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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평점 :
잘못 전달된 편지를 호기심에 못 이겨 펼쳐본 기분
이건 나에게 보내진 편지가 아닌데 내가 무심하게 들여다 본 묘한 기분이었다.
#1 재희
정말 미안하다. 그러려고 했던 게 아니었는데 그렇게 되었다
그럼 어쩌려고 했던 건데...
그리고 이 감정을 배신감이라고 이름 붙인다.
진심으로 분노했음을 한 템포 늦게 깨닫는다.
내가 화를 내고 어쩔줄 몰라하는 감정에 대해 이름붙일 수 없는 혼란스러움 이후 이름붙여진 것
그건 배신감이라고 했다.
타인에게 기대감이 없었던 내가 좀처럼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숨기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숨기고 있지도 않았음에도 가장 먼저 나의 비밀을 알았던 나의 다른 한조각처럼 여겼던 친구를 통해 커밍아웃되었다는 것
내 정체성이 밝혀진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발설이 다른 이유도 아니고 다른 사람과 자신의 관계 회복을 위한 도구로 쓰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냥 재희와 그 남자의 관계 회복에 쓰였다는 것보다 그렇게 어떤 상황에 도구로 그저 순간적인 임시방편으로 나의 정체성이 아무렇지 않게 갖다붙여졌다는 사실에 화가 나지 않았을까
어딘가 몹시 낯익은 감정이었다.
화가 나는데 화를 내면 너무 쪼잔할 거 같아서 화를 낼 수 없는 상황이 더 화가 나는데
상대는 이게 화가 날 일은 아니라고 말을 한다.
분명 미안해 하고 잘못했다고 하는데 완전 백퍼센트의 미안함이 아니라 그냥 별 일 아닌데 니가 너무 펄펄 뛰니까 내가 사과할 수 밖에 없다고 하는 뉘앙스를 아닌 척 풍겨대는 그런 상황
나도 화를 내지 않는 게 맞는 것이 아닐까 머리 한구석에서 계속 회로를 돌리면서도 마음속에서 이름붙일 수 없는 불쾌감과 불편함이 끓어오르면서 이렇게 감정이 터지는 나에게 오히려 더 화가나고 못나보이는 상황이
분명 나에게도 있었다.
(어쩌면 주인공의 감정과는 택도 없이 다른 상황일 수도 있겠다.
감정과 상황이라는게 결국 주관적이고 내 것이 가장 날것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으므로..)
사람이 저마다 말을 하지 않지만 감추고 싶고 소중하게 여기고 싶은 부분이 있을텐데
타인의 그런 부분을 아무렇지 앟게 말해버리는 일
말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게 되는거야
그렇게 심각한 건아니야 라고 싶게 말하고 충고하고 그냥 무의식중에 내뱉는 사람들이 너무싫었다. 그런데 시간이 쌓이면서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 건 그 나이에 다 겪는 거야
니 잘못도 아닌데 뭘 그렇게 전전긍긍하니 그냥 당당하게 말해 그게 더 나아 그게 이기는 거야
누구는 더 낫다는 걸 모를까
그게 이기는 거라는 걸 모를까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을 텐데... 이제 나는 무뎌졌다고 굳은 살이 덮혔다고 타인의 말랑한 부분을 아무렇지 않게 학 벗겨낸다.
그게 도와주는 거라고 거대한 착각을 하면서
(사실 나의 편리성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
누군가를 많이 좋아한다는 건
그에게 전부를 들키고 싶은 마음과 아무것도 알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똑같은 무게와 부피를 가지고 나를 혼란하게 만든다는 거다.
좋아하니까 다 말하고 싶은 마음과 좋아하니까 절대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을 자꾸 감추는 마음이 자꾸 반복된다.
결국 에라 모르겠다라는 마음이 있지만 또 어떤 상황에서는 내가 이미 까발린 그 부분을 상대가 절대 아는 척 하지 않기를 바라는 어이없는 마음이 있다. 나는 말할 수 있지만 너는 입에 담을 수 없다고... 감히 너가 어떻게 나에게... 라는 마음이 커지면서 동시에 그게 뭐라고 이렇게 속좁게 쫌팽이같이 이러고 있나 라는 마음이 함께 커진다.
