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의 계절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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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 어떻게든 그렇게 살아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하고 그런 말을 하고 그런 행동을 하고 그렇게 아무렇지않을 수 있지?

라는 짓들이

어느 순간 나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더라

나만 모르고 있더라

내가 무수히 손가락질하고 뒷말을 하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을 그런 짓을

나도 다르지 않게 하고 있더라

뭐라고 해야하나

그때 흔들어댄 내 손가락 탓을 해야할까


어떻게 그럴 수가... 어떻게 이런 일이....염치없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사니?

라는  악다구니가 고스란히 내게 돌아왔다.

어쩌다 보니 그럴 수도 있고 어쩌다 보니 이런 일도 가능하고 염치없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이 숱하다.

젊은 시절은 젊은 줄 모른다.

한없이 젊음이 지속될거라고 믿거나 이미 더 이상 젊지않다고  착각하거나 

아주 긴 시간이 있다고 믿거나 이제 더 이상 시간이 없다고 믿거나 나는 늘 지금의 내가 옳다고 새각했다  틀리지 않은 내가 영원히 지속될거라고 믿었다. 젊음이 계속되는 동안 지속되거나 이미 젊은 시간을 흘려보내고 계속 흘러오는 시간동안 나는 변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렇게 흘러내리는 시간을 나는 겪어내고 살아냈다고 믿었다.

변하지 않았다고 나는 틀리지 않았다고 믿었는데

나는 흐르는 시간에 휩쓸려 이리저리 위치를 바꾸었고 상황이 바뀌었고 그렇게 변하면서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거나 어쩌면 그 때 그 시간의 내가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따.

사슴벌레문답에 오래오래 머물렀다.


너 어떻게 그렇게 잔인해 나 어떻게든 그렇게 잔인해 

인간은 무었으로 살아?  인간은 무엇으로든 살아

강철은 어떻게 단련돼?  강철은 어떻게든 단련돼


답이 있따고 길이 있따고 믿었던 질문과 계획은 널 어디선가 어그러질졌다.

길이 있고 답은 있지만 내가 생각한것과 달랐다.

어쨌뜬 답이 나오고 길은 계속되었지만 그 뿐이다.

그렇게 허무하지만 버티고 견뎌온 밀도 높은 시간과 경험들이 있었다.

어쨌든 어떻게든 하게 되...

결국 그거였다. 후회든 뿌듯함이든


엄마와 딸의 대화가 점점 짙어진다.

처음엔 툭툭 잽을 날린다.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마나 강한 힘을 숨기고 있는지 어쩌면  뒷주머니에 무기를 숨기고있는지 툭툭

탐색하지만 그 탐색이 애써 나를 지키려는 안간힘이 아니라  설령 뒷주머니에서 칼날이 나온다면 기꺼이 맞아주겠다는 마음?

서로에게 가지는 미안함과 그만큼의 이해가 됨이 모순되면서도 어쩔 수 없는 마음들이 오간다.

실버들처럼 늘어진 인연을 끊어내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 엉기고 질기게 이어지는 것이

결국은 잘라내기를 포기하고 그냥 그렇게 단단히 붙들고 끝을 보자는 마음

어쩌면 서로가 서로를 잘라내고 멀리멀리 도망갔다고 생각하는 그 시간동안

서로의 주변을 끊임없이 맴돌았을 것이다.

그래서 잘라냈따고 믿었던 그 실버들같이 축축 쳐진 가닥가닥들이 그냥 엉키고 설켜서 단단한 매듭같이 되어 버렸을 것이다.

관계라는 게 끊어내려면 쉽지 않고 그냥 두겠다 싶으면 사라진다.

좀 더 진해진 두 사람 반희와 채운의 다음이야기가 궁금하다.


마리아는 마리아구나

세상 모든 고난과 역경에서 자신의 죄를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사람

언제나 속죄가 필요한 사람

태극기를 팔고 있는 그 빈 시간에서 위로를 받는 사람

우리는 타인을 늘 자기 입장에서 바라보고 판단한다. 

배르타를 비롯한 성당 식구들이 기억하는 마리아는  인내하고 봉사하고 겸허하게 몸을 낮추는 사람이라 표현되지만 어쩌면 그들 눈앞의 마리아에게는 그렇게 관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추앙하고 너도나도 좋은 말만 보태지만 날이 바뀌면 점차 기억에서 지워낼 것이다.

베르타가 느끼는  부끄러움 역시 언젠가 그냥 지워질 것이고 마리아가 지워질 것이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 내가 부끄러워지는 순간

내가 얼마나 편협한가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문득문득   내 속에서 자리잡으면

사람은 그래도 조금 더 나아지고 있닥 믿고 싶다.

별 이야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펼쳐 아무 곳이나 읽다 보면 마리아를 읽고 있다.

(책 가운데있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 많아지고 점점 딸들에게 의지하는 엄마

공주같기도 하고 누구에게나 의지하고 기대지만 누군가 자신에게 기대는 건 딱 질색인 엄마와

깜빡깜빡하는 딸롸 무심한 딸

엄마와의 식사이후 단둘이 피우는 담배가 무척 맛있게 느껴진다.

(깜빡이)


이번 엄마는 계속 자식에게 하소연한다.

딸에 대한 하소연을 아들에게 하고 있지만 결국 딸을 빗대어 아들에게 서운한 것들을 토로한다.

오익은 좋은 아들이 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엄마의 하소연 정도는 감당할 수 있따고 믿었던 걸까

본인의 지리하고 여기저기 눈치보고 깊은 마음을 주지 않은 부초같은 마음이 엄마에게도 여전하다 그러나 엄마와는 댧지만 길게 이어진 뿌리가 있다.

자식에게 죄책감을 주면 엄마는 무엇을 얻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자식이 못한 걸 이야기하고 한탄하면서 대놓고 요구하지도 못하면서

은근히 알아차리기를 바라는 마음은 뭘까

어쩌면 내가 자기 욕구에 충실하고 원색적으로 요구하는 유형이 오히려 귀엽다고 생각해버리는 건 

가장 불현하고 힘든 대상이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타인에게 부과해버리는 이런 유형이어서다.

그냥 읽으며 오익아 도망쳐... 라고 말하고 있었다.


기억의 활츠는 많이 마음이 아프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지 않아도 된다고 믿고 산다는 것

그냥 열심히 살았고 나는 내 시간에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 뒤에

문득  아파오는 것들이 있다.

숲속 국수집에서 다시 기억해는 그날의 시간들

강아지 국수 노래 활츠.. 수박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지금의 후회나 미안한 마음이 그냥 하나의 좋은 기억을 만들어줘서 감사하다는  그마음만 남게 될 것이다.

그게 뻔뻔해서도 아니고 정신승리도 아니다.

오래오래 미안하고 후히하고 곱씹다 보면 기억아나 시간들이 걸러지고 걸러져서

그 시간을  지나온 내가 대견하고 괜찮고  그런 시간을 만들어준 누군가가 마냥 고맙다.

그렇게 된다.


등장인물들에게서 느껴지는 익숙함. 어디서 만난듯한  낯익음 

결국 나도 그렇게 뻔뻔하기도 하고 소물적이기도 하고 후회하다가도 절대 그럴지 않을거라고 극악스러워지는 사람이어서다.



타인이 이해가 되기만 하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만 생기면 나이든 증거라던데..

나도 나이 먹었다..

좋아하는 작가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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