다면....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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