그런 혼란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따가 다시 밀려가면서 좋아하는 마음은 점점 커지고 마침내 쪼그라 든다. (영원히 좋아하거나 사랑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맞다.)
그리고 조금 허탈하고 처량하고 외롭기도 하지만
개운하고 가볍고 편안해진다.
그렇게 남이 되거나 진짜 친구가 된다.
# 2, 우주 한점 우럭의 맛 / 대도시의 사랑
이건 정말 잘못 전달된 연애편지를 읽어버린 기분이었다.
내가 이걸 읽어야 하나하면서도 호기심에 계속 다음 문장을 읽고 있다.
아픈 엄마와 한심한 내 삶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호기심을 가지고 욕구에 끌리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것
지금 나의 지리멸렬한 처지때문인건지 아니면 주체할 수 없는 내 감정의 끝까지 가보자는 마음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사람과 끝내야지 하는 마음의 무게만큼 이 사람과 계속 함꼐 하고 싶다는 마음이 똑같이 밀려온다.
타인의 오래된 연애편지를 읽어버린 기분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나의 일기들을 붉은색 펜으로 교정을 본 그 원고가 우연히 내 손에 들어와서 내가 호기심을 참지못하고 읽어버린 것 같이 먹먹하고 아프다.
끝이 보이는 사항이라도 시작될 수 밖에 없다.
이건 도데체 어디 쓰이는 종자인지 궁금해지면 일단 게임끝이다.
안쓰러우면 끝이라거나
귀여우면 끝이라던데
나는 궁금해지는 순간 끝이다.
결국 에이 별거 아니잖아 라는 실망으로 돌아서게 되는 상황이더라도
내가 궁금했던 것이 설마 이렇게 끝은 아닐거라는 미련이 너무 많고 끈적거리는 사람이라
결국 궁금한 상대를 요모조모 뜯어보다가 정이 드는 이상한 사람이다.
일단 정이 들어버리면 그냥 내 삶에서 쉽게 뜯어내질 못한다.
궁금한 그것이 안쓰러워지고 때로는 귀여워지면서.. 그렇게 관계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내 시간이 아깝고 내 삶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렇다고 이렇게 살지 않는다고 더 나은 삶을 살 거 같지도 않아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냥 질질 이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혼자 상처받고 혼자 폼을 잡는다.
떼어버리자니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하고 그냥 두자니 내가 영 폼이 살지 않는 기분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치사하고 수준에 맞지 않은 거 같으면서도 멈출 수가 없다.
남의 연애를 엿보면서 나의 연애를 생각한다.
지루하고 치사하고 하나도 도움이 안되는 연애를 그래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나중에 하게 된다
#3. 늦은 우기의 바캉스
나도 여행을 가고 싶다.
우연히도 하자가 있는 방을 받아서 공짜로 업그레이드도 하고 싶고
그냥 마음이 편해질정도로 비를 맞고 거리에 누워버리고 싶다.
지나간 사랑은 다 추억이 된다.
글이 좀 쓸쓸하다.
사족:
작가의 의도와 독자의 해석은 전혀 다를 수 밖에 없지만
작가의 상황이 독자와 다를 수 밖에 없고 서로의 생각이 감정이 삶이 달라서 다르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음을 안다.
그런데 사람이 다르다는 것 뿐 아니라
그 사람이 경험하는 시간에 따라 다시 받아들이는 지점이 달라진다
어쩌면 딱 이주 전에 내가 읽었더라면 다른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딱 이주 뒤 지금 이순간 읽었던 <대도시의 사랑법>은 그냥 지리멸렬하고 지우고 싶으면서도 지우고 싶지않은 그것 역시 나일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혼자만 간직하고 있는
딱 그런 지점의 나를 건드린다.
별꼴이다